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그만두는 방법 - 국가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과 문화
니시카와 나가오 지음, 윤해동 외 옮김 / 역사비평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는 행위가 습관이 되고 버릇이 되고 생활의 일부가 되다가 때로는 책이 일이 되고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하고 책이 또 다시 다른 책을 낳기도 하는 뫼비우스의 띠를 걷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책이 인연이 되어 만나는 사람도 많다. 나이답지(?) 않게 생각이 깊고 넓은 겨울길님은 이제 읽는 단계를 넘어 자연스레 글쓰기의 단계로 넘어간 듯싶다. 두 번 만남이 모두 인상 깊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상사는 물론 삶의 방법과 태도까지 즐겁고 유쾌하며 긴 여운이 남는 대화는 다음 만남을 기다리게 한다. 또 한 분의 이웃 소나기님은 느린 호흡으로 산책하듯 책을 즐긴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좋고 타인의 글을 모방하거나 현학적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생각과 삶을 통해 책을 받아들이고 녹여내는 통찰력을 지닌 분이다. 꽤 긴 시간동안 블로그에 책에 관련된 글을 올렸으나 책 선물을 받은 건 처음이다. 일면식도 없는 분과의 소통과 작은 인연이 감사할 뿐이다. 연초에 소나기님이 보내온 두 권의 책 중 첫 번째 책을 읽었다.

니시카와 나가오의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는 작고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역사책이다. 좋은 책은 당연히 훌륭한 저자를 전제한다. 서문에서 『국경을 넘는 방법』의 속편이라고 밝히고 있는 이 책은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 학자의 깊은 사유와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를 현혹하는 책이 아니라 ‘국민’의 개념과 의미부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고 있는 독자라면 책의 의미와 내용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으리라. 국가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문명과 문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이 두 용어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굳게 믿고 있는 문명과 문화의 차이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한 나라의 문화라고 명명하는 것들에 대한 고찰, 하나의 문명권이라고 인식하는 것들에 대한 반성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성찰이다. 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금메달 시상식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에 눈물 흘리는 태도를 다시 생각해 보자.

거기에 민족이 결합되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민족이란 개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심했듯이,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라고 명명했듯이 문화만큼 모호한 개념이기도 한 민족이라는 개념은 곧바로 문화와 연결되는 것은 일종의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는 아닌가. 저자는 이 개념을 일본인과 일본문화론에 적용시키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었다. SNS는 지구를 하나로 묶고 있다. 아이폰 오카리나 어플의 경우 놀랍게도 전세계 곳곳에서 오카리나 연습을 하는 사람들의 소음에 가까운 소리들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 인종과 민족을 넘어 문명과 문화 그리고 민족의 구분은 또 하나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구별짓기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역자 서문의 인상 깊은 부분 하나.

무릇 독서라는 행위는 ‘계발’에 그 핵심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명 개념은 문명 간의 위계성, 혹은 보편의 우월성을 논의의 전제로 삼습니다. 그러나 문화 개념은 개별성을 전제함으로써 각 문화의 특수성이나 차별성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11022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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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인권 수첩 - 개인의 자유와 지구 공동체를 함께 생각하는 인권 교과서 세상이 보이는 지식 3
크리스티네 슐츠-라이스.공현 지음, 안미라 옮김 / 양철북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이제 곧 3월이 돌아온다. 모든 학교에서는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이 신학기 준비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폭풍 전야처럼 3월 2일 아침부터 학교는 활기를 띠고 학생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모두에게 똑같은 출발이지만 누구나 같은 곳을 향해 걷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목표와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고 그만한 결과를 얻고 졸업을 한다. 이제 교문 밖에 나가 새 출발을 해야 하는 졸업생은 물론 이제 막 교문에 들어서야 하는 신입생에 이르기까지 학교는 인생의 통과의례처럼 중요한 곳이다. 용광로와 같이 뜨거운 열정과 환한 웃음으로 가득할 것 같은 학교는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 공부와 시험, 경쟁과 한숨이 가득한 곳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학생과 부모들은 어떻게 청소년 시기를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고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쩌면 거꾸로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과 태도에 따라 학교생활도 다르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세도 다르다. 졸업 이후에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방법과 태도를 배우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 밖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개성과 능력을 기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며 잘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선택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우고 깨닫는 과정이 삶이 아닌가. 그러한 삶이 바로 청소년들의 인권을 지키고 미래를 꿈꾸는 삶이 아닐까.

