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문학과지성 시인선 311
장석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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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멜랑콜리 맨의 현대적인 사랑법
나는 우울한 남자, 이성주의자를 몰아내고 싶은 남자
나는 우울한 남자이기 때문에 다섯 사람만 사귀고 싶어
우울한 남자라서 다섯 손가락 펴고 다섯 세상을 꿈꾸고 있지만 나는
우울하기 때문에 눈물에 젖어 저 너머에 세워질
이성주의자의 묘비명을 생각하고 있어

  - ‘내 마음의 아나키’ 중에서

  지루한 이성과 감성 놀이의 틈바구니에서 허구적 거리는 몸짓을 보여주는 시인이 장석원이다. 라고 한다면 시인은 화를 낼 것이다. 설익은 목소리와 탄탄하지 못한 내공을 섣불리 판단하긴 어렵지만 첫 시집을 읽는 독자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신선하다와 돈 아깝다 사이에서 방황해야 한다. 미래를 알 수 없고 현재가 전부가 아니지만 아직 멀었다.

  ‘아나키스트’는 체제와 조직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한다. 자유에 대한 사랑과 자아를 넘어선 타자에 대한 열림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시집 <아나키스트>는 자아의 각성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초록은 깊으나 치명적이지 않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죄 벌 받아 마땅하다
얼굴 앞의 공포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없는 자 벌 받아 마땅하다

  - ‘근원적 센티멘탈’ 중에서

  반복되는 ‘멜랑콜리’와 ‘센티멘탈’ 사이에는 어떤 간극도 없다. 선언적이고 감성적이지만 때때로 공감과 울림으로부터 멀어진다. 시가 여전히 유효한 장르가 되기 위해서는 독자와 감흥 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넘어서는 자리에 홀로 눈물 흘려서는 안된다. 부분의 합이 전체가 될 수 없는 장르가 시다. 이 말에 동의한다면 잠언적 경구를 떠나 조화된 한 편의 시를 만나고 싶은 것이 독자들의 소망이다. 예를 들어,

크레모아 들고 적진에 뛰어드는 용기.
우리의 만남, 부자연스런 체위, 시와 혁명,
술과 사상, 노동자와 시인.
우리와 그들의 사랑은 소도미야.
소돔 성이 소도미 때문에 망하지는 않았어.
사랑의 힘 때문이야. 서풍이 분다.

  - ‘젊고, 어리석고, 가난했던’ 중에서

  차라리 통속적이고 서툴러 보이는 위의 시 같은 경우가 ‘젊고, 어리석고, 가난했던’이라는 지나간 시절의 한 순간을 추억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 정밀한 언어 예술로서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드러내는 데 목숨을 건 나머지 소통의 측면에서 부족하다면 ‘대중예술’로서의 직무를 유기를 했다는 혐의가 아니라 표현의 문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한 편, 한 편 음미할 수 있는 시집을 만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지도 모르지만 전체가 주는 울림 속에 개별적인 시편들이 드러내는 의미를 찾아내는 즐거움을 주는 시집도 드물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 시의 제목은 의미 심장하다. 독자와 시인, ‘우리가 다시 만날 때’ 새로운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간결하고 짧은 詩行 속에서 수많은 곁가지를 뻗어내는 마지막 구절의 선언처럼.

우리가 다시 만날 때

우연하게도
『창작과 비평』 전질 외판원이었던 그는
지하철 공사 한창이던 네거리 건널목
지하의 발파음 중심을 기울게 하던 그곳에서
정확하게 16일 전 보광동 81번 종점 앞 포장마차 황금시대의 末路 시비 끝에 주먹다짐 파출소 연행 후 지루한 調書 하룻밤 새우잠
그리고 아침의 어색한 화해 끝에 헤어졌던 그 사내를
즉석 복권을 긁고 꽝을 확인한 후
재수 없다 없어 안 되는 놈은 다 안 된다
담배 필터 씹으며 전봇대에 기대 하늘 보다가 다시 만났다
이 도시에서 우연은 격렬한 사랑을 수반할 때가 있다


060119-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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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 공감 - 사람, 관계, 세상에 관한 단상들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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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별성 안에 보편성이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정혜신의 이야기는 놀랄만큼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개별적 경험이 세상의 진리라고 굳게 믿는 행태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인간과 사회 일반에 관한 이야기들은 결국 개별적 특성을 통한 일반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정혜신의 <삼색 공감>은 특별한 자리에 놓일 수 있다.

