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한국문화인류학회 엮음 / 일조각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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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조상은 왜 두 발로 걸었을까? 인간 진화의 주역은 남성 사냥꾼인가, 여성 채집가인가? 백인은 가장 진화된 인종일까? 일부일처제가 가장 합리적인 결혼제도일까? 인종, 종족 그리고 민족이란 무엇인가? 왜 먹고 살만큼만 일하면 안 되나? 종교는 정치에 어떻게 이용되었을까?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 수많은 질문들 중에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인류학자다. 쉽게 말해서 문화는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습관을 가리킨다. 종족마다 생각이 다르고 지역마다 생활습관이 전혀 다르다. 문화에는 우열은 없으며 차이만 있을 뿐이다. 차별과 차이가 다르다. 우리 혹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문화를 우습게 보는 것은 정말 우스운 사람이나 하는 짓이다. 고리타분한 ‘인류학’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인류학은 흥미진진한 분야다.

  21세기의 한국인을 위한 ‘문화인류학’ 입문서를 지향한다는 취지아래 여러 명의 인류학자가 공동 작업을 해서 펴낸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은 소설보다 재미있다. 어떤 학문분야든 이론과 개념에 대한 지루한 설명 그리고 연구 방법론을 소개하며 시작하는 개론서와 전문서적들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찾아 읽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실제 생활에서 빈번하게 부딪치는 문제들이나 막연한 호기심을 해결해 준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배운 대로 본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 P. 22

  이 책은 14장으로 나누어 문화가 무엇인지부터 인간의 진화, 여성과 남성, 혼인과 가족, 경제, 정치, 차별, 몸, 아름다움, 종교, 역사, 세계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통해 문화인류학의 즐거움을 전해준다. 어렵고 개념적인 설명을 다룬 책이 아니라 인류의 실제 생활과 밀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문화의 기원과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이고 지구 곳곳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 우리를 비교한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저절로 답이 나온다. 우리가 생활하는 방식과 사소한 생각의 차이는 모두 사회화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어떠한지 이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다른 문화와 대면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문화적 가치들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자신의 삶의 방식이 유일하고도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문화상대주의는 때때로 고통과 혼란을 수반하기도 하지만, 다른 문화와의 대면은 성장 과정에서 무뎌지거나 억압되었던 자신의 문화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과 감수성을 회복시켜 준다. 즉, 자기 문화를 보다 잘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 P. 30

  개고기를 먹는다고 우리를 욕하는 프랑스의 여배우나 손으로 밥을 먹는 외국인 노동자를 비웃는 우리들은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편견 덩어리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상대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나도 인정받기 힘든 것이다.

  문화는 집단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마다 풍습이 조금씩 다르듯이 이 넓은 지구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고방식과 생활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문화상대주의는 단순한 지식과 이해의 수준을 넘어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삶의 자세다.

 이 책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문화’라는 동일한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문화인류학회에서 공동 작업을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는데 빈 말이 아니다. 과거에 대한 호기심이나 타문화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전체를 조망하고 있다. 우리를 낯설게 바라보고 우리의 선택이 최선인지 확인하는 것이 인류학이다. 문화인류학은 다른 문화를 통해 우리 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데 의미가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과 대답을 꼼꼼히 살펴보자. 바로 그 안에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또 다른 누군가에 얼마나 신기하고 낯설게 느껴질까 생각해보자. 세상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갖게 해주고 다양한 관점을 얻을 수 있는 이 책을 모든 사람에게 읽히고 싶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사람과 자신의 경험 세계의 차이를 꼼꼼하게 되짚어 보는 훈련은 인류학자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 P. 291


09082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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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 시인선 86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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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내 마음은 골짜기 깊어 그늘져 어두운 골짜기마다 새들과 짐승들이 몸을 숨겼습니다 그 동안 나는 밝은 곳만 찾아왔지요 더 이상 밝은 곳을 찾지 않았을 때 내 마음은 갑자기 밝아졌습니다. 온갖 새소리, 짐승 우짖는 소리 들려 나는 잠을 깼습니다 당신은 언제 이곳에 들어오셨습니까


  시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거워야한다. 앞서 말했듯이 일단 시험과 공부에서 벗어나야 시가 마음에 들어온다. 현대 시인 중 이성복을 골라보았다. 아직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라서 그의 문학 세계를 평가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시들을 통해 섬세한 감수성과 번뜩이는 비유, 역동적 상상력을 보여준 시인이다.

  『그 여름의 끝』은 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은 시 문법의 파괴와 현실세계에 대한 냉소, 화려한 연상 작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고 두 번째 시집 『남해금산』에 이어 『그 여름의 끝』을 발표했다. 이 시집은 전체가 연애시로 읽을 수 있다. ‘당신’의 의미를 찾는 것은 한용운의 ‘님’을 찾는 것과 같다. 80년대의 시대현실이나 객관적인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부족하고 다소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시를 읽기 시작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시의 본질적 성격을 보여주며 다양한 비유와 상상력을 경험할 수 있는 시집으로 추천할 만하다.