『청소년 인권 수첩』은 최근 학교인권조례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돌아보게 한다. 인권은 학교를 졸업하면서 알아야 할 내용이 아니다. 성장 과정에서 내면화되고 지켜나가야 하는 권리이다. 나이와 무관하게 자신의 선택과 판단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아존중감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삶의 조건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긍정적인 태도와 자신감은 자신의 진로와 미래를 개척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공부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인권은 문화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며 조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누려야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는 죽을 때까지 지켜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세상이 보이는 지식’ 시리즈로 나온 이 책의 저자는 독일의 저널리스트이다. 인권활동가 공현이 우리 실정에 맞는 내용을 추가해서 내놓은 이 책은 작은 질문과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어 읽기 편하고 쉽게 이해되는 책이다. 어렵고 딱딱한 느낌이 드는 추상적인 개념을 일상생활에서 쉽고 재밌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책이다. 인간의 존엄성, 인권 실현을 위한 방법론, 유엔, 국제비정부기구 등 언론과 민주주의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거론되고 한국의 인권과 한국의 청소년들의 현실을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인권을 위한 실천적 용기와 책임과 권리를 이야기한다.

생각이 바뀌는 것은 산을 옮기는 일보다 어렵다. 어떤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갖게 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주체적인 고민과 사유를 거쳐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다. 피상적인 현상, 타인의 견해를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그것을 자신의 신념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에게 인권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논의하는데 언론은 이념을 문제 삼는다. 논점 일탈의 오류에서 벗어나서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고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두발 자유화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더니 또다시 과거로 돌아간 적이 있다. 이제 학생인권조례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첨예하게 맞부치고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을 미성숙한 존재, 통제와 억압과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한 그들의 의견과 개성과 권리는 공부와 성적을 담보로 제한될 가능성이 항존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의를 지향한다. 그렇다면 민주시민의 역량과 자질을 갖춘 사람으로 교육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의무가 아닌가.


110220-011 
 




고백 - 10년 간의 실수와 학교 이데아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아아 나는 잠들었는가, 깨어 있는가
누구,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없느냐”  
- 윌리암 세익스피어의 『리어왕』, 1막 4장 중에서

시작은 DMZ(De-Militalized Zone비무장지대) GP(guard post전투초소)였을까? 휴전 이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생태계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그곳. 망원경으로 북한군 초소가 내려다보이고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관찰할 수 있는 곳에 고립된 군인들은 외롭다. 그 외로움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대학생이었거나 직장인이었거나 자신의 내면을 바라 볼 기회가 없었던 스무 살 언저리의 군인들에게 GP는 일종의 사원(寺院)이었다. ‘나’를 돌아보고 ‘너’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사회적, 역사적 관점에서 내가 서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인하고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 대학 4년간 읽었던 책의 두 배쯤 읽은 것 같다. 휴가 나올 때마다 쌀자루에 책을 담아 집으로 부치던 기억이 새롭다.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창이었고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유일한 멘토였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수많은 책들은 내 영혼의 아버지다. 전역을 얼마 앞두고 앨빈 토플러를 만났다. ROTC에게 특혜가 주어지던 시절이라 취업은 어렵지 않았고 안정적인 금융기관에 출근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권력이동』이 보여준 미래는 내 생각과 많이 달랐다. 정말 우연하게도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선배의 제의를 받고 출근하는 회사가 달라졌다. 책은 결국 첫 직장을 선택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자유롭고 편안한 근무조건과 그리 나쁘지 않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인터넷 SI(System Integration)업체에서 전공과 무관한 제안서를 쓰고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하는 일은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2년쯤 근무하다가 평생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와 국어교사인 아내의 권유로 임용고사를 거쳐 교직에 입문했다.


서른, 신규교사 1년차 - 교사는 뭘 하는 사람이지?

