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남서쪽에 위치한 자치구 티베트는 가 본 적도 없는 머나먼 나라다. 작년 봄 분리독립 문제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독립운동 시위대에 발포해서 10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조선의 독립운동을 떠올렸었다.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의 삶은 여전히 야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은 수많은 종족의 집합체다. 짱족[藏族]이 94%를 차지하지만 티베트 자치구에는 39개 민족이 살고 있다. 다양한 문화와 민족들이 혼합된 중국을 이해하는 것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중국의 티베트 자치구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아라이의 연작소설 『소년은 자란다』를 통해 그 일단을 살펴볼 수 있다. 아라이는 티베트 출신의 작가다. 『색에 물들다』를 통해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지만 읽어보지 못했다. 이 책은 아라이의 최근작으로 고향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순박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소년시절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어 읽는 내내 색다른 감동을 받았다. 소설은 한 사회와 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문화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이 소설은 티베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대부분 주류 문화를 바라보며 동경하고 의식한다. 하지만 문화상대주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문화는 나름의 독특한 향기와 빛깔을 가지고 있다. 티베트의 향기과 빛깔은 무엇일까? 아라이의 단편들은 이웃 집 사람들의 이야기를 건너가며 소개하는 듯하다. 5만명에 달한다는 티베트의 승려 이야기부터 절름발이에 이르기까지 소박하고 정겨운 이웃들의 모습이 구체적이고 생생한 모습으로 소설 속에서 되살아난다. 아라이는 이 등장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유년과 고향의 모습을 적확하게 재현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물질문명과 거리를 둔 사람들의 생활은 단순한 낭만과 거리가 멀다. 라마불교의 사원이 무너지고 승려들이 흩어진다는 것은 사회의 변화가 아니라 전통의 붕괴이며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활불과 박사친구’, ‘라마승 단바’는 티베트를 상징하는 전통 라마불교의 승려 이야기다. 정신적 지주이자 영적 세계의 지도자인 라마승에 대한 이야기는 티베트인들은 물론 외부인에게도 관심의 대상이다. 그들이 우리와 어떻게 같고 다른가를 보여주며 현실과의 괴리를 드러내기도 한다. 표제작 ‘소년은 자란다’는 독특한 화법으로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소년의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티베트의 자연과 고단한 삶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곰과 싸워 이기고 혼자 여동생을 낳는 어머니와 다시 만나는 장면은 깊은 감동을 준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언제든 어머니같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문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엉뚱하게도 환경과 생태에 대한 공상을 하게 되었다. 아라이가 보여주는 소설의 배경은 그만큼 원초적인 모습이다. 독특한 문화적 환경과 생활이 자극적인 흥미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잔잔한 호수에 일렁이는 작은 바람의 무늬처럼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아라이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새겨들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또박또박 읽으면서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늘상 익숙한 세계의 이야기를 듣거나 잘 알고 있는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낯선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가? 그들 모두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지만 내 생각의 폭도 사유의 깊이도 부끄러울 따름이다. 옷깃을 여미고 외면하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고 타자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아라이는 이 소설을 통해 고향과 순수한 소년시절을 돌아본 것이 아니라 관찰과 기록자의 역할에 충실했는지 모른다. 독자들에게 무언가를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아라이의 소설을 다른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소설가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을 소설에서 없애버리거나, 사람의 생명과 행복을 말하지 않는다면 거대한 관념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소설가에게는 사람이 출발점이자 목적지인 것입니다. 소설가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진실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합니다. 소설가는 표면적인 사실이 아니라 인간생활의 근본에서부터 진실을 파악하고자 하지요. - ‘한국의 독자들에게’ 중에서 091103-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