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비타 악티바 : 개념사 20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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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첫째, 자본과 자본가에서 파생된 말이라는 점, 둘째, 그 시작부터 ‘자본 혹은 자본가가 지배하는 사회 체제’를 상당히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어감으로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는 점, 셋째, 수많은 사상가들이 이 말을 근대 사회를 이해하는 대단히 중요한 핵심어로 여기고 연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보편적인 정의는 여전히 모호한 상태에 있으며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그 혼란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 28쪽

책을 선택하는 다양한 기준 중의 하나는 저자다.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로 깊은 인상을 받았던 홍기빈을 <학벌없는 사회> 강연 포스터로만 다시 만났다. 한 권의 책을 읽고나면 그의 논리와 설득에 몰입하게 된다. 깔끔한 문장과 정확한 분석이 마음에 든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자본주의』를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주제에 대한 관심과 저자에 대한 믿음.

살림출판사의 ‘지식총서’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와 ‘고전의 세계’는 짧은 분량으로 특정 분야에 대한 기초 지식과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지식의 에피타이저로 적당하다. 책세상의 ‘비타악티바’ 시리즈는 인권과 아나키즘을 필두로 우리가 알아야 할 세상의 다양한 ‘개념’들을 설명한다. 자주 사용하면서도 잘 알지 못하는 개념이나 그 뜻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개념들에 대한 기초적이고 정확한 안내서 역할을 하고 있다. 홍기빈의 『자본주의』는 1장에서 자본과 자본가와 자본주의라는 말썽꾸러기 용어에 대한 혼란를 정리한다. 여기서 정리한다는 뜻은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정리해서 명료화한다는 뜻이 아니라 왜 정리되지 않고 그 뜻이 모호할 수밖에 없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모호한 상태의 개념을 저자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한 것을 연역적으로 먼저 내세워 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개념을 저자는 나름대로 그 특징을 짚어 낸 것이다. 한두 마디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개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책은 ‘화폐, 생산, 권력’이라고 하는 보다 구체적인 개념을 이용한다. 화폐경제의 발생과 ‘자본’의 발생 그리고 권력과 자본주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주변을 이용해서 실체를 밝히는 방식인 것이다. 그런다음 고전적인 자본주의 이론가들을 내세운다. 리카도와 마르크스, 좀바르트와 베버, 브로델과 베블런이 그들이다. 마르크스와 베버 그리고 베블런의 책을 읽었지만 저자의 요약 설명과 다른 경제학자와의 비교 설명은 명쾌하게 와 닿지 않는다. 내가 과문한 탓도 있겠지만 서로 다른 관점들을 통한 개념 설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지막은 자연스럽게 21세기와 자본주의의 역사적 경향을 일괄한다.

자본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의미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에 기초한 경제 체제 및 이를 토대로 성립하는 사회구성체’이다. 현대사회에 적용할 수 없는 모호한 개념이고 변화하는 경제 시스템 속에서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언제나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개념과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용어의 모호함 때문에 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처한 사회를 설명하는 빈도가 가장 높은 개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개념에 대한 역사적 변천 과정과 나름의 기준을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사회 현상과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개념이 없다는 말은 무식하다는 말이 아니라 생각할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본질적인 의미에 대한 명확한 개념 규정과 이해로부터 인식의 힘은 출발한다. 보다 넓고 깊게 세상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우선 쉽고 간단하게 개념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지식을 쉽게 설명할 수 없다면 아는 것이 아니라고 한 리처드 파인만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본주의 개념을 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 책을 포함한 ‘비타악티바’ 시리즈에 찬사를 보낸다.

이 책은 근대 이후 우리가 걸어온 역사와 가야 할 길의 방향을 묻고 있다. 하나의 개념은 정확하고 명료한 설명에 있지 않고 미래 사회의 전망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고찰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반성이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자본주의의 개념을 설명하는 대신 자본주의 길을 되묻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행간의 의미를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101004-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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