젊은 남자 교사에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는 몽둥이였다.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학교에서 처음 맡긴 일은 학생부 생활지도. 나의 하루는 교문에서 시작되었다. 군대 위병소에 헌병이 서 있는 것처럼 학교 교문에는 생활지도 담당교사가 버티고 서 있다. 교복을 제대로 갖추어 입었는지, 머리 길이가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는지 날카로운 눈으로 훑어낸다. 주눅이 든 학생들은 아침부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없다. 이름표, 넥타이, 조끼, 바지통, 치마, 머리 길이, 신발, 양말, 스타킹, 화장, 염색, 반지, 귀걸이, 가방에서 속옷 색깔에 이르기까지 군대만큼 철저하게 통제하고 감시한다. 지각한 학생은 물론 규정을 위반한 학생은 모두 운동장에 엎드리게 한 다음 몽둥이로 때리거나 토끼뜀으로 운동장을 돌게 한다. 상쾌한(?) 하루의 출발이다. 교실까지 이르는 멀고도 험난한 길이다. 교실에 도착하면 또다시 담임 선생님이 따뜻하게(?) 맞아주신다. 남학생의 뒷머리가 옷깃에 닿는 순간 껌을 씹고, 염색을 하면 도둑질을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걸까? 교육은 통제와 억압이 아니다. 근대 이후 신체를 통제하는 것은 정신을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활용되었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제러미 벤덤이 고안한 ‘판옵티콘’을 소개했다. 불꺼운 전망대에서 단 한 명의 간수가 불켜진 원형 감옥의 수많은 죄수들을 통제하는 방법은 단 하나! 누군가에게 감시받고 있다는 불안감이다. 통제된 신체는 통제된 영혼을 낳는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자유로운 정신의 발현이다. 네모난 틀 속에 갇혀 시키는 대로 ‘왜’라고 질문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미래 사회의 ‘창조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폭력이 아닐까?

서른 살의 1년차 교사는 폭행, 흡연, 절도, 학교 밖의 문제아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얼차려를 주고 욕하고 청소시키면서 1년을 지냈다. 담임업무와 학생부 생활지도를 함께 떠안은 채 교재연구과 수업을 해 나가는 일은 정말 버거웠다. 게다가 0교시, 8교시 매일 2시간씩 보충수업을 해야 했다. 야자감독은 입가심이다. 대한민국의 교사는 뭘 하는 사람이지? 그러면서 차츰 조직생활(?)에 적응했다. ‘아~ 학교는 이런 곳이구나. 건물구조도 조직도 군대라고 생각하면 되는구나.’ 장교로 군대생활을 했던 나에게 담임은 소대장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했다.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능을 가진자, 그대 이름은 담임!

그러나 아이들은 군인이 아니었다. 한 명 한 명이 너무 소중하고 예뻤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 아침부터 두근거리며 출근을 한다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사실이었다. 함께 이야기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웃고, 우는 동안 정들었던 아이들은 졸업을 해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아이들과 만났다. 그렇게 10년이 지났지만 학교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우리 모두의 생각과 시스템이 변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들을 때렸던 신규교사 시절보다 더 부끄러운 건 가끔씩 내 생각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난 후의 씁쓸함과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채 규정이니까 지키라고 했던 순간들이었다.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배워야 하는 학교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 난감해지곤 한다. 졸업할 때까지만 참자, 학교는 원래 그런 곳이다, 선생들은 다 똑같다는 인식을 가지고 학교를 떠나는 많은 아이들을 보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나는 뭘 하는 사람이지?


좋은 사람은 누구인가?

자공이 묻기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직 부족하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싫어한다면 어떻습니까?”
“아직 부족하다. 마을 사람들 중에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하지 못한 사람이 싫어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 공자의 『논어論語』 제 13편 ‘자로(子路)’ 중에서


혹자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했지만 유교적 사대주의와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대한 통렬한 비판일 뿐 공자의 모든 논리를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인용한 공자의 말은 ‘선택’의 순간에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이다.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다.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악한 사람은 싫어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을 어떻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마는 옳은 일과 그른 일은 분명히 구별할 수 있고 그 일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더욱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다.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한다. 튀지 말라고 타이르고 중간만 하라고 충고한다. 경우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말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우리는 금세 스무살이 된다. 나이만 먹어버린 ‘어른애’가 되어 떠밀리듯 졸업장을 받고 교문을 나선다. 대학생이 되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지만 아무것도 준비된 것은 없다. 왜냐하면, 공부만 했으니까.

