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강수돌 지음 / 그린비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1세기가 시작되었고, 새천년에 대한 기대와 흥분으로 사람들은 참 많은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 유일한 분야가 있다면 바로 교육 분야일 것이다. 지나치게 부정적 견해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혁명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가당찮은 기대는 아니더라도 선순환의 고리는 마련되어야 하지 않는가. 바야흐로 21세기에 접어들었는데 말이다. 갑자기 21세기 타령을 하는 이유는 교육 문제에 관한한 우리는 아직도 19세기 초 현대 교육이 시작된 시절보다 달라지지 않았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아직도, 19세기 교육환경에서 20세기 교사들이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이 유효한가?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를 교육의 3대 주체로 본다. 그들의 의식, 특히 기성세대인 학부모와 교사의 교육에 대한 입장과 틀이 다를 때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학생은 그 사이에서 훨씬 더 큰 혼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현실(?)을 고려하여 3자 합의(?)하에 ‘인류대 진학’이라는 지상 최대의 목표로 모두가 일로 매진한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선행학습이 시작되고 영어와 수학만이 살길이며 문학은 입시 주요 과목으로 떠오른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을까?

  어느 블로그였는지 미니 홈피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자녀를 둔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들이 자신이 졸업한 대학보다 당연히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했으면 소박한(?) 바램을 적었고 이웃들은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덕담을 댓글로 달아 놓은 걸 본 적이 있다. 그 후로 그곳에 발길을 끊었다. 하지만 그걸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아무도 교육문제로부터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입시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은 잔잔한 파문만을 일으킨다. 그것은 모두가 동참하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적으로 본다면 이제 서서히 그 파문이 물결이 되어 파도가 되고 해일이 되어 큰 물줄기를 바꿀 수 있기를 우리 모두는 바란다. 그러나 내가 먼저 실천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다. 정말 어려운 것은 실천의 문제다. 모두가 짐싸들고 시골로 산으로 들어가자는 주장이 아님을 안다.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일들부터 바꾸자는 이야기다. 사소한 일이다. ‘인류대 강박증’ 벗어나기, ‘옆집 아줌마’ 조심하기, 삶의 목표와 과정을 다시 생각하기.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바꾼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힘이 합해지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교육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단순하고 쉬우면서도 어려운 문제다.

  생태적인 삶을 살며 자연의 소중함을 깨우치기 보다는 노동 생산성의 관점에서 ‘인재’로 육성되는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넣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앞서고 좀더 비싼 집과 보다 높은 지위에 올라 인생의 성공이라는 달콤함을 맛보게 해주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바램일까?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하며 어떻게 가르쳐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라는가. 어디에도 답이 없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부제처럼 ‘엄마 아빠가 달라져야 교육이 살아요!!’는 처절한 절규처럼 들린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교육문제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삶의 가치관과 태도 지향점이 달라져야 하며, 노동과 환경 문제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가장 뜨거운 감자다. 내 아이의 문제가 되면 태도가 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반영한다.

  “나는 개인의 자유나 개성이 억압되는 국가 발전이나 민족중흥은 기득권층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 본다.”는 강교수의 선언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발전이 사회와 국가의 발전이라는 평범한 진리는 노동과 생산수단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발전이라는 것이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억압되지 않으면서 사회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방법이 쉽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개인은 공동체 발전의 전제가 되고 공동체는 개인 발전의 전제가 되는 사회, 이것이 바람직한 미래 사회일 것이다.”라는 말이 꼭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아닐까 싶다. 그런 교육을 위해 나는, 우리는 노력하고 있는가? 우리의 아이들을 그렇게 키울 수 있는가?

  “당신이 만약 ‘당신은 인재’라는 말을 들으면 모욕인 말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는 부모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게 이 책은, 교육문제에 관한 그 많은 선언들과 각론들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과 과격한 접근 방법을 선택했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게 했던 책이다. 질 높은 노동 생산수단의 관점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살아가는 과정의 행복과 삶의 질적인 측면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치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왜 현실(?)을 핑계로 그렇게 키우지 못하는가? 나로부터의 혁명과 작은 것들로부터의 변화가 이렇게 어려운가? 내가 변하고 사회가 달라지면 교육도 아이들의 미래도 달라진다. 지금 우리가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인가?


200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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