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의 제왕
이장욱 지음 / 창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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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망을 담아낸다. 그것이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확인하고 이루지 못한 꿈을 꾸기도 하며 내 삶에 대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현실적인 욕망을 모두 이야기를 통해 실현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지루한 세상에 던지는 돌팔매질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말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장욱의 소설집 『고백의 제왕』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공간과 현실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틈에 대한 이야기로 들린다. 8편의 단편은 제각각 불협화음처럼 다른 소리를 낸다. 통일된 주제도 없고 귀를 쫑긋 세우고 들을만한 흥미진진함도 찾아볼 수 없지만 다음 이야기가 못내 궁금하다. 기이한 소설들로 읽힌 것은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현실이라는 것이 어차피 유리벽 안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겐 저 너머의 세상일 뿐이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고백한다. 그것은 내 이야기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비밀일 수도 있겠다. 다만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닌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독자들은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상하게도 기시감이나 어디서 보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순전히 나만의 희미하고 어렴풋한 기억의 편린들일지도 모르겠다.

  소설도 독자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와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당연하다면 객관적인 느낌이나 특징을 짚어낼 수 없는 소설들이 많다. 이장욱의 소설이 그러하다. 맨 앞에 내 놓은 ‘동경소년’이 그렇고 ‘변희봉’이 그렇다. 유끼를 사랑하게 된 나는 유끼를 사라진 유끼를 통해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무너져 내린 자신의 가슴의 빈 공간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괴물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은 변희봉을 사람들은 모두 김인문으로 기억한다. 내 입장에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하지만 죽기 직전 유언처럼 아버지의 입을 통해 변희봉이라는 이름 석자를 듣고 그것이 아버지와 나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주인공들은 현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람들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단 하나의 기억, 단 하나의 경험이 어긋난다. 그것은 때로 치명적인 상처가 되고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는 결격 사유가 되기 십상이다.

앞으로로의 인생에서 이런 생활이, 이런 감정이, 이런 시간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는 때가 있는데, 그때가 꼭 그러했습니다. 일생의 모든 것이 갑자기 명백해지는 순간이 있는 법이니까요. - P.  ‘동경소년’중에서

  특히 표제작이 된 ‘고백의 제왕’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과 비루한 삶을 중얼거린다. 고백의 제왕은 사람들이 차마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해버린다. 그것은 타인을 불편하게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그 고백의 신뢰성보다 중요한 후일담을 통해 끝없이 이야기를 확대 재생산한다. 아니면 모든 상황을 종료하거나.

  고백, 즉 이야기는 바로 소설이다. 이장욱의 소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혹은 자신의 욕망에 대해 충실한 소설이다. ‘아르마딜로 공간’과 ‘기차 방귀 카타콤’의 세계가 그러하고 간간이 흥얼거리는 김광석의 노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가 그러하다. ‘곡란’에서는 바로 그러한 인물들의 집합소이다. 생을 이별하고 싶은 사람들의 찌질한 인생. 죽음조차 생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두려움의 연장일 뿐이라면 얼마나 비참할까. 그래서 작가는 우리가 모두 ‘인형의 집’에 갇힌 사람들은 아닐까 반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왜 빛이며 죽음은 왜 어둠인가?

인생은 왜 빛이며 죽음은 왜 어둠인가. 삶은 오히려 어둠의 편에서 오는 것은 아닌가. - P. 73 ‘변희봉’중에서(‘인형의 집’에 나오는 대사 재인용)

  사람들은 하루하루 서로 다른 생의 목표와 즐거움을 찾아 떠나기도 하고 지루한 일상을 견디기도 하며 내일 혹은 희망이라는 피로회복제를 복용하고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 나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현실 세계를 유리창 밖의 이야기처럼 바라보기도 하고 뜨거운 열정과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생의 한 순간을 살아내기도 한다. 길고 짧다는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으로 우리들의 인생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고 느끼고 살아내는 것은 소설가가 아니라 현실속의 독자이며 우리이고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인생은 어떠한가? 나는 유리상자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무언가 고백한다는 것은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이 아니라 신산한 인생과 아득한 사랑에 대한 깨달음은 아닐는지.