그래도 우리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다. 지식은 실천이다.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지식은 개인적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우리가 아닌 ‘나’만을 위한 지식으로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던 농부 작가 전우익 선생님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고 말했다. 함께 나누고 모두 같이 걸어갈 수 없는 세상은 지옥이다. 현대 사회를 승자독식 사회라고 하지만 1등만 살아남은 사회는 지속 가능할 수가 없다. 경쟁은 피할 수 없지만 미래 사회는 ‘국영수’ 실력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 나만의 무기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교사가 되고 싶다.


학교 이데아

됐어 됐어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 족해 족해 족해 ……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 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 겉보기 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이젠 생각해봐 대학 본 얼굴은 가린 채 근엄한 척 할 시대가 지나버린 건 좀 더 솔직해봐 …… 됐어 됐어 이젠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됐어 ……  - 서태지, <교실 이데아> 중에서

수능이 끝나고 합격의 기쁨으로 교무실에 찾아오는 아이들은 금세 잊히지만 한숨과 탄식, 눈물과 안타까움이 문자와 전화로 전해지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너는 공부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해 줄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학교에서는 그것들을 찾아주거나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모두 똑같은 것만’ 머릿속에 집어넣었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나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기 어렵다. 전공이 아니라 대학이 중요하고 적성과 취향보다 직업과 연봉을 감안해야 하는 현실이 모두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더더욱 그렇다. 20대의 40%가 비정규직이다.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과 미래 사회에 대한 준비를 위해 어떤 과정과 노력이 필요한지 대학에 가서 배우라고 하면 나의 책임이 조금 가벼워질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힌다. 어느 누구도 정답을 제시해줄 수는 없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책을 통해 조금 더 자라는 아이들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기 성숙을 모색해야 한다.

자기 성숙을 모색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개인으로서 내세울 장점이 없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속한 집단인 국가, 민족, 종교, 지역, 혈연, 출신 학교를 내세운다. - ,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중에서

전통사회에서는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생득적인 지위를 통해 자신의 삶이 결정되었다. 마치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순전히 우연의 결과일 뿐인 신분제도는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가? 자신이 속한 집단이 개인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그가 누구인지 말해 줄 수는 없다. 우리는 나이와 경력을 내세우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양반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말과 행동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책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본질적으로 고독한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동반자는 책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상상을 자주한다.

상쾌한 아침공기를 맞으며 친구를 만나 학교에 갔다. 낡은 교문도 언덕길의 분수도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아 기분이 괜찮은 하루였다. 아침부터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차량을 통제해 주시고 학생회 임원들이 돌아가며 캠페인을 벌인다. 무단 횡단을 하거나 위험하게 도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없다. 교실에 도착하면 친구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 짧은 아침 독서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학기 초에 한 권씩 가져온 학급문고만 읽어도 올해 40권의 책을 읽는다. 선생님과 함께 선정한 다양한 책들이 가까이 있어 따로 고민할 필요도 없다. 오늘 오후에는 단체 활동이 있는 날이다. 밴드부 친구들과 연습을 한 후 청소년 수련원에서 다른 학교 친구들과 합주가 있다. 저녁을 먹고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사회 숙제를 하기로 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들』을 일고 ‘사형제 폐지’에 대한 토론이 수행 평가다. 사형제에 대한 사회, 역사적 변천 과정을 조사하고 관련된 소설, 영화는 물론이고 사회문화 교과서도 참고해야 한다. 반대를 위한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예상 질문을 정리해야 한다. 논술이나 구술 면접은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수업 시간에 준비한 것으로 충분하다. 하긴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더라도 선배들을 보니까 공부 안하면 2학년을 넘기기가 힘들다던데 대학에 가면 열심히 공부만 해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이라는 게 있었다는 데 그 시간엔 도대체 뭘 했는지 궁금하다. 기분도 전환할 겸 이번 주말에는 빨간색으로 염색이나 해볼까.

혼자 꿈을 꾸면 공상에 불과하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 현실은 한 번도 만만한 적이 없었다.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보낸 지난 10년은 즐거움과 보람보다 부끄러움이 앞선다. 이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걷고 싶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요즘 들어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얘들아 함께 걷지 않을래?


