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 직업에 관한 고찰 1
탁석산 지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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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꿈이 뭐니?”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구체적인 직업을 말한다. 꿈은 인생의 목표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통해 실현하고 싶은 삶의 목적이자 과정을 말한다. 어떤 인생을 꿈꾼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토대를 둔 희망이다. 추상적이지만 단순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정도의 생각이 아니라 보람있고 즐거운 이유를 말하는 것이며 그것을 실현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자신의 꿈과 직업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잘 산다는 것은 물질적인 만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신적인 풍요로움과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직업을 통해 생계가 해결되고 많은 돈을 벌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고 부유하지는 않아도 보람있고 즐거운 인생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꿈과 직업은 일치할 수도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직업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밑바탕이 된다. 자기가 하는 일이 즐겁고 신나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아이들은 현실적으로 구체적인 직업만을 생각한다. 그 직업을 선택할 때도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보다는 돈이나 사회적인 시선을 먼저 생각한다. 직업에 대한 고민은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고민하고 나의 성격과 적성 그리고 능력과 체력 등을 고려해서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의 직업과 꿈을 실현해 나가고 그 속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껴야 한다.

  예전에는 성적이 좋은 학생은 법대와 의대를 선택했다. 학교를 먼저 선택하고 전공을 고르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다양화되었지만 부모나 교사의 권유와 진로지도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렸을 때 다양했던 꿈들은 입시를 앞두고 혹은 수능 점수에 따라 몇 가지로 수렴된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다양한 직업에 대한 고민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진로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교에서나 개인적으로 적성 검사를 통해 고등학교 1학년 때 문과와 이과를 선택하고 대학에 진학할 때 전공을 선택하고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진로 탐색이 이루어지는지 의심스럽다. 일단 높은 점수를 받게 되면 선택의 폭이 다양한 입시 제도는 문제가 있다. 어떤 사회든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예체능 계열 학생들 조차도 성적에 따라 대학과 전공이 결정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적성과 취미, 능력과 소질에 따라 최선을 다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경쟁사회에서 당연한 논리인 듯 싶지만 국, 영, 수 성적이 인생을 좌우하는 단일한 결정방법은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고 소질을 계발해 주는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탁석산의 직업에 관한 고찰 <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와 <준비가 알차면 직업이 즐겁다>는 청소년들에게 직업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을 요구하는 책이다. 세칭 일류대학 자연계열에 입학했지만 중퇴하고 영어를 전공한 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은 우리나라 진로지도의 모순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체계적이고 다양한 진로지도가 이루어졌다면 저자는 아마 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 직업을 가질 것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저자의 말은 도대체 어떤 직업을 갖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 땅의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1권 <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는 직업 선택의 어려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한다. 아이들의 가장 큰 고민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황당하지만 자주 듣는 이야기다. 꿈꾸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탓할 수가 없다. 진짜 원하는 일을 일찍부터 꿈꾸는 것도 큰 복이다. 고민의 출발이 놀고 먹고 싶다는 데 있다는 것은 당황스럽지만 매우 현실적이다. 적성을 파악하기 어렵고 다양한 경험이 없으니 무슨 일이 나에게 맞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망, 적성, 실현 사이의 거리를 통해 원하는 것과 적성에 맞는 것, 실제로 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설명한다. 앞서 말한대로 경험의 기회가 적고 직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정보가 왜곡되거나 미래 예측이 어렵다는 것도 직업 선택이 어려운 이유다. 또한 수명이 길어지면서 살아가는 동안 몇 차례 직업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은 세태를 반영한다.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직업에 대한 고민은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의 중요성과 인생의 보람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직업에 성공하기 위해서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숨겨진 공공연한 비밀을 까발린다. ‘운’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자는 데 할 말이 없어진다. 안정성 높은 직업만을 선호하고 적성과 무관하게 모두 비슷한 일을 하고 싶어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자. 저자는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라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준비가 알차면 직업이 즐겁다>는 실전편에 해당한다.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는 방법과 준비물을 점검한다. 돈이냐 시간이냐, 혼자냐 여럿이냐, 안정이냐 모험이냐에 따라 직업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두 번 직업을 바꾸었으니 세가지 일을 해 보았다. 저자의 말에 공감하는 것은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몇 가지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청소년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직업을 위해서는 전문지식과 교양, 체력이 중요하다. 이밖에도 매력있는 사람, 개성있는 사람, 잡기에 능한 사람도 직업에 성공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는다. 결국 어떤 태도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달라지고 자신의 직업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 여부가 판가름 난다.

