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빈자리 낮은산 키큰나무 8
사라 윅스 지음, 김선영 옮김 / 낮은산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사춘기 이전의 삶은 아득한 강 건너편에 있는 듯하다.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시작되는 시기를 사춘기라고 한다면 세상과 타인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가득한 시기를 유년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유년시절은 나와 가족 그리고 세계와 끊임없이 충돌하지만 해법을 찾기 어렵고 어른들의 설명을 이해할 수도 없는 시기이다. 아니 이해는 하지만 공감할 수 없는 시기라고 해야겠다. 대체로 초등학교 시절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다닌 세대라서 ‘초등학교’라는 말이 아직도 낯설다) 시절은 온통 또래 친구들과 놀이로만 가득하다. 딱지와 구슬치기를 거쳐 본격적인 구기 종목에 흥미를 갖게된다. 어머니가 처음 사 준 야구 글러브를 끌어안고 잠이 든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딱딱한 가죽 축구화를 축구공 하나를 그물에 넣어 발로 차며 등하교를 했다. 운동장에 완전한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매일 공을 찼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많은 변화가 찾아왔지만 내 기억 속의 유년시절은 공이다.

  지금 초등학교 아이들과는 많이 다른 생활이다. 겉으로 드러난 흥미와 놀이를 중심으로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트라우마가 될 만한 가족사나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뜻도 포함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하고 싶지 않은 상처와 기억이 없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물리적, 정신적 상처를 ‘망각’의 힘으로 견뎌내기도 한다. 그것을 우리는 ‘기억의 빈자리’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뉴욕에서 두 아들을 키우며 전국의 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스스로 만든 노래를 부르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라 윅스의 『기억의 빈자리』는 모든 사람들의 유년시절을 돌아보게 한다. 가난, 아버지의 가출, 성폭행 등 흔치 않은 상처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왕따 초등학생이 주인공이다.

  제이미는 학교에서 제임스라고 부른다. 이름조차 제대로 모를 만큼 관심밖의 학생이다. 선생님에게 골치 아픈 학생이고 친구들에게는 놀림감이 되는 아이다. 아버지의 가출, 이모의 사고 때문에 제이미는 배틀 크릭으로 이사를 한다. 원더러스 에이커의 트레일러 집에서 기억을 잃어버린 이모와 산다. 이모는 사고 이전의 기억만 갖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질문과 대답을 가족들은 잘 견뎌낸다. 오늘 일을 잃어 버리고 내일은 또 다시 사고직 후 깨어난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제이미는 이모의 ‘망각’이 부럽기만 하다.

  공동 세탁소에서 우연히 무료로 최면을 걸어준다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지만 같은 반 친구 오드리 크라우치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한다. 결국 최면에 걸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를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매일 점심은 샌드위치와 체리 캔이다. 혼자서 점심을 먹고 책을 좋아하는 제이미에게 오드리의 관심은 불편할 뿐이다.

  소설의 스토리와 구조는 탄탄하지 못하고 사건과 갈등도 밋밋하다. 앞서 말한대로 가족에 대한 상처, 가난, 성폭행까지 경험하지만 긴장감이나 우울함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의 눈으로 유쾌하게 때로는 냉소적으로 친구들과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본다. 짧고 경쾌한 문장으로 쉽게 읽히지만 어린 소년에게 공감의 눈길을 보낼 수 있을 뿐, 잔잔한 감동이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

  일종의 성장소설로 볼 수 있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작위적이다. 현실에서도 모든 사람은 성장통을 겪는다. 그것이 어떤 계기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나 목적이 전혀 달라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망각’의 힘을 빌린다. ‘기억의 빈자리’는 연속적인 흐름 속의 구멍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적절한 장치가 아닐까 싶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고통을 겪지 않고 행복과 웃음만 가득한 낙원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함께 웃고 울고 성장하고 치유하는 과정의 연속일 수도 있다. 누구나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 수는 없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이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또 다른 ‘기억의 빈자리’를 꿈꾸는 아이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어린 아이가 아닌 어른들에게도 ‘기억의 빈자리’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싶다.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절감한다. 다만 어디까지 어떤 모습으로 흔들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도종환 시인의 말대로 “흔들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09110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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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시에산다 2009-11-09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이 너무 진지하지 않게 사건을 해결해가서 좋았어요~ 아직 어린 학생이 너무나 무겁게 그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는 것보다 그것을 잊고 싶어서 그래서 가벼운척 아무것도 아닌척 덤덤하게 말하고 있는게 더 아프더라고요~닮은꼴책으로는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가 생각났어요

sceptic 2009-11-2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다. 무거운 주제는 가볍게 가야 하는데 아이의 입장에서 경쾌하게 풀어내서 더 찡하게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