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시대의 논리 창비신서 4
리영희 지음 / 창비 / 199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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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名不虛傳). 이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설명이 필요없는 책이다. 고전(古典)으로 꼽히는 책의 특징은 보편성과 항구성이나 세월이 흘러도 보편적 진실을 담아내고 현재성을 획득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는 데 있다. 대학 신입생 시절 친구 집에 갔다가 빌려 뒷부분을(5, 6부쯤 되는 것 같다) 읽지 못하고 돌려준 책이다. 누구에게나 사회와 현실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했던 시절이 있을 것이고 스무 살의 나를 눈뜨게 했던 책으로 기억한다. 이영희 선생님의 ‘대화’를 읽기 전에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보고 싶어 주문한 책은 옛 모습 그대로다. 74년 초판이후 개정판이 나오지 않고 그대로 29쇄가 내 손에 들어왔다. 표지도 활자도 오래된 기억처럼 그대로의 모습이다.

  내용상 전체 6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체계적으로 엮은 것은 아니고 주로 70년부터 73년에 걸쳐 시사 저널에 발표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1부 ‘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를 시작으로 주로 중국과 일본, 베트남을 위시한 아시아의 정치 역학 관계와 군사 문제를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내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마지막 5, 6부에서는 몇 편의 수필과 ‘한 ․ 미 안보체제의 역사와 전망’으로 글을 맺고 있다.

  ‘가장 진실을 잘 알고 있는 국민이 가장 국가를 위할 줄 안다’는 말은 책의 서두에서 그의 진심을 나타내는 간접 인용문으로 쓰인다. 기자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항상 공부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고, 비판적 시선과 깨어 있는 정신을 소유했던 선생의 글들은 여전히 오래된 활자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사회의 공기로서 언론의 역할이 거론될 때마다, 검은돈과 추악한 정치를 연결하는 작금의 언론을 대하는 국민의 심정은 참담하다. 정경 유착의 고리에 본드 역할을 한 홍석현 중앙일부 사장의 일은 ‘불법 도청’이라는 방법적 범법 행위에 묻혀가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이영희 선생의 글이 살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박정희의 서슬 퍼런 군사독재가 언론을 탄압하던 시대의 발언으로 모두를 숙연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21세기를 살아가면서도 여전한 언론과 정치의 추악한 모습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진실은 비판을 낳는다. 어떤 사회도 어떤 정부도 비판의 여지 없이 최선이거나 만능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는 말은 언론의 진실과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선언이다. 그렇다. 진실은 비판을 낳는다. 그 비판이 사회를 건전하게 하고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여전히 국민에게서 나온다. 인류의 역사가 낡은 관념과 새로운 관념의 투쟁의 역사라고 말하는 선생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올해로 해방 60년. 이제야 겨우 친일자 명단이 발표된 미개한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잘못된 과거의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만으로도 노무현 정권은 벅찰텐데 노무현은 국민이 잠시 위임해 놓은 대통령의 의무와 권한 5년을 담보로 협상 카드를 내민다. 그의 진정성은 이해가 되지만 방법론은 틀렸다. 5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한과 의무를 다시 새겨보는 것으로 잔여 임기를 채웠으면 좋겠다. 과거와 같은 억압적, 폭력적 정치 형태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은 줄었으나 ‘언제나 통치자들의 잘못은 대중의 희생으로 끝났기 때문이다.’는 역사의 교훈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통치자의 실수와 잘못은 대중의 고통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공산당 모택동과 국민당 장개석의 1, 2차 국공합작의 과정과 전개 그리고 이후 미국과의 관계를 가장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글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자위대로 대표되는 그들의 군국주의에 대한 부활과 야망을 우려하고, 방위 예산과 미국과의 밀월관계를 통해 나타난 아시아의 역할론까지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선생은 당시 미국방 장관과 일본 수상과의 대화 내용, 의회 회의록 등의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아시아 전체에 미칠 정치, 군사적 역학 관계를 예견하고 있다. 단순한 자료의 제시와 분석에 그치지 않고 날카로운 향후 전망을 읽어낼 수 있게 한다. 현재 미국과 일본, 중국과 미국, 한일 관계과 한미 관계를 읽어낼 수 있는 당시의 가장 정확한 논리로 읽혀진다. 과거가 없는 미래는 없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되풀이되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이라는 아놀드 토인비의 말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내용이 베트남 전쟁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헐리웃 영화를 통해 미국의 엄살과 고통에 공감하며 살아왔는지 알고는 있는지. F??참전에 따른 병사들의 고통과 베트남 민족에 저지른 죄과는 반성하고 있는지.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고엽제 문제와 현지 한인 2세들의 문제는 어떤가. 미국에 의해 저질러진 20세기 가장 추악한 전쟁 중의 하나인 베트남전의 악목이 21세에 다시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우리는 또다시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다. 테러 위협 방지 대책을 논하는 관계자들의 모습을 보면 코메디 프로를 보는 듯하다. 어떤 논리와 명분으로도 합리화 될 수 없는 전쟁에 참여한 현실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 선생은 베트남 전쟁을 하마디로 정리하고 있다. “프랑스 제국주의 ․ 식민주의를 반대해 싸운 베트남 인민의 80년의 투쟁과 반민중적 권력에 대한 민중의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고려돼야 할 전쟁이다.”

