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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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문학에서 소설의 흐름을 짚어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적어도 한 세대가 흘러야 문학사가 정리되고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다는 고정 관점에서 벗어나 최근의 경향에 대해서도 비평가들은 그 흐름을 나름의 잣대로 평가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신인으로 분류되는 작가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일정 기간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혜성처럼 나타나는 스타는 어느 분야에나 있다. 박민규는 그런 소설가인지도 모른다. <지구 영웅 전설>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하고 뒤이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한 박민규는 2년만에 첫 단편집 <카스테라>를 선보였다. 전업 작가로서 왕성한 창작욕과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등단한 점등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주문한 책을 받아보니 열흘만에 2쇄를 찍은 책이 도착했다. 작가로서는 가장 행복한 형태의 진행형이다.

  이런 외적 현상과 흐름은 당연히 내용의 신선함과 뚜렷한 차별성 때문이다. 우리가 현대소설에서 믿어왔던 서사구조의 틀을 뒤흔들고 있지는 않지만 전통적인 소설의 문법에서는 한걸음 빗겨 서 있다. 후기구조주의가 국내에서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90년대 초반의 현상들과 유행들을 기억하는 독자들이라면 박민규의 소설 정도는 가볍게 소화할 수도 있겠다. 환상을 소설 속에서 처리하는 방식과 주제는 이미 독창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박민규는 그렇게 짧은 기간동안 자신의 영역을 확실하게 표시하고 있다. 신선함과 독특함만이 미덕일 수는 없으나 그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혹은 비평가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냉장고가 영국의 유벤투스를 응원하던 유벤투스의 훌리건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카스테라’를 비롯하여 ‘갑을고시원 체류기’까지 공통적인 흐름과 유사성을 읽어내는 것도 또하나의 재미이다. 우선 주인공이 모두 1인칭 남성으로 지칭되는 ‘나’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1인칭 주인공은 내밀한 자기 고백이며 인물의 심리 상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어렵지 않게 맡길 수 있다. 전통적인 소설의 사건 중심에서 벗어나 있으며 갈등 구조의 팽팽한 긴장감을 원하는 독자들은 그래서 이내 실망하고 만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환상을 선택한다. ‘아, 하세요 펠리컨’에서 오리배 세계 시민 연합의 출현과 ‘코리언 스텐더즈’에서 우주선의 출현등이 그것이다. 어차피 소설이 현실을 뛰어넘는 자리의 어디쯤 있다고 믿는 독자들이라면 차라리 마음 편하게 그의 소설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개연성을 미덕으로 소설을 평가하는 전통 문법에서 벗어나 있는 그의 독특한 미학 구조는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판단은 물론 독자들의 몫이다.

  일련의 소설들에서 그가 보여준 세상에 대한 태도는 사뭇 진지하거나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촌철살인의 극단을 보여주는 예가 없어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한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은 그의 문학세계와 앞으로의 행보를 짚어보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가벼움이라고 쉽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분명 무언가 결여된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그것이 우리가 접해왔던 소설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편이 지녀야할 미덕과 인간에 대한 정밀한 관심과 진지한 접근이 부족한 이유이다. 이제 시작과 다름없는 그에게 특별히 기대하는 것은 없다. 독자들은 익숙하지 않은 소설가에게 무엇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저 지켜본다. 다음은 무엇일까?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다음 작품들을 읽고 기다린다. 그 기다림을 갖게 하는 힘만으로도 박민규는 성공적이다. 나만 그런가?

  주목받는 만큼 행동이 부자유스러울 수 있겠지만 독자들의 반응에 값하는 소설들이 지속적으로 나와주길 빈다. 새로움과 낯설음을 문법으로 하는 독특한 박민규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라면 우리는 관심과 애정으로 그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일시적이거나 즉흥적인 발랄함과 참신함이라면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생각보다 독자들은 냉정하고 정확하다.

  1인칭 남성 화자가 보여주는 고백의 서사에서 벗어나 이제 멀리, 그리고 넓은 곳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길 바라며 재미있는 소설집 박민규의 <카스테라>의 책장을 덮는다. 곧이어 다름 장을 열 수 있기를 기대하며. ‘자아’에서 ‘타자’로의 관심을 기대하며.



200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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