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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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이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인권이며, 성별, 인종, 국적은 물론 나이, 장애, 성적 취향 등에 대한 차별을 부당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인권을 존중하는 삶의 시작이다. 성별과 인종, 국적과 나이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형성된다. 후천적인 문화적 토양에 기초하여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나는 타인을 보는 틀을 만들어왔다. 가족과 학교 사회와 국가의 영향을 받으며 익숙한 방식대로 타인의 관점을 습득한다. 반성적 사고와 성찰적 태도 없이 맹목적으로 혹은 다수의 편에 서는데 익숙하다. 아마 대부분의 ‘나’는 그렇게 세상과 타인을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너는 언제나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탕하도록 행위하라”는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은 가장 보편적인 상식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말에 쉽게 동의하지만 실천하지는 않는다. 실제 생활에서 내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 우리들의 모습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지 깨닫게 된다.

인권은 기존의 관습과 문화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지금 현재도 각 지역마다 독특한 풍습과 전통에 따라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가 제한된다.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보편타당한 원리의 준칙에 따르면 당연히 개선되어야 할 악습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인권 수준과 한국인들의 인권의식은 어느 정도일까?

아마 보는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높은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눈에 있는 가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념적 잣대로 판단하는 한 인권은 아직도 우리에게 먼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인권의식을 심어주고 차별적 시선을 걷어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과 결과들은 보이지 않게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믿는다.

김두식의 『불편해도 괜찮아』는 2010년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책으로 읽었다. 한국인들의 인권의식을 신랄하게 비판하거나 현실의 문제를 꼼꼼히 짚어내는 책은 아니지만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내용들은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에게 아직도 많이 부족한 생각이나 제도라는 뜻이다. 『십시일반』, 『사이시옷』은 만화라는 친근한 방법으로 차별과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불편해도 괜찮아』는 이렇게 작은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좋은 책이다. 김두식은 전작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보여주었던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의 문제점을 ‘인권’이라는 보편적 영역으로 확대시키고 있다.

이 책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노동자의 인권과 차별을 이야기 한다. 또한 종교와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 문제,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역설한 다음 마지막으로 차별의 종착역인 제노싸이드(집단살해, 인종학살)로 정리한다. 전체 9장으로 구성되어 각각 독립적인 주제로 쓰였지만 ‘인권’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향해 집중 수렴하는 구조이다. 지금까지 나온 책들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인권’을 영화로 풀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이야기라는 부제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저자는 영화에 대한 안목이 깊고 넓다.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지만 각각의 주제에 알맞은 영화를 통해 딱딱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 바로 이 부분이다. 영상세대에게 드라마나 영화 이야기를 꺼내는 것보다 알기 쉽고 감동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저자는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차이는 인정하지만 차별은 안 된다. 사람들은 이기적 욕심과 편향된 시각으로 사람과 사물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그것이 절대 진리인 것처럼 믿고 행동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상대를 이해하고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지식이고 실천이다. 아무리 머리로 이해하고 지식으로 안다고 해도 가슴에 닿지 않고 행동에 옮겨지지 않는다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목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아니라 상식에 기대어 이야기한다. 사람마다 상식이 다른 것이 문제지만 그 상식을 깨뜨리고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상식을 만드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이다. 지식인은 물론이고 평범한 우리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잘못은 행동하지 않고 침묵하는 일이다. 알면서도 외면하고 이기적 욕심을 위해 모른척하고 말해야할 때 침묵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사소하지만 우주만큼 큰 차이가 있는 삶의 방법과 태도이다. 그래야 세상은 아주 조금 달라진다.

인간들의 DNA는 99.5%가 동일하고 오직 0.05%만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 0.05%에서 우리 모두의 다양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지요. 그 사소한 다름에 기초해 민족, 종족, 인종, 종교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말살하려던 역사상의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 김두식, <불편해도 괜찮아>, 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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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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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랑도 사고 팔 수 있는 세상