  두 권 얄팍한 책으로 간단 명료하게 핵심을 짚고 있다. 개조식으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며 직업의 중요성과 직업에서 필요한 요소를 점검하고 있다. 이 책은 청소년들을 위해 쓰인 직업에 관한 고찰 시리즈지만 학부모나 교사들 입장에서 먼저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흔히 청소년 대상 도서가 청소년들을 위한 책으로 알고 있지만 어른들의 생각이 먼저 달라지기 위해서는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나 교사들이 먼저 읽어야한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생각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그들을 안내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시야와 통찰력을 갖춘 부모와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과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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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빈자리 낮은산 키큰나무 8
사라 윅스 지음, 김선영 옮김 / 낮은산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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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춘기 이전의 삶은 아득한 강 건너편에 있는 듯하다.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시작되는 시기를 사춘기라고 한다면 세상과 타인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가득한 시기를 유년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유년시절은 나와 가족 그리고 세계와 끊임없이 충돌하지만 해법을 찾기 어렵고 어른들의 설명을 이해할 수도 없는 시기이다. 아니 이해는 하지만 공감할 수 없는 시기라고 해야겠다. 대체로 초등학교 시절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다닌 세대라서 ‘초등학교’라는 말이 아직도 낯설다) 시절은 온통 또래 친구들과 놀이로만 가득하다. 딱지와 구슬치기를 거쳐 본격적인 구기 종목에 흥미를 갖게된다. 어머니가 처음 사 준 야구 글러브를 끌어안고 잠이 든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딱딱한 가죽 축구화를 축구공 하나를 그물에 넣어 발로 차며 등하교를 했다. 운동장에 완전한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매일 공을 찼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많은 변화가 찾아왔지만 내 기억 속의 유년시절은 공이다.

  지금 초등학교 아이들과는 많이 다른 생활이다. 겉으로 드러난 흥미와 놀이를 중심으로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트라우마가 될 만한 가족사나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뜻도 포함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하고 싶지 않은 상처와 기억이 없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물리적, 정신적 상처를 ‘망각’의 힘으로 견뎌내기도 한다. 그것을 우리는 ‘기억의 빈자리’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뉴욕에서 두 아들을 키우며 전국의 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스스로 만든 노래를 부르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라 윅스의 『기억의 빈자리』는 모든 사람들의 유년시절을 돌아보게 한다. 가난, 아버지의 가출, 성폭행 등 흔치 않은 상처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왕따 초등학생이 주인공이다.

  제이미는 학교에서 제임스라고 부른다. 이름조차 제대로 모를 만큼 관심밖의 학생이다. 선생님에게 골치 아픈 학생이고 친구들에게는 놀림감이 되는 아이다. 아버지의 가출, 이모의 사고 때문에 제이미는 배틀 크릭으로 이사를 한다. 원더러스 에이커의 트레일러 집에서 기억을 잃어버린 이모와 산다. 이모는 사고 이전의 기억만 갖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질문과 대답을 가족들은 잘 견뎌낸다. 오늘 일을 잃어 버리고 내일은 또 다시 사고직 후 깨어난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제이미는 이모의 ‘망각’이 부럽기만 하다.

  공동 세탁소에서 우연히 무료로 최면을 걸어준다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지만 같은 반 친구 오드리 크라우치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한다. 결국 최면에 걸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를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매일 점심은 샌드위치와 체리 캔이다. 혼자서 점심을 먹고 책을 좋아하는 제이미에게 오드리의 관심은 불편할 뿐이다.

