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 1957-2005 - Kim Young Gap, Photography, and Jejudo
김영갑 사진.글 / 다빈치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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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하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했던 1996년 가을의 제주도가 내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지만 기대와 열정보다는 니힐리즘과 시니컬한 태도로 팔짱을 낀 채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희망도 기대도 인생에 대한 어떤 꿈도 꾸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인가?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참 어처구니없는 20대를 보내고 있었다. 현실은 뿌연 안개 속에서 좀체 그 흉측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길고도 험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나 비슷하게 시작하는 직장생활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생의 의미를 알 수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모호한 상태였다. 차츰 적응하기 시작했지만 투명한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깊은 바다로 침잠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살아지는 건가. 삶이란 이런 것인가. 청년 실업이 극에 달한 지금의 20대라면 배부른 돼지의 푸념으로 들리겠지만 그 당시 내겐 실존의 문제였다.

  그 해 가을 제주에 갔다. 김포공항에서 날아올라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거짓말처럼 금세. 예약해둔 차량에 올라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산포에 도착했다.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꺼냈다. 해삼 한 토막을 안주 삼아 ‘눈물처럼 맑은 소주’를 마셨다. 밤바람은 차가웠고 어둠은 습관처럼 찾아왔다. 멀리 성산포를 바라보며 제주도의 껍데기만 사랑했다. 제주도의 이미지만 가슴에 담아두었다. 다음날 아침 성산포에 올라 눈이 베일 것 같이 짙푸른 바다와 수평선 너머의 그리움만 확인하고 내려왔다. 2박 3일 동안 해안 도로를 달리며 파도와 바람 갈대만 바라보았다. 철저한 고립감 속에서 내가 만난 것은 어쩌면 제주도가 아니라 나의 고독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이십대는 아직도 규정되지 않고 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은 진실일까? 그 모든 기억들은 왜곡된 것일까? <김영갑 1957~2005>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벤야민의 말대로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의 예술에 바치는 경외와 감동은 복제된 것일지도 모른다. 집집마다 들어앉아 책을 들고 김영갑의 사진에서 느끼는 감회와 정서는 제각각일 수 있겠다. 제주도에 대한 기억과 아스라한 추억들, 혹은 제주의 역사와 삶을 뼈저리게 실감한 사람들의 회한과 눈물들 그 모든 것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사진일 수 있을까? 사진이란 무엇인가? 쓰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사람처럼 찍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을 나는 느끼고 있는 것일까?

  제한된 시야와 고정된 프레임 속에 담아내고 싶었던 ‘김영갑의 제주’는 무엇일까? 이 책은 그것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사진집을 넘기다가 목울대가 울컥울컥했다. 형언하기 힘든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을 나는 보통 ‘울림’이라고 부른다. 머리가 혼란스럽거나 어지러운 상태, 이명이 들리거나 눈이 뿌옇게 보이고 아득해지는 느낌, 혹은 가슴이 따끔거리거나 뭉클거리던 덩어리가 빠져 나가는 느낌. 그것이 무엇이든 한 장 한 장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혹은 그의 글을 읽다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세밑에 사진으로 보는 제주는 10여 년 전 제주 공항을 출발하며 이제 영원히 가슴 속에만 묻어 두고 싶었던 환상의 섬을 다시 찾고 싶다는 욕심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이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강렬한 그 순간을 위해 같은 장소를 헤아릴 수 없이 찾아가고 또 기다렸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 아니라 대자연이 조화를 부려 내 눈앞에 삽시간에 펼쳐지는 풍경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 한 순간을 위해 보고 느끼고, 찾고 깨닫고, 기다리기를 헤아릴 수 없이 되풀이했다.
- ‘원시 오름에서 부르는 삶의 찬가’중에서

  루게릭 병으로 생을 마감하면서도 제주에 ‘두모악 갤러리’를 완성한 사진가. 그는 제주의 영혼을 들여다 본, 그것을 사진으로 남긴 최초의 예술가가 아닐까 싶다. 사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다소 역설적인 이유 때문에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영갑은 제주의 들판과 바람과 구름과 비와 안개를 보여준다. 한 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은 그 순간에 집착한 것은 아니었을까? 찰나에 집착하는 것도 덧없고 허무하겠지만 한 장의 순간 속에 그것을 담아내려는 노력과 처절한 몸부림은 그의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진이 무엇을 보여 줄 수 있는지 묻기 전에 사진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결코 보여줄 수 없는 수많은 주체와 객체 그리고 그것들의 관계를 묻는 사진은 어쩌면 불가능에 도전하는 어릿광대의 몸짓일지도 모른다. 보여줄 없는 것들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또 한 해를 맞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듯이 순간을 사진 속에 담아 둔다고 해서 사라진 시간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지나온 시간과 쌓인 세월들이 지금의 나이고 너이고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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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발터 벤야민 선집 2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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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기다리면 보고 싶은 책이 나온다. 신기하게도 발테 벤야민의 책들을 체계적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미 출판된 책들을 뒤적거리다 그만 둔 적이 몇 년 전부터 몇 번인가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도서출판 <길>에서 선집 10권이 출판되었다. 선집도 다 읽을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인용되는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2판과 3판을 나란히 번역해 놓은 책이 나왔다. <사진의 작은 역사>와 함께 매체미학에 대한 대표적인 그의 논문을 보며 20세기 초에 촉발되었을 논쟁들과 예술에 대한 혼란스런 개념들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확인하게 된다.

