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나딘 고디머 엮음, 이소영.정혜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문화와 역사를 달리하는 소설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인류 보편적 가치나 공통 관심사를 찾아내는 일은 어려우면서 쉬운 일이다. 문학이 인간의 정서와 삶의 모습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소설가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생활인이라는 전제가 가능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글로 써야하는 것이 소설가의 의무이자 한계이다.

  남아공 출신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나딘 고디머는 AIDS라는 질병을 매개로 전세계 소설가들의 단편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AIDS 질병 퇴치를 위한 기금 마련이다. 소설책의 판매 수익금은 전액 AIDS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쓰인다. 다섯 명의 노벨 문학상을 포함해서 스물 한 명의 소설가는 이에 동참했고 자신의 작품 중 책의 제목처럼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아서 밀러, 가브리엘 마르케스, 살만 루슈디, 주제 사라마구, 귄터 그라스, 존 업다이크, 미셀 투르니에, 수전 손택, 오에 겐자부로 등 살아있는 세계 문학의 거장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기획물의 경우 잡탕찌개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시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를 모아 책을 낸다. 그런 책은 나도 몇 권 쯤 낼 수 있지만 시를 고르는 안목과 개인적인 감상과 해설이 기존 작가의 권위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크게 의미가 없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은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다만 책이 가지는 선한 의도와 모여 있는 소설가들이 주는 무게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었다. 하나 하나의 단편들은 잘 차려진 뷔페처럼 특별한 맛을 보여준다. 너무 짧아 맛을 보기도 전에 다른 요리로 넘어가는 아쉬움이 있지만 각각의 단품들이 품어내는 향기와 빛깔은 먹을만 하다. 그러고 나면 전체적인 조화의 문제가 남는다. 제목처럼 어떤 특별한 이야기나 한 생을 통틀어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이야기들로만 여겨질 수 없는 이야기도 많다. 제각각 독특한 소재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들이 쉽게 하나의 주제나 특징으로 묶여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 같다.

  4천만 명에 이르는 AIDS 환자 중 3분의 2 가량이 아프리카에 몰려있다. 생활환경과 문화 수준의 발달 정도는 자본과 직결된다. 이제 자본은 건강이며 지식이고 희망이며 꿈이 되어 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책 한 권을 사서 몇 푼의 돈이 그들의 치료 비용으로 사용되는지 보다 항상 그들을 생각하고 배려하며 작은 실천에 옮기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스물 한 명의 작가들도 모두 한 마음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자식 같은 단편 하나씩을 내놓은 마음들이 소중해 보인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납의 시대’, 귄터 그라스의 ‘증인들’, 치누아 아체베의 ‘설탕쟁이’, 나딘 고디머의 ‘최고의 사파리’는 사회성 짙은 작품들로 시대의 아픔이나 역사적 체험들을 통해 지나간 시간들 혹은 현재의 고통들을 진지하게, 때로는 유머스럽게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어떤 시대, 어떤 환경이든 작가는 늘 문제적 상황들에 대한 고민과 동시대인들의 아픔에 대해 관찰하고 그것을 잘 표현해 낼 줄 아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평범한 생각을 해 본다.

  이에 반해 아서 밀러의 ‘블도그’, 하니프 쿠레이시의 ‘마침내 만나다’는 현대인들의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문제들을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무겁고 진지한 주제에 반해 재밌고 흥미있는 소재로 이 책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다른 작가의 작품들도 신선하고 독특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기억나는 몇 편의 작품들이다. 개인적인 취향이기 때문에 사회문화적 환경이 다른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을 하나씩 음미하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소설은 현실의 고발이거나 생활 속에 숨겨진 삶의 은유이거나 역사적 반성이거나 미래에 대한 희망일 수 있다. 소설의 기능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울고 웃고 눈물을 흘리거나 꿈을 꾼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잡다한 단편들의 묶음이 아니라 여러 나라의 작가들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며 읽어 볼 일이다. 오에 겐자부로를 제외하고는 동남아시아와 아랍권의 작가들이 빠져 있어 아쉽기는 하지만 지역적 균형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다함께 꿈꾸고 힘을 모으려는 의도와 나딘 고디머의 수고와 여러 작가들의 단편이 빛을 발하기만 한다면 문학 외적 요소나 의미를 차지하고서라도 우리는 재미있는 단편집과 만날 수 있게 된다.


080208-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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