  소설의 스토리와 구조는 탄탄하지 못하고 사건과 갈등도 밋밋하다. 앞서 말한대로 가족에 대한 상처, 가난, 성폭행까지 경험하지만 긴장감이나 우울함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의 눈으로 유쾌하게 때로는 냉소적으로 친구들과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본다. 짧고 경쾌한 문장으로 쉽게 읽히지만 어린 소년에게 공감의 눈길을 보낼 수 있을 뿐, 잔잔한 감동이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

  일종의 성장소설로 볼 수 있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작위적이다. 현실에서도 모든 사람은 성장통을 겪는다. 그것이 어떤 계기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나 목적이 전혀 달라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망각’의 힘을 빌린다. ‘기억의 빈자리’는 연속적인 흐름 속의 구멍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적절한 장치가 아닐까 싶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고통을 겪지 않고 행복과 웃음만 가득한 낙원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함께 웃고 울고 성장하고 치유하는 과정의 연속일 수도 있다. 누구나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 수는 없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이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또 다른 ‘기억의 빈자리’를 꿈꾸는 아이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어린 아이가 아닌 어른들에게도 ‘기억의 빈자리’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싶다.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절감한다. 다만 어디까지 어떤 모습으로 흔들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도종환 시인의 말대로 “흔들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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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시에산다 2009-11-09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이 너무 진지하지 않게 사건을 해결해가서 좋았어요~ 아직 어린 학생이 너무나 무겁게 그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는 것보다 그것을 잊고 싶어서 그래서 가벼운척 아무것도 아닌척 덤덤하게 말하고 있는게 더 아프더라고요~닮은꼴책으로는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가 생각났어요

sceptic 2009-11-2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다. 무거운 주제는 가볍게 가야 하는데 아이의 입장에서 경쾌하게 풀어내서 더 찡하게 다가왔습니다...
 
소년은 자란다 - 아라이 연작 소설
아라이 지음, 양춘희 외 옮김 / 아우라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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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남서쪽에 위치한 자치구 티베트는 가 본 적도 없는 머나먼 나라다. 작년 봄 분리독립 문제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독립운동 시위대에 발포해서 10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조선의 독립운동을 떠올렸었다.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의 삶은 여전히 야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은 수많은 종족의 집합체다. 짱족[藏族]이 94%를 차지하지만 티베트 자치구에는 39개 민족이 살고 있다. 다양한 문화와 민족들이 혼합된 중국을 이해하는 것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중국의 티베트 자치구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아라이의 연작소설 『소년은 자란다』를 통해 그 일단을 살펴볼 수 있다. 아라이는 티베트 출신의 작가다. 『색에 물들다』를 통해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지만 읽어보지 못했다. 이 책은 아라이의 최근작으로 고향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순박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소년시절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어 읽는 내내 색다른 감동을 받았다.

  소설은 한 사회와 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문화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이 소설은 티베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대부분 주류 문화를 바라보며 동경하고 의식한다. 하지만 문화상대주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문화는 나름의 독특한 향기와 빛깔을 가지고 있다. 티베트의 향기과 빛깔은 무엇일까?

  아라이의 단편들은 이웃 집 사람들의 이야기를 건너가며 소개하는 듯하다. 5만명에 달한다는 티베트의 승려 이야기부터 절름발이에 이르기까지 소박하고 정겨운 이웃들의 모습이 구체적이고 생생한 모습으로 소설 속에서 되살아난다. 아라이는 이 등장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유년과 고향의 모습을 적확하게 재현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물질문명과 거리를 둔 사람들의 생활은 단순한 낭만과 거리가 멀다.

