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거짓말 -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조작하는가?
마이클 캐플런 & 엘런 캐플런 지음, 이지선 옮김 / 이상미디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생각 없이 존재하는 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다. 그것은 짐승과 연체동물 그리고 신들의 달콤하고도 즐거운 어리석음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그것도 어리석은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 앙리 드 몽테블랑 <타르네>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실수를 통해 무엇을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면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에 어떤 내용이 전개된다 할지라도 평소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문장으로 표현한 작가의 글을 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책들의 방향과 내용은 그 시대를 상징한다. 인간의 뇌와 심리에 관한 책들이 최근 몇 년간 출판의 한 축을 이루는 듯하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믿지 못하고 타인의 심리가 그만큼 궁금하다는 반증이다.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믿고 싶지만 인간의 판단과 행동은 그렇지 못할 때가 훨씬 더 많다. 컴퓨터처럼 논리적이고 정확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싶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꾸준한 노력에 따라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합리적인 판단력과 이성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훈련만으로 길러질 수 없는 능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뇌의 거짓말』은 인간의 수많은 ‘실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이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것이라면 심리 치료를 받아야겠지만 당황스럽고 어이없는 것이라면 원인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인류의 역사 자체가 ‘비이성’과 함께 해 왔다는 사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철학의 역사를 들여다보아도 신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의심으로부터 인간의 이성이 발달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곧 계몽과 희망의 길찾기였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진화심리학이나 행동심리학으로부터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각을 분석하는 데 더욱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완전한 인간은 생각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 생각의 오류를 찾아 헤매는 동안 우리는 조금 더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인류가 저질러온 실수에 대해 반성의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생각의 패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고 그 함정을 살피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끝없이 이어지는 실수의 원인을 지적한다. 우리가 ‘실수’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지적하고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는 일은 실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함이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것은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경험에 근거한다고 믿지만 사실 그것이 그리 믿을만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뇌’는 늘 거짓말을 한다. 스스로를 속이고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한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은 적절한 도움을 준다.

지식은 무지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 - 206쪽

넘쳐는 지식과 정보 사이에서 우리는 때때로 길을 잃는다. 하루에 벌어지는 일과 쏟아지는 정보들은 한 순간도 우리의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읽어내고 발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시대가 되었다. 그렇게 정확한 정보와 통계자료, 축적된 노하우와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하여 어떤 일을 결정하고 인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너무 똑똑해서 멍청해지기 시작한 듯 인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실수하고 후회하고 경험하고 배운다. 하지만 그 시행착오도 우리의 ‘비이성’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인지함정에 빠져 왜곡된 현실을 보고, 순간적으로 판단 착오를 일으키며, 집단적 편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때때로 혼란스럽다. 도대체 어떤 것이 옳은 것이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인가.

도덕적 가치 판단은 모든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삶의 태도와 방법을 결정짓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경과학, 행동경제학, 진화생물학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실패와 좌절을 반추하며 가장 ‘인간적인’ 인간의 모습을 조명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냉정하다. 여러 분과학문에서 다루어진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조합해 놓고 있기 때문에 위에 언급한 분야의 책을 보았거나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챙겨보아야 할 책이다.

하지만 문제는 남는다. 현상에 대한 분석과 정확한 해석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있지만 인간의 문제만큼은 정답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올바른 길과 대책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못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다양한 논의와 문제제기를 확인하고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는 것이 끝없이 반복되는 실수와 시행착오로부터 무언가 한 가지를 건질 수 있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은 각자의 몫이다. 인류의 역사와 인간에 대한 저자의 맺음말은 그래서 새겨 둘만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추구하기 때문에 실수하며, 가장 멀리 도달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신학이나 생물학을 통해서가 아닌 역사를 통해 전해진다. 역사는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분야지만, 우리의 결론들이 진실하다는 걸 입증할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작위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며, 그 세상에 의미를 주입하려고 해쓴다. - 386쪽


11041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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