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쓴다는 것 - 일상과 우주와 더불어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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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무심코 고른 책이 뜻밖의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지하철을 탈 일이 있어 짧게나마 읽을 책을 고른 것이 <시를 쓴다는 것>이었다. 작가는 일본에서는 유명하다고 하는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글씨가 큼직하고 내용이 짧아 딱 지하철 안에서 읽기 좋다고 해서 고른 것 뿐이다.

 

이 책은 대담집이다. 시인 다나카와 슈타로에게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는 식이다.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길래 신예 작간가 싶어 앞날개의 약력을 확인해 보니 세상에나 일흔여덟. 상상이 가지 않는 나이인데 어찌 이리 발랄하게. 

 

딱히 잘 하는게 없어 시인이 되었고 시인으로 밥을 먹고 살기 위해 공장을 풀가동하듯 닥치는 대로 시를 생산해냈다는 말에 바로 이거야라고 손총알을 쏘았다. 그래, 시인도 하나의 직업인데 뭔 고상, 그저 쓰고 벌고 쓰고 벌면 그만이지.

 

시인은 언어의 유희자이다. 쉽게 말하면 말장난이다. 일본어로 되어 있지 않아 그의 시가 딱 와닿지는 않지만 유타로의 시는 기본적으로 언어를 갖고 놀고 있다. 이를 테면 의성어로 내용을 연상시키는 식이다.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시인이 없는가? 여든 가까이 되어서도 머리를 긁적이며 어떠다보니 시인이 되었지만 조금이라도 늦게 태어났다면 이따위 일은 하지 않았을거에요, 라며 피식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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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6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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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문학전집 세례를 받은 세대다. 하루가 멀게 출간되던 전집과 그 전집을 팔러다니는 아저씨들을 숱하게 마주했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다. 누군가는 일본책을 그대로 중역하여 엉터리책이라 비판하지만 그 때는 휴대폰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었다. 오로지 책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투명인간>은 제목은 다들 들어봤지만 직접 읽어본 이들은 적은 책이다. 마치 <프랑케슈타인>이나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나도 그랬다. 그냥 투명인간으로 돌아다니겠지라는 지레짐작에 단 한번도 읽어 본 적이 없다. 대신 <도깨비 감투>를 보았다.

 

영화 <책도둑>에서는 <투명인간>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치의 눈을 피해 독일인 집에 숨어든 유대인은 매일 조금씩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는데 그 책이 <투명인간>이었다. 바깥의 스산한 풍경과 책의 내용이 아우러져 묘한 아우라를 전해주었다.

 

그 아우라에 속아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놀라웠다. 단순히 아동용으로 요약하여 소개할만한 책이 아니었다. 스스로 원하여 투명인간이 된 것이 아니기에 그는 끈임없이 갈등하여 정체성에 혼돈을 겪는다. 대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누구나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남자 아이라면 여자 목욕탕에 들어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듯이. 그러나 막상 내가 투명인간이 되고 아무도 내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조지 웰스는 투명인간의 실존적 고민이 궁극적으로 현대인의 비극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곧 효용이 기준이 된 사회에서는 쓸모없는 인간은 있느나 마나한 존재가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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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Man - Law(법)와 Low(낮은)도 구별 못하던 은행털이 5범이 변호사가 된 인생역전 스토리
숀 홉우드.데니스 벅 지음, 정혜진 옮김 / 트리거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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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드디어 탄핵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하야를 하거나 쿠데타로 쫓겨나거나 총에 맞아 죽거나 퇴임후 자살하는 일은 있었지만 법에 의해 파면된 것은 처음이다. 우리가 법치주의 국가에 살고 있음을 생생히 증언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여기 감옥에 갇힌 사람이 있다. 배움이 적고 유식한 친구가 주변에 없어 죄에 비해 형량이 큰 범죄인이다. 아차피 나가봤자 정글이니 체념한채 감방에서 썩을 것인지 아니면 부당함을 호소하여 조금이라도 빨리 나갈지 고민할 여력도 없다. 그에게 있는 것은 시간뿐이다.

 

교도소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도서관까지는 아니더라도 순회문고라고 읽기를 원하는 죄수에게 전해주기도 한다. 숀 홉우드는 다행히 책이 넘쳐나지는 않지만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었다. 아무도 들추어보지 않는 법전은 온통 그의 차지였다.

