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
강수돌 지음 / 지성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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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에 불을 땐 것처럼, 바람 한 점 없이,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더운 여름날이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뜨거운 대지를 식혀주듯 시원한 비가 내린다. 자연은 늘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말할 수 없는 뜨거운 욕망과 견딜 수 없는 고통도 시간과 자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렇게 다 지나간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삶에서 조금만 비껴 서 보자. 그것을 객관적 거리라고 해도 좋고 성찰의 시간이라고 해도 좋다.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아닌가.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저 배고플 때 밥을 먹고 졸릴 때 잠을 자고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 아닌가.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도시의 생활을 견뎌내는 현대인의 삶은 고달프다. 농촌에서 도시로,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나는 오늘도 흙냄새 한 번 맡아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문명화의 길은 편리와 효율을 선물한 대신 환경을 파괴하고 인위적인 행복을 만들어야 하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가장 본질적인 삶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는 방향을 잃고 어둠속을 헤맬지도 모른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진정한 내 안의 욕망과 희망을 가져보지도 못한 채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가는 것만큼 큰 비극도 없다.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 저녁에는 잠시 주변을 돌아보자.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떠오르는 사람이 몇 명쯤 있을 것이다. 장일순, 이오덕, 권정생, 윤구병, 전우익, 황대권, 법정, 헬렌과 스콧 니어링 등 맥락없이 떠오르는 이름들이 많다. 강수돌을 처음 만난 것은 『나부터 교육혁명』이라는 책이었다. ‘이웃집 엄마’를 조심해야 내 아이를 바로 키울 수 있다는 인상 깊은 충고가 담긴 책이었다. 경쟁과 타율이 아닌 사랑과 자율로 아이를 길러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현실과의 거리감 때문에 많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에 『지구를 구하는 경제책』, 『일중독 벗어나기』,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등의 책을 잇달아 내 놓은 대학교수 강수돌의 이야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는 지금까지 강수돌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의 책을 시작하는 입문서로 생각해도 좋고, 그의 책들을 읽어 온 사람이라면 그의 생각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해도 좋다.

노동과 교육과 경제와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것을 잘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강수돌의 이야기는 단순한 책상물림의 사탕발림과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온몸으로 실천하며 자신의 삶을 담아 낸 책이 가장 소중하고도 무섭다. 이 책은 그래서 위대한 사상을 담아냈거나 불변의 진리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우리들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준다. 2005년 5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조치원 신안1리 마을 이장으로 활동하며 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확인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근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며 아이 셋을 기르고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필자는 거룩한 성자가 아닌 평범하고 소박하게 삶을 경영하는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깨우치고 얻은 삶의 지혜와 행복은 이 책 구석구석에 잘 녹아있다.

귀틀집을 짓는 과정, 부춛돌식 뒷간을 사용하는 방법, 마을을 지키고 축제를 만들어가는 이장의 모습 등 멀지 않은 곳에서 우리도 만들어갈 수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동체를 잃어버린 현대사회에서 무던히 참 행복이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비슷한 꿈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치열하게 생존의 위협을 느껴야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숙명은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 된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정이 보장된 사람의 생각과 거리가 먼 저자는 수많은 기러기 아버지들의 삶과 비교된다. 서당골에 귀틀집을 짓고 정착하는 과정, 땅을 통해 자연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 자연에서 배우는 겸손함, 마을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지혜가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들리는 것은 우리가 대부분 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길을 차단한 채 우뚝 솟은 콘크리트 덩어리들 속에서 열섬 효과로 괴로워하는 우리들의 여름을 생각해 보자. 지금 당장 농촌으로 달려가자는 말이 아니라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우리들의 하루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면 우리의 인생이 바뀐다. 죽은 이론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실천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문제에 대해서 저자는 어김없이 뼈아픈 충고를 잊지 않고 농사에 비유한다.

유기능 교육은 마치 유기 농법에서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농부의 사랑과 관심이 중요하게 여겨지듯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이 충분한지를 핵심으로 삼는다. 조건 없는 사랑, 바로 이것이야말로 모든 유기농 교육에 있어 최고의 밑거름이요, 웃거름이다.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을 통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속에서 이 세상 만물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자신의 내면적 욕구나 느낌에 솔직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삶에 대한 자율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배우게 된다. 반면에 화학농 교육은 다른 사람 눈치 보기, 끊임없는 상대적 비교와 시샘, 타율적 또는 수동적 인간, 강자와의 동일시, 한편에서의 열등감과 다른 편에서의 우월감 조장, 거짓말하기와 변명하기, 이기주의와 무책임한 태도 등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낸다. 바로 이런 과정 속에서 “마음이 있는 자는 길을 찾지만, 마음이 없는 자는 핑계만 찾는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 강수돌, <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 193쪽

목적과 방향도 없이 부초처럼 떠밀리며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 저자는 특별한 삶의 방법을 제시하거나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을 강조한다. 생각한대로 실천하고 하늘과 땅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현재의 삶을 전복하지 않더라도 우리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한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면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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