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대, 노는 것을 허하노라 - 십대들의 창조적인 인생 밑천 만들기 프로젝트
김종휘 지음 / 양철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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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가장 큰 이벤트는 수학여행과 체육대회이다. 두 가지 행사가 없다면 아마도 아이들은 창살 없는 감옥생활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학교는 그만큼 고달프다. 끝없는 경쟁과 입시를 향해 달리는 경주마의 질주가 연상된다. 생긴 것도 성격도 취미도 제각각인 아이들이 하나같이 비슷한 꿈을 꾼다는 게 가능한가? 대체로 아이들이 원하는 전공과 대학은 아마 스무 개가 넘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꿈꾸고 설계하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배운 적이 없다는 말이다. 진로 지도와 직업 체험, 성격과 흥미를 확인하고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 가는 대한민국의 청소년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인문계가 아니라 전문계 고등학교나 학교 밖의 청소년들의 선택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과연 그들에게 행복은 뭘까?

꿈꾸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너 행복하니?』를 통해 특별한(?) 아이들의 길찾기를 보여주었던 김종휘가 이번에는 『대한민국 10대, 노는 것을 허하노라』로 청소년들에게 말을 건넨다. 하자센터를 통해 학교 밖 청소년들과 호흡하며 소통했던 경험을 살려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쏟고 있는 저자는 ‘노리단’을 만들어 즐겁게 놀고 있다. 놀이가 삶이 되고 삶이 놀이가 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과 경험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우리는 흔히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현실은 다르다’는 애매한 말로 현실과 타협한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나만 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의 진짜 꿈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따라 다니기도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현실에서는 빈번하게 벌어지고 내 아이만은 안전하고 보장된 성공의 길로 보내고 싶은 부모들의 욕망이 결합되면 난공불락의 상황이 되고 만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찾고 보다 빠른 길과 남들보다 많은 돈을 버는 방법에만 관심을 갖게 되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그래서 우리는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걸까?

아닌 걸 알면서도 가고 있다면 한번쯤 주변을 돌아보고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정체성을 찾으라고 말한다.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나는 왜 태어 났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고민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사회경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어른들이 결정해 놓은 것들을 강요하는 것은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보다 나쁠 수도 있다. 모든 일에 냉소적이고 열정과 배짱이 부족하며 부모나 교사와 쉽게 타협하는 쿨한 세대를 넘어 저자가 웜 세대라고 지칭한 십대와 이십대의 모습을 살펴보자.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대부분이 정규직을 얻지 못하는 현실. 설령 정규직이 되었다고 해도 고용 불안과 주택문제, 자녀 양육과 교육 문제 때문에 여유와 행복이라는 말은 머나먼 이야기가 되기 싶다.

지나치게 현실을 부정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십대와 이십대의 모습은 생각보다 심각하고 대안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될 만큼 우울하다. 저자는 놀면서 일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가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세대 간의 소통을 이뤄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현실은 지금은 힘들지만 보장된 미래와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다. 행복은 즐거운 순간이 모여 이뤄지는 것이다. 그것들이 모여 한 생을 이루고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우리는 웃음과 행복에 인색하다. 참고 견디는 일을 먼저 가르치며 지금을 희생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일에 익숙하다. 일주일을 울기 위해 유충기간이 17년인 매미도 있다. 매미가 부러운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무조건 하고 싶은 대로, 욕망하는 대로, 멋대로 살라는 말이 아니다.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자신만의 꿈도 없이 남들과 경쟁하고 시키는 대로 살며 무조건 참고 견뎌야 하는 인생에 대해 고민해 보자는 말이다. 언제까지 스펙하고 맥잡하며 살 것인가.

무서운 것은 스펙하고 맥잡하고 살다가 청춘을 허비하는 것이다. 십대 때는 내신, 수능, 논술, 면접, 과외의 입시 5종 세트를 갖추느라, 이십대 때는 취업 5종 세트를 갖추느라 시간이 없다. 그 뒤로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취업을 해도 마찬가지다. 맥잡 7종 세트로 몸과 시간을 소진한다. 이렇게 청춘을 보내면 인생에 무엇이 남을까. 나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 100쪽

‘너 놀아봤어?’로 시작하는 김종휘의 이야기는 ‘나 삽질한다’로 끝난다.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현실에 절망한 젊은이를 위한 위로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너무나 진지하게 배어 있다. 누가 자신의 삶을 우습게 보겠는가. 하지만 진짜 놀 줄 모르면 즐거움을 모르고 즐거움을 모르면 행복할 줄 모르며 일할 줄도 모른다는 말이다. 저자는 타인과의 무한 경쟁과 자신을 극복하고 견뎌내는 일만으로는 불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 같다. 혹시 그렇게 해서 경쟁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너 행복하니?’

『너 행복하니?』의 준표와 ‘내가 세상이 나를 바꾸는지, 내가 세상을 바꾸는지’ 했던 내기가 생각난다. 청바지 광고를 카피했지만, 이렇게 도전적이고 자신만만한 나만의 색깔과 열정으로 무언가를 즐기고 재밌게 놀아 보자고 제안하는 어른들이 점점 더 많아져야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답답할 만큼 착하고 순한 모범생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주체적으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과 조금 다르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과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들은 그를 통해 또 다른 길을 보여줄 수 있고 또 다른 삶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10대에게 노는 것을 허락하자. 그것이 진짜 행복한 인생의 시작이라고 말해보자. 혹시 나만 노는 게 아닌가 눈치 보지 말고, 진짜 잘 노는 게 어떤 것인가를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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