  1935년에 초판을 썼고, 1936년에 수정 보완된 제 2 판을 출판하려 했다. 그래서 제 2 판을 원판(Urtext)이라고 불렀다. 이후 독일어로 출간할 의도를 갖고 제 3 판을 쓰게되었다. 3판은 1963년이 되어서야 처음 출판된다. 현대 예술에 대한 미학적 접근의 출발을 의미하는 이 논문은 발터 벤야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하나의 세계관이 깨지고 새로운 시대의 예술이 시작된 것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단순한 변혁과 커다란 흐름의 변화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출발이다. 기존 예술의 전면적인 폐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혀 새로운 장르의 탄생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한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었을 것이다.

  이 논문에서 중요한 개념인 아우라(Aura)는 신비적이고 비의적 요소로 유물론적 관점에서 브레히트나 하버마스의 비판을 판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 작품의 아우라이다.(P. 47)”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우라 자체에 대한 개념의 모호성 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기술적으로 예술작품을 복제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다는 자각일 것이다. 예술작품이 이제 더 이상 예술로서 의미와 위상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는 아니었을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사진’과 ‘영화’의 탄생은 기존 예술에 대한 평가와 개념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의식에 근거를 둔 예술작품의 가치가 이제는 ‘정치’와 결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게 된 ‘영화’의 탄생이 이 논문의 기저를 이루는 정신은 아니었을까 싶다. 이 논문은 번역자의 평가대로 영화에 대한 이론이며 현대 예술론이고 현대인들이 인식하는 지각과 경험에 대한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탁월한 한 편의 논문으로 사람들의 의식이나 관점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과 개방적인 태도로 기존의 틀과 개념들을 반성적으로 돌아보았다는 데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이 논문에서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해 우려하면서 아우라를 이렇게 짧게 정의한다.

아우라란 무엇인가? 그것은 공간과 시간으로 짜인 특이한 직물로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인 현상이다. - P. 50

  이제는 가정이나 직장 학교나 공공장소 등 어디에나 복제 미술품 액자를 걸어 놓고 있다. 원본 그림이 전시되고 기획적인 열리지만 사람들은 진품의 확인이나 진품 자체만이 가지는 고유한 아우라를 즐기러 가는 것 같지는 않다. 수많은 복제품을 통해 그 그림이 주는 이미지와 감상을 원본과 비교해 보거나 심지어 크기와 색감 실제 존재 여부의 확인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시뮬라시옹의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원본 없는 복제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LG 전자의 CF난 신문 광고가 보여주는 예술작품에 대한 모욕 혹은 장난은 자본주의와 상업예술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듯하다. 재밌고 즐거움이 미덕이 되는 시대에 예술작품은 원본과 복제품의 아우라가 아니라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데 더 골몰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인 예술과 그것을 무한 복제 가능한 시대에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발터 벤야민에 의해 오랜 전부터 시작되었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는 복제가 가능한 예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고민의 시작을 알린다. 이 논문과 관련되 저자의 노트의 메모가 이러한 생각의 단초를 제공한다.

새로운 것이 승리하는 것을 도와주는 가장 확실한 중개자는 옛것에 대한 지루함이다. - P. 219

  옛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지루함을 이겨내야 한다. 그것이 예술이든 그것의 복제품이든 말이다.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지라고 외치는 시인의 말처럼 이제는 새로움과 낯설음이 미덕이 되어 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예술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새삼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는 책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사진’과 ‘영화’는 이제 예술이냐 아니냐의 논란을 넘어 우리의 일상을 가장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07122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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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발터 벤야민 선집 2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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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 논문은 복제기술과 영화에 대한 이론이면서 현대예술론이고, 나아가 매체미학적 성찰이며, 이것은 다시 현대의 지각과 경험에 관한 이론과 접맥된다. - P. 11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 작품의 아우라이다. - P. 47

아우라란 무엇인가? 그것은 공간과 시간으로 짜인 특이한 직물로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인 현상이다. - P. 50

