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우리는 그렇게 모든 것을 놓고 간다. 소멸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목표와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없다. 유행가 가사처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대충 살자는 말이 아니라 그러니까 잘 살아 보자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잘 산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고 명예를 얻고자 하며 진정한 사랑을 원하기도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기준과 삶의 목표가 자신의 삶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분석을 빌리지 않더라도 삶의 가치 기준을 타인의 그것과 늘 비교하며 불안해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맹목적으로 내면화된 기성세대의 경쟁적 질서일 뿐일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회적 가치도 영원할 수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진실도 절대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이다. 흔희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따라 역사를 구분하기도 하고 사회제도나 문예사조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인간 사회를 혹은 개인의 삶을 간단하게 정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학이라는 창을 통해 타인과 사회와 역사를 관음한다. 소설은 늘 우리에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타인의 삶과 과거의 삶을 돌아보고 내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소설이면 좋은 평가를 얻게 된다. 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수로의 『남아 있는 나날』은 독특한 소재와 편안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삶의 의미를 묻고 있다.

1956년 7월 달링턴 홀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근대화의 과정을 한 명문 귀족 집안의 집사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사회와 역사를 조망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20세기 초 ‘달링턴 홀’의 집사로 살아야 했던 스티븐슨의 내면을 통해 품위와 명예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이 소설은 사회문화적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을 통해 삶의 가치를 고민하게 한다. 작가는 개인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고위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아 온 한 귀족 가문의 집사를 통해 인간적 진실이란 과연 무엇인지 묻고 있는 듯하다.

영국인의 문화와 역사적 상황일 잘 녹아 있는 소설이지만 제2차 대전 당시의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1인칭 주인공으로 자신의 삶을 서술하는 스티븐슨은 총무로 일했던 켄턴 양에 대한 기억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달링턴 홀의 주인이 바뀌고 미국인 패러데이 어르신을 모시게 된 스티븐슨은 6일간의 여행을 떠난다. 달링턴 홀과 함께 한 묶음으로 집의 일부로 살아온 집사의 여행은 낯설기만 하다. 오래 전 결혼하기 위해 달링턴 홀을 떠난 켄턴 양의 편지를 받고 여행 중에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 달링턴 홀에 완벽한 그녀의 일솜씨가 필요할 뿐이라고 다짐하는 스티븐슨의 태도와 여행 중에 과거 회상 형식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제각각 다른 이야기들을 읽어낼 수 있다. 켄턴 양의 사랑, 달링턴 홀의 역사, 영국의 귀족 문화, 제2차 세계 대전의 시대적 상황 그리고 스티븐슨의 품위 등.

6일 간 영국의 곳곳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늙은 영감이 되어버린 집사 스티븐슨의 생각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 온 삶을 정리하게 된다. 제목처럼 ‘남아 있는 나날’을 어떻게 보내게 될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스티븐슨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철저하게 주인을 모시는 삶을 살았던 집사는 빈틈없이 일처리를 하기 위해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켄턴 양을 외면한다. 그것이 고통스런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품위와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나가버린 시대의 중심에서 서 있던 스티븐슨이 이제 주인이 바뀐 달링턴 홀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지 궁금하지는 않다. 여행을 마치면서 새로 바뀐 주인을 잘 모시기 위해 농담의 기술을 익혀야겠다고 다짐하는 스티븐슨은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다는 것이 한 개인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김남주는 해설에서 한나 아렌트의 『예수살렘의 아이히만』을 예로 들어 스티븐슨의 직무에 대한 놀라운 성실함을 ‘악의 평범성’에 비유한다. 개인의 입장에서 혹은 일과 직업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이히만은 얼마나 평범하고 충성스런 부하였는가. 주인공 스티븐슨의 일이 타인에게 끔찍한 불행을 가져 온 것은 아니지만 켄턴 양을 통해 작가는 타인의 관점에서 스티븐슨이라는 독특한 인물을 객관화시킨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깊은 고민과 통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 소설을 통해 현재 우리들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나 장정일은 소설 읽기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진정한 독서가 소설을 넘어서야 시작된다는 말이라면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문학을 통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자아와 세계에 대한 질문에 답을 구할 수 있다면 소설 읽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더구나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될 수 있을 법한 좋은 소설들을 가려 읽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추천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여행을 마칠 무렵 만난 노인의 입을 통해 작가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말한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는 저녁이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라고…….

101024-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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