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도 사고 팔 수 있는 세상

이 명제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녀를 만나기 백 미터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릴 수는 있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기 위해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곳에서 아이스커피 한 잔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30도가 오르내리는 여름날 뙤약볕에 공원을 거닐며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기는 쉽지 않다. 영화를 보든 밥을 먹는 가까운 곳에 바람을 쐬러가든 돈이 없으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자.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모든 행동에 비용이 든다. 지독하고 철저한 자본의 정교한 논리가 숨어 있다.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처럼 정교하게 짜여 있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번 쯤 해 보았을 것이다. 영화 <이끼>의 마을이장 천용덕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이든 가상의 <매트릭스> 세상이든 우리가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한 사람의 꿈속에서나 겨우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셉션>을 보고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도대체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시스템을 바꿀 수도 꿈을 꿀 수도 없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이 절망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다면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보라. 너무나 익숙해서 공기와 물처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없어서는 숨조차 쉴 수 없다고 말하는 자본주의의 시스템! 그것은 과연 우리를 행복의 나라로 인도하고 있는가. 반성적 자기 성찰과 현실에 대한 올곧은 비판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밝은 불빛을 향해 온몸을 던지는 부나방이나 집어등을 향해 돌진하는 오징어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 벌써 한쪽 날개가 불에 타고 있거나 낚시에 걸린 오징어가 된 것은 아닐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불행해지고 점점 더 소수의 사람만이 행복해지는 시스템은 오래가지 못한다. 현실에 대한 무수한 당근과 채찍질이 반복되더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강신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욕망의 집어등’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치명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자본의 노예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인생을 건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 욕망의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던 것입니다. -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머리말

라캉의 오래된 분석처럼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욕망이 진정한 내적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이라는 데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의 애벌레처럼 남들과 비교하고
남들보다 먼저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야 하고 남들보다 비싼 물건을 소비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난 자본주의 인생!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소비사회의 물신주의는 인간 소외 현상을 낳았고 인간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된 기형적인 세상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아니 우리들을 위한 뼈아픈 충고이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자본주의적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상과 짐멜, 보들레르와 벤야민, 투르니에와 부르디외, 유하와 보드리야르를 링 위에 올린다. 당대의 문제적 작가와 자본주의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철학자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 온 자본주의의 역사 즉 인간 욕망의 역사를 되새김질한다.

불확실한 미래와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위한 몸부림. 당신은 지금 현재의 삶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를 담보로 끊임없이 현실의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 속에 놓여있다. 현대사회는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의 극단를 온몸으로 드러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부르디외가 염려하는 바와 같이 문화자본, 학력자본, 사회관계 자본이 부모의 경제적 능력으로 다음세대로 세습되고 확대 재생산된다는 데 있다. 고착화된 계급 사회는 계층 이동을 불가능하게 하며 결국 머지 않아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왔고, 그에 대한 대안을 고민해 왔기 때문에 미래가 단순히 장밋빛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생각해 보면 보다 긍정적이고 밝은 미래가 펼쳐진 것 같은 착시효과 속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을까. 점점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도대체 자본주의적 삶이 어떤 것이고 내 삶은 어떤 목적과 욕망을 가지고 있길래 이다지도 복잡한 것일까.

저자는 이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바로 ‘자본주의의 폭력’에 대해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말은 아닐까 생각했다. 끝없는 욕망과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반성이 왜 필요한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권장되어야 하며 그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진지하게 실제 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태도와 방법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특별한 대안을 제시하거나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해 주는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19세기 이후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주목받았던 벤야민과 부르디외 보드리야르의 냉정한 통찰력과 이상, 보들레르, 투르니에, 유하와 같은 감각적인 문학가에게 나타난 자본주의적 삶의 징후들을 꼼꼼하게 살펴 본 독자들이라면 이 책은 잘 정리된 또 하나의 해설서에 불과하다. 다만 색다른 방식으로 그것들을 비교하고 해석하고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저자의 탁월한 노력과 진지한 고민은 어떤 독자에게든 진정성을 담보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상처로서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때, 상처를 치유하려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 또한 새롭게 싹틀 수 있을 겁니다.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더이상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이 치료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떠안기 전에, 치유의 노력이 곧 시작될 수 있기를 말입니다. -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4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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