이 명제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녀를 만나기 백 미터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릴 수는 있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기 위해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곳에서 아이스커피 한 잔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30도가 오르내리는 여름날 뙤약볕에 공원을 거닐며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기는 쉽지 않다. 영화를 보든 밥을 먹는 가까운 곳에 바람을 쐬러가든 돈이 없으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자.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모든 행동에 비용이 든다. 지독하고 철저한 자본의 정교한 논리가 숨어 있다.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처럼 정교하게 짜여 있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번 쯤 해 보았을 것이다. 영화 <이끼>의 마을이장 천용덕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이든 가상의 <매트릭스> 세상이든 우리가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한 사람의 꿈속에서나 겨우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셉션>을 보고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도대체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시스템을 바꿀 수도 꿈을 꿀 수도 없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이 절망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다면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보라. 너무나 익숙해서 공기와 물처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없어서는 숨조차 쉴 수 없다고 말하는 자본주의의 시스템! 그것은 과연 우리를 행복의 나라로 인도하고 있는가. 반성적 자기 성찰과 현실에 대한 올곧은 비판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밝은 불빛을 향해 온몸을 던지는 부나방이나 집어등을 향해 돌진하는 오징어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 벌써 한쪽 날개가 불에 타고 있거나 낚시에 걸린 오징어가 된 것은 아닐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불행해지고 점점 더 소수의 사람만이 행복해지는 시스템은 오래가지 못한다. 현실에 대한 무수한 당근과 채찍질이 반복되더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강신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욕망의 집어등’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치명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자본의 노예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인생을 건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 욕망의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던 것입니다. -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머리말

라캉의 오래된 분석처럼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욕망이 진정한 내적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이라는 데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의 애벌레처럼 남들과 비교하고
남들보다 먼저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야 하고 남들보다 비싼 물건을 소비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난 자본주의 인생!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소비사회의 물신주의는 인간 소외 현상을 낳았고 인간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된 기형적인 세상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아니 우리들을 위한 뼈아픈 충고이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자본주의적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상과 짐멜, 보들레르와 벤야민, 투르니에와 부르디외, 유하와 보드리야르를 링 위에 올린다. 당대의 문제적 작가와 자본주의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철학자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 온 자본주의의 역사 즉 인간 욕망의 역사를 되새김질한다.

불확실한 미래와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위한 몸부림. 당신은 지금 현재의 삶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를 담보로 끊임없이 현실의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 속에 놓여있다. 현대사회는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의 극단를 온몸으로 드러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부르디외가 염려하는 바와 같이 문화자본, 학력자본, 사회관계 자본이 부모의 경제적 능력으로 다음세대로 세습되고 확대 재생산된다는 데 있다. 고착화된 계급 사회는 계층 이동을 불가능하게 하며 결국 머지 않아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왔고, 그에 대한 대안을 고민해 왔기 때문에 미래가 단순히 장밋빛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생각해 보면 보다 긍정적이고 밝은 미래가 펼쳐진 것 같은 착시효과 속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을까. 점점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도대체 자본주의적 삶이 어떤 것이고 내 삶은 어떤 목적과 욕망을 가지고 있길래 이다지도 복잡한 것일까.

저자는 이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바로 ‘자본주의의 폭력’에 대해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말은 아닐까 생각했다. 끝없는 욕망과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반성이 왜 필요한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권장되어야 하며 그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진지하게 실제 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태도와 방법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특별한 대안을 제시하거나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해 주는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19세기 이후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주목받았던 벤야민과 부르디외 보드리야르의 냉정한 통찰력과 이상, 보들레르, 투르니에, 유하와 같은 감각적인 문학가에게 나타난 자본주의적 삶의 징후들을 꼼꼼하게 살펴 본 독자들이라면 이 책은 잘 정리된 또 하나의 해설서에 불과하다. 다만 색다른 방식으로 그것들을 비교하고 해석하고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저자의 탁월한 노력과 진지한 고민은 어떤 독자에게든 진정성을 담보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상처로서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때, 상처를 치유하려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 또한 새롭게 싹틀 수 있을 겁니다.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더이상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이 치료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떠안기 전에, 치유의 노력이 곧 시작될 수 있기를 말입니다. -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4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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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와 대화하다
김규중 지음 / 사계절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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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빠쁜 때 웬 설사 - 김용택

소낙비는 오지요
소는 뛰지요
바작에 풀은 허물어지지요
설사는 났지요
들판에 사람들은 많지요.


*바작 : ‘발채’의 방언. 지게에 얹어서 짐을 싣는 소쿠리 모양의 물건. 싸리나 대오리로 둥글넓적하게 조개 모양으로 엮어서 접었다 폈다 하게 되어 있다.

‘시가 어렵다’와 ‘시를 읽기 싫다’고 말하는 아이들은 시에 대한 첫 인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쉽고 재밌는 시, 짧지만 감동적인 시를 읽고 마음으로 느껴 본 아이라면 시를 멀리 할 이유가 없다. 국어 시간에 시는 해체된다. 뼈와 살리 분리되고 각종 장기는 피를 흘리며 파헤쳐진다. 기막힌 솜씨로 해부된 시체처럼 처참한 시를 누가 좋아할 것인가.