 인생은 신산했고 사랑은 아득했으며 대학은 생각보다 세속적이었다. - P. 92 ‘고백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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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능력을 기르는 국어수업
고용우 지음 / 나라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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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을 잘 정리하여 전달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잘 이해하게 하고, 잘 기억하게 하는 것’을 좋은 국어 수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현실에서 ‘학생들이 뭔가를 더 알게 되고, 뭔가를 깨닫게 되고, 뭔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에 초점을 두는 수업을 모색하는 것은 쉽지 않다. - P 23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여러 가지 요소로 잴 수 있다. 급여, 근무환경, 노동조건, 집과의 거리, 근무시간, 보람, 안정성, 미래에 대한 전망 등등. 얼마 전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직업 선호도 조사에서 남녀학생 모두에게 1위로 조사된 직업이 중등학교 교사라는 뉴스가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공교육을 불신하며 사교육에 기대고 사랑과 존경이 사라진 시대에도 직업의 안정성 때문인지 교사는 매우 높은 선호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교사들이 느끼는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회적 신뢰와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없는 상황과 여건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교장, 교감에 의한 근무평정을 유지한 채 이중 잣대가 되고 있는 교원평가나 마녀 사냥식 언론몰이, 교사에 대한 불신 등은 실제 교육 현장에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공정한 평가와 발전 방안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불신과 불온한 시선을 전제로 한 비난과 무한 경쟁체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육은 당장 눈에 보이는 수치가 아니라 먼 미래를 보고 나무를 심는 일과 같다. 목적과 동기가 올바른지 점검해야 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인간에 대한 가치와 믿음이 무엇보다 앞서야 한다. 내 자식만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부모와 학교를 안전한 직장으로만 여기는 교사에게 참교육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훌륭한 선생님은 보석처럼 빛난다.

  건강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는 국어 선생님이 계시다. 울산제일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계신 고용우 선생님이 펴내신 『언어능력을 기르는 국어수업』을 온 몸과 마음을 다해 꼼꼼하게 읽었다. 국어교육 현장에서 오랫동안 몸담아 오면서 느꼈을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들이 구석구석에 배어 있었다. 겨우 1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늘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용기를 주었다. 『문학시간에 시읽기』와 『문학시간에 소설읽기』를 엮으며 처음 만난 선생님의 진지한 모습을 떠올리며 책을 읽으니 직접 내게 말을 건네시는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은지 또한 얼마나 노력하는 선생님이 많은지 모른다.

  선생님은 이 책의 제목부터 많이 고민하신 듯하다. 국어교육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다. 당장 눈앞에 수능과 논술 등 대학입시를 앞 둔 학생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수업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밑줄 쫙’으로 일컫는 참고서 대신 수업을 할 수도 없다. 물론 대부분의 국어 수업이 아직도 참고서를 옮겨 적어주고 암기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를 통해 변별력을 시도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 국어교육의 미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담해지는 것이다.

  이 책은 수능 준비를 하는 학생들보다 국어선생님들을 위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학부모나 학생이 읽어도 도대체 국어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며 진짜 언어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또한 삶에 도움이 되는 국어공부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있다. 국어선생님이 되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는 그 고민들과 국어교육의 발전 방향을 전국의 국어선생님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선생님들에게 안내가 될 만한 책들은 물론 국어교육과 국어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좋은 책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는 나라말 출판사에 나온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 번 학교와 국어교육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 책은 우선 ‘수업 목표 쓰기’라는 선생님의 특별한 국어수업 준비로 문을 연다. 실제 학교에서 학기 초에 준비해야 할 일은 1년간 아이들을 가르칠 연간 계획을 세우고 같은 학년을 맡은 선생님들과 수업의 내용과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수업 목표를 아이들,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고 이해시키는 일을 해 오셨다. 꼭 필요한 일이지만 선뜻 하기 어려운 일을 해오고 계신 것이다. 간단하게라도 내년부터 당장 함께 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시와 소설, 매체, 비문학, 고전문학에 대한 수업 방법과 내용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내용과 함께 설명해 준다. 실전에 활용할 수 있고 이런 방법에 왜 중요하며 실제 학생들의 언어 능력을 기르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시 수업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결국 나는 시 수업의 비중을 시 읽는 능력 기르기에 많이 두는 셈이다. 그래서 내가 지향하는 시 수업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낯선 시를 많이 접하게 할 것. 둘째, 시의 의미를 파악하는 활동을 많이 하게 할 것. 셋째, 자주 시를 음미하고 암송하게 할 것. - P 65

  같은 일을 하며 공감하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쉽게 적용하지 못하는 것들 혹은 알고 있지만 동료 선생님과 합의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실천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실제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선생님 언어(국어,문학)영역 공부는 어떻게 해요?’이다. 한 마디로 대답하기도 어렵고 불가능하기도 하다. 잘 가르치는 것보다 잘 안내하는 것이, 내가 잘 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10년쯤 걸린 것 같다. 아마 같은 맥락에서 언어능력을 기르는 국어 수업을 고민하신 고용우 선생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진짜 수능이나 논술도 국어 시험도 잘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좀 더 빨리 알려주고 내일부터 당장 그 비법(?)을 전수해 줘야겠다.