  자신의 직업과 위치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현실을 바라보는 혜안을 가지셨던 이영희 선생이 기자로서 가져야할 태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실의 긍정에 토대를 두는 세계관을 우익‘적’이라고 놓고, 현실의 개선 또는 개혁을 토대로 하는 세계관을 좌익‘적’이라고 하는 용어 사용의 일반개념에 입각해서 기자는 현실긍정적이기보다 현실개혁적이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기자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지식인들이 가져야할 태도가 아닐까?

  생각이 생활이 되고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실천하는 진정한 지성인. 우리가 그리워하는 사람이다. 선생의 말한 ‘전환시대의 논리’는 역사의 모든 순간에 적용될 것이며, 우리 모두가 ‘지식인적 자각에 입각한 실천적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0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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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08-08-0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솔직히 현재 역사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수구도 진보도 웬지 자신만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묘한 생각까지 듭니다.
진짜 나라는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너무 솔직한 리영희씨의 글을 저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리고 불안합니다.
차라리 이순신과 김구선생의 뒤를 따르고 싶을 뿐입니다. 미군정에 처참하게 운명당하신 김구선생님이 그립기만 합니다.

sceptic 2008-08-10 15:52   좋아요 0 | URL
저도 아는 건 없지만, 역사가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고 더구나 현실은 더욱 복잡하게 얽혀있으니 한 두 사람의 의견이나 한 두 권의 책으로 스스로를 정리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봅니다.

조금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조금 더 넓고 다양한게 읽고 생각하고 정리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현실도 좀 보이고 말씀하신대로 보수도 진보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겠지요. 그 접점을 찾아보려는 노력, 혹은 고민이 현실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계속되겠지만요...
 
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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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사람들이 행하고 있다 하여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압도적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소수의 책 읽는 이들이 벌이는 일종의 음모임에 틀림없다. (본몬 4페이지)

  강유원의 <책과 세계>는 이렇게 도발적인 선언으로 시작된다. 상식과 타성에 젖어버린 책에 대한 생각들을 일순간 뒤집어버리는 한 마디가 통렬하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전인류의 40%가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이들을 미개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책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읽어도 읽어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 대지와 호흡하고 하늘을 우러르며 두 뺨에 스치는 바람이 일러준대로 살아가는 삶이 더 행복하거나 인간적(?)일 수 있다.

  지식을 위한 방편이라고 하기엔 시대가 너무 달라졌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나무를 베고 종이를 만들어 책을 찍어내는 일이 유효한가? 저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전들을 들쑤셔본다. 국가론, 갈리아 전기, 우정론, 신국, 신학대전, 군주론, 리바이어던, 백과전서를 거쳐 국부론, 종의 기원까지 인간과 세계를 변화시킨 고전의 의미를 재해석해보는 것으로 대부분의 내용을 할애하고 있다.

  책이 가지는 매체로의 속성 또한 다양하다. 진흙판에서 죽간, 최근의 e-book에 이르기까지 매체 자체가 가지는 역할과 의미도 다양하게 해석된다. 인간을 중심으로 결국 책은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과 세계의 관계 속에서 책은 나름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인류가 발전(?)을 거듭하며 문명을 이룩해 오는 과정에서 책의 역할과 의미를 강조하며 그래서 ‘책’은 중요한 것이다는 교훈적 결론과는 거리가 멀다. 이를테면 책의 재조명 작업 정도로 불릴 수 있겠다.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평했던 어느 역사의 말을 되새겨본다. 15세기 이후 축적된 인류의 이성과 문화의 발달이 현재의 관점에서도 지속 가능한 일인가? 고전을 통해 자아를 들여다보는 일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이며, 무언가 세계를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게 하는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실일 수도 있다고 저자에게 설득 당했다.

