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과 결혼에 대한 많은 선언과 이야기들은 이제 우리를 피곤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원히 그 주제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다만 작가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형태의 사랑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것이라고 믿었던 고정관념들을 흔들어대기도 한다. 타성에 젖어버린 사랑에 대한 점검이고 삶의 방식에 대한 경고로 들리기도 하지만 작가는 말로 전할 수 없는 무엇을 전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독자의 몫이다. 코엘료의 문장이 지닌 매력은 여기에 있다.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 그것도 떠나버린 아내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괴로하는 과정을 통해 참 사랑을 확인하고 자신을 돌아본다는 3류 드라마같은 소설의 기본 골격은 한심스럽다. 물론 그것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한 번 만지거나 보고 나면 결코 잊을 수 없고, 우리의 머릿속을 완전히 장악해 광기로 몰아가는 무엇, 자히르.(78페이지)”를 통해 독자에게 던져지는 메시지는 신기루처럼 명확하지 않다. 자히르의 존재를 아내 에스테르에게서 발견하게 된 주인공은 자신의 삶 전체를 뒤돌아보고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사랑의 전도사 미하일을 매개로 아내의 위치와 아내의 자히르를 발견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는 수많은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유는 책임의 부재가 아니라, 나에게 최선인 것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능력이기 때문이다.(35페이지)”라고 말하는 작가는 독자에게 선명한 주제도 끓어넘치는 감동도 선사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어하는 대로 믿는 존재니까.(73페이지)” 나머지는 독자에게 찾으라는 말인가?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재미와 감동이라는 고전적 명제를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게 <오 자히르>는 후자쪽에서 경미한 진동만 남긴채 책장을 덮게했다. 이를 테면,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는 힘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통제하려 할 때, 그것은 우리를 파괴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가두려 할 때,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가 사랑을 이해하려 할 때, 사랑은 우리를 방황과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129페이지)

선로는 마치 내 결혼에 대해, 그리고 모든 결혼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했다.(169페이지)

가난뱅이는 댁이오! 당신은 자신의 시간을 마음대로 쓰지도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도 없고, 자신이 만들지도 않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규칙들을 따라야만 하잖아.(284페이지)

아코모다도르. ‘살다보면 어느 순간인가 한계에 도달하기 마련이다’(317페이지)

그리하여 지혜로운 페르시아 현자의 말대로, 사랑은 아무도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 질병이다. 그 병에 걸린 사람은 나으려고 애쓰지 않으며, 사랑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치유되기를 바라지 않는다.(439페이지)

  이런 잠언류의 구절들은 평범에 바쳐지고 있다. 구체적 형상화와 주관적 변용은 케케묵은 문학의 이론이 아니라 소설가가 금과옥조로 지녀야할 기본적 소양이다. 그것이 의도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단순한 사건과 과정의 지루함으로 무려 45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소화할 수는 없다고 본다.

  사랑에 대한 정의와 방황을 보여주는 방식은 단속적이며 결혼과 아내의 사랑에 대해 보여주는 방식은 지루하다. 소설에서 감동은 무엇인가? 그것은 삶의 진정성으로부터 온다고 믿는다. 문화적 상대주의를 말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결혼과 상대방에 대한 소홀함,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관계 - 이런 가장 보편적인 주제를 담아내는 데 코엘료는 일단 성공한듯 보인다. 그것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상황과 모순에서 비롯된 개인적 ‘사건’이 아니라 보편적 인류애인 ‘사랑’에 근거하고 있어 더욱 애매하다. 전쟁을 이야기하고 사람들 사이의 가식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가장 친밀해야할 부부관계에서조차 ‘자히르’가 사라지는 상황.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 부분에 대해 작가는 진지한 고민과 궁극적인 고통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그저 그런 통속 소설일 뿐이다.

  고전이 될만큼 좋은 책들만 골라 읽는 것이 반드시 좋은 독서법이라고 할 순 없지만 개인적 취향과 관심 분야까지 고려해서 선택의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법은 없을까?


200507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