평생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쳐온 제주도 시인 김규중 선생님께서 『청소년, 시와 대화하다』는 이런 답답증을 조금 풀어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쏟아내고 선생님들은 선생님대로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시를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다. 이 고민들이 모여 국어교육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하지만 시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넘기 어려운 산처럼 보인다.

장편 2 - 김종삼

조선 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 밥집 문턱엔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장편掌篇 : 극히 짧은 작품. 보통 소설에서 단편 소설보다 작은 분량의 작품을 말함.
*균일 상 : 가격이 균일한 식사.

김종삼의 1977년 작품이다. 시대배경을 생각하면 30여년이 흐른 뒤 쓴 시이다. 시인의 마음속에 흐뭇함과 미안함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발효’ 과정을 거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대의 가난과 소녀의 순수한 마음 그리고 눈이 먼 부부의 모습이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자화상에 가깝다. 시는 그렇게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사람들이 지닌 가장 근본적인 마음의 결을 흔들어야 한다고 믿는 것은 시가 지닌 1차적 특징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울 것은 그 마음을 언어로 담아내는 방법과 기술이 아니라 이미 그 자리에 놓여 있는 시의 숲을 거니는 것이다.

저자는 문과녀 ‘은유’와 이과남 ‘명석’을 내세워 대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간다. 두 학생의 차이와 특징은 시를 읽는 아이들의 특징을 닮았다. 물론 영특하게 시를 잘 이해한다는 점만 빼면. 중간중간 ‘김샘’이 끼어들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거나 어려운 부분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들면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다소 형식적이고 딱딱한 느낌이 들고 두 아이들의 대화가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조금 작위적인 느낌이 없지 않지만 시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시는 어렵고 딱딱한 수능 언어영역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말과 글이 지닌 가장 아름답고 정교한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시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어야 평생 시를 읽게 된다. 넉넉하고 따뜻한 감수성을 잃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서 시 교육이 아니라 우리의 삶, 인간과 세계에 대한 안목을 길러주는 시 읽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60여 편의 시를 3부로 나누어 수준별로 단계를 구분했다. 시의 난이도와 내용에 따라 구분했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정확한 기준을 세우기가 어렵지만 시는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고 조금 어렵게 느끼는 시는 시를 읽는 연습과 훈련도 필요하다. 마음으로 읽은 시는 오래 기억되고 영혼에 새겨진 시는 잊혀지지 않는다.

느낌 - 이성복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에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한 편의 시가 주는 느낌이나 한 사람이 주는 느낌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이 언어이든 사람이든 마찬가지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정서적 충격, 체험적 사고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시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바가 무언인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높은 점수를 받고 싶은 수험생이든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은 소녀이든 시는 항상 우리 곁에서 명징한 언어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온몸으로 전해준다. 오감을 통해, 때로는 지적 충격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우쳐준다. 지독하게 주관적인 방법으로.

시대를 거슬러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우리는 오래 기억한다. 한 시대를 유행처럼 풍미했던 작품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기억할 수 있는 시가 그립다. 아이들은 어떤 감수성과 기억력으로 지금 이 시대를 아니,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추억의 한때를 기억하게 될지 모르겠다. 지금 이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추운 겨울이 오고 또 봄이 오겠지만.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 밖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하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100721-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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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 - 역사 교과서를 찢어버려라
임지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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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도 마찬가지지만, 역사에 관한 책을 읽기 전엔 항상 버릇처럼 제목을 한참 들여다 본다.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야기의 목적과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듯이 역사도 마찬가지다. 세계사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면 어떤 목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대략 갈 길을 짐작하고 거리와 방향을 알고 출발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 많은 차이가 난다.

임지현의 책이라면 일단 방향과 목적이 보이는 듯하다. 뻔한 이야기라는 뜻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떤 내용으로 그곳에 이르기 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표지에는 이미 ‘새로운 세대를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고 ‘만들어진 역사, 국사와 세계사 교과서를 찢어버려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눈길을 끈다. 다소 자극적이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니 놀랄 것은 없다. 다만 얼마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와 정교한 논리로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일 뿐.

이 책은 저자의 딸에게 보내는 형식의 역사 이야기를 역사 속 인물들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각색한 것이다. 말하자면, 임지현의 『세계사 편지』는 자와할랄 네루의 『세계사 편력』의 형식을 빌려 온 것이다. 형식이야 어찌됐든 책의 내용과 깊이가 누구에게나 읽힐 만큼 훌륭하다.

