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의무를 묻는다 - 살아가면서 읽는 사회 교과서
이한 지음 / 뜨인돌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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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금지에 관한 뉴스가 심심찮게 사회면을 오르내린다. 부작용에 대한 특정 기사와 반대의 목소리에 대한 기사들이 주류를 이룬다. 학생들의 머리 길이와 교육적 효과, 치마 길이와 성적, 체벌과 사제 간의 관계에 대한 어떤 합리적 근거도 없고 논리적 분석도 없다.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담론은 기대할 수도 없음은 물론이다.

영국의 토마스 페인은 조지 워싱턴과 벤자민 플랭클린 조차 독립에 반대하던 시대에 군주제에 반대하며 민주적 공화정이 ‘상식’임을 외쳤다. 『상식, 인권』(박홍규 옮김, 필맥)을 읽다가 우리에게 ‘상식’은 무엇일까 고민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체벌, 머리카락과 치마길이, 강제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적 특수성과 문화적 차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지극히 상식적인 변화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한 줄로 서서 앞으로 나란히를 배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질서와 규칙을 내면화한다는 명목으로 인권과 상식은 버려야하고 경쟁과 이기심은 극대화된다. 대한민국의 학교 ‘즐거운 곳’일 수 없을까 하는 의문은 나의 오랜 의문이기도 하다. 방법적으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우선 미성숙한 존재임을 인정하면서도 동등한 인격체로 학생들을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물론 학생들도 교사에 대한 예의와 존경을 전제해야 한다. 상급 학교 진학률과 취업률로 학교와 교사가 평가되는 한 상식도 인권도 멀어져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똑같은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마치 군사작전이나 전쟁을 방불케하는 교육과정이 실현될 뿐이다. 국영수 중심의 ‘개정 2009 교육과정’에 대해 사회적 관심과 문제제기가 부족한 것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제 학교가 아니라 ‘효율성’과 ‘성과’의 기준으로 평가받고 실용적 목적으로 학문에 접근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전인격적 인간 육성’ 혹은 ‘글로벌 시대의 리더’가 되기 위해 다양한 측면에서의 인성지도를 요구한다. 사회와 학부모의 학교에 대한 비판과 기대만큼 학생과 교사들을 위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지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체로 학생들은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소홀히 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스럽게 내면화된 논리일 수도 있고, 본능적으로 인간이 가진 속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정과 학교에서 진정한 ‘사람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고민하게 하느냐를 돌아보자. ‘살아가면서 읽는 사회 교과서’라는 부제를 단 『너의 의무를 묻는다』는 권리가 인권(인간의 권리)이 아니라 ‘의무’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주어지는 투표권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앞서 ‘정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의무는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고민해 보자는 책이다. 자신의 이익과 무관하게 인간의 존엄성에서부터 시작되는 ‘진짜 의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이익 추구나 강제성 때문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의무에 대해 설명한다. 사람은 수단이 아니라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의 진지함에서부터 ‘정의’에 대한 이론과 ‘시민 불복종’에 대한 기준 등 공동체 안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마땅한 의무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한다. 전체 7장에 걸쳐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낸 이 책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사회교과서’라는 부제를 달아주고 싶다.

흔히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가 꽤나 고차원적인 철학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에서 출발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외부적인 영향이나 이기적인 욕심에서 벗어나 보편타당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상식에서 그 고민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자신의 의무와 권리를 완벽하게 이행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상식(?)’을 벗어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비판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가치 판단 능력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 타인의 보편적 권리를 침해하고 보편타당한 상식에서 벗어난 법과 제도를 만들어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없는 사회이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사람들이 누구인지 눈밝게 감시하고 다함께 ‘상식’의 힘을 믿어야 한다. 자신의 ‘의무’를 돌아보고 변화를 위한 실천의지가 필요하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이 중요한 것은 다수의 건강한 상식과 의무의 이행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를 위해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 앞서 바로 당신의 ‘의무’는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 근본적인 질문과 성찰로부터 우리들의 진정한 ‘권리’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우리들의 ‘의무’와 ‘권리’는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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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많은 디자인 씨 - 디자인으로 세상 읽기
김은산 지음 / 양철북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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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디자인은 현대생활 그 자체이다.” - 나이젤 휘틀리(『사회를 위한 디자인』)

이것은 파인애플이다. 사과 한 쪽이 파였으니 파인 애플. 시덥잖은 농담에 눈살을 찌푸릴 수는 있겠지만 이 로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청바지에 검은색 터틀넥을 입은 스티브 잡스와 결합된 애플사의 로고는 첨단 과학의 이미지라기보다 현대사회의 단순한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과 그에 걸맞는 편의성으로 지구인을 사로잡고 있다. 우리는 왜 애플에 반응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차별화 시켰을까. 이제 하나의 기호와 상징이 되어버린 애플의 제품들을 찬찬이 들여다보자.