2009 수내고등학교 교지 『솔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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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시간에 생각 키우기 국어시간에 읽기
충북국어교사모임 엮음 / 나라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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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는 도구교과다. 맛있는 밥과 반찬이 그득해도 숟가락과 젓가락이 없으면 곤란하다. 어떤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생각하고 듣고 말하고 쓰기 위해서 국어는 꼭 필요하다.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도구는 언어다. 그래서 생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언어능력을 길러야 하고 언어능력은 바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말과 글을 잘 살려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2002년에 『생각을 키우는 이야기』를 엮어낸 충북국어교사모임의 선생님들이 이번에는 『국어시간에 생각 키우기』를 엮었다. 현직에 계신 국어선생님들이 만든 책의 특징은 살아 숨 쉬는 현장감이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매일 만나는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그들의 눈높이와 그들의 생각을 잘 담아낸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국국어교사모임이 만든 나라말 출판사의 책들이 많은 국어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주제별로 좋은 글들을 골라내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직접 읽혀보고 그들의 생각과 느낌을 물어보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깔깔대는 장면이 떠오른다. 선생님들은 얼마나 즐거웠을까. 또 아이들의 생각은 또 얼만큼 자랐을까.

여섯 분의 국어 선생님들이 모여 1년 반 동안 열심히 글을 모으고 아이들에게 읽혀보고 고르는 과정을 통해 나, 우리, 인권, 환경, 역사와 문화 등 다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 먼저 읽을 만한 글들을 제시한 후 생각을 키울 수 있는 활동을 제시했다. 한비야의 글부터 홍세화, 서재호의 글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읽을 만한 글들을 엄선하고 그 글을 읽고 나서 조금 더 생각할 기회를 준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보고 적어보고 말해보고 써보는 동안 간접 경험을 해 볼 수도 있고 다양한 관점과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읽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과정을 질문의 형식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배려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하물며 아이들의 생각을 한가지로 몰아가거나 똑같은 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글을 쓴 사람의 생각에 내 생각을 보태고 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물론 글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글쓴이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보다 깊이 들여다보고 나의 생각을 키우는 데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다만 글을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이 하나의 출발이 되고 나를 돌아보고 이웃을 생각하며 주변과 상황을 이해하고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다.

진짜 국어 공부의 시작은 잘 듣고 분명히 말하고 정확히 읽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는 데서 시작된다. 하루 종일 참고서를 외우고 한 가지 정답을 찍어내는 문제풀이 연습으로 국어실력은 늘지 않을뿐더러 생각도 키우기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은 혼자 그리고 다 같이 읽고 생각하고 나눌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이다.

11021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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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러본다 - 제10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380
최영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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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멀리 바라보려 해도 인간의 눈은 한계가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마주치는 모든 인연과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때때로 길을 잃는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이유와 삶의 목표가 다르겠지만 일상의 갈피 사이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감동에 휩싸이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가장 큰 행복이 사람인 것처럼 가장 큰 절망도 사람에서 비롯된다는 자명한 사실.

시를 읽는 행위는 무의식으로 억눌린 감정선의 피복을 벗겨내는 일처럼 조심스럽고 아프다. 타인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상상의 즐거움을 넘어 확인할 수 없었던 미세한 생의 감각을 일깨우고 타인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것이 시 읽기의 즐거움이다. 최영철의 『찔러본다』는 긴 호흡의 문장에서 만난 쉼표처럼 반갑다.

자연과 일상을 바라보는 개성적인 언어는 공감의 목소리로 잔잔하게 들려오고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특별하지만 낯설지 않다. 시간이 마련해준 듯한 특유의 가락과 리듬은 시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노을

한 열흘 대장장이가 두드려 만든
초승달 칼날이
만사 다 빗장 지르고 터벅터벅 돌아가는
내 가슴살을 스윽 벤다
누구든 함부로 기울면 이렇게 된다고
피 닦은 수건을 우리 집 뒷산에 걸었다


서시에 해당하는 노을은 시인의 나이를 짐작케 한다. 책날개를 슬며시 열어본다. 1956년생. 누구나 한번쯤 기울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함부로’가 아니라 ‘선택’과 ‘열정’이었음을 모르지 않을 텐데 시인은 가슴살을 스윽 베인 듯 서늘한 초승달을 바라본다.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가 전해주는 달의 목소리가 아니라 주관적 시선으로 빚어낸 시인의 목소리에 공감할 수 있어 아슴찮다.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존재의 갈등은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꽃을 기르고 산에 오르고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존재의 시원을 향한 인간의 몸부림이다. 때로는 가슴 벅찬 웃음으로 행복해하지만 눈물과 한숨으로 절망하기도 하는 것이 우리들의 생이다. 그 생의 감각을 오롯이 전해 줄 수 있다면 좋은 시가 아닐까.