산길 2

  한 사람이 지나가기 빠듯한 산길에 아카시아 우거져 드문드문 햇빛이 비쳤습니다 길은 완전히 막힌 듯했습니다 이러다간 길을 잃고 말 거라는 생각에, 멈칫멈칫 막힌 숲 속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떨면서, 가슴 조이며 우리는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언제나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었지요


  어느 산인지 그것이 꼭 걸을 수 있는 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산’의 의미와 ‘길’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면 이제 본격적인 시 읽기가 시작되었다. 비유니 상징이니 하는 말들을 어렵게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의 상황에 비춰보거나 구체적인 장면을 연상해 보면 된다. 시는 이론과 개념을 굳이 알 필요가 없다. ‘언제나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 되었’다는 말의 의미를 다양하게 생각해 보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대부분 시는 교과서에서 혹은 신문이나 잡지에서 한 편씩 읽게 된다. 공감할 수 있는 시 한 편을 읽고 감동을 받거나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한 권의 시집을 통해 한 시인의 흐름을 파악해 보는 것은 어떤가. 시인의 특징과 시세계를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전체적인 구성과 일정한 기간 동안 시인이 관심을 가졌던 대상이나 생각의 흐름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장점이 있다. 마지막의 ‘거울’이라는 시를 읽어보자.

거울

  하루종일 나는 당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 길은 끝이 있습니까 죽음 속에 우리는 허리까지 잠겨 있습니다 나도 당신도 두렵기만 합니다 이 길은 끝이 있습니까 이 길이 아니라면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이 나의 길을 숨기고 있습니까 내가 당신의 길을 가로막았습니까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거울처럼 당신은 나를 보고 계십니다


  문학은 나와 대면하는 시간이다. 시는 기쁨과 감동을 주기도 하고 나를 위로해 주기도 한다. 마치 ‘거울’처럼 나를 비춰볼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시다. 조용히 나의 내면을 돌아보고 자연 현상과 사회 현실을 감동적인 우리말로 표현한 시집을 읽어보는 건 어떤가? 시는 언제든 당신에게 안길 준비가 되어 있다.


09082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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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시간에 시읽기 1 문학시간에 읽기
전국국어교사모임 엮음 / 나라말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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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


  괄호를 채워보자. 쉽고 감동적인 시가 시 읽기의 출발이다. 시는 상상력의 출발이고 감동의 시작이다. 시는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가슴으로 전달된다. 시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칠판에 적어놓고 빈 칸을 나름대로 채워보라고 하면 다양한 말들이 쏟아진다. 문학에는 정답이 없다. 사물과 사람 그리고 세계에 대한 작가의 인식과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있을 뿐이다.

  시를 보면 일단 분석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는 어느 고 3 학생의 말은 시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처음부터 즐겁고 재미있게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말보다 내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상을 즐겨야 한다. 위의 시는 『국어시간에 시 읽기』3권에 수록되어 있는 나태주 시인의 작품이다. 시인은 ‘너도 그렇다’는 말로 이 시를 마무리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보아야 사랑스러운 ‘너’는 풀꽃일 수도 있지만 이 시를 읽는 사람 모두가 될 수도 있다. 시는 이렇게 하나의 의미로 규정되지 않고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시는 재미있고 즐거운 상상이어야 한다.

행복

오늘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뉴스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영방송의 초창기 일화다
나는 그 시대에 감히
행복이란 말을 적어 넣는다

- 박세현, 『문학시간에 시 읽기 2』


  박세현의 ‘행복’은 나태주의 ‘풀꽃’처럼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끔찍한 뉴스들을 생각해 보면 과연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시인은 특별한 뉴스가 없는 시대를 ‘행복’이라고 말한다. 행복의 의미와 사회 현실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다. 이렇게 시를 즐길 수 있으려면 수업시간에 ‘외우고 풀어야 할 시’라는 생각을 먼저 버려야 한다. ‘느끼고 즐기는 시’가 되지 않으면 시를 감상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야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시를 만나도 두렵지 않고 시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즐기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한다. 참고서에 적힌 다른 사람의 해석을 외우는 방법은 평생 시와 멀어지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문학시간에 시 읽기1~3』은 전국의 국어 선생님들이 가려 뽑은 시들을 ‘나’, ‘사회현실’, ‘자연’이라는 큰 주제로 엮은 책이다. 어려지 않게 읽히고 그 뜻을 금방 알 수 있는 시부터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시들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어떤 시든 정확한 단어의 뜻을 알고 문장을 이해해야 한다. 스스로 전체적인 의미와 화자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다면 시는 지겹고 어려운 것이 되고 만다. 학생들에게 직접 읽혀보고 뽑은 시들이기 때문에 혼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생각해볼 거리’가 있어서 교과서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이 시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시 읽기의 즐거움은 언어적 감수성을 높여주고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한다.