“진정한”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는 의식에 근거를 둔다. - P. 51

사진에서는 전시가치가 제의가치를 전면적으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 P. 58

어떤 사물의 진품성이란, 그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과 함께 그 사물의 역사적인 증언 가치까지 포함하여 그 사물에서 원천으로부터 전승될 수 있는 모든 것의 총괄 개념이다. - P. 105

자연적 대상의 아우라를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인 현상이라고 정의 내릴 수가 있다. - P. 109

다다이즘은 오늘날 대중들이 영화에서 찾고 있는 효과를 회화나 문학의 수단을 통하여 만들어내려고 했다. - P. 140

카메라에 비치는 자연은 눈에 비치는 자연과 다른 법이다.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 인간이 의식을 갖고 엮은 공간의 자리에 무의식적으로 엮인 공간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 P. 168

새로운 것이 승리하는 것을 도와주는 가장 확실한 중개자는 옛것에 대한 지루함이다. - P. 219

헉슬리는 “아무리 아름다운 대상도 수백만 개로 복제되면 흉측해진다”고 말했다. - P.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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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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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청준이라는 소설가의 이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잠시 아득해진다. 20년 쯤 기억과 감정의 퇴행을 잠시 경험한다. 내게 문학적 감수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처음 건드려 진 적이 있다면 이청준과 정호승에 의해서였다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헤르만 헤세나 전혜린처럼 그들에게 다가간 것은 나였지만 마음의 문을 열어준 것은 그들의 글이었다. <새벽편지>와 <서울의 예수>의 빛바랜 표지처럼 <매잡이>, <당신들의 천국>, <퇴원>, <병신과 머저리>, <잔인한 도시> 등 헤아릴 수 없는 장단편을 통해 내게 문장의 힘을 보여 주었던 작가가 바로 이청준이었다.

  <서편제>, <신화를 삼킨 섬> 등 수많은 작품을 읽어오면서 백발이 되어가는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나도 나이를 먹어간다. 동시대의 작가와 교감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독자에게는 큰 행복이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의미있는 작가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곳을 다시 잊어야했다>는 그의 문학 인생 40여년을 정리하는 듯하다. 70이 다 된 노년에 이르면 모든 책이 마지막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더 애틋하게 읽혔다. 순전히 개인적인 감회에 불과하겠지만, 그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말이다.

  일곱 편의 단편과 네 편의 에세이 소설을 묶어 놓은 이 책은 김윤식의 ‘아, 이청준’이라는 글로 시작해서 ‘소설이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라는 이윤옥의 글로 마감된다. 독특한 형식만큼 새롭고 충격적이거나 특별함은 없다. 이청준다운 글과 소회들이 밝혀져 있고 그가 생각하는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밝혀주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혹은 그간 그의 소설들을 꾸준히 읽어오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느낌과 감동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청준에 따르면 “예술창작 작업은 사물의 현상과 본질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통해 삶과 세계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노릇”이다. 존재론의 핵심인 우리 삶의 비극적 실존의 문제를 평생의 화두로 삼아온 작가의 뒷모습은 견고한 바위처럼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다.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부조리와 비극적 진실들을 드러내는 작업이 어디 쉬울 수 있겠는가. 자칫 우울한 감상의 토로이거나 어설프고 작위적인 말장난에 그칠 수 있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이청준이 하고 싶었던, 드러내고 싶었던 삶의 진실들은 ‘삶과 세계의 진정성’으로 요약할 수 있을까?

  단편 ‘천년의 돛배’나 ‘그곳을 다시 잊어야했다’, ‘지하실’은 죽음과 상실의 관점에서 우리가 걸어온 역사와 삶의 비극성을 조망하고 있다. 바다위의 떠 있는 섬은 떠날 수 없고 가라앉을 수도 없다. 치열한 생존의 조건에서 밀려나 망각과 실존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곳을 다시 잊어야했다’와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는 경험적 서사를 통해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듯하다.

  ‘이상한 선물’이나 ‘부처님은 어찌하시렵니까?’, ‘조물주의 그림’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관계 맺고 있는 주변 인물들이나 공동체의 신화를 그려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에 기대고 확실한 증거들에 의해 규정된다면 유리구슬처럼 투명해 질 것이다. 우리들의 삶은. 허나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들과 그것이 진실인 줄도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은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어 우리들의 가슴속에 웅숭깊게 자리를 잡는다. 결코 어려운 말과 난해한 문장으로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이청준의 문장들은 머리보다 가슴에 와 부딪히고 먼 바다에 떠 있는 하나의 섬처럼 외롭고 쓸쓸하다. 그것이 ‘조물주의 그림’이다.