  라마불교의 사원이 무너지고 승려들이 흩어진다는 것은 사회의 변화가 아니라 전통의 붕괴이며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활불과 박사친구’, ‘라마승 단바’는 티베트를 상징하는 전통 라마불교의 승려 이야기다. 정신적 지주이자 영적 세계의 지도자인 라마승에 대한 이야기는 티베트인들은 물론 외부인에게도 관심의 대상이다. 그들이 우리와 어떻게 같고 다른가를 보여주며 현실과의 괴리를 드러내기도 한다.

  표제작 ‘소년은 자란다’는 독특한 화법으로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소년의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티베트의 자연과 고단한 삶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곰과 싸워 이기고 혼자 여동생을 낳는 어머니와 다시 만나는 장면은 깊은 감동을 준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언제든 어머니같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문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엉뚱하게도 환경과 생태에 대한 공상을 하게 되었다. 아라이가 보여주는 소설의 배경은 그만큼 원초적인 모습이다. 독특한 문화적 환경과 생활이 자극적인 흥미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잔잔한 호수에 일렁이는 작은 바람의 무늬처럼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아라이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새겨들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또박또박 읽으면서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늘상 익숙한 세계의 이야기를 듣거나 잘 알고 있는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낯선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가? 그들 모두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지만 내 생각의 폭도 사유의 깊이도 부끄러울 따름이다. 옷깃을 여미고 외면하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고 타자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아라이는 이 소설을 통해 고향과 순수한 소년시절을 돌아본 것이 아니라 관찰과 기록자의 역할에 충실했는지 모른다. 독자들에게 무언가를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아라이의 소설을 다른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소설가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을 소설에서 없애버리거나, 사람의 생명과 행복을 말하지 않는다면 거대한 관념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소설가에게는 사람이 출발점이자 목적지인 것입니다.
  소설가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진실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합니다. 소설가는 표면적인 사실이 아니라 인간생활의 근본에서부터 진실을 파악하고자 하지요. - ‘한국의 독자들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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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힘이 세다 - 죽어있는 일상을 구원해줄 단 하나의 손길, 심미안
피에로 페르치 지음, 윤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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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작지도 크지도 않으며 깊지도 넓지도 않은 강이 흐르면서 돌들과 부딪치는 소리. 짐승이 웅크린 것처럼 거대한 산 능선이 만들어낸 실루엣. 희뿌윰한 달빛과 드문드문 박혀 있던 몇 개의 별빛. 버드나무 벤치 아래 그 광경을 잊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던 순간 그녀가 처음 말을 건넸다. 거짓말처럼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장면 2.

스무 살. 강릉 경포에서 버스로 한참을 더 가다가 바닷가 민박을 보고 내렸다. 민박집 방에 비스듬이 기대면 미닫이 유리문을 통해 하늘, 바다, 모래가 3분의 1씩 보였다. 그렇게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다 죽으려던 순간이 있었다.

장면 3.

수색중대의 겨울, 비무장지대(DMZ)의 15시간 매복 작전. 영하 20도가 넘는 칼바람과 긴장. 완전한 어둠속에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밤하늘에 박혀있던 별들. 파랗게 밝아오는 새벽과 함께 철수. GOP 통문을 향해 산등성이를 오르다 뒤를 돌아본 일출. 해발 1,000고지가 넘는 능선 아래 안개는 강물처럼 일렁이고 산봉우리들은 군데군데 섬처럼 떠 있는데 붉은 해가 솟구치던 찰라, 이 순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아가는 동안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장면을 떠올린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기막힌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그 장면, 그 상황, 그 느낌은 경험하고 있는 모든 사람마다 다르다. 개별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심미안’은 공통적인 부분이 있고 그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구별한다. 이것은 유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심리 실험을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물론 아름다움에 관한 선호는 시각적인 것에 한정시킬 수는 없다. 아름답다는 것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름다움은 사물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 P. 23