어떤 사람들의 자유는 다른 사람들의 노동과 희생을 먹고 자란다. - 임지현, 『세계사 편지』, 머리말

비교역사문화연구소를 만들어 본질적인 역사인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만들어진 역사로서의 민족주의와 국사의 해체를 주장해 온 임지현은 이 책을 통해서도 세계사를 관통하는 편협한 역사인식에 반기를 든다. 19명의 문제적 인물을 등장시켜 말을 건네는 역사학자의 마음을 헤하려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들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하지만 이것은 객관적인 사실들을 토대로 사건을 재해석하면서 독자들을 설득하는 것과 다름없다. 청자를 누구로 상정하든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접근 방식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에드워드 사이드, 『예수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 한나 아렌트는 물론 김일성과 박정희 그리고 공자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에서 잊지 못할 인물들을 선정했다. 그 면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저자의 역사적 관점과 이 책의 의미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간단한 인물에 대한 소개와 그 뒤로 이어지는 저자의 편지는 독자에게 새로운 즐거움과 독특한 방식의 역사 이야기를 전해준다.

형식은 내용을 규정한다. 이러한 편지 형식은 일단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장점이 있다. 화석화된 인간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이고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물론 주된 내용은 독자들을 위해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접근 방법이다. 저자 특유의 관점이겠으나 비판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을 만한 일들을 회고한다. 일관된 방식으로 역사적 인물들의 잘못을 꾸짖거나 현재의 관점으로 아쉬움을 드러내는 방식은 아니다.

저자는 해박한 세계 역사에 대한 지식과 명료한 해석 능력을 갖추고 있다. 비교 연구가 가능하려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저자가 써 내려간 편지의 행간을 통해 독자들이 찾아야 할 것이다. 각각의 인물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독자들은 제 3자의 관점을 취하게 된다. 독자에게 직접 서술하는 방식이 아니라 특정한 독자를 염두에 둔 글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다른 사람의 편지를 훔쳐 보는 느낌으로 조금 더 객관적 관점을 갖게 된다.

지나 간 역사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가정법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도 없다. 그것은 그저 현재의 관점으로 지나 간 시간을 돌아보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다양한 방법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다 보면 새로운 사실이 보이고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지금-여기’에 서 있는 우리들의 삶이 결국 과거의 연장선이고 미래의 거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계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이제 대학생이 되어 버린 딸 ‘희주’에게 역사 공부를 하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책을 맺는다. 나도 ‘내’가 서 있는 곳을 파헤쳐 본 후 과거를 돌아봐야겠다. 현재를 알지 못하고 내가 서 있는 곳의 뿌리와 근본을 알지 못한 채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지금, 바로 여기를 똑 바로 알지 못할 바에야 역사를 공부하지 말라는 역설적인 책 『세계사 편지』는 그래서 더욱 정밀한 역사 공부의 출발로 삼아야 할 것 같다.

너와 상관도 없는 먼 과거를 파헤치기보다는 우선 ‘네가 서 있는 곳을 파헤쳐라.’ 공식적 역사를 부정하고 밑으로부터 살아 있는 역사를 갈구했던 맨발의 스웨덴 역사가 스벤 린드크비스트의 주장이다. 그러니 지금까지처럼 ‘역사 공부’ 하지 말거라. - 임지현, 『세계사 편지』, 희주에게, 3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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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심리학 -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관한 심리 치유 보고서
수 앳킨슨 지음, 김상문 옮김 / 소울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오늘도 또 하루가 저물어 간다. 하늘의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당도하기 전의 ‘푸른 시간’은 산책과 명상에 가장 어울리는 시간이다. 하루를 마감하고 나를 돌아보며 내 삶을 성찰하기 좋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살면서 상당한 즐거움을 경험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고려해 보았을 때 삶은 고통이다. 인생의 경험이 부족하거나 어리석은 자들만이 반대로 상상한다. - 조지 오웰

본질적으로 삶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겸손해질까? 조지 오웰의 말에 공감한다고 해서 경험이 풍부하고 똑똑하다는 말은 아니다. 별 어려움 없이 살아왔거나 오로지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이 아니라면 인생은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 고통은 객관화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와 고통에 대해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이를 악물고 참아내기도 하지만 ‘우울증’이라고 하는 병에 걸리기도 한다. 똑같은 불행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다르게 반응한다. 동일한 삶의 무게를 느낀다면 세상 사람들은 불행지수도 같겠지만 행복만큼이나 불행의 모습과 형태는 제각각이다. 그것이 어떤 증상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우울증의 모습도 제각각이다. 다리가 부러지고 피부에 상처가 난 것처럼 마음이 다치고 죽음만큼의 고통을 느끼는데도 사람들은 ‘우울증’에 대해 간과하기 쉽다. 정신병에 대해 사회적 시선과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일 뿐 사람들은 한 번씩 지독하게 우울한 시간과 대면하게 된다.