  물론 수많은 반론과 각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책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탐색 없이 책읽기에 몰두하거나 아이들에게 책 읽히기에 목매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다시 한번 살펴야 한다는 의미 정도는 읽어낼 수 있다. 아울러 단 한권의 책, 고전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과 의미들을 다시 한번 새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지닌 실용적 목적이 아니라 역사와 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고 그것을 통해 현재를 조망해 볼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에는 현재의 고전이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넓게 보고 깊이 읽는 안목이 절실히 필요해진다. 얼마나 더 들여다보아야 안개 속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길이 보일런지......

  인간을 움직이는 힘은 궁극적으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공포이고, 다른 하나는 탐욕이다. 공포는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고통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요, 탐욕은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즐거움에 의해 생겨난다. (본문 11페이지)

  저자의 말처럼 인간을 움직이는 두 가지 힘 중에 나는 늘 탐욕을 탐한다. 누구나 그런가? 고통을 즐기고 즐거움을 음미하는 듯한 태도는 가식이다. 고통스러운가? 아니면 즐거운가? 어느 쪽인가? 그것이 직접적으로 몸에 가해지는 일들이라면 더욱 본능에 충실해진다. 책과 무관한 인용일 수 있으나 생각해보면 온몸이 떨리는 즐거움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은 개인마다 다르지 않은가. 오늘도 공포를 통한 고통이 아니라 탐욕을 통해 즐거움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를 포함한 전 인류를 위해 건배할 일이다.


200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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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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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톡한 소설을 만났다. 밀란 쿤데라 이후 몰입할만한 외국 작가를 만나지 못했다. 번역과 정서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휘와 문장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느낌들이 주는 문체가 내용과 어울려 전체로 다가와야 하지만 쉽지 않다.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를 일부러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부분의 외국 소설은 나에게 그렇게 읽힌다. 번역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멜리 노통브의 <살인자의 건강법>은 그런대로 좋은 평가를 내릴만하다.

  우선 내용 자체가 주는 신선함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작가의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선언적 의미로 읽힌다. 주인공인 타슈의 입을 통해 문학에서 오용되거나 독자들이 읽어내고 싶어 하는 비유와 상징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냉소가 시원하다. 공간의 이동도 시간의 흐름도 이 소설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인터뷰를 통한 기자와 작가 사이의 대화로만 구성되어 있다. 장편소설에서 신경써야할 다양한 인물이나 복잡한 갈등도 간접적인 복선과 암시도 다 필요 없다. 그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만 소설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기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타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통해 그의 전 생애를 밝혀낸다. 유년시절의 지독한 사랑과 추억 때문에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가는 추악한 외모를 가진 늙인이의 진실을 밝혀낸다. 그러나 기자가 밝혀내는 결국 늙은 대가의 숨겨진 삶이 아니라 진정한 ‘문학’ 속에 가려진 진실 찾기 게임이다. 문학적 진실이란 과연 무엇인가? 현실과 문학의 모호한 경계위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즐기는 듯한 이 소설은 작가 스스로가 밝히는 자신의 문학론으로 읽힌다.

  소설은 결국 허위적 진실이다. 허구라는 말도, 진실이라는 말도 모두 맞거나 모두 틀린다. 말장난이 아니다. 소설은 양면성을 지닌 두 얼굴의 사나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비평가나 독자들의 상상력은 자유지만 해석은 위험하다. 현실보다 진지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소설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 것처럼 소설의 의미 자체를 탐색하는 듯한 이런 종류의 소설 또한 쉽지 않다.

  또 하나의 축은 ‘사랑’이다. 작가 타슈의 어린 시절 절대 사랑이었던 사촌 레오폴딘. 그 사랑은 완벽했다. 탸슈의 입장에서. 성장하기 이전, 그러니까 2차 성징이 드러나기 이전의 상태로 가장 순수한 모습만을 사랑했고 추억하는 현실 속의 환상이다. 그런 환상을 현실에서 지켜내는 방법은 일탈 행위 뿐이다. 살인을 통해 영원한 기억 속에 묻어버린 타슈는 그 후 전 생애를 글쓰기 속에 묻혀 산다. 다소 비현실적인 내용이지만 남녀간의 진부한 사랑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랑 이전의 사랑을 확인한 후 작가가 보여줄 사랑 얘기가 궁금하다.