  짤막한 단편들이 모여 있어 긴 호흡으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과 고민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단점은 촌철살인의 한마디 한마디로 상쇄된다. 한겨레를 통해서 최근에 접한 칼럼도 포함되어 있지만 지나간 이야기들로만 치부할 수 없는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시 돌아보는 일은 의미심장하다.

  우선 ‘사람, 관계, 사회’라는 이 책의 편집이 제목이 되어 버렸다. 삼색은 분명하다. 인간과 사회를 이어주는 관계의 모습.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자기 색깔과 관점을 가지고 뚜렷한 목소리를 내거나 일관된 흐름으로 그것을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신과 의사가 바라보는 세상은 좀 더 객관적이고 분석적일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은 오히려 책을 읽는데 방해 요소가 된다. 직업과 학력, 출신과 성분은 상대를 이해하는 최소한의 배경지식이 아니라 편견과 선입견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직업을 가지고서도 얼마나 극단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가.

  다만 정혜신은 직업과 전공을 병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하기보다 일반들의 이해를 돕는데 사용하고 있어 부담스럽거나 주관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칼럼의 특성상 잘난 척하거나 전문가로서의 충고를 잊지 않으려는 시혜적 태도를 버리기 어려운데 비해 비교적 설득력 있고 쉬운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매 꼭지마다 일상에서 만나기 쉬운 일화나 비유를 사용해서 평이한 목소리고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하고 싶은 말들을 군더더기 없이 적확하고 명료하게, 때로는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빌어 설명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들에 공감하게 된다.

  짧은 글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데 모범이 될 만한 형식과 내용들을 담고 있다. 물론 지나치게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고 시사 문제와 직결된 인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할 수 있겠으나 발표된 지면의 특성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주관을 배제한 글쓰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정혜신이 가지고 있는 성향과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고정되어 있다. 그 관계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냉정하고 차분하며 설득력 있다.

  나는 개인의 특별한 경험을 아주 쉽게 일반화해버리는 사람들이 미덥지 않다. - P. 77

  개인적 경험에 객관과 통찰이 더해지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세상의 모든 진보는 ''경험적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의 ''밝은 눈''에서 출발한다고 나는 믿는다. - P. 77

  본능은 핵심을 놓치지 않게 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본능이란 정교하고 미세한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존재 이유'' 그 자체에 의해 움직이는 힘이다. - P. 91

  자신의 경험들과 개인적 통찰력을 ‘경험적 문제의식’으로 바꿀 줄 아는 ‘밝은 눈’을 가진 정혜신도 본능처럼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그 고민들이 좀 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측면까지도 담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모두가 활동가나 선동가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 기본임은 물론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목에 핏대 세우지 않고도 설득할 수 있는 이런 방식의 이야기가 폭넓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지적 권위주의' 성향이 있는 이들에게 '앎'은 삶의 가장 중요한 척도다. 매사 ''너 그거 알아?'' 하며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따지기 좋아하고 상대의 이해력을 끊임없이 저울질한다. '지적 권위주의'는 '앎'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보하려는 경향성이다. 논리와 사실을 바탕으로 하므로 대개의 경우 합리적이지만 권위주의적 색채가 짙어지면 제3자를 무시하거나 냉소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 P. 101

  논리성이 실체적 진실을 알려주는 알파와 오메가도 아니고 사람을 설득하는 요소의 전부도 아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향력의 90%는 언어적 요소가 아닌 비언어적 요소에 의한 것이다. - P. 102