다양한 읽을거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기르는 것은 국어 수업이 지향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목표가 아닌가 한다. 글을 읽는 힘이 곧 세상을 읽는 힘이기 때문이다. - P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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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생태보고서 - 먹고, 싸우고, 사랑하는 일에 관한 동물학적 관찰기
한나 홈스 지음, 박종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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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류가 쌓아온 지식과 학문적 성과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일지도 모른다. 존재론적 측면에서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질문부터 생태학적 관점에서 인간존재에 대한 탐구에 이르기까지 우리 자신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이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도전이며 현실적인 문제 해결의 출발이다.

  낯선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을 바꿔야 한다. 세상은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 촉발된 인간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과학적으로 종결된 상태지만 종교적 관점에서는 21세기에도 여전한 논란거리이다. 과학적 사고와 증명과정을 거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신의 영역으로 처리하면 얼마나 완벽한가.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안일하게 사유하는 동물이 아니다. 인간의 기원에 대한 수많은 논란거리에 대해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철학과 종교는 물론 심리학, 생물학 등이 그것이다. 과학적 접근방식이 우리에게 항상 정답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익숙한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 없는 원숭이』를 통해 우리가 받았던 충격은 외면하고 싶었던 인간의 진실 때문이었다. 동물학적 관점에서 별로 진화한 것도 없이 고도로 발달된 물질문명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자.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기 위해서는 ‘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결국 인간은 끊임없이 뇌를 발달시켜 ‘도구의 사용’에 목숨을 건 종족이기 때문이다. 뇌가 발달하지 않았다면, 도구가 없었다면 지구는 지금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과학저술화의 대중화는 아카데미즘에 매몰된 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빌 브라이슨의 명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비롯해서 한나 홈스의 『인간생태보고서』가 그렇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과 지루할 정도의 상세한 설명과 객관적 데이터에 의한 분석은 또 하나의 진지한 인류학 보고서를 탄생시켰다. 얼만큼 주목과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또 하나의 기념비적 ‘인간 사용설명서’가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가장 관찰하기 쉬운 대상을 선택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다. 자신의 몸과 행동 그리고 삶의 궤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면서 인간에 대한 진지한 생태보고서를 펴낸 것이다. 최근 들어 진화심리학이 주목받았던 것도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이 책이 주목받아 마땅하다. 풍부한 실증사례와 인간과 동물의 비교, 섬세한 관찰로 인해 독자들은 다른 동물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된다.

  저자는 인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객관적으로 통찰하고 새롭게 해석한다. 특히, 인류가 쌓아온 지적 유산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이 뼈아프게 들린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하며 현재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자세가 독자의 공감을 얻고 우리 모두의 반성을 촉구한다.

  인간은 두 종류가 있다. 남자와 여자. 여성인 화자이자 저자의 입장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인간과 원숭이의 차이만큼 흥미있는 주제이다. 그래서 이 책 곳곳에는 두 종류의 인간에 대한 비교가 재미있게 기록되어 있다. 물론 생태학적 관점에서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서.

지금껏 기록된 1,154개의 문화권 중에서 오직 100여 개만이 '한 번에 한 사람'하고만 짝을 맺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문화권들, 이슬람이나 모르몬교도들도 이에 포함되겠지만 이런 쪽에선 일부다처나 일처다부를 눈감아주고 있다. 비록 직접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해도 말이다. 요컨대 결론은 다수의 문화권에서 다중 짝짓기를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호모 사피엔스는 일부일처 동물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 P. 294

  영원히 결론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 비교할 수도 없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 우리는 그 커다란 간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자. 여성은 남성을 이해하고 있는지 남성은 여성을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 그보다 우선 서로를 이해할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보자. 인류학적 관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단순히 유전적, 생물학적 차이뿐만 아니라 인류가 살아온 삶의 과정의 차이만큼 분명한 생태학적 차이에서 기인한다. 인간을 이해하는 일은 어쩌면 서로 다른 이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서 시작되는 아닐까 싶다.

  그러나 다른 동물과 지구 환경의 측면에서 인간의 행동과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충격적이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의 습성과 욕망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들 자신의 적나라한 생태학적 보고서를 통해 현재를 통찰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불과 수천 년, 진화 과정에서 보면 찰나에 불과한 시간 동안 행동 습성을 완전히 바꾸고 그럼으로써 지구에 강력한 충격을 가한 종은 인간 동물이 유일하다. 이제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중에서도 인간 동물이 받는 압박이 가장 크다. - P. 535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만이 자신의 본능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행성의 다른 거주자들을 위해 스스로를 기꺼이 희생하는 태도는 우리가 가진 가장 비범한 자질이다. 이는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 P.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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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2010-05-28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행성의 다른 거주자들을 위해서 스스로를 기꺼이 희생하는 태도...를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sceptic 2010-05-30 21:15   좋아요 0 | URL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를 저자는 이타적 행동에서 찾고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릅니다.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저는 저자의 관점에 동의했습니다.

