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 -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그 공존의 역사를 다시 쓴다, 비움과 나눔의 철학 3
이명권 지음 / 코나투스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서쪽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는 저녁놀이 아름답다. 자연이 빚어내는 환상은 우리가 벗어나기 힘든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게 한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그에게 감사하겠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근원적인 문제들과 본질적인 의문들의 열쇠를 단 하나의 존재에게 의탁하는 일은 나약한 이기심의 발로이다. 신의 존재를 설정하고 나면 참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부조리한 세상과 불공평한 인생도 달리 보이고 현실의 고통까지도 참을 수 있다. 내세와 천국이 우리를 인도하여 영생의 길로 이끌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하게도 나는 <왜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와 같은 책을 읽으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종교가 없는 유물론자가 신의 존재 여부를 논쟁하거나 증명하는 책에 관심을 가질 리 없다. 다만 신이 갖는 의미와 역할은 다른 문제이다. 엄연히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담임 목사 1인 체제로 공룡처럼 덩치만 키우는 대형 교회나 좋은 돈벌이 수단으로 절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과연 종교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어디에나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종교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종교인의 역할과 신도들은 석가나 예수, 무함마드의 말씀과 신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반문해본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신의 존재 유무는 차치하고서라도 신의 종류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인간 종족이다. 전 인류의 20% 이상이 믿는 종교인 이슬람은 소수 종교가 아니다.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에 비해 역사와 전통, 신도 수에서 결코 2등 종교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슬람교에 대한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테러리스트를 먼저 떠올리고 호전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의 아랍인을 연상한다. 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갖지 않고 있다면 이슬람과 그리스도교를 비교하고 무함마드와 예수를 견주어 보는 노력과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명권의 <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은 이러한 의문들에 답하는 좋은 안내서이다. 특정 종교에 대한 비교 우위를 논하는 책도 아니고 복음을 전파하거나 선교를 위한 책은 더더욱 아니다.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가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는, 혹은 잘 알지 못하는 무함마드의 존재와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한 해설서이다. 무함마드와 예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는 것은 두 종교를 이해하는 초석이 된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무함마드와 예수를 비교하고 이것을 토대로 2부에서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특정 종교의 입장에서 치우친 견해를 밝히거나 오호의 감정이 개입되었다면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비교적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일반적으로 모르고 있는 내용에 대한 안내와 잘 알려진 예수를 비교함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있는 책이다.

문제는 구원의 주체가 누구이며, 구원의 중개자가 누구인가 하는 소위 메시아에 대한 개념에서 이들의 신앙은 달라지고 만다. 무함마드는 어디까지나 알라-하나님의 사도로서의 역할만 할 뿐이지만, 신약성서와 그리스도교에서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육신한 세상의 메시아이자 삼위일체의 존재로 평가된다. 이른바 예수는 하나님과 같은 위치를 지닌 구세주로서의 신앙의 대상이 된다. - P. 155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에서 믿는 신은 모두 하나님GOD이다. 십자군 전쟁을 위시해서 종교 전쟁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의 가르침과는 모순된 논리지만 인류는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믿는 것은 하나인데 그들끼리는 싸운다. 초등학생에게 물어 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상식에 위배된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교리상의 차이와 신의 말씀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벌어지고 갈등과 반목이 생겨났다고 해도 종교의 근본 원리나 목적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무함마드를 사도(예언자)로 규정하여 일위일체만을 인정하는 이슬람교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규정하여 삼위일체론을 펼치는 그리스도교는 출발부터 다를 양상을 보인다. 무함마드와 예수의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바로 두 종교를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의 틀을 달리한다. 핵심적인 차이점이 드러냄으로써 유사성은 묻혀버리고 만다. ‘라 일라하 일랄라La ilaha illa Allah’ 즉,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꾸란>의 가르침은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각종 <복음서>들이 전하는 말씀과 무함마드의 <하디스>는 두 종교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쉽게 말해서 무함마드는 인간이고 예수는 신이다. 이슬람의 입장에서 예수는 인간이고 사도(예언자)일 뿐 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신앙고백, 공식예배, 자선, 단신, 순례’의 다섯가지 기둥이 이슬람교를 버텨내고 있다. 이슬람의 역사와 경전인 <꾸란>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차이점으로 받아들인 점은 ‘자선’이다. 예수는 마음을 중시했고 의도를 중시했지만 이슬람에서 ‘자선’은 의무사항이다. 명목상 십일조를 통해 가난하고 고통 받는 자를 돕고 있지만 강제 사항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반면에 이슬람교는 ‘자선’이 거역할 수 없는 의무사항에 해당된다. 최근 사찰이나 교회, 목사 등 납세 문제가 언론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눔의 역할과 순수한 종교의 목적에 충실한가를 따져보는 일이다. 대다수의 종교인들이 이러한 가르침에 충실하며 사회의 어둠과 그늘진 곳을 보살피고 있겠지만 과연 ‘대다수’라고 말할 수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이영희 선생은 한국 교회는 ‘모이자! 돈내라! 집짓자!’는 세 마디로 실날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특정 종교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회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서방 언론에 의한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갖추어졌다면 이 책은 우리에게 읽을 만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무함마드와 예수가 누구인지 보다,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어떤 종교인지 보다 여전히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이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과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08020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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