  피에로 페루치는 <아름다움은 힘이 세다beauty and the soul>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우리들의 ‘존재 방식’에 관한 책이다. 정신분석과 명상법을 통해 종합심리요법의 권위자라는 저자의 이야기는 깊고도 정교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거나 확인할 수 있는 단순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아름다움이 갖는 특별한 효과에 대해 광범위하게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우선 추상적인 개념의 아름다움에 대해 필요성과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것은 우리들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확인시켜 준다. 주관적 인식을 토대로 한 개별적 취향이 아름다움은 아닐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아니,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아름다움에 관한 책이 아니라 사람과 인생에 관한 책인 것이다.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서 교양이 있거나 똑똑할 필요는 없다. 종종 교양이나 지성이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미학적 경험이 강하고, 진실되고,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려면 오히려 자신의 판단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아름다움과 점차 친밀해지면서 자신과의 접촉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 P. 95

  사실 정신분석, 명상, 심리 등은 모두 인간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아름다움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움의 힘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시작이다.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 치유와 구원, 관계와 공감, 인식의 창이라는 장들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조용한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마치 혼자 산책을 하며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미소 지으며 아름다운 삶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듯하다. 나는 누구이며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영혼과 무의식의 세계에 신비한 힘을 가져다주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하다.

감정이 승리하면 우리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반면에 이성이 승리하면 냉혹하고 단절된 사람이 될 위험이 있다. - P. 273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만 상처받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이성에 기대게 된다. 아름다운 것이 감정적인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성이 냉혹하고 단절된 사람을 만들기 쉬운 것처럼 보이는 아름다움과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사이에는 넓은 간극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촛불을 켜 놓은 채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나를 돌아보고 세계를 관찰하는 일이 아름다운 명상의 시작은 아닐까. 비밀스런 의식이나 환상적 종교체험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나를 돌아보고 지극한 아름다움을 통해 맑은 영혼을 가꾸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시작되어야 한다.

예술은 ‘경험의 절정’ 혹은 ‘몰입’으로 쉽게 인식을 확장시킨다. 또 예술은 학습 동기를 자극한다. 협동심만큼 독립심도 키워준다. 사회성을 향상시키고, 분석과 통합 같은 지적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훈련시켜준다. - P. 280

아름다움과 지식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있다. 바로 신념이다. 신념은 아름답다. 신념은 아주 중요하고, 많은 사람의 인생에 도달할 수 있고, 사람들을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신념은 문명의 안내자다. - P. 281


  예술만큼 아름다운 것이 신념이다. 신념만큼 위험한 것도 없지만 영혼을 팔아 개인적 이익이나 현실적인 욕망을 얻는 사람만큼 불쌍한 사람이 있을까. 책을 읽고 나서도 아름다움의 힘을 실감하거나 심미안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무엇이 아름답고 그렇지 않은 지는 누구나 안다. 다만 그것이 사라져가는 현실, 우리 안의 건조한 바람이 문제는 아닐까 싶다.


0911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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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짜기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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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을 만들다가 제 맛이 나지 않으면 양념을 더 넣거나 식재료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릇을 엎어버리고 새로 만드는 일이 혁명이다. 그릇을 엎어버린다니 부정적인 뉘앙스, 폭력성향, 예측 불가능성, 안정과 질서 등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떠오른다. 하지만 혁명을 어떻게 정의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인식의 폭을 확대하고 그 틀을 넓히는 것이 혁명이다.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그것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했다. 또, 하늘이 아니라 땅이 움직인다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명칭이야 어떠하든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야 혁명은 비로소 시작된다. 사람들은 흔히 레닌이나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마오쩌뚱을 떠올린다. 급격한 사회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삶의 뿌리가 흔들린다고 생각하는 불안은 오히려 삶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혁명을 꿈꾼 시대는 행복했을까? 장석준은 『혁명을 꿈꾼 시대』를 통해 20세기에 명멸했던 혁명가의 육성을 통해 인류 문명의 발전을 성찰하고 있다. 사실 급격한 변화와 변동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혁명’은 새롭고 신선한 발상의 전환에 불과하다. 조금 더 실천적인 변화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누구든 언제 어디서든 혁명은 가능하다. 그러니까 그림자처럼 그곳에 놓여있는 혁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다.

