진중권의 이매진 - 영화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는 예술이다. 논쟁은 끝났다. 발터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 수없이 인용되며 끊임없이 논의되었지만 영화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위상과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의미와 기능은 변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예술과 영화의 관계를 벤야민은 ‘아우라Aura’를 통해 설명했지만 사진과 영화의 복제 가능성 때문에 예술의 범위를 논하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대중문화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말이다.

  그것이 오락이든 예술이든 장르의 문제가 아니가 아니라 변화, 발전의 양상과 미래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화는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우리에게 더 큰 즐거움과 충격과 미적 쾌감을 전해주리라고 굳게 믿는다.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단 한 순간도 정체되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며 진화하는 영화는 여전히 21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 매체로 거듭나고 있다.

  영화를 즐기는 방식과 태도가 달라지고 있지만 스크린을 통해 전해지는 이미지와 메시지는 여전히 장르의 특성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한 프레임 안에 한 장면을 보여주던 방식은 한 장면에 여러 장면을 중첩시키거나 화면을 분할하여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등 영화의 기본적인 전제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형식과 내용이 파괴가 영화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역동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형식보다는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된다. 형식을 벗어나서 논의될 수 없는 분야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읽기는 내용에 집중된다. 이런 관심은 최근 철학자 김영민의 ‘영화와 인문’ 칼럼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영화도 결국 인간의 문제로 귀결되고 어떻게 살 것이며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관심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둘러싼 수많은 존재들에 대한 관심과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히 증폭된다. 영화는 늘 일상에서 벗어나 있다. 소설과 달리 비루하고 속된 일상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영화는 일탈된 상황을 보여준다. 100분 내외의 시간동안 관객들을 집중시키기 위한 영화의 서사는 소설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일단 보여주기로 시선을 끄는 데는 한계가 있다. 최근 CG의 현란한 기술들은 실사와의 구별을 모하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영화가 완성될 수는 없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은 영화의 오래된 숙제이기도 하다.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부터 <300>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역사는 시대의 흐름과 기술의 발전을 반영해 왔다.

  영화 이야기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또 다르게 이야기될 수 있다. <진중권의 이매진>은 ‘씨네 21’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연재물이다. 책으로 묶이는 순서는 당연해 보인다. 신문이든 잡지든 좋은 칼럼을 읽게 되면 언제 책으로 나오게 될지 기다리게 된다. 아직도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매체가 책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어쨌든 이 책은 영화 잡지에 1년간 실렸던 칼럼을 모은 책이다.

  저자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영화에 대한 비평이라기 보다는 영화를 가지고 노는 이야기이다. ‘담론의 놀이’라는 말이 적절해 보인다. 영화가 좋다 나쁘다는 평가도 아니고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문제 삼지도 않는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당연히 언급하게 되지만 미학적 혹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영화의 코드를 뽑아내는 식이다. 가령 친숙한 영화 <슈렉>은 ‘쿨미디어의 뜨거운 하이퍼리얼 효과’로 읽어내거나 ‘과거를 현재화하는 문화적 기억’으로 <화려한 휴가>를 읽어내는 등의 방법이다.

  이 방법은 영화를 통해 다양한 상상력과 시대와 상황들을 읽어내는 담론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 자체에 대한 깊은 논의와 몰입의 즐거움은 얻을 수가 없다. 이것은 영화비평의 몫으로 남겨두는 저자의 방법은 타당해 보인다. 전문가 수준 이상의 영화리뷰와 다양한 매체를 통한 영화 분석에 진중권이 굳이 뛰어들 까닭이 없지 않은가. 누구든 자신의 영역과 전문 영역이 있고 그 특징을 가장 잘 살려낼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측면에서 진중권의 색깔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면서 또 다른 영화의 재미를 읽어낼 수 있게 하는 영화이야기 책이다.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부터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에 이르기까지 영화 장르와 접속할 수 있는 수많은 담론들이 난무하여 영화를 읽어내는 재미를 더해준다. 한 편의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단순히 그것에서 무엇을 얻었는가와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영화적 상상력과 재미라는 것은 서사의 즐거움과 시각적 효과만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는 아닐까 싶다.

  영화의 죽음, 복제에서 생성으로, 서사의 파괴, 기술과 신체, 시각에서 촉각으로, 미디어와 권력, 이성과 광기, 해석에 반대한다. 영원한 소년, 기억으로서 역사 등 열 개의 장으로 나누어 서너편의 영화를 묶었지만 주제별로 묶였다기 보다 하나의 관점으로 엮였기 때문에 그 영화들의 공통점을 살피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저자가 이미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에서 보여주었듯이 영화 또한 예술적 상상력이 동원한 놀이에 불과하다는 관점에서 즐겨야 한다. 얼마나 깊고 다양하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는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가 된다. 책 한 권에서 얻을 수 있는 효용과 즐거움이 영화 한 편으로 환산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일단 재미있는 영화를 봐야 얘기가 된다. 저자는 우연에 기대고 있다고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영화 리스트가 일단 반갑다.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에서부터 빔 벤데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에 이르기까지.


090127-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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