눈꽃

이다지 얼어붙은 자리에도
몇 송이 꽃 피울 수 있다니
가타부타 언약 없이 떠난 것들
완고하게 묻고 말았던
땅의 노여움 풀릴 수 있으려나
속삭이다 안 되면 노래하고
노래하다 안 되면 꺼이꺼이 느껴 울던
뜨내기 새의 부리에도 물오를 수 있으려나
삭풍에 묻고 말았던 그날의 맹세, 노여움, 후회
네가 문득 되짚어주었네
글쎄 그 간절한 빛깔이 이 뜨거움이었다는 듯
이 서늘함이었다는 듯
나무의 체온에 기대어서도 녹을 줄 모르는
눈물 한 방울, 두 방울


한 권의 시집을 읽고 가슴에 닿는 시 몇 편을 적어보는 것은 ‘그날의 맹세, 노여움, 후회’처럼 아련한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 그 간절함과 뜨거움 그리고 서늘함을 잊지 않기 위하여 때때로 또 다른 시집을 뒤적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렇게 아프게 시에 찔린다. 햇살과 비와 바람에 찔려본다. 찔릴 수 없는 것들에 찔리는 것, 찌를 수 없는 것들로 찌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 삶의 숙명이 아닌가. 단 한 순간도 기다려주지 않고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시간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숙명이 아닌가.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갈 뿐. 높은 목소리와 큰 기대는 실망을 가져올 뿐이다. 사소함을 넘어선 모든 순간에 감사하며,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너를 쿡쿡 찔러본다.

찔러본다

햇살 꽂힌다
잠득 척 엎드린 강아지 머리에
퍼붓는 화살
깼나 안 깼나
쿡쿡 찔러본다

비 온다
저기 산비탈
잔돌 무성한 다랑이논
죽었나 살았나
쿡쿡 찔러본다

바람 분다
이제 다 영글었다고
앞다퉈 꼭지에 매달린 것들
익었나 안 익었나
쿡쿡 찔러본다



11021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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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1-02-24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인식의 힘님,
제가 처음으로 시집에 리뷰를 쓴 이승희 시인의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리뷰 위에 인식의 힘님의 리뷰가 있어서 알게 되었어요. 틈틈히 눈팅만 하다가 용기내어 덧글 달아봅니다. 그냥 열심히 글만 쓰시는 것 같아서 말 붙이기가 좀....

최영철 시인은 부산 망미동에 사시는데 가끔 이곳 저곳에 나타나시는 관계로 몇 번 뵌 적이 있지요, 문지에서 [찔러본다]가 나온 줄 모르고 있었어요. 그동안 시에 무심했나봐요..
'시를 읽는 행위는 무의식으로 억눌린 감정선의 피복을 벗겨내는 일처럼 조심스럽고 아프다' 하셨는데 공감합니다. 피복이 두꺼운 사람은 느끼지 못할테지만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sceptic 2011-02-27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이렇게 또 인연이 되어 인사를 나누고 함께 읽은 책을 공감하고 대화도 나누게 되네요. ^^

시인의 말을 듣고 싶은 마음조차 소중한 시절입니다...

반딧불이 2011-05-06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찔릴 수 없는 것들에 찔리고, 찌를 수 없는 것들로 찌르는 것' 자연을 느껴보라는 것일까요? 밖에서 소쩍새가 찌르는 밤입니다.

sceptic 2011-05-09 22:27   좋아요 1 | URL
소쩍새가 들리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하네요. 들어본지 너무 오래됐네요.
무언가 찌를 수 있는 걸 가져야 하는 걸까요...
 