  정신과 의사라는 ‘지적 권위’나 논리성의 메마름이 아닌 부드러운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정혜신에 대한 나의 판단이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그러나 강약 조절보다 그 설득과 생각의 편린들을 전달하는 방식들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위 인용문에서 밝힌 것처럼 ‘비언어적 요소’를 통해 그녀를 만날 수 없다면 논리와 사실을 바탕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지적 권위주의’와는 무관하다는 것은 그의 글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06012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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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활사박물관 3 - 고구려생활관 한국생활사박물관 3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3권) 지음 / 사계절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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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칠 수 없는 본능 중 하나는 타인에 대한 분노와 증오다. 안으로 향하는 눈이 없어서다. 거울을 보면서도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는 인간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항상 남의 탓이다. 한 인간에 대한 관찰과 평가가 쉬운 한 마디로 대체되거나 편견과 선입견이 되어 버린 말들은 고정된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탓이다. 나와 타인과의 관계망은 그렇게 쉽고 간단하지 않다. 그 끝없는 미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과연 시간만일까?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증오가 국가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 전쟁이다. 물론 생존권 확보를 위한 동물적 본능에 의한 투쟁이 발단이 되었을 수도 있으나 이후 인간들은 끊임없이 싸워왔다. 항상 너를 탓하면서.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녔었고 호전적이고 적극적이며 자유로운 기상을 지녔다는 고구려의 멸망도 전쟁에서 비롯된다. 어느 쪽이 먼저였을까는 중요하지 않다. 국가의 존립마저 뒤흔들어버리는 갈등은 개인이든 국가든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의 인간성이 파괴되듯 국가는 멸망에 이른다.

  고구려의 벽화에서는 특이한 두 신이 등장한다. 야철신과 제륜신이다. 야철신은 철과 도구를 담당하는 신으로 그리스나 로마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바퀴를 관장하는 제륜신은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당시 수레를 통한 운송 수단의 발달을 보여주는 증거다. 수레는 단순히 많은 물건을 손쉽게 운반할 수 있다는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 삶의 터전과 공간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유목과 정착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가 문제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직경 1.5미터가 넘어 보이는 바퀴는 2천 여년 전 작품으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찬란한 발명이다.

  왕과 귀족이 사는 성안과 성밖 사람들의 구분이 생겨나고 세금 징수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해졌을까? 복잡하고 정교한 통치수단과 민중들의 삶의 모습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 벽화에 그려진 왕과 귀족들의 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항상 주변에 작게 그려진 사람들이다. 능력과 신분이 일치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교육과 예술 분야에서도 탁월한 진전을 보인 고구려는 이제 본격적인 인간 사회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후 예술이라는 것이 생겨난 측면도 있지만 삶의 과정 속에 드러난 부분들이 실용성을 배제한 채 본격 예술도 등장하기도 했다.

  고분에 그려진 고구려인들의 생각은 지금도 비슷하다.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이다. 죽어서도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욕망. 많은 부장품과 고분 천장의 그림이 그것을 말해준다. 청룡, 백호, 현무, 주작 등 각각 방위를 담당하는 동물들의 역할은 사후 세계에 인간의 두려움과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해 주었을 것이다. 어둔 밤하늘을 바라보며 반짝이는 별들을 관찰했던 선조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우리들이 바라보는 하늘과 달랐을까? 무덤에 그려진 별 그림들은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다. 다만 명칭과 위치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그 별들을 묶어내고 관찰하는 방식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죽어서 하늘로 간다고 믿은 것인지, 하늘로 가는 싶은 욕망을 드러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광개토대왕비문 해석을 놓고 아직도 일본과 견해가 다르다. 많은 설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정답과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불행했던 일제강점기에 발견된 비문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 해석과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살아보지 않은 과거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아 보인다. 경험에 보지 못한 상황들과 감정들에 대해 더 크게 떠들고 있는 현재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족의 자부심과 영토에 대한 아쉬움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나라 고구려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의미 이전에 일반 백성들의 입장에서 어떤 모습과 구체적인 형태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역사는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한다. 그것이 기록으로 남든 그렇지 않든. 개인이든 국가든. 지나온 시간과 쌓아온 세월에 대한 흔적들은 고스란히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남겨진다. 객관성이라는 성격 자체가 역사에서는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다만 사실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방식들은 지금도, 여전히, 개인이든 국가든 반복되고 있다. 정답이 있겠는가. 이기적 유전자를 지닌 인간들의 반복된 습관인 것을. 소크라테스의 말이 떠오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너 자신을 알라’

