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있다. 죽거나 혹은 다치거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순간 존재는 소멸한다고 믿는다. 관계와 접속을 통해서만 인간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김경욱의 소설은 인간의 그 ‘존재 형식’을 탐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집요하거나 진지하지 않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건조한 문체가 매력적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섬, 정현종)”는 짧은 시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자주 인용되는 이유는 관계에 대한 불가해함 때문이다. ‘타인의 취향’을 알 수 없거나 무관심하며, ‘장국영이 죽었다’는 소식에도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와 추억만으로 그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김경욱의 소설집 <장국영이 죽었다고?>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섬’의 존재 방식을 묻고 있다.

  동년배의 소설가가 쓴 책은 정서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으로 홍콩 느와르를 몰고 온 장국영과 주윤발 오천련과 장만옥, 장학우와 왕조현을 떠올려본다. 80년대와 지금 학생들이 달라진게 있다면 인터넷이다. 거미줄처럼 네트웍으로 연결되어 있어 이전보다 훨씬 더 친밀해보이지만 관계는 피상적이다. 표제작인 <장국영이 죽었다고?>는 이혼녀와의 채팅을 통해 같은 날 같은 극장에서 ‘아비정전’을 본 우연을 확인한다. 같은 날 결혼하고 제주도로 신혼 여행을 간 것도 일치한다. 독자들이 이혼한 주인공의 전처로 착각할만큼 우연은 일치한다. 하지만 가상 공간의 인연은 현실로 이어질 수 없으며 서로 다른 공간과 존재만을 확인한다. 장국영의 장례식에 검은 양복과 흰 마스크를 한 여러명의 사람들이 극장 앞에 모여 해프닝(?)을 벌이지만 그 행위 또한 철저하게 개인적이며 익명성을 담보로 한다. 그것이 접속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존재 방식이다.

  이 외에 여덟 편의 단편은 ‘당신의 수상한 근황, 피르난도 서커스단의 라라 양, 낭만적 서사와 그 적들, 나비를 위한 알리바이,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타인의 취향, 장미정원의 아름다운 원주민, 나가사키여 안녕’이다.

  ‘당신의 수상한 근황’에서 ‘삶이란 나약하고 낡아가는 일체의 것에 대해 잔혹하고 가차없는 그 무엇이라고 말한 사람은 독일사람 니체였다. 하지만 나약한 일체의 것에 잔혹하고 가차 없는 삶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다.’는 인용방식을 취하고 있다. 결국 인간에 대한 인간의 탐구가 모든 소설의 주제라는 측면에서 김경욱의 소설들은 그 문법을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으며 지나친 진지함과 무거움으로 독자들을 주눅들게 하지도 않는다. 그의 소설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영화와 TV, 인터넷은 시대를 반영하는 매체다. 인간의 관계망에 포착된 의미들을 해석하는 데 동원되는 요소들은 피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소통 방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낯설지 않으며 잔뜩 폼잡지 않고 있다.

  낭만적 서사와 그 적들에서 보여주는,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 이야기들, 일테면 “남자들은 섹스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려 하지만 여자들은 사랑을 느낄 때 비로소 섹스를 원한다. 남자들에게 섹스는 사랑의 본론이지만 여자들에게 섹스는 사랑의 부록이다.”는 대학 동아리 낙서장에서 봤음직한 표현들이 유치하지 않게 느껴진다. 낭만적 서사를 지배하는 표현들이 모두 공감대와 보편성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죄 없이 사랑할 수 없는가”라고 말하는 주인공이 몰라서 묻고 있겠는가? 아니면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에서 “마누라와 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로맨스와 진지한 대화.”라는 잠언같은 말들을 뱉어내는 상황들이 자조적이다. 경건함은 없지만 냉소도 없는 것이다.

  다만 아직은 깊이와 넓이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바닥에서 건져올린 가벼움이 아니라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지나간 이야기들에 대한 작가의 아쉬움과 곤혹스러움보다는 앞으로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또 다른 방식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세대를 규정하는 것이 언어와 문화적 환경일 수만은 없지만 젊은 작가의 참신함이라고만 명명할 수 없는 새로움을 기다리는 것도 독자들의 몫이다.


200508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