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
마이클 샌델 지음, 강명신 옮김 / 동녘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시대를 풍미하는 책은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 최근 『정의란 무엇인가』로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은 제목으로 이 시대를 웅변한다. ‘공정사회’를 부르짖는 사회의 불공정성은 악취를 풍길 정도라는 걸 모두가 안다.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정부 각 부처의 결과를 공개한 최근 국감 자료는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방증한다. 이처럼 한 권의 책은 유행가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 현상의 일부로 시대를 측정할 수 있는 리트머스 역할을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앞서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를 읽어본다. 이 책의 부제는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이다. 짧은 논문에 나타난 저자의 생각은 부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롤스의 정의론 비판으로 27세에 하버드대 교수가 된 석학의 말하기 방식은 공감과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유전학적 강화와 자연발생적 선택에 대한 지극히 자극적인 도입부는 관심을 집중시킨다. 청각장애 부부가 5대째 청각장애인 가족에서 정자 공여자를 찾아 청각장애 아들을 고뱅을 얻었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그른가?

부모가 아이를 고른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프리미엄 난자를 구하기 위한 광고나 장애아 검사 등에 대한 도덕적 논란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근육 강화, 기억 강화, 신장 강화, 성 감별 등에 대한 서로 다른 기준과 잣대가 아니라 ‘생명’ 자체에 대한 윤리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가능한가? 종교, 인종, 문화적 차이에 따라 도덕적 기준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마이클 샌델도 첨단 과학인 생명공학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토로한다. 배아세포에 이용에 관한 서로 다른 기준과 견해는 이 논쟁의 출발이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생명으로 볼 것인가. 이 이야기는 에필로그에서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의 전제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생체공학적 운동선수와 자녀를 디자인하는 부모 그리고 우생학에 대한 자유주의와 공동체적 관점을 다룬 본문의 내용들은 철학적, 윤리적 논란에 대해 어렵지 않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논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논점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저자의 이러한 말하기 방식은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이 단순히 기능적 관점이나 종교적 관점이 아닌 인간사회의 보편타당한 윤리적 관점에서 해결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아이비와이즈사가 최상류층을 상대로 대학 입학과 관련된 지원에 2년 동안 3만 2995달러가 드는 ‘플래티넘 패키지’를 출시했다. 창업자 캐서린 코헨은 “나는 대학 지원만 도와주는 게 아니에요. 인생 설계를 도와주죠”라고 말한다. 한국의 맞춤형 고액과외, 입학사정관제 관리 프로그램 등과 다를 바 없다. 저자는 아이를 과도하게 공부시키는 일에 대한 예를 들어 우생학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아이들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부모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도덕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주장일 것이다.

윤리학의 관점에서 ‘생명’의 문제는 과학의 발달을 따라가는 형태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논란은 가열되지만 기술의 진보는 철학을 앞선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명 윤리를 논하는 것은 그것 자체에 대한 위험부담을 넘어 우리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어쩌면 영원히 그 꿈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의 욕망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마이클 샌델은 이 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을 제안 한 듯하다. 정답이 없다고 해서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 다수결로 결정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윤리학자들의 논리가 정답일 수도 없다.

이 책은 이러한 수많은 논쟁과 서로 다른 관점에 대한 성찰과 당면한 생명공학에 대한 제문제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완벽하고 근사한 이론을 제시하고 훌륭한 대안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생각의 방향과 일관성 없는 윤리적 기준들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가능성에 도전하면서도 도덕적 가치와 과학적 발전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할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어 끝을 맺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수많은 담론들은 풍성한 말잔치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의 윤리적 기준과 도덕적 잣대가 ‘생명’이라고 해서 비껴갈 수는 없다. 정교하고 흔들리지 않는 법과 제도를 만들 수는 없겠지만 우리 사회의 기준과 원칙을 세워나가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건강한 대한민국의 출발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생명의 윤리’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삶의 윤리’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100930-08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