  인류의 삶은 지속될 것이고 새로운 작가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다. 그들이 내놓는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나름의 진실은 각각의 목소리를 낸다. 훌륭하고 위대한 문학으로 남겨질 작품은 결국 보편성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물론 대중성과는 다른 문제이다. 특별한 의미와 내용을 담고 색다른 방식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단순한 발랄함이나 재치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기자와 타슈가 보여주는 대화의 특성은 간결하고 직설적이다. 이전의 다른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타슈의 말들은 현란하고 자유롭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요설들은 작가의 언어에 대한 화려한 요리 솜씨를 보여준다.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능력은 작가로서 가지는 첫 번째 장점이다. 촌철살인의 은유와 풍자, 비틀고 후려치는 어법을 통해 ‘문학’ 자체에 대한 작가의 방법론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르다는 것은 미덕이다. 특이한 내용과 색다른 방식으로, 무엇보다도 <살인자의 건강법>이라는 주목할(?) 만한 제목으로 일단 독자들에게 주목받고 많은 소설들을 쏟아내고 있는 작가의 다른 작품 몇 편을 더 읽어봐야겠다. 그래야 그녀에 대한 평가는 그 이후의 일이겠다.

 


200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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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길 문학과지성 시인선 305
윤중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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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첫 시집 <본동에 내리는 비>는 88년간에 출간되었고 이듬해에 그를 만났다. 물론 시로 그를 처음 만났다.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한 시인도 아니고 주목받는 작품을 쏟아낸 적도 없다. 그의 첫 시집 마지막 시다.

죽지 않기 위하여

춥다.
곱은 손을 비비며 아침을 맞는다
성에 낀 유리창에 손톱으로
‘나는 오늘 아침에도 숨을 쉰다’라고 쓴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죽지 않기 위하여
몇 번 부대끼며 거리로 나서면
한 번 더 우스워지는 꿈.
생각할 줄 안다는 가장 빛나는 선물로
우리는 이만큼 슬펐잖은가

삶의 이유를 죽음에서만 찾아야 하는
우리들의
마른하늘을 위하여
마른기침과 변신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나와 내일을 위하여
입김으로 곱은 손을 녹이며 쓴다
‘살아야지 살아야지’

  2005년 가을. 그의 유고 시집 <고향길>을 대하는 마음은 헛헛하다. 첫 시집의 마지막 구절이 아이러니 하게도 ‘살아야지 살아야지’였는데, 이제 그의 마지막 시집을 들고 있다. 가난한 농촌과 농민들의 삶을 살뜰하게 드러내고 도시의 척박함을 담아내던 시인은 꼭 반세기를 살고 세상을 떠났다. 몇 년전 돌아가신 이문구 선생님의 뒤를 따라.

나헌티는 책음감 있이 살라구 허시등만
- 이문구 슨상님께

비설거지할 참도 마다하고
곰새 내렸다, 히뜩
골안개만 피우고 사라지는
여우비
처럼, 황망하게 가셨네.
개갈 안 나는 세상이라구
비죽이 웃으시드니,
슨상님 혼자 손 털고 뒷짐 진대유?
세상은 여적 그 세상인디……

  ‘세상은 여적 그 세상인디’, 아직 할말이 많이 남았을텐데 윤중호 시인은 세상을 떠났다. 지금쯤 이문구 선생을 만나 못다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이제 둘이서 손 털고 뒷짐 지고 이 세상을 내려다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산다는 것이 때로 저 하늘의 구름만큼 덧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깊어 가는 가을을 배경으로 푸른 하늘을 우러러 깊은 숨을 쉴 때 마다 맡아지는 공기의 냄새. 살아있음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먼 훗날 내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며 후회를 남기지는 말아야 할텐데 싶다. 윤중호 시인의 명복을 빈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

돌아갈 곳을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모두 돌아갈 곳으로 돌아간다는 걸
왜 모르겠어요.
잠깐만요. 마지막 저
당재고개를 넘어가는 할머니
무덤 가는 길만 한 번 더 보구요.

이. 제. 됐. 습. 니. 다.