 

매일 시간 날 때마다 법전을 읽은 그에게 영화같은 일이 벌어진다. 형량의 부당함을 알리는 탄원서를 법원에 직접 제출한 것이다. 날고 기는 변호사의 탄원서도 읽지 않고 쌓아두고나 버리는 판사가 어떻게 숀의 탄원서를 보게 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잘 썼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변 법조인의 말을 조금이라도 귀 담아 들었다면 탄핵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법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막말을 퍼부은 결과는 당연히 파면이었다.

 

법이란 상식과 논리에 근거한 것이다. 숀은 이 두 무기를 갈고 닦아 자신은 물론 거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동료 죄수들을 도울 수 있었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주변에 무기를 쌓아두고도 아집에 빠져 스스로를 포함하여 그나마 그를 지지하는 이들을 구렁텅이로 빠뜨려 버렸다. 법의 처분을 우습게 여긴 당연한 결과였다.

 

덧붙이는 말

 

매우 기념비적인 책임에도 출판사(?)를 잘못 만나 절판되고 말았다. 부디 다른 곳에서 이 노다지를 다시 발굴해서 보다 깔끔하게 개정판을 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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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다섯 명의 오케스트라 비룡소의 그림동화 20
칼라 쿠스킨 지음, 정성원 옮김, 마크 사이먼트 그림 / 비룡소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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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의 공통 취미는 두개가 있다. 하나는 신문 보기, 또 하나는 연주회장 가기. 신문이야 각자 따로 보아도 상관없지만 콘서트홀은 혼자 가기가 영 사납다. 외로워 보이는게 문제가 아니라 혹시 화장실에 가야 하거나 잠깐 졸아도 눈치 보지 않으려면 파트너가 있어야 편하니까.

 

<백다섯 명의 오케스트라>를 보며 왜 굳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연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단지 보다 좋온 소리를 웅장하게 들려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함께 하는게 편하기 때문이다. 만약 독주라면 얼마나 긴장이 되겠는가? 온 청중이 자신의 손가락이나 입술만 바라보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현기증이 난다. 합주나 오케스트라는 살짝 실수해도 자신들끼리는 알아채겠지만 관객들은 아무리 빼어난 귀를 가졌다고 해도 실수를 지적하기가 힘들다. 물론 와장창한다면 다르겠지만.

 

이 책은 클래시컬 음악이라는 다소 생소하고 딱딱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그들도 우리처럼 아침에 일어나 이빨을 닦고 얼굴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그런 보통 사람들이 일궈내는 오케스트라의 화음이란 또 얼마나 멋진가? 다음주 정말 오랫만에 연주회장에 간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독주 연주회. 벌써부터 셀렌다.

 

덧붙이는 말

 

내용도 좋지만 이 책을 사게 된 결정적 계기는 그림때문이었다. 어딘가 그림이 눈에 익는다 싶어 자세히 보니 역시나 <나무가 좋다>에서 일러스트를 맡았던 분이다. 그 주인공은 마크 사이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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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의 그림책 - 현실과 환상의 경계 그림책 삼부작
이수지 지음 / 비룡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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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작품을 만나고 나면 대체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있었을까 궁금증이 든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놀라움의 비밀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저장공간이 무한대가 되면서 각종 후기나 부록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영화의 경우 제작과정, 인터뷰, 비하인드 스토리, 영화 코멘터리 등을 담은 디브이디가 출시되고 있다. 어떤 때는 본편보다 더 길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썩 반갑지 않다. 도리어 상상력이 방해되는 기분이 들어서다. 영화의 멋진 장면이 알고보니 푸른 천 앞에서 펼쳐진 가공의 연기였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겠는가? 작가는 신비감을 주어야 한다. 독자들을 끊임없이 알쏭달쏭하게 만들어야 한다. 심지어는 작가 스스로도 내가 왜 저렇게 표현했지 스스로 의문이 들 정도로.

 

이수지의 그림책은 비밀공간의 문을 살짝 열어준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특유의 작품세계를 엿보는 기분을 준다. 그럼에도 끝까지 그 문을 활짝 열어주지는 않는다. 역시 작가만의 노하우가 있군, 하고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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