실제 우울증에 걸려 오랫동안 고통 받았던 사람의 이야기는 의사나 상담가의 조언과 충고보다 실질적이고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수 앳킨슨은 자신이 겪은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털어놓는다. 『우울의 심리학』은 바로 이러한 우울증 치료에 관한 치료과정을 밝힌 보고서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벗어버리고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심각한 질병으로서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지독한 슬픔과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바로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것이 심각한 증상으로 이어지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저자의 이야기는 매일매일 우리 주변에서 겪게 되는 마음의 불행에 관한 보고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속 시간과 깊이의 차이일 뿐 사람들은 매일매일 조금씩 불행과 행복 사이를 오고간다.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스트레스나 불안 그리고 우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경험하게 되는 일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우울증이 얼마나 심각하고 고통스런 질병인지 최근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박용하, 최진실, 이은주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살은 가장 확실하게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이지만 가장 어리석은 해결방법이기도 하다.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암벽등반’에 비유한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만하다.


우울증의 원인은 각종 스트레스가 아닐까? 프로이트의 말대로 현실원칙과 쾌락원칙 사이의 간극 때문이거나 욕망의 좌절, 극단적 슬픔 등 다양한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울증의 원인을 알고 잘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고 현실생활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책은 이미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 때문에 원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들에게만 유용하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의외로 많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거나 숨기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의외로 흔한 질병에 속하는 것이 우울증이다. 감기를 치료하듯이 약 몇 번 먹고 낫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고 굳은 의지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완쾌될 수 있는 질병이다. 저자는 바로 이 ‘방법론’에 집중하고 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매우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행동 처방을 단계별로 제시하고 있다. 이론적 접근이나 추상적인 개념 설명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한 책이다. 환자는 물론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벌컥벌컥 화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누구나 벌컥벌컥 화를 낼 수 있다. 하지만 화를 낼 만한 사람에게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목적을 가지고 적절한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이 책에는 우울증과 무관하게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장면들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말들이 각 장마다 제시되어 있고 본문에도 인용되어 있다. 특히, ‘화’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화를 다스리지 못해 화병이 나기도 하고 우울증으로 발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슬픔과 또 다른 ‘화’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왜 우리는 조그만 일에만 화를 내냐고 물었던 김수영 시인의 말이 떠오른 이유도 개인적 ‘화’가 아니라 사회적 ‘화’를 잘 다스릴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어떤 화든 ‘적절한’ 대상과 목적과 방법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단순히 화를 다스리지 못해서 울화병에 걸린다고 하는데 이 말은 우울증과 화병이 겹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심각한 경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사람은 외로워서 죽을 수도 있는 나약한 존재이다. 심약한 상태에 빠지는 것은 순간이다.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소리 없이 찾아 올 수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자각증상이 있지만 심각성을 알기 어렵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정말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 타의에 의해 병원에 가는 병이 우울증이다.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이 병을 치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암벽등반에 비유했듯이 힘겹고 두렵지만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는 약물치료보다 우선시된다. 화학 성분의 약품이나 지극한 정성과 사랑만으로 부족하다.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기 전이라도 나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 『우울의 심리학』은 한번 쯤 자기 점검을 위한 책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슬플 때,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서 눈물을 보일 뿐이다. 그러나 화가 났을 때에는 뭔가를 변화시키려고 한다. - 말콤 엑스

우울증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도 좋지 않다. 적절한 화는 개인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인종차별에 맞서 흑인들의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말콤 엑스의 말대로 뭔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화를 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화는 가난하고 슬프고 나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화를 내고 산다. 그 화를 겉으로 드러내는지 안으로 삼키는지의 문제일 뿐이다. 참는다고 착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표현과 생활의 변화가 우울증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저자가 제시하는 암벽등반의 비법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우울증 환자뿐만 아니라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다. 그 깊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며 때때로 생명을 건 힘겨운 싸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암벽 등반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세상에는 행복하고 부유한 범죄자와 슬프고 가난한데 정직한 사람들이 있다. 선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왜 신이 이러한 것을 허락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 수 앳킨슨, <우울의 심리학>,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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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 2011-07-21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좀 우울해서 우울증 극복방법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저도 책은 많이 읽지만 아직 소양이 부족한가 봅니다. 이렇게 찾아다니는 걸 보면 말입니다.
맞는 말이네요. 스스로 극복하지 않는 이상 우울증은 계속 뒤를 따라다닐거에요.
잘보고 갑니다.

sceptic 2011-11-16 23:07   좋아요 0 | URL
이겨내시기 바랍니다...세상이 우울한 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