아침에 눈뜨고 저녁에 잠들 때까지 한 순간도 손에서 떠나지 않는 휴대용 전화기는 현대인의 신체 일부가 되었다. 아이폰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은 물론이고 시각적 단순성과 편의성을 앞세워 열풍을 몰고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단순성과 편의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디자인 때문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디자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이젤 휘틀 리가 말한대로 디자인이 현대생활 그 자체라는 말에 반박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아이폰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사용하는 모든 물건과 공간은 ‘디자인’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익숙함은 디자인에 대한 우리들의 시선을 무디게 한다. 보이는 곳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도 디자인은 숨어 있다. 그래서 디자인은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호와 상징이 될 수 있다. 김은산의 『비밀 많은 디자인씨』는 일반인들을 위해 디자인을 통한 세상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인문학에 바탕을 두지 않은 어느 학문 분과도 영혼 없는 육체가 되기 쉬운 것처럼 인간에 대한 관심과 철학적 고민이 없는 디자인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일시적 자극을 제공할 뿐이다.

이 책은 디자인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그것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담겨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십대를 위해 썼다고 밝히고 있지만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필요하고, 디자인 자체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의지와 열정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 열망이 있는 사람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의 삶과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전해주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곳곳에 저자의 깊은 고민과 한숨 독자에 대한 따뜻함이 묻어난다.

한 권의 책을 디자인(구상에서 기획, 편집에 이르기까지)하고 그것을 독자에게 선보이는 과정은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과 같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고 하듯이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에게 전해지고 그것이 독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은 살아 숨쉬는 유기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나 역동적이고 활기 넘치는 책의 일생을 꿈꾼다. 이 책은 ‘디자인’을 통해 충분히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성찰과 세상에 대한 통찰을 키워줄 수 있는 책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디자인의 논리는 실은 ‘형태는 이윤을 따른다’는 현실의 논리, 시장의 논리를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 P. 88

책도 마찬가지지만 현대사회에서 디자인은 철저하게 ‘이윤’에 복무한다. 기능과 형태의 오래된 논쟁에서 벗어나 이제는 모두 ‘자본’에 복종한다. 시장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디자인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힘주어 강조하듯이 닫힌 디자인이 아니라 열린 디자인의 가능성에 도전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들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디자인은 상업적 이익을 위한 포장지로만 기능할 것이다. 지속가능한 가능한 삶을 위한 디자인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세상의 모든 사물을 관찰하는 눈이 필요하다. 형태와 기능에 대해서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디자인은 공공을 위해, 장애와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어 사회적 소수자까지 배려해야 한다. <중요한 것을 먼저 하자 2002>에서 주장하듯이 환경과 사회문화의 전영역에 걸쳐 디자인이 필요하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디자인을 고민하는 것은 우리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디자인은 막대한 자본이나 앞선 기술, 거대한 계획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세상을 근심하고 배려하는 디자이너의 작은 손길과 정성 그리고 자발적인 참여와 의지를 통해 차근차근 가능해진다. 그것이야말로 디자인의 진정한 가능성이자 힘일 것이다. - P. 183

저자는 이렇게 디자인의 힘을 믿는다. 작은 손길과 정성 그리고 자발적인 참여와 의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듯이 그런 디자인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내 삶을 디자인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우리들 주변의 소소한 디자인들이 어떠해야 하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엉뚱하게도 오늘은 남은 생을 아름답게 디자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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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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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은 삶에 대해 새로운 질문이 많아질수록 세상을 새롭게 살아갈 용기가 더 많아지는 존재라고 믿는다. 질문과 함께, 질문에서 인간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인간은 새로운 사회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내가 학생들과 함께 나눈 위로이자 희망이며 격려이다. - P. 26쪽, 들어가는 글 ‘너흰 괜찮아’ 중에서

