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 체크리스트 - 완벽한 사람은 마지막 2분이 다르다
아툴 가완디 지음, 박산호 옮김, 김재진 감수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인간의 꿈과 무의식의 영역조차 조작하고 싶은 욕망을 담은 영화 <인셉션>의 크리스토퍼 놀란은 <메멘토>라는 걸작을 만든 감독이다. <인셉션>은 말하자면 이 감독이 지닌 주된 관심사에 대한 오래된 고민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현실 너머를 꿈꾸는 인간의 욕망은 어쩌면 영원한 것일지도 모른다. <매트릭스>나 <아바타>도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메멘토>의 주인공은 10분 이상을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기억 상실증 환자이다. 온몸에 메모를 하기 시작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처절하다. 인간의 기억은 어차피 사실이 아니라 어떤 사건에 대한 해석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기억장치가 상실된 인간은 존재 의미를 잃게 된다. 인식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이성을 기억이라는 능력으로 조망하고 있는 놀란 감독의 능력에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삶의 특정 부분에 대한 아름다운 혹은 불쾌한 해석을 추억이라고 말한다면, 일상의 한 부분에 대한 재생 능력을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1차적 인간관계 등 감성 영역에 대한 추억은 없는 기록을 만들어내도 그리 나쁘지 않다. 어차피 스스로 해석한 기억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성적 영역을 주로 활용하는 업무 추진 과정에서는 정밀한 단순 기억력이 꼭 필요할 때가 많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업무 패턴이기 때문에 오히려 간과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이 때 사람들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반복된 실수는 실력이나 능력으로 평가받게 된다. 따라서 어떤 일에 대한 능력의 첫 번째 요건은 정확함과 신속함이다.

주변에 완벽한 사람이라고 평가 받는 이들은 대체로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빽빽한 스케줄러,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탁상 달력의 메모, 컴퓨터의 일정관리 프로그램 등 수많은 일들을 빈틈없이 처리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인간의 능력이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금방 확인하게 된다. 더구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의사인 아툴 가완디가 쓴 『체크리스트』는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그 이면에는 물론 인간의 ‘기억’에 대한 한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사소한 건망증을 비롯해서 순간적인 임기응변, 위기 대처능력 등 다양한 장면에서 벌어진다. 저자의 직업은 외과의사이다. 수많은 수술을 반복하고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실수’는 곧 ‘생명’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외과 수술은 여러명의 전문가들의 협력 과정이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거나 팀 플레이를 망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저자는 비행기의 조종사와 부조종사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다른 전문직 분야의 사례들을 다양하게 제시하기보다 자신의 전문분야인 의료분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제시함으로써 유사한 상황을 ‘일반화’할 수 있도록 제시한다. 독자들은 의료 분야에서 반복되는 일을 자신의 분야로 유추할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조금씩 비슷한 실수를 하게 마련이며 누구나 유사한 패턴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어이없는 실수를 반복하는 곳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을 저자는 ‘체크리스트’라고 말한다. 종이 한 장이 도대체 어떤 효과가 있겠느냐고, 내가 전문가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겸손함과 신중함 그리고 인간의 기억과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인간이 불완전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저자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이 실수하는 이유를 실증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그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우리들이 일상에서 늘 반복하는 일이라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물론 체크리스트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뼈아픈 교훈을 주기도 하고 멍청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는 체크리스트지만 잘 활용한다면 여러 사람이 협력해야 하는 일이나 복잡하고 정교함이 요구되는 현장에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단순한 일, 복잡한 일 그리고 복합적인 일을 케익 만드는 일, 우주선을 발사하는 일 그리고 아이를 기르는 일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는 복잡하지만 반복되는 패턴을 익혀두면 편리한 일과 수많은 조합으로 매번 복합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일과 자주 접하게 된다. 단순 반복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이라도 복잡하고 복합적인 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동일한 일을 많은 사람이 해야하는 경우나 복합적인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체크 리스트와 자신의 체크리스트를 비교해 보자. 체크리스트가 없다면 한번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경험을 통해 축적되고, 사람들이 보유한 지식을 이용할 수 있으면서, 어쩔 수 없는 인간적인 결점을 보충할 수 있는 그런 전략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은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인간적인 결점을 보충해 주는 것이 바로 체크리스트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다. 구체적인 방법과 내용에 대해서는 각자의 몫이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반드시 필요한 요소와 불필요한 항목을 조정하면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활용해보면 그 놀라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면 참여의식과 책임감, 기꺼이 말하고자 하는 마음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활성화현상) - 아툴 가완디, <체크리스트>, 145쪽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수많은 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집단지성의 힘을 빌려야 한다. 간단한 체크리스트 하나가 실수를 줄이고 보다 완벽한 일처리를 위한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일은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체크리스트는 숙련된 전문가들의 기술력을 뒷받침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신속하고 간단한 도구다. 그리고 빠르고 사용 가능하며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져 수십만 명의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한다. - 아툴 가완디, <체크리스트>, 173쪽


100802-0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