0908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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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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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번 하자.
  - 싫어.


  도입부가 황당한 소설이다. 독자들은 어리둥절한 채 ‘한번 하자’의 목적어를 찾기 시작한다. 작가는 모른 척하고 주인공의 일상을 서술하기 시작한다. 눈을 뜨자마자 담배를 찾다가 ‘명호씨’의 것을 슬쩍 하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고3 남학생이다. 수능이 끝나고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주인공 ‘준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섹스’밖에 없다. 여자 친구 ‘서영’이게 ‘한번 하자’고 조르는 고3 남학생의 모습은 너무나 적나라하여 오히려 코믹하게 읽힌다.

  청소년들에게 ‘성(性)’에 관한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내려놓을 수도 먹을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 사춘기를 겪으면서 성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최고조에 이른다.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야동’은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최고의 성교육 학습 자료다. 인간의 신체 발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 현실에서 답을 구할 수 없어 생기는 괴리현상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입시와 취직 전쟁을 피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 소설조차 드물다. 현실은 고사하고 문학에서조차 금지되어 있는 청소년들의 성문제를 본격적인 주제로 다루고 있는 박현욱의 <동정 없는 세상>이 빛나는 첫 번째 이유가 여기 있다.

  인 에릭 로샹의 영화 『동정(同情) 없는 세상』을 『동정(童貞) 없는 세상』으로 표현한 이 소설은 제6회 문학동네작가상 당선작이며 박현욱의 데뷔작이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소설이 영화화되어 주목받기도 했는데 현실적 인간, 사회적 제도 문제에 관심이 많은 작가인 듯싶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Maslow, 1908~1970)는 인간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과정을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나가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그는 먼저 인간 본성에 대해 세 가지 가정을 하고 있다.

1. 인간은 만족할 수 없는 욕구를 갖고 있다.
2. 인간의 행동은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3. 인간의 욕구는 기본욕구(생리적인 욕구, 안전욕구)에서부터 상위욕구(소속과 애정욕구, 자아 욕구, 자기실현의 욕구)까지 5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매슬로우에 따르면 욕구 충족에는 위계가 있어서, 마치 우리가 양동이에 물을 부으면 아래로부터 위로 물이 차오르듯이, 반드시 하위에 있는 욕구가 먼저 충족되고 나서야 상위 수준의 욕구를 추구할 수 있다고 한다.

  서론이 너무 장황했나? 생리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않고 이해도 설명도 해결도 되지 않는데 어른들은 대학 입시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요구한다. 청소년들의 성문제는 단순한 억압이나 교육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결혼하는 나이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는 점점 더 높은 학력과 교육과정이 요구된다. 대한민국에서는 군대까지 갔다 와서 최소 20대 후반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소설의 미덕은 첫째가 ‘재미’다. 이 소설은 재미도 분량도 서점에 서서 두어 시간이면 읽고 나올 수 있다. 우선 책읽기의 재미를 붙이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찾는 다면 가볍게 <동정 없는 세상>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

  성장 소설이라고 불리는 소설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이 소설은 가장 직접적이고 솔직하다. 정공법을 선택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인 경우가 많다. 에둘러 설명으로 하품나는 성교육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을 지루하게 하는 것보다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상담과 문제 해결 방법을 고민할 때다.

  이 소설은 단순하고 재미있는 ‘준호’의 성장 소설만으로 볼 수는 없다. 준호는 아버지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게다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백수 삼촌을 ‘명호씨’라고 부르고 어머니를 ‘숙경씨’라고 부른다. 막나가는 학생이라는 뜻이 아니다.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어머니의 태도는 준호의 ‘대학’ 고민을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만든다. 적어도 부모의 기대나 억압 때문에 좌절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준호의 고민은 오늘도 내일도 한 번 하는 것뿐이다. ‘엄친딸’인 여자 친구 서영이는 잘 생긴 나의 제안을 번번이 거절하지만 그녀 역시 남자친구 문제로 고민했을 것이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대한민국의 학벌문제, 한 부모 가정, 청년실업까지 읽어낸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준호나 서영이의 상담역으로 등장하는 삼촌 ‘명호씨’는 십 년째 박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다. 준호의 성문제를 상담하는 내용이나 대학에 가야하는 이유에 대한 짤막한 충고가 이 소설을 가볍게만 볼 수 없게 하는 요소가 된다. ‘한번 하자’로 시작해서 ‘한번 하자’로 끝나는 재미있고 유쾌한 소설을 통해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현주소를 짚어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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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레종 데트르 - 쿨한 남자 김갑수의 종횡무진 독서 오디세이
김갑수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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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쿨하지 않은 남자 김갑수의 쿨한 책읽기. <나의 레종 데트르>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 의한 독서 편력기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지 우리는 ‘나’의 존재의 근원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 왜 사는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단순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들. 그것이 삶이 아닌가 싶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가족일 수도 있고 주변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대체로 책 속에서 새로운 만남을 갖는다. 존경할 만한 삶을 살았던 사람부터 괴짜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그래서 책을 읽는다.