매우 인상적인 서문이다. 정치가 아닌 학문의 영역은 정답이 아니라 영원히 질문을 던지는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사회학의 관점에서 일반적인 현상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이론에 불과하다.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예측하기도 힘들고 수많은 변수들이 숨어있기도 하다. 하지만 학교는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고 해결할 방법도 의지도 없다. 고등학교는 대입 준비를 위한 전략을 마련하느라 경쟁을 벌이고 있고, 대학은 취업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학생들의 스펙 쌓기 경연장이 되었다. 문제가 있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 문제의 해법은 제각각이다.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입장 차이만큼이나 20대를 바라보는 눈도 다르다.

곧 수능이 다가온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수능을 치르는 순간 사회적 계급이 결정되고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수험이 루저가 된다. 서울대학교 법대와 의대를 정점으로 모든 수험생은 콤플렉스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대한민국에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이 거대한 피라미드의 모래알로 편입된다는 의미이다. 칼날처럼 냉정한 현실을 돌아보면 이 문제를 간단하게 바라볼 수가 없다. 얽히고 꼬인 사슬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원인과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되지만 서로 다른 기득권, 계층 간의 이익, 이기적 욕망들이 뒤엉킨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88만원 세대』가 한국 사회를 풍미한 것은 신자유주의 질서와 세계화의 바람이 몰고 온 거대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 풍성한 비판과 논란이 있었지만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세대의 명칭만큼은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대한민국 20대의 자화상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무섭기까지하다. 현실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일은 슬픔과 연민을 넘어선 자리에 분석과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보호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십대와 달리 세상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으며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모르는 20대를 다시 보자. 사회, 정치, 경제 각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거나 정규직으로 취업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아니고 ‘잉여’라는 말로 불리는 세대의 아픔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이른바 ‘원세대’(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와 ‘동덕여대’에서 강의를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대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저자의 분석이 잘 어우러진 책이다.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1부에서는 현재 대학과 대학생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2부에서는 정치와 민주주의, 교육, 가족, 사랑, 소비, 돈, 열정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혁명에 냉소하고 팔리기 위해 나를 전시하고 열정과 삽질 사이에서 고민하며 돈은 자유라고 외치는 세대의 아픔은 어떤가. 성장 신화에 매몰된 모습은 우리들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의 모습이다.

이처럼 지금 우리는 속물들이 들끓는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도덕이 모든 비판과 단죄의 잣대가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속물들이야말로 진실로 도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 P. 95

학교는 이미 정글과 전쟁터를 방불한다.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경쟁체제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게 한다. 1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루저가 되는 세상, 마치 정글처럼 보이지 않는 폭력과 억압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 감정노동의 공동체가 되어버린 가족 등 저자가 20대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말하는 모든 부분이 너무 익숙해서 낯설다. 이 책은 이렇게 살아 숨쉬는 사회학 교과서로 읽힌다.

특히, ‘사랑, 비싸다’라는 작은 제목이 아프게 들어온다. 데이트 비용에 대한 이야기가 현실감 있게 서술된다. 대학생들의 고백과 현재 20대들의 모습이 겹친다. 낭만적 사랑은 꿈도 꿀 수 없고 이미 사랑조차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들에게 기성세대가 해 줄 말이 있을까. 서두에서 말했듯이 저자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용기’를 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등가교환’을 이야기해야 하는 현실은 아득하기만 하다.

과거의 사랑이 손해를 감수하고 일방적으로 퍼줌으로써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였다면, 지금은 등가교환을 통하여 서로의 곤궁함을 배려한다. 등가교환이야말로 동등성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새로운 형식이다. - P. 160

대학의 서열화, 고용없는 성장, 승자독식, 비정규직, 정치적 냉소, 가족 공동체 등 이 책에는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지나치게 나이브하게 드러내는 방식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현실 그대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저자는 아주 소중한 책을 한 권 세상에 소개하고 있다. 시대를 읽어내는 통렬함은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할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과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구조적 모순과 현실의 문제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고 고민하면서도 해결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누구의 문제인가.

