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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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이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인권이며, 성별, 인종, 국적은 물론 나이, 장애, 성적 취향 등에 대한 차별을 부당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인권을 존중하는 삶의 시작이다. 성별과 인종, 국적과 나이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형성된다. 후천적인 문화적 토양에 기초하여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나는 타인을 보는 틀을 만들어왔다. 가족과 학교 사회와 국가의 영향을 받으며 익숙한 방식대로 타인의 관점을 습득한다. 반성적 사고와 성찰적 태도 없이 맹목적으로 혹은 다수의 편에 서는데 익숙하다. 아마 대부분의 ‘나’는 그렇게 세상과 타인을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너는 언제나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탕하도록 행위하라”는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은 가장 보편적인 상식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말에 쉽게 동의하지만 실천하지는 않는다. 실제 생활에서 내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 우리들의 모습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지 깨닫게 된다.

인권은 기존의 관습과 문화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지금 현재도 각 지역마다 독특한 풍습과 전통에 따라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가 제한된다.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보편타당한 원리의 준칙에 따르면 당연히 개선되어야 할 악습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인권 수준과 한국인들의 인권의식은 어느 정도일까?

아마 보는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높은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눈에 있는 가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념적 잣대로 판단하는 한 인권은 아직도 우리에게 먼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인권의식을 심어주고 차별적 시선을 걷어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과 결과들은 보이지 않게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믿는다.

김두식의 『불편해도 괜찮아』는 2010년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책으로 읽었다. 한국인들의 인권의식을 신랄하게 비판하거나 현실의 문제를 꼼꼼히 짚어내는 책은 아니지만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내용들은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에게 아직도 많이 부족한 생각이나 제도라는 뜻이다. 『십시일반』, 『사이시옷』은 만화라는 친근한 방법으로 차별과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불편해도 괜찮아』는 이렇게 작은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좋은 책이다. 김두식은 전작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보여주었던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의 문제점을 ‘인권’이라는 보편적 영역으로 확대시키고 있다.

이 책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노동자의 인권과 차별을 이야기 한다. 또한 종교와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 문제,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역설한 다음 마지막으로 차별의 종착역인 제노싸이드(집단살해, 인종학살)로 정리한다. 전체 9장으로 구성되어 각각 독립적인 주제로 쓰였지만 ‘인권’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향해 집중 수렴하는 구조이다. 지금까지 나온 책들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인권’을 영화로 풀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이야기라는 부제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저자는 영화에 대한 안목이 깊고 넓다.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지만 각각의 주제에 알맞은 영화를 통해 딱딱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 바로 이 부분이다. 영상세대에게 드라마나 영화 이야기를 꺼내는 것보다 알기 쉽고 감동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저자는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차이는 인정하지만 차별은 안 된다. 사람들은 이기적 욕심과 편향된 시각으로 사람과 사물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그것이 절대 진리인 것처럼 믿고 행동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상대를 이해하고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지식이고 실천이다. 아무리 머리로 이해하고 지식으로 안다고 해도 가슴에 닿지 않고 행동에 옮겨지지 않는다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목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아니라 상식에 기대어 이야기한다. 사람마다 상식이 다른 것이 문제지만 그 상식을 깨뜨리고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상식을 만드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이다. 지식인은 물론이고 평범한 우리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잘못은 행동하지 않고 침묵하는 일이다. 알면서도 외면하고 이기적 욕심을 위해 모른척하고 말해야할 때 침묵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사소하지만 우주만큼 큰 차이가 있는 삶의 방법과 태도이다. 그래야 세상은 아주 조금 달라진다.

인간들의 DNA는 99.5%가 동일하고 오직 0.05%만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 0.05%에서 우리 모두의 다양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지요. 그 사소한 다름에 기초해 민족, 종족, 인종, 종교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말살하려던 역사상의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 김두식, <불편해도 괜찮아>, 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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