  내가 알고 있는 쥐꼬리만한 지식과 세상에 대한 인식의 틀은 모두 책 속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차적으로 나를 키워준 부모님과 내 가족과 학교 교육과정과 직업에서 기인하는 정체성은 표면적으로 사회적 ‘나’를 말해준다. 하지만 나는 책을 통해 인격을 형성하고 세상을 알았으며 삶의 태도와 방법을 배웠고 생의 의미를 깨달았다.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관점을 통해 내 존재 의미를 생각하고 내일을 꿈꾼다. 거창한 꿈을 꾼 적도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돌아보는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그러나 책은 어쩌면 또 다른 욕망의 블랙홀과도 같다. 책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책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점이 변화하고 책 속에서 절망한다. 또 다시 끊임없는 상상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나 스스로를 간서치라고 명명하는 것은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책 읽는 인간은 현실을 조금 먼 거리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게 나만의 착각일까. 투명한 유리벽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세상이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도 책은 내 삶의 도구이고 길잡이며 가장 원초적인 욕망의 배설구이다.

  음악 듣고 책 읽는 사람 김갑수의 <나의 레종 데트르>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의 갈피들은 물론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것들이다. 그가 소개하는 수많은 책들을 읽었고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생각들을 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눈빛으로 빛났을 것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는 그가 분명히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책도 일이 되면 힘들고 지겹기도 할 것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즐거움을 감출 수는 없다.

  이 책은 대체로 태어난 지 10여 년 언저리를 넘나드는 책들과 고전들이 뒤섞여 있는 변주들이다. 하나의 주제 혹은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엮어 책의 내용들을 소개하고 특징을 잡아내며 해석을 보태고 있다. 읽었던 사람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연관된 책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호기심과 관심을 유도한다.

  전체 16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성교로 시작해서 민족주의의 그늘로 끝난다. 시작은 다분히 자극적이지만 소개된 책과 그것을 분석하는 내용은 오히려 슬프다. <카사노바 나의 편력>,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악마>, <나도 때론 포르노그래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 <문학으로 보는 성>, <사랑은 진할수록 아름답다>가 첫 번째 채널에 소개된 책이다. 면면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성에 대한 담론을 중심에 두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돌아본다. 나와 우리를 살펴보는 것은 책을 통한 세상 읽기이다. 솔직하고 돌발적인 발언들이 조심스러움으로 포장되어 있다.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문장이나 적극적이고 계몽적인 표현과 거리가 멀다. 감성적인 인간의 책읽기가 빚어낸 이성적인 글쓰기가 독자들에게 적당한 자극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한 채널에 예닐곱 권이 소개되어 있으니 줄잡아 백여 권이 소개되어 있다. 재미나는 인생, 멜로디를 넘어서, 소설, 고전의 미로, 영혼의 문제, 사람들, 운명 등 특별히 계통성 있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자유롭고 즐거운 책읽기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심각하게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읽은 책은 요약적이거나 교훈적이다. 하지만 그의 책읽기는 목적이 없는 유목이며 공허한 영혼을 달래기 위한 처방전과 같다.

  휴가철이나 방학이 되면 추천도서 목록이 넘친다. 책읽기가 취미라니! 일년에 잠시 여유 시간이 있을 때만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책을 화려한 파티복이나 보석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책읽기는 본질적인 독서의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제부터 책읽기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는 책읽기에 관한 책이나 김갑수의 <나의 레종 데트르> 한 권을 권하고 싶다.

  무슨 책을 어떻게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은 김갑수식의 종횡무진 책읽기를 권한다. 주제별로 유사한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좌충우돌 읽은 책들의 한줄 꿰기. 만만한 작업도 쉬운 방법도 아니지만 책 자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더디지만 가장 행복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바쁜 세상에 정처 없이 길을 나서는 일이 어디 쉽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이유를 말할 수 없듯이 책을 읽는 이유를 말하기도 어렵다.

  김갑수가 적극 추천했던 아직 못 읽는 책들, 읽었지만 기억 속에 가물거리는 책들이 또 다시 도서목록에 오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이렇게 책 읽기과 사람읽기, 세상읽기의 안내자가 되어준 사람들의 목록을 한번 적어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내게는 그들이 삶의 나침반이고 길잡이며 고마운 스승이다.


090803-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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