위험을 각오할 용기가 없다면 이 책도 한낱 세태 보고서에 끝날 위험성을 내포한다. 들어가는 글에서 ‘너희 괜찮아’라고 말한 저자의 의도는 선생의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감상적 언사가 아니라 우리 시대가 20대에게 보내는 격려와 공감의 메시지여야 한다.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지 않는다면 질문은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이제 우리는 한발 내디뎌 다함께 걸어갈 방향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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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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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우리는 그렇게 모든 것을 놓고 간다. 소멸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목표와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없다. 유행가 가사처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대충 살자는 말이 아니라 그러니까 잘 살아 보자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잘 산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고 명예를 얻고자 하며 진정한 사랑을 원하기도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기준과 삶의 목표가 자신의 삶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분석을 빌리지 않더라도 삶의 가치 기준을 타인의 그것과 늘 비교하며 불안해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맹목적으로 내면화된 기성세대의 경쟁적 질서일 뿐일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회적 가치도 영원할 수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진실도 절대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이다. 흔희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따라 역사를 구분하기도 하고 사회제도나 문예사조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인간 사회를 혹은 개인의 삶을 간단하게 정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학이라는 창을 통해 타인과 사회와 역사를 관음한다. 소설은 늘 우리에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타인의 삶과 과거의 삶을 돌아보고 내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소설이면 좋은 평가를 얻게 된다. 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수로의 『남아 있는 나날』은 독특한 소재와 편안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삶의 의미를 묻고 있다.

1956년 7월 달링턴 홀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근대화의 과정을 한 명문 귀족 집안의 집사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사회와 역사를 조망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20세기 초 ‘달링턴 홀’의 집사로 살아야 했던 스티븐슨의 내면을 통해 품위와 명예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이 소설은 사회문화적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을 통해 삶의 가치를 고민하게 한다. 작가는 개인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고위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아 온 한 귀족 가문의 집사를 통해 인간적 진실이란 과연 무엇인지 묻고 있는 듯하다.

영국인의 문화와 역사적 상황일 잘 녹아 있는 소설이지만 제2차 대전 당시의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1인칭 주인공으로 자신의 삶을 서술하는 스티븐슨은 총무로 일했던 켄턴 양에 대한 기억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달링턴 홀의 주인이 바뀌고 미국인 패러데이 어르신을 모시게 된 스티븐슨은 6일간의 여행을 떠난다. 달링턴 홀과 함께 한 묶음으로 집의 일부로 살아온 집사의 여행은 낯설기만 하다. 오래 전 결혼하기 위해 달링턴 홀을 떠난 켄턴 양의 편지를 받고 여행 중에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 달링턴 홀에 완벽한 그녀의 일솜씨가 필요할 뿐이라고 다짐하는 스티븐슨의 태도와 여행 중에 과거 회상 형식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제각각 다른 이야기들을 읽어낼 수 있다. 켄턴 양의 사랑, 달링턴 홀의 역사, 영국의 귀족 문화, 제2차 세계 대전의 시대적 상황 그리고 스티븐슨의 품위 등.