- 미완유고시 ‘가을’

 

 

 

200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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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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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나는 한겨레를 신뢰한다. 금요일자 북섹션 <18.0°>을 꼼꼼하게 읽고 소개되는 책이나 고전 중에 메모해서 읽어보게 된다. <과학 콘서트>의 저자 정재승의 리뷰를 읽고 로렌 슬레이터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를 주문했다. 손꼽히는 좋은 책으로 남는다. 좋은 책이라는 판단 기준은 내게 몇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새로운 앎의 세계를 얻었는가? 둘째, 익히 알던 사실들을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는가? 셋째, 가슴이 미어지도록 감동을 받았는가? 넷째,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과 인생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는가? 다섯째, 실천의지와 삶의 태도와 방법을 새롭게 했는가?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지만 겹치는 부분도 있고 뭔가 빠진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대게 이중에 한가지 정도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책이라면 독서의 즐거움을 얻고 좋은 책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스키너의 심리 상자>는 교육심리학을 공부할 때 수박 겉핥기로 지나쳤던 이론들을 새롭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런 이론이 주는 시사점이나 일상 생활과 개인의 행동 또는 인간 관계의 상관성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 책에는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 실험 10장면’이라는 부제답게 충격적인 실험과 실제 사건들이 담겨 있다. ‘보상과 강화, 처벌과 소멸’이라는 행동주의를 낳은 스키너의 심리 상자 실험, 살인 장면을 목격하고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은 38명의 증인들, 스탠리 밀그램의 충격기계를 통한 권위와 복종의 심리 분석 등 실로 놀라운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심리학이나 교육학에서 접했던 실험과 내용도 있지만 해리 할로의 철사 원숭이 실험을 통한 스킨십이 사랑에 미치는 영향,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을 통한 인간 기억의 허구성 등의 이야기는 흥미롭기만 하다. 실제 생활에서 논란이 되고 의심을 품었던 일들을 심리 실험이나 과학의 잣대를 통해 이해하고자 했던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떤 집단의 내부에서 자기가 속한 집단을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눈물겹기만 하다. 그것도 인간만이 가진 특성일 것이다. 더구나 실험이나 약물, 과학적 증명방법으로 유의미한 결론들이 얻어지지 않는 심리 실험은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원숭이나 동물 실험을 통해 증명되더라도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물론 모니즈처럼 용감하게 세계 최초로 인간의 뇌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정신과 수술을 개발한 사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정신과 심리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나 명확하게 이것이다라고 선언할 수 없다. 이 책을 읽다보며 마치 유물론과 관념론의 집요한 대립과 싸움으로 읽힐때도 있다. 같은 분야의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끼리도 하나의 사건과 실험을 대하는 태도나 입장,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은 너무나 다양하다. 인간은 그만큼 복잡하고 불가해한 존재라는 반증일 것이다.

  엽기 살인과 침묵하는 38명의 방관자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인간은 대열을 무너뜨리느니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존재라는 것. 생존보다 사회적 예절을 더 중시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상반된다. 매너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정보다 강하고, 두려움보다 원초적이다. (본문 111페이지)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에서는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에 관여한 보상으로 사소한 것을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의 믿음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인간 기억의 허구성을 증명한 로프스터 교수의 말을 재인용하면,

  “하나는 이야기 진실, 또 하나는 실제 벌어진 진실이지요. 우리는 실제 벌어진 진실의 앙상한 뼈대 위에 살과 근육을 덧붙여 우리 자신이 만든 이야기의 관념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실제 진실이 사라지고 이야기 진실이 시작되는 곳에서 혼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본문 247페이지)

  “때때로 진실은 언어를 거부할 정도로 포착하기 힘듭니다. 평범하지만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는 상처를 제대로 표현해낼 단어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명백한 줄거리로 그것을 대신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믿어 의심치 않는 이야기를 날조합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희생자라는 정체성?주니까요.” (본문 248페이지)

  어쩌면 과학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만큼은 아직도 미지의 세계일 수 밖에 없다. 저자 로렌 슬레이터가 이 책을 쓴 이유도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하だ?노력일 뿐이다. 실험실에서 벌어진 때로는 끔찍하고 비윤리적인 실험들이나 실제로 벌어진 엽기적인 사건들을 분석하는 일들과 결과들에 대해 일반인들이 흥미로워 할 리가 없다. 저자는 심리 실험을 주도한 과학자들의 삶과 의식이 어떻게 실험에 반영되었는지 담아내려는 노력을 보인다. 일일이 그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가족들과 피실험자들까지 만나는 과정을 전해준다. 그래서 때때로 주관과 감정이 앞서고 이성과 감정은 위험한 줄타기를 한다. 저자 특유의 감상적 문체와 주관적 해석이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진지하고 깊이있게 생각하며 읽을 수 있는 문제와 사건 그리고 심리 실험들을 독자에게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찾고 싶었던 의미는 다음 말로 갈음할 수 있겠다.

  우리가 탈근대를 살고 있는지는 몰라도 탈인간이 될 수는 없다. 어떠한 과학 분야도 우리가 육체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빛은 꺼지고 우리는 암흑 속으로 다시 들어가리라. (본문 296페이지)



200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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