 
싱커 (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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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엽, 유럽연합과 미국 등이 강대국에 대항해 출범한 동아시아연합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지구를 벗어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하기 시작했다. - P. 7

미래는 알 수 없는 법. 꿈꾸고 상상하고 의심하라.

  시험 전날, 학교에 불이 나거나 갑자기 휴교를 하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황당한 상상을 하며 혼자 웃곤 한다. 유리벽 안에 갇힌 사차원의 세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일코(일반인 코스프레)’에 가담한다. 평범하게 웃고 떠들고 보조를 맞추며 들키지 않고 엉뚱한 상상과 공상을 즐긴다. 정도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각자 현실에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사람들은 정말 현실세계만을 받아들이고 사는 걸까?

  영화 <매트릭스>를 보며 장자의 ‘나비’를 떠올린 관객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만큼이나 모호한 삶의 죽음의 경계. 초등학교 시절 밤에 잠들지 못하고 혼자서 고민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대로 잠이 들면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밤이 되면 또다시 죽음의 세계로 넘어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한참이나 뒤척였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은 없지만 그때는 꽤나 심각했던 고민이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현실과 꿈의 세계를 혼동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구운몽’의 성진이 처럼 지금 잠시 양소유의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모든 욕망을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그것이 꿈이 아닐까. 지구별로 잠시 여행을 온 우리들의 덧없는 삶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조금씩 그 이유가 다르다. 나는 무엇이 집착하고 있는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상, 황당한 공상이 얼마든지 즐겁게 펼쳐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소설이다. SF, 미래소설, 공상과학 등으로 명명되는 이런 종류의 서사를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즐겼을 이야기가 우리 문학에서는 정통 소설의 주변에 머물며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무협지 혹은 환타지와 구별되는 영역을 구축하며 과학의 발전을 예견하기도 했고 미래의 삶을 추측하기도 하며 사람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는 분야지만 우리의 문학적 풍토에서는 설 자리가 많지 않았다.

  창비청소년문학상의 세 번째 소설로 선택된 배미주의 『싱커Syncher』는 『위저드 베이커리』와 유사하게 비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을 다루고 있지만 미래사회를 그린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문학적 상상력을 일궈낸 가상의 미래도시 ‘시안’은 지하세계에 건설된 유토피아이다. 수많은 영화에서 확대재생산하고 대부분 미래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 최근에 나온 『2058 제너시스』 - 이상사회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반영한다. 하지만 그곳은 완벽한 세상이 아니라 디스토피아에 대한 경고에 불과하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바라볼 수 있지만 보다 나은 세상은 ‘자연’스럽지 않은 곳이다. 자연에 대한 끝없는 도전과 지칠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이 초래할 미래는 굳이 소설이 아니어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완벽한 인공도시에서 ‘자연’에 접속(sync)한다. 게임을 테스트한다는 명목이지만 경험하지 못한 자연 즉, 동물의 감각을 가상현실에서 간접경험하게 되는 주인공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며 세상을 낯설고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부정적 관점이 아니라 비판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지 않으면 우리는 바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믿고 보이는대로 판단한다. 이성적 판단력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리를 스스로 갖추지 않는다면 편협한 이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청소년들에게 현실에 대한 비판적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고 있는지 의문이지만.

  하층계급에 속한 미마가 신분상승을 위한 유일한 수단인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스마트약’을 찾는 사건의 출발은 우리들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현실에 대한 의심과 상상력이 결여된 무조건적 복종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각개전투로 우리는 결코 행복한 미래도 즐거운 인생도 얻을 수 없다. 이 소설은 220여페이지의 짧은 분량에 수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듯 복잡하다. 새롭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아니고 충분히 예측 가능한 전개와 결론이 아니어서 아쉽다. 극적 반전이나 깜짝 놀랄만한 클라이맥스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치명적이고 단순한 평가를 받을 우려가 있어 아쉽다.

  현재든 미래든 소설은 결국 인간의 문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싱커’를 하게 된 후로 미마는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깨달았다. 아니, 모든 생물이 서로에게 외계였다. 지식은 결코 '이해'가 아니었다. - P. 71

그것은 특별한 자든 평범한 자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 - 이해받고 함께하고 싶은 욕망때문이었을 것이다 - P. 178



100523-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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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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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out · li · er/-,li(ə)r/명사
1. 본체에서 분리되거나 따로 분류되어 있는 물건.
2. 표본 중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적 관측치.