06012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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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활사박물관 3 - 고구려생활관 한국생활사박물관 3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3권) 지음 / 사계절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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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칠 수 없는 본능 중 하나는 타인에 대한 분노와 증오다. 안으로 향하는 눈이 없어서다. 거울을 보면서도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는 인간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항상 남의 탓이다. 한 인간에 대한 관찰과 평가가 쉬운 한 마디로 대체되거나 편견과 선입견이 되어 버린 말들은 고정된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탓이다. 나와 타인과의 관계망은 그렇게 쉽고 간단하지 않다. 그 끝없는 미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과연 시간만일까?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증오가 국가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 전쟁이다. 물론 생존권 확보를 위한 동물적 본능에 의한 투쟁이 발단이 되었을 수도 있으나 이후 인간들은 끊임없이 싸워왔다. 항상 너를 탓하면서.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녔었고 호전적이고 적극적이며 자유로운 기상을 지녔다는 고구려의 멸망도 전쟁에서 비롯된다. 어느 쪽이 먼저였을까는 중요하지 않다. 국가의 존립마저 뒤흔들어버리는 갈등은 개인이든 국가든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의 인간성이 파괴되듯 국가는 멸망에 이른다.

  고구려의 벽화에서는 특이한 두 신이 등장한다. 야철신과 제륜신이다. 야철신은 철과 도구를 담당하는 신으로 그리스나 로마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바퀴를 관장하는 제륜신은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당시 수레를 통한 운송 수단의 발달을 보여주는 증거다. 수레는 단순히 많은 물건을 손쉽게 운반할 수 있다는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 삶의 터전과 공간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유목과 정착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가 문제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직경 1.5미터가 넘어 보이는 바퀴는 2천 여년 전 작품으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찬란한 발명이다.

  왕과 귀족이 사는 성안과 성밖 사람들의 구분이 생겨나고 세금 징수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해졌을까? 복잡하고 정교한 통치수단과 민중들의 삶의 모습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 벽화에 그려진 왕과 귀족들의 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항상 주변에 작게 그려진 사람들이다. 능력과 신분이 일치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교육과 예술 분야에서도 탁월한 진전을 보인 고구려는 이제 본격적인 인간 사회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후 예술이라는 것이 생겨난 측면도 있지만 삶의 과정 속에 드러난 부분들이 실용성을 배제한 채 본격 예술도 등장하기도 했다.

  고분에 그려진 고구려인들의 생각은 지금도 비슷하다.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이다. 죽어서도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욕망. 많은 부장품과 고분 천장의 그림이 그것을 말해준다. 청룡, 백호, 현무, 주작 등 각각 방위를 담당하는 동물들의 역할은 사후 세계에 인간의 두려움과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해 주었을 것이다. 어둔 밤하늘을 바라보며 반짝이는 별들을 관찰했던 선조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우리들이 바라보는 하늘과 달랐을까? 무덤에 그려진 별 그림들은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다. 다만 명칭과 위치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그 별들을 묶어내고 관찰하는 방식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죽어서 하늘로 간다고 믿은 것인지, 하늘로 가는 싶은 욕망을 드러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광개토대왕비문 해석을 놓고 아직도 일본과 견해가 다르다. 많은 설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정답과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불행했던 일제강점기에 발견된 비문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 해석과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살아보지 않은 과거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아 보인다. 경험에 보지 못한 상황들과 감정들에 대해 더 크게 떠들고 있는 현재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족의 자부심과 영토에 대한 아쉬움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나라 고구려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의미 이전에 일반 백성들의 입장에서 어떤 모습과 구체적인 형태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역사는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한다. 그것이 기록으로 남든 그렇지 않든. 개인이든 국가든. 지나온 시간과 쌓아온 세월에 대한 흔적들은 고스란히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남겨진다. 객관성이라는 성격 자체가 역사에서는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다만 사실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방식들은 지금도, 여전히, 개인이든 국가든 반복되고 있다. 정답이 있겠는가. 이기적 유전자를 지닌 인간들의 반복된 습관인 것을. 소크라테스의 말이 떠오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너 자신을 알라’

