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디자인은 현대생활 그 자체이다.” - 나이젤 휘틀리(『사회를 위한 디자인』) 이것은 파인애플이다. 사과 한 쪽이 파였으니 파인 애플. 시덥잖은 농담에 눈살을 찌푸릴 수는 있겠지만 이 로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청바지에 검은색 터틀넥을 입은 스티브 잡스와 결합된 애플사의 로고는 첨단 과학의 이미지라기보다 현대사회의 단순한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과 그에 걸맞는 편의성으로 지구인을 사로잡고 있다. 우리는 왜 애플에 반응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차별화 시켰을까. 이제 하나의 기호와 상징이 되어버린 애플의 제품들을 찬찬이 들여다보자. 아침에 눈뜨고 저녁에 잠들 때까지 한 순간도 손에서 떠나지 않는 휴대용 전화기는 현대인의 신체 일부가 되었다. 아이폰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은 물론이고 시각적 단순성과 편의성을 앞세워 열풍을 몰고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단순성과 편의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디자인 때문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디자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이젤 휘틀 리가 말한대로 디자인이 현대생활 그 자체라는 말에 반박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아이폰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사용하는 모든 물건과 공간은 ‘디자인’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익숙함은 디자인에 대한 우리들의 시선을 무디게 한다. 보이는 곳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도 디자인은 숨어 있다. 그래서 디자인은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호와 상징이 될 수 있다. 김은산의 『비밀 많은 디자인씨』는 일반인들을 위해 디자인을 통한 세상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인문학에 바탕을 두지 않은 어느 학문 분과도 영혼 없는 육체가 되기 쉬운 것처럼 인간에 대한 관심과 철학적 고민이 없는 디자인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일시적 자극을 제공할 뿐이다. 이 책은 디자인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그것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담겨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십대를 위해 썼다고 밝히고 있지만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필요하고, 디자인 자체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의지와 열정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 열망이 있는 사람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의 삶과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전해주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곳곳에 저자의 깊은 고민과 한숨 독자에 대한 따뜻함이 묻어난다. 한 권의 책을 디자인(구상에서 기획, 편집에 이르기까지)하고 그것을 독자에게 선보이는 과정은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과 같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고 하듯이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에게 전해지고 그것이 독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은 살아 숨쉬는 유기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나 역동적이고 활기 넘치는 책의 일생을 꿈꾼다. 이 책은 ‘디자인’을 통해 충분히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성찰과 세상에 대한 통찰을 키워줄 수 있는 책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디자인의 논리는 실은 ‘형태는 이윤을 따른다’는 현실의 논리, 시장의 논리를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 P. 88 책도 마찬가지지만 현대사회에서 디자인은 철저하게 ‘이윤’에 복무한다. 기능과 형태의 오래된 논쟁에서 벗어나 이제는 모두 ‘자본’에 복종한다. 시장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디자인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힘주어 강조하듯이 닫힌 디자인이 아니라 열린 디자인의 가능성에 도전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들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디자인은 상업적 이익을 위한 포장지로만 기능할 것이다. 지속가능한 가능한 삶을 위한 디자인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세상의 모든 사물을 관찰하는 눈이 필요하다. 형태와 기능에 대해서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디자인은 공공을 위해, 장애와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어 사회적 소수자까지 배려해야 한다. <중요한 것을 먼저 하자 2002>에서 주장하듯이 환경과 사회문화의 전영역에 걸쳐 디자인이 필요하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디자인을 고민하는 것은 우리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디자인은 막대한 자본이나 앞선 기술, 거대한 계획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세상을 근심하고 배려하는 디자이너의 작은 손길과 정성 그리고 자발적인 참여와 의지를 통해 차근차근 가능해진다. 그것이야말로 디자인의 진정한 가능성이자 힘일 것이다. - P. 183 저자는 이렇게 디자인의 힘을 믿는다. 작은 손길과 정성 그리고 자발적인 참여와 의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듯이 그런 디자인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내 삶을 디자인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우리들 주변의 소소한 디자인들이 어떠해야 하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엉뚱하게도 오늘은 남은 생을 아름답게 디자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01029-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