  박권일과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는 경제학과 사회학이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꽃을 피운 매우 현실적인 책이다. 그래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성공을 둔 책이 되었으며 이 시대의 키워드가 되어버렸다. 이 땅의 20대에게 보내는 찬사와 갈채와 희망과 용기가 아니라 현실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비관적 전망을 바탕으로 냉철한 현실인식을 촉구하는 책으로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설 같은 현실에 많은 20대가 공감했으며 기성세대는 구조적 모순과 현실에 대한 문제점들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 책의 주장과 시각에 대한 반론과 다양한 논쟁들이 이뤄졌지만 발전적 방향을 위한 논의의 확대재생산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 대한 속편 혹은 구체적 해설서 같은 책이 『혁명은 조용히 이렇게』이다. 한기호의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와 더불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의 슬픈 초상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슬픈 일이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현실에서 20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인다. 기성세대가 누렸던 경제호황기의 추억은 다시 현실이 되지 않는다. 세상은 저절로 움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20대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석훈은 조한혜정의 제안으로 대학생들을 만난다. 우울한 시대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고시, 공무원, 대기업의 바늘구멍을 뚫지 않으면 대안이 별로 없어 보인다. 예전의 학생 운동 세력과 비교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사회를 고민하고 현실의 문제점을 고민하는 지금의 대학생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몽상가나 이론적 혁명가가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에서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뚫어야할 현실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저자는 이것을 당사자 운동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학생들의 순수성은 자기 이익과 무관한 대리인 운동 성격을 띠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 스스로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당사자 운동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비록 그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다음 세대 즉 지금의 10대가 20대가 되어서 혜택을 받더라도 지금 당사자 운동을 통해 스스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해법을 찾아나가지 못한다면 20대의 전망은 점점 어두워질 수도 있다.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 경쟁질서가 낳은 결과를 토대로 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경제학자인 우석훈은 비관적 전망을 단순하게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과 해법을 이 시대의 대학생들과 함께 고민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자식들인 20대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고 군인과 CEO 영웅시대를 살고 있는 그들에게 과연 희망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구조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우석훈과 함께 『성난 서울』을 통해 한국의 독자들과 만난 일본의 아마미야 카린은 일본 사회의 심각성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헤쳐나가고 있는 혁명가로 볼 수 있다. 변화의 중심에서 내가 먼저 행동하지 않으면 세상은 요지부동이다. 우정과 환대의 공간을 마련하고 서로 믿을 수 있는 관계를 복원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 또 무엇을 통해 우리가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구조 앞에 개인은 늘 나약하다. 그러므로, 구조에는 구조로 맞서는 것이 가장 고전적이고 오래된 해법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20대에게는 그들이 움직이거나 기댈 구조가 없다. - P. 26

  비참한 현실이지만 대한민국의 20대에게는 구조가 없다. 저자는 날아보자고 외치지만 얼마나 많은 20대가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68혁명과 차티스트 운동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지만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자의 말대로 상상력이다. 혁명이라는 것은 상상력의 승리가 되어야 한다. 다양한 종류의 현실적 힘의 논리가 아니라 창조적이고 명랑한 상상력의 혁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혁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러시아 혁명처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전환하기 위한 혁명이 한 종류고, 68로 상징되는 세계를 뒤엎었던 상상력의 혁명이 또 한 종류다. 물론 그 어느 쪽이라도 ‘혁명’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상상력의 클라이맥스다. 만약 최고의 혁명가 한 사람을 꼽으라면 여러분은 누구를 꼽으시겠는가? - P. 32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온 생애를 바쳐야 하는 20대는 오늘도 제로섬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누군가 경쟁에서 이기고 정규직이 되면 누군가는 패배자가 되고 비정규직이 된다. 이 책의 말미에 대학생들이 직접 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코코 샤넬의 혁명적 상상력이 우리들의 20대에게 꽃 필 수는 없는가? 아니 곧 20대가 되는 10대는 어쩌란 말인가?


09102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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