6일 간 영국의 곳곳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늙은 영감이 되어버린 집사 스티븐슨의 생각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 온 삶을 정리하게 된다. 제목처럼 ‘남아 있는 나날’을 어떻게 보내게 될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스티븐슨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철저하게 주인을 모시는 삶을 살았던 집사는 빈틈없이 일처리를 하기 위해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켄턴 양을 외면한다. 그것이 고통스런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품위와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나가버린 시대의 중심에서 서 있던 스티븐슨이 이제 주인이 바뀐 달링턴 홀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지 궁금하지는 않다. 여행을 마치면서 새로 바뀐 주인을 잘 모시기 위해 농담의 기술을 익혀야겠다고 다짐하는 스티븐슨은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다는 것이 한 개인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김남주는 해설에서 한나 아렌트의 『예수살렘의 아이히만』을 예로 들어 스티븐슨의 직무에 대한 놀라운 성실함을 ‘악의 평범성’에 비유한다. 개인의 입장에서 혹은 일과 직업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이히만은 얼마나 평범하고 충성스런 부하였는가. 주인공 스티븐슨의 일이 타인에게 끔찍한 불행을 가져 온 것은 아니지만 켄턴 양을 통해 작가는 타인의 관점에서 스티븐슨이라는 독특한 인물을 객관화시킨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깊은 고민과 통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 소설을 통해 현재 우리들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나 장정일은 소설 읽기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진정한 독서가 소설을 넘어서야 시작된다는 말이라면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문학을 통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자아와 세계에 대한 질문에 답을 구할 수 있다면 소설 읽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더구나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될 수 있을 법한 좋은 소설들을 가려 읽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추천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여행을 마칠 무렵 만난 노인의 입을 통해 작가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말한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는 저녁이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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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예술가들의 유쾌한 철학교실
프랑수와 다고네 외 22인 지음, 신지영 옮김 / 부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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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입시를 위한 논술이 계속되는 한 올바른 독서교육과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는 힘들어보인다. 대학에서는 아무리 뻔한 정답을 적어내는 틀에 박힌 답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말하지만 논술평가의 객관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상태에서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한 논술 평가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제시문을 분석하고 논제에 따라 글을 쓰는 형태의 현행 대학 입시 논술의 가장 큰 특징은 모범 답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주관식 시험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논술시험에서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지문 독해 능력이 필요하고 자신의 생각보다 출제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우선시 된다. 다양한 배경지식과 통합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고 싶지만 평가 척도와 객관성 확보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프랑스에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철학 논술 시험의 형식도 완고하다. 이성 중심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철학 교습 방법에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철학에 접근하기 어렵다고 본다. 프랑수아 다고네를 비롯한 22명이 철학적 질문들에 답하는 책 『삐딱한 예술가들의 유쾌한 철학교실』은 자유로운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바칼로레아에 던지는 도전장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스스로 점검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이 책도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머리말에서 20년간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옹프레의 이야기는 새겨 들을 만하다. 현행 프랑스의 논술시험인 ‘바칼로레아’에 관한 분석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옮긴이 신지영은 “철학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이미 주어진 답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을 비판하고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자기만의 답을 찾아 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판과 자기만의 답을 찾는 여정이 철학이라면 그것은 곧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결국은 철학은 우리들 삶의 과정이며 목적을 고민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러한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일률적인 형식이나 내용으로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 상식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다양한 형식으로 이러한 철학적인 질문에 답한다. 텍스트의 형식뿐만 아니라 시, 만화, 단편 소설 형태 등을 통해 철학과 비철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예술가의 행위와 철학자의 행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고민한다. 이런 화두들이 책머리에 소개된 후 철학적 주제별로 글들이 모여있다. ‘자연과 문화’, ‘의식, 무의식, 주체’, ‘언어, 의사소통’, ‘시간, 존재, 죽음’, ‘기술’, ‘예술과 아름다움’, ‘이성과 감성’, ‘의견, 지식, 진리’, ‘논리와 방법’, ‘신화, 과학, 철학’ 등 열 개의 주제가 그것이다.

각각의 주제에 해당하는 글들이 한 개 혹은 여러 개 모여있다. 글의 형식은 앞서 설명한 대로 전통적인 철학적 글쓰기가 아니라 주제를 해명하기 위한 다양하고 신선한 시도들이 선보인다. 시, 사진, 만화 등 예술의 다양한 형태가 동원된다. 다만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과 태도가 예술가의 것이든 철학자의 것이든 그 고민의 깊이와 표현의 방법면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언어가 모든 것에 우선할 수는 없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의 고민과 인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텍스트에 의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화가, 작가, 교사, 유전학자, 철학교수, 연출가, 번역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모았기 때문에 다소 산만하고 소략하다는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바칼로레아’를 이해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제시하는 문제점의 개선 방향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다. 이 책에 선보이는 다양한 형식과 자유분방한 내용들은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학습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바칼로레아를 위한 고민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주제가 모두 대학 입학 자격 철학 시험에서 제시되는 것들이지만 시험에서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형식과 조건들로 가득하다. 철학가의 사상과 이론을 암기하는 것은 죽은 철학이다. 살아가면서 철학에 대한 욕구를 잃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 낡아빠진 형식에 대한 도전, 기발하고 독창적인 방식, 세계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이 이 책의 지향점이 아닌가 싶다. 현실에서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바칼로레아의 주제가 실제 생활에서 어떻 의미를 갖고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대한민국의 대학입시 논술 주제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토론하며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주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실제 우리가 지향해야할 논술의 목표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과 거리가 먼 시험용 논술 대신 늘 생각하며 토론하고 책 속에서 고민했던 주제들을 대학 입시 논술에서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책읽기와 글쓰기가 곧 철학이며 삶의 한 방법임을 깨달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10102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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