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짜기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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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을 만들다가 제 맛이 나지 않으면 양념을 더 넣거나 식재료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릇을 엎어버리고 새로 만드는 일이 혁명이다. 그릇을 엎어버린다니 부정적인 뉘앙스, 폭력성향, 예측 불가능성, 안정과 질서 등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떠오른다. 하지만 혁명을 어떻게 정의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인식의 폭을 확대하고 그 틀을 넓히는 것이 혁명이다.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그것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했다. 또, 하늘이 아니라 땅이 움직인다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명칭이야 어떠하든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야 혁명은 비로소 시작된다. 사람들은 흔히 레닌이나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마오쩌뚱을 떠올린다. 급격한 사회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삶의 뿌리가 흔들린다고 생각하는 불안은 오히려 삶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혁명을 꿈꾼 시대는 행복했을까? 장석준은 『혁명을 꿈꾼 시대』를 통해 20세기에 명멸했던 혁명가의 육성을 통해 인류 문명의 발전을 성찰하고 있다. 사실 급격한 변화와 변동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혁명’은 새롭고 신선한 발상의 전환에 불과하다. 조금 더 실천적인 변화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누구든 언제 어디서든 혁명은 가능하다. 그러니까 그림자처럼 그곳에 놓여있는 혁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다.

  박권일과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는 경제학과 사회학이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꽃을 피운 매우 현실적인 책이다. 그래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성공을 둔 책이 되었으며 이 시대의 키워드가 되어버렸다. 이 땅의 20대에게 보내는 찬사와 갈채와 희망과 용기가 아니라 현실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비관적 전망을 바탕으로 냉철한 현실인식을 촉구하는 책으로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설 같은 현실에 많은 20대가 공감했으며 기성세대는 구조적 모순과 현실에 대한 문제점들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 책의 주장과 시각에 대한 반론과 다양한 논쟁들이 이뤄졌지만 발전적 방향을 위한 논의의 확대재생산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 대한 속편 혹은 구체적 해설서 같은 책이 『혁명은 조용히 이렇게』이다. 한기호의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와 더불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의 슬픈 초상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슬픈 일이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현실에서 20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인다. 기성세대가 누렸던 경제호황기의 추억은 다시 현실이 되지 않는다. 세상은 저절로 움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20대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석훈은 조한혜정의 제안으로 대학생들을 만난다. 우울한 시대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고시, 공무원, 대기업의 바늘구멍을 뚫지 않으면 대안이 별로 없어 보인다. 예전의 학생 운동 세력과 비교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사회를 고민하고 현실의 문제점을 고민하는 지금의 대학생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몽상가나 이론적 혁명가가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에서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뚫어야할 현실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저자는 이것을 당사자 운동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학생들의 순수성은 자기 이익과 무관한 대리인 운동 성격을 띠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 스스로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당사자 운동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비록 그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다음 세대 즉 지금의 10대가 20대가 되어서 혜택을 받더라도 지금 당사자 운동을 통해 스스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해법을 찾아나가지 못한다면 20대의 전망은 점점 어두워질 수도 있다.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 경쟁질서가 낳은 결과를 토대로 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경제학자인 우석훈은 비관적 전망을 단순하게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과 해법을 이 시대의 대학생들과 함께 고민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자식들인 20대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고 군인과 CEO 영웅시대를 살고 있는 그들에게 과연 희망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구조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우석훈과 함께 『성난 서울』을 통해 한국의 독자들과 만난 일본의 아마미야 카린은 일본 사회의 심각성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헤쳐나가고 있는 혁명가로 볼 수 있다. 변화의 중심에서 내가 먼저 행동하지 않으면 세상은 요지부동이다. 우정과 환대의 공간을 마련하고 서로 믿을 수 있는 관계를 복원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 또 무엇을 통해 우리가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구조 앞에 개인은 늘 나약하다. 그러므로, 구조에는 구조로 맞서는 것이 가장 고전적이고 오래된 해법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20대에게는 그들이 움직이거나 기댈 구조가 없다. - P. 26

  비참한 현실이지만 대한민국의 20대에게는 구조가 없다. 저자는 날아보자고 외치지만 얼마나 많은 20대가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68혁명과 차티스트 운동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지만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자의 말대로 상상력이다. 혁명이라는 것은 상상력의 승리가 되어야 한다. 다양한 종류의 현실적 힘의 논리가 아니라 창조적이고 명랑한 상상력의 혁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혁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러시아 혁명처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전환하기 위한 혁명이 한 종류고, 68로 상징되는 세계를 뒤엎었던 상상력의 혁명이 또 한 종류다. 물론 그 어느 쪽이라도 ‘혁명’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상상력의 클라이맥스다. 만약 최고의 혁명가 한 사람을 꼽으라면 여러분은 누구를 꼽으시겠는가? - P. 32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온 생애를 바쳐야 하는 20대는 오늘도 제로섬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누군가 경쟁에서 이기고 정규직이 되면 누군가는 패배자가 되고 비정규직이 된다. 이 책의 말미에 대학생들이 직접 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코코 샤넬의 혁명적 상상력이 우리들의 20대에게 꽃 필 수는 없는가? 아니 곧 20대가 되는 10대는 어쩌란 말인가?


09102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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