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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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은 삶에 대해 새로운 질문이 많아질수록 세상을 새롭게 살아갈 용기가 더 많아지는 존재라고 믿는다. 질문과 함께, 질문에서 인간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인간은 새로운 사회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내가 학생들과 함께 나눈 위로이자 희망이며 격려이다. - P. 26쪽, 들어가는 글 ‘너흰 괜찮아’ 중에서

매우 인상적인 서문이다. 정치가 아닌 학문의 영역은 정답이 아니라 영원히 질문을 던지는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사회학의 관점에서 일반적인 현상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이론에 불과하다.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예측하기도 힘들고 수많은 변수들이 숨어있기도 하다. 하지만 학교는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고 해결할 방법도 의지도 없다. 고등학교는 대입 준비를 위한 전략을 마련하느라 경쟁을 벌이고 있고, 대학은 취업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학생들의 스펙 쌓기 경연장이 되었다. 문제가 있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 문제의 해법은 제각각이다.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입장 차이만큼이나 20대를 바라보는 눈도 다르다.

곧 수능이 다가온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수능을 치르는 순간 사회적 계급이 결정되고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수험이 루저가 된다. 서울대학교 법대와 의대를 정점으로 모든 수험생은 콤플렉스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대한민국에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이 거대한 피라미드의 모래알로 편입된다는 의미이다. 칼날처럼 냉정한 현실을 돌아보면 이 문제를 간단하게 바라볼 수가 없다. 얽히고 꼬인 사슬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원인과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되지만 서로 다른 기득권, 계층 간의 이익, 이기적 욕망들이 뒤엉킨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88만원 세대』가 한국 사회를 풍미한 것은 신자유주의 질서와 세계화의 바람이 몰고 온 거대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 풍성한 비판과 논란이 있었지만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세대의 명칭만큼은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대한민국 20대의 자화상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무섭기까지하다. 현실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일은 슬픔과 연민을 넘어선 자리에 분석과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보호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십대와 달리 세상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으며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모르는 20대를 다시 보자. 사회, 정치, 경제 각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거나 정규직으로 취업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아니고 ‘잉여’라는 말로 불리는 세대의 아픔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이른바 ‘원세대’(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와 ‘동덕여대’에서 강의를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대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저자의 분석이 잘 어우러진 책이다.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1부에서는 현재 대학과 대학생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2부에서는 정치와 민주주의, 교육, 가족, 사랑, 소비, 돈, 열정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혁명에 냉소하고 팔리기 위해 나를 전시하고 열정과 삽질 사이에서 고민하며 돈은 자유라고 외치는 세대의 아픔은 어떤가. 성장 신화에 매몰된 모습은 우리들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의 모습이다.

이처럼 지금 우리는 속물들이 들끓는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도덕이 모든 비판과 단죄의 잣대가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속물들이야말로 진실로 도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 P. 95

학교는 이미 정글과 전쟁터를 방불한다.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경쟁체제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게 한다. 1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루저가 되는 세상, 마치 정글처럼 보이지 않는 폭력과 억압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 감정노동의 공동체가 되어버린 가족 등 저자가 20대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말하는 모든 부분이 너무 익숙해서 낯설다. 이 책은 이렇게 살아 숨쉬는 사회학 교과서로 읽힌다.

특히, ‘사랑, 비싸다’라는 작은 제목이 아프게 들어온다. 데이트 비용에 대한 이야기가 현실감 있게 서술된다. 대학생들의 고백과 현재 20대들의 모습이 겹친다. 낭만적 사랑은 꿈도 꿀 수 없고 이미 사랑조차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들에게 기성세대가 해 줄 말이 있을까. 서두에서 말했듯이 저자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용기’를 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등가교환’을 이야기해야 하는 현실은 아득하기만 하다.

과거의 사랑이 손해를 감수하고 일방적으로 퍼줌으로써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였다면, 지금은 등가교환을 통하여 서로의 곤궁함을 배려한다. 등가교환이야말로 동등성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새로운 형식이다. - P. 160

대학의 서열화, 고용없는 성장, 승자독식, 비정규직, 정치적 냉소, 가족 공동체 등 이 책에는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지나치게 나이브하게 드러내는 방식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현실 그대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저자는 아주 소중한 책을 한 권 세상에 소개하고 있다. 시대를 읽어내는 통렬함은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할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과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구조적 모순과 현실의 문제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고 고민하면서도 해결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누구의 문제인가.

위험을 각오할 용기가 없다면 이 책도 한낱 세태 보고서에 끝날 위험성을 내포한다. 들어가는 글에서 ‘너희 괜찮아’라고 말한 저자의 의도는 선생의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감상적 언사가 아니라 우리 시대가 20대에게 보내는 격려와 공감의 메시지여야 한다.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지 않는다면 질문은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이제 우리는 한발 내디뎌 다함께 걸어갈 방향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101027-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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