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예술가들의 유쾌한 철학교실
프랑수와 다고네 외 22인 지음, 신지영 옮김 / 부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입시를 위한 논술이 계속되는 한 올바른 독서교육과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는 힘들어보인다. 대학에서는 아무리 뻔한 정답을 적어내는 틀에 박힌 답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말하지만 논술평가의 객관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상태에서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한 논술 평가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제시문을 분석하고 논제에 따라 글을 쓰는 형태의 현행 대학 입시 논술의 가장 큰 특징은 모범 답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주관식 시험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논술시험에서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지문 독해 능력이 필요하고 자신의 생각보다 출제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우선시 된다. 다양한 배경지식과 통합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고 싶지만 평가 척도와 객관성 확보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프랑스에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철학 논술 시험의 형식도 완고하다. 이성 중심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철학 교습 방법에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철학에 접근하기 어렵다고 본다. 프랑수아 다고네를 비롯한 22명이 철학적 질문들에 답하는 책 『삐딱한 예술가들의 유쾌한 철학교실』은 자유로운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바칼로레아에 던지는 도전장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스스로 점검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이 책도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머리말에서 20년간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옹프레의 이야기는 새겨 들을 만하다. 현행 프랑스의 논술시험인 ‘바칼로레아’에 관한 분석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옮긴이 신지영은 “철학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이미 주어진 답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을 비판하고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자기만의 답을 찾아 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판과 자기만의 답을 찾는 여정이 철학이라면 그것은 곧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결국은 철학은 우리들 삶의 과정이며 목적을 고민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러한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일률적인 형식이나 내용으로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 상식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다양한 형식으로 이러한 철학적인 질문에 답한다. 텍스트의 형식뿐만 아니라 시, 만화, 단편 소설 형태 등을 통해 철학과 비철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예술가의 행위와 철학자의 행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고민한다. 이런 화두들이 책머리에 소개된 후 철학적 주제별로 글들이 모여있다. ‘자연과 문화’, ‘의식, 무의식, 주체’, ‘언어, 의사소통’, ‘시간, 존재, 죽음’, ‘기술’, ‘예술과 아름다움’, ‘이성과 감성’, ‘의견, 지식, 진리’, ‘논리와 방법’, ‘신화, 과학, 철학’ 등 열 개의 주제가 그것이다.

각각의 주제에 해당하는 글들이 한 개 혹은 여러 개 모여있다. 글의 형식은 앞서 설명한 대로 전통적인 철학적 글쓰기가 아니라 주제를 해명하기 위한 다양하고 신선한 시도들이 선보인다. 시, 사진, 만화 등 예술의 다양한 형태가 동원된다. 다만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과 태도가 예술가의 것이든 철학자의 것이든 그 고민의 깊이와 표현의 방법면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언어가 모든 것에 우선할 수는 없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의 고민과 인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텍스트에 의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화가, 작가, 교사, 유전학자, 철학교수, 연출가, 번역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모았기 때문에 다소 산만하고 소략하다는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바칼로레아’를 이해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제시하는 문제점의 개선 방향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다. 이 책에 선보이는 다양한 형식과 자유분방한 내용들은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학습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바칼로레아를 위한 고민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주제가 모두 대학 입학 자격 철학 시험에서 제시되는 것들이지만 시험에서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형식과 조건들로 가득하다. 철학가의 사상과 이론을 암기하는 것은 죽은 철학이다. 살아가면서 철학에 대한 욕구를 잃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 낡아빠진 형식에 대한 도전, 기발하고 독창적인 방식, 세계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이 이 책의 지향점이 아닌가 싶다. 현실에서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바칼로레아의 주제가 실제 생활에서 어떻 의미를 갖고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대한민국의 대학입시 논술 주제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토론하며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주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실제 우리가 지향해야할 논술의 목표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과 거리가 먼 시험용 논술 대신 늘 생각하며 토론하고 책 속에서 고민했던 주제들을 대학 입시 논술에서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책읽기와 글쓰기가 곧 철학이며 삶의 한 방법임을 깨달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10102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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