소통을 꿈꾸는 토론학교 : 사회.윤리 - 우리 사회를 가로지르는 열 가지 쟁점 청소년을 위한 토론학교
김범묵.윤용아 지음 / 우리학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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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다는 뜻이다. 어떤 의견이나 통행이 막히지 않고 잘 통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말은 사람과 사람, 개인과 사회 등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된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그리고 세상과 원활한 소통을 통해 성장하고 사회화의 과정을 밟아간다. 이때 필요한 것은 소통의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자세와 태도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과 입장의 차이 때문에 서로 의견과 판단이 다를 경우 소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해진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고 의견이 충돌하기도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제각각이어서 의사소통 과정을 거쳐 상대방을 이해하고 세계를 인식하며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합의와 조정 과정을 거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이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태도가 중요한 게 아닐까. 마음을 닫고 귀를 틀어막고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과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능력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소통능력이다. 타인의 견해와 주장을 정확히 파악하고 나의 의견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연습은 어린 시절부터 몸에 습관처럼 배어 있어야 한다. 특정한 상황이나 회의석상에서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라 평소 생활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학교에서 나온 ‘소통을 꿈꾸는 토론학교’시리즈는 학교에서 담아내지 못하는 혹은 학교에서 지향해야 할 토론의 방향을 제시한다. 『소통을 꿈꾸는 토론학교 : 문학』에 이어 나온 『소통을 꿈꾸는 토론학교 : 사회 · 윤리』는 열 가지 쟁점에 대한 찬반 입장을 다룬 책이다. 외모지상주의, 개인주의, 대학입시, 학생인권, 사형제도, 이혼, 재산상속, 경쟁, 정보화사회, 세계화. 흔한 주제이면서 각자의 상황과 관점에 따라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하는 쟁점들이다. 보편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누구나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찬반의 입장도 팽팽할 것이다. 각 주제를 다루는 구성도 학생들을 배려해서 잘 짜여있다. 현직 선생님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생각열기 - 찬성과 반대 - 입장 정하기 - 배경지식’의 흐름으로 하나의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내 입장을 정리하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과정으로 짜여 있기 때문에 토론이나 논술 연습용 교재로도 적합해 보인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용 교재로도 손색이 없으며 읽기용 교재로도 충분하다.

정치인들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을 때가 많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나 성인들이 지켜본다는 잊은 것일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반박과 상대의 정당한 주장에 대한 수용이 아니라 귀를 닫고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적절하지 않은 비유, 통계 자료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 등 한심스런 장면들이 매주 반복된다.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토론 프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유치한 말장난, 소통 불능 사회에 대한 냉소를 경험하게 된다. 왜 그럴까?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주입식, 암기식, 객관식 시험제도와 입시전형, 채용과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다. 다양한 관점의 수용, 합리적인 사고, 창조적인 문제 해결능력, 양보와 배려, 합의와 인정 등 토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과 그것으로 인해 길러지는 창조적 상상력을 위한 교육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학교에서 충분히 토론식 수업이 정착되고 교육과정에서 이런 방법들이 통용될 수 있도록 한다면 문화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상명하달식 의사소통 구조, 연장자 우선주의, 연공 서열제 등의 전근대적인 요소가 곳곳에 남아있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교육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의미는 더더욱 남다르다. 합리적인 의사소통 구조는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이 책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지식 보충용 교재가 아니다. 공교육에서 받아들이고 이끌어나가야 할 토론식 수업의 자료와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며 생각을 키우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과정을 훈련할 수 있으며 내 생각의 과정을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이후에도 과학, 역사, 철학 등 주제별로 토론의 쟁점들을 펴낼 예정이라고 하는데 기대되는 책들이다. 토론의 기술이나 방법을 통해 상대를 이기기 위한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찬성이든 반대이든 그것의 장점과 단점을 이해하고 합리적 주장을 받아들이고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과정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학교를 졸업 한 후에도 우리는 매 순간 의견을 교환하고 타인과 대화하며 토론한다. 공식적, 비공식인 과정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상대를 파악하고 내 의지를 관철하며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세련된 설득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한마디로 토론은 삶의 도구이며 피할 수 없는 생활수단이다. 대학입시를 위한 생각 키우기, 논술점수 올리기식 경쟁 수단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위한 방편으로서의 토론을 생각해 보는 책이라는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


1102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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