06012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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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경제학 - 상식과 통념을 깨는 천재 경제학자의 세상 읽기
스티븐 레빗 외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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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해가 마무리되면 각종 매체에서 발표하는 올해의 책이나 독자 선정 올해의 책은 선정과정과 분야별로 천차만별이다. 믿을만한(?) 사람들과 매체에서 발표한 책들 중 중복되는 몇 권을 골랐다. <괴짜 경제학>이 그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혹은 흥미를 유발한 만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는 믿음 때문이다. 항상 베스트셀러에 속지 말자는 당연한 원칙은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과 기자 스티븐 브러너가 공저한 이 책은 ‘경제학’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경제학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야기다. 습관적인 생각과 단순한 사고는 세상을 한가지 색으로 인식하게 한다. 상식과 통념을 깨는 통찰력을 갖는다는 것은 산을 옮기는 일보다 어렵다. 낯설게 바라보고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판단하는 일의 어려움은 주변 사람을 돌아보면 안다. 아니, 그보다 먼저 거울을 들여다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현상과 본질에 대한 철학에 대한 기초적인 사유방식만 갖고 있더라도 어떤 사건에 대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본질보다 현상을, 그것도 전해진 사실과 확인되지 않았거나 부풀려지고 확대된 현상들이 거품처럼 떠다닌다. 그래서 이런 책들이 잘 팔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극적이고 매혹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욱 그러하다. 교사와 스모 선수의 공통점은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라는 결론과 마약판매상이 어머니와 같이 사는 이유는 판매대금의 대부분을 보스가 챙기고 똘마니들은 가난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에 대해 통계적 수치를 통한 경제학적 분석으로 객관화하고 있다. 데이터를 통한 객관적 사실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진실은 실제보다 많아 보인다.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실도 아니잖는가? 특별한 발견과 대단한 통찰력은 범죄율의 감소 원인을 각종 정책과 경찰력의 증가등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낙태 허용법안에서 찾고 있는 것 정도가 되겠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상적 세계를 말하는 윤리학과 달리 현실적 세계에 대한 관심이 경제학이지만 하나의 요인으로 하나의 결과가 벌어진다는 단선적인 해석은 위험해 보인다. 한 여성의 낙태금지법 반대 투쟁을 통해 미국 전체 범죄율이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북경의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미국에 허리케인이 올 수도 있다니까. 하지만 객관적 데이터와 숫자 놀이가 경제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그 숨은 의미를 찾아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이라면 또 다른 변수와 다양한 원인들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인과 관계가 아니라 상호관계 속에서 찾아내지 못한 원인들은 의미있는 결론이 아니다.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자녀교육에 대한 객관적 서술들은 현실 적용문제에서 간단치 않다. 이름을 짓는 방식에 대한 경제학적 관점과 분석은 별로 흥미롭지 않으며 새로운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회학이나 인류학적 관점에서 혹은 자연과학의 관점으로도 다양한 원인과 분석이 가능한 문제들이다. 물론 스모 선수의 승률을 통한 부정행위나 학생들의 답안지를 분석해서 교사들의 부정을 찾아내는 일은 통계 자료의 의한 분석으로 찾아낸 숨은 그림 찾기 같은 일이다. 그 역할과 중요성이 축소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단선적이고 직접적인 원인들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현대사회의 삶의 표층을 벗겨내어 그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이다.

첫째, 인센티브는 현대의 삶을 지탱하는 초석이다.
둘째,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사회 통념 가운데는 잘못된 것들이 많다.
셋째, 전혀 예상치 못한 극적인 결과는 흔히 거리가 멀고 미묘한 요인을 원인으로 한다.
넷째, 범죄학자에서 부동산 중개업자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전문가’들은 정보의 우위라는 강점을 자기
자신의 아젠다를 위해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를 알면 복잡한 세상이 훨씬 단순해진다.


  이 책의 집필 목적과 내용의 얼개를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통계나 데이터를 통한 경제학적 관점으로 ‘훨씬 단순’해 보이는 ‘복잡한 세상’이 절대 단순하지 않았는데 문제가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이의 제기일 뿐이다. 다양성에 대한 논의와 방식은 존중한다.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잠자리의 무수한 겹눈 중 하나일 뿐이다.조각난 그림들이 제대로 맞추어져 하나의 퍼즐조각처럼 복잡한 세상의 이야기들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영원한 꿈일 뿐이다.

  경제학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메시지가 무궁할 것이란 사실에는 동의한다. 수학과 통계자료에 매몰된 학문적 관점이 아니라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관점과 논의들을 쏟아내고 연구하는 학자들이 필요하다는 데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쉽고 재밌는 이야기책처럼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대박에 성공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대중성은 동면의 단면일 뿐이다. 좋은 책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06012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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