밤바다 가운데로 나가 있으면
섬들이 사방에서 나를 에워싸고 다가든다.
섬들이 어찌 나를 에워싸랴.
섬들은 저희끼리 밤 이야기 위해 서로 둥글게 다가앉는 것 뿐이다.
섬들 가운데에 나는 없다.
- ‘조물주의 그림’중에서(본문 261페이지)


  가슴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인물들의 ‘종주먹질’이 없다면 이청준은 소설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보다 넓고 깊게 혹은 다양하고 새로운 소설을 나는 기대하지 않는다. 이청준에게. 남겨진 시간동안 그가 살아온 깊이만큼 보아온 세계만큼 삶과 세계의 진정성에 대해 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길 바란다.

  그저 오래 소설을 써 왔기 때문에 주어지는 상찬과는 거리가 먼 이청준의 소설은 그대로 우리들 삶의 역사이고 오래된 미래이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 읽는 소설로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간 이청준의 소설을 읽어 온 독자라면, 혹은 이청준을 읽기 시작한 독자라면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좋은 책에서는 항상 향기가 난다.


071226-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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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라 팜 파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0
김이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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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렌의 노래

더 추워지기 전에 바다로 나와
내 날개 아래 출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낡은 배로 가자
갑판 가득 매달려 시시덕거리던 연인들
물속으로 퐁당
물고기들은 몰려들지, 조금만 먹어볼래?
들리지? 내 목소리, 이리 따라와 넘어와 봐
너와 나 오래 입 맞추게

  별다방이라고 부르는 스타벅스의 심볼이 되어 버린 신화 속의 주인공 세이렌. 우리는 그녀를 이제 도심 한복판 커피 전문점에서 만난다. 여성성의 상징과 원형 그 유혹과 죽음의 그림자를 ‘세이렌’에게서 빌려 온 시인의 상상력은 명랑하다. 김이듬의 시집 <명랑하라 팜 파탈>은 불안한 영혼과 자의식의 충돌들이 넘친다.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시들로 가득하다. 그 불편의 이유가 다양하지만 감성과 이성 어느 부분에서도 공감하거나 쉽게 해석되거나 접근하기 어렵다.

  시는 항상 먼 곳에 위치해 있었다. 시의 시대라고 명명되던 80년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물론 그 시대에도 서정윤의 ‘홀로서기’가 촉발한 대중적 감수성과 호기심을 넘어서지 못한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어찌됐든 밤하늘에 별처럼 밝게 빛나거나 오롯이 외로움을 간직한 채 빛나야 할 명징한 언어들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는 시인의 몫이다. 하지만 어느 한 구석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시가 있다. 독자 개인의 평가이겠지만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기만 하는 노래 소리처럼 뱃사람을 유혹했던 세이렌의 노래 소리만큼 김이듬의 시가 독자들이 마음을 훔치지는 못하는 듯하다. 시가 전해주는 울림은 대개 세 가지 정도가 아닐까 싶다. 먼저, 언어 자체가 주는 울림들과 언어의 직조 과정에서 빚어지는 관계들 사이의 아름다움이 주는 참신함이다. 내가 오규원을 좋아한 이유가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는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에서 제기된 ‘낯설게하기’는 대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하나로는 꽃이 되지 않는 꽃’이 안개꽃에 대한 이수익의 관찰의 결과라면 전혀 낯설지 않은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움이다. 셋째는 서사성이다. 시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산문적 요소이다. 역설적이지만 산문을 압축하고 운율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 시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백석과 이용악은 물론 시의 내용이 주는 감동은 형식적인 측면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요소이다.

  어떤 요소로도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시는 시가 아니다. 다만 어떤 측면에서든 기대 이하일 때 독자들은 본전 생각을 한다. 내게 김이듬의 시는 그렇게 읽혔다.

  이제 불이 필요하지 않은 시각

나는 겨울 저수지 냉정하고
신중한 빙판 검게 얼어붙은 심연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로 나를 지쳐줘
한복판으로 달려와 꽝꽝 두드리다가
끌로 송곳으로 큰 구멍을 뚫어봐
생각보다 수심이 깊지 않을 거야
미끼도 없는 낚시대를 덥석 물고
퍼드덕거리며 솟아오르는 저 물고기 좀 봐
결빙을 풀고 나 너를 안을게


  이렇게 행간을 건너뛰는 의미망에 갇혀 파닥거리는 물고기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감동과 울림이 전해지지 않는다. 나를 위해 시를 써 줄 시인은 없겠지만 공감의 진폭과 울림이 큰 시들을 여전히 기다린다. 작가의 독자의 팽팽한 긴장의 끈은 항상 적당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비록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 시대가 오더라도 말이다.


07122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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