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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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작가들에게 주어진 숙명같은 질문이다. 문학의 숲에 발을 들여놓은 작가들에게 이것은 가장 본질적이며 궁극적인 화두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탄생처럼 작가도 자신이 속한 시대와 인종과 국가를 선택할 수 없다. 자신의 삶을 통해 터득한 경험과 사유의 과정이 곧 문학이 되고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현실을 반영한다.

공시적, 통시적 관점에서 문학의 보편성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탐구에서 비롯된다. 문화적 특수성은 소설의 바탕을 이루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관계, 사회적 존재로서의 행동, 역사적 사건에 반응하는 태도, 삶의 의미와 목적을 고민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내밀한 탐구이며 작가의 삶에 대한 아픈 성찰이다. 20세기 초 일본에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다자이 오사무는 이 소설을 통해 모든 인간의 속성을 되묻고 있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제각기 다른 방식을 보이겠으나 나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타인과의 관계망 속에서 그 의미를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성격과 취향, 신체적 특징과 속성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선택이 아닌 운명처럼 삶의 조건을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첫 번째 비극이지만 출생 이후의 조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넓은 선택적 삶은 인생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서로 다른 생김새와 기질,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인생은 고칠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간다. 우리는 오늘 어떤 단막극을 만들었는지 돌아보자.

이 소설의 1인칭 주인공은 타인과의 관계를 비극으로 파악한다. 불신가 본질이고 불안한 쇤뢰는 서로를 기만하는 삶의 처세술이라는 것이 작가가 말하는 인간의 관계 양상이다. 과연 그런가. 주인공은 기질적으로 숫기 없고 심약하지만 익살스런 행동과 출중한 외모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본질적 속성과 거리가 먼 광대놀음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어떤 거짓과 위선으로 상대를 속이고 자신조차 완전하게 기만했는가.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 27쪽

일반적인 기준으로 삶을 재단할 수는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스스로 선택했다면 그것이 비록 남루할지라도 연민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본질을 들여다 보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 나이를 불문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고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주인공 요조는 아주 어린 시절에 이미 자신의 실체를 알아챈다. 작가 자신이면서 인간 삶의 비루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소설의 주인공은 실존적 고민으로 생을 탕진한다.

위대한 고전에서 설파하고 있듯 ‘사랑’만이 생의 허무를 극복해 주는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없다. 요조는 가족을 벗어나 주변인물을 통해 새로운 삶을 선택하지만 그것은 선택이 아닌 운명처럼 파국을 초래한다. 누구의 잘못도 선택도 아닐 수 있는 인간의 삶은 도대체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욕망에 충실하고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삶이 가능하단 말인가.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게 된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일본 작가의 중편소설 하나를 읽는 동안 보이지 않는 인간의 밑바닥과 사회적 관계 속에 숨어 있는 위선과 이기적 욕망들이 난마처럼 엉켜버린다. 누구 한번쯤 자신의 삶을 탕진하고 싶지 않았을까. 인간의 역사는 가장 냉혹한 전쟁이 아니었나. 그렇다면 끝없이 충돌하는 선과 악의 대립을 통해 우리들의 내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기적 본능과 이타적 욕망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는 철학적 탐구와 윤리적 잣대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끝끝내 희망을 보이지 않고 마무리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의 나이는 스물 일곱. 정신병원에 갇혀 쇠창살 밖으로 내다보는 세상의 풍경은 마치 우리가 감옥에 갇혀 허우적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 같은 담담한 고백적 문체는 오히려 쇠창살 안과 밖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마음의 감옥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요조들을 위하여 작가는 마지막으로 위로의 말을 던진다. 순수하고 진실한 것에 대한 갈망! 하지만 그 위로는 거대하고 암울한 그림자처럼 우리의 목을 조이는 듯하다. 이렇게,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 134쪽



110414-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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