  차고 넘치는 자기계발서의 홍수 속에 살아야 하는 시대는 슬픔이다. 무한 경쟁, 승자독식시대를 살아야하는 신자유주의의 국민들은 한 순간도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배워야하고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여야만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수많은 성공신화는 대중들에게 꿈이고 희망이다. 현실에서 벗어나 미래를 꿈꾸는 것은 보다 나은 풍요와 물질적 보상을 의미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기계발서 알레르기가 있어 거의 손도 대지 않는 것도 일종의 편견일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편견은 필요하다고 스스로를 위무하며 살다가 가끔 좋은 책을 놓치기도 한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가 바로 그런 책이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타고 태어난다고 하지만 이 책과의 만남이 특별하지는 않다. 우연히 얻게 된 책을 오래 두었다가 꺼내 읽었다. 성공하기 위한 노력, 자신을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려는 욕망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하지만 이 책은 성공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특별함을 이야기하는 책도 아니고 천재성을 흉내 내자고 부추기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은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사람들의 생각의 오류를 짚어낸다. 성공한 사람들은 어떻게 성공했을까?

  모든 사람이 호기심을 가질만한 이야기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 이유를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이런 종류의 대중서가 갖추어야 할 덕목인 흥미, 간결한 문장, 공감, 새로움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 대박을 터트린 것이 아닐까 싶다. 성공에 대한 욕망과 성공에 숨어 있는 비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성공의 기준과 방향이 다르고 과정과 결과가 다를 뿐이다. 이 책에서는 빌게이츠와 비틀즈는 천재가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1만 시간’ 연습생 과정을 거친 사람임을 증명한다. 다만 1만 시간을 위한 환경과 기회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은 기본이지만.

우리는 사람들에게 너무 성급하게 실패의 딱지를 붙인다. 또한 우리는 성공한 사람은 지나치게 추앙하는 반면, 실패한 이들은 가혹하게 내버린다. 성공하지 못한 이들에게 불리한 잣대를 들이댔으면서도 말이다. 우리는 누가 성공하고 누가 그렇지 못할지를 결정하는 우리의 역할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쉽게 간과해버린다(여기서 '우리'는 '사회'를 뜻한다) - P. 47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따뜻한 마음을 나눌 줄 알고 이웃을 생각하고 모두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이 진정한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1%도 안 되는 사람들의 삶은 흥미롭지도 부럽지도 않았다. 내가 그만한 그릇이 되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성공에 대한 신화와 끝없는 욕심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신화를 양산하고 영웅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성공한 사람들은 그저 우연에 기댄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바로 이런 점을 누구보다도 좀 더 명확하고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1부 ‘기회에’서 마태복음 효과를 통해 먼저 태어났을 뿐인 하키선수와 축구선수들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 그리고 환경의 중요성이 저자가 주장하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평범해서 당연한 이야기들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믿고 싶은 ‘신화’를 깨뜨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결국 ‘성공신화’는 모든 사람에게 맹목적인 꿈이어서도 안되고 실패한 사람들을 위한 자기 위안이어서도 안 된다. 성공은 여러 가지 기회와 문화적 유산이 결합된 지극히 우연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으로 읽힌다.

  뒤집어 읽으면 성공하기 위해 몸부림치지 말지어다. 그래도 성공하고 싶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타고난 능력을 믿고 미친듯이 한 분야에 10년 정도의 노력을 쏟는 것이 기본이다. 여기에 적절한 문화적 유산이 결합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성공의 길은 보장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많은 돈을 벌고 권력을 얻고 명예를 쌓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한다. 이 기준에 동의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지식이고 분석이다.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을 가르는 그 작은 차이는 결국 타고나는 것보다 후천적인 노력과 선택과 용기가 아닐까 싶어진다. 그래서 저자는 아웃라이어는 아웃라이어가 아니라는 역설로 이 책을 맺는다.

슈퍼스타 변호사와 수학 천재, 소프트웨어 기업가는 얼핏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에서 벗어난 존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역사와 공동체, 기회, 유산의 산물이다. 그들의 성공은 예외적인 것도 신비로운 것도 아니다. 그들의 성공은 물려받거나, 자신들이 성취했거나 혹은 순전히 운이 좋아 손에 넣게 된 장점 및 유산의 거미줄 위에 놓여 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을 성공인으로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요소였다. 아웃라이어는 결국, 아웃라이어가 아닌 것이다. - P.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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