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영포자를 위한 국내파 영어연수
문성현 지음 / 혜지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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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라는 책이 있었다. 한창 영어책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캐나다에 이민간 일러스트레이터가 영어의 어원을 그림과 곁들여 낸 책이었다. 꽤 팔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단 영어뿐만이 아니라 책읽기도 일종의 꼬리물기다. 곧 어떤 책을 읽어 감명을 받았다면 저자가 쓴 다른 책이나 책속에서 언급한 다른 서적에도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대한민국 영포자를 위한 국내파 영어연수>는 김민식의 추천을 받아 읽었다. 정확히는 왕초보 영어지만 같은 저자이니 꽤 괜찮을 것 같아 선택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어를 학문적으로만 접근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추천할 만한다. 저자 스스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터라 영어에 대한 접근방법부터가 색다르다. 구체적으로 뭉터기(chunk)로 외우라거나, 인토네이션에 신경을 써라는 식이다.

 

사실 영어가 잘 들리지 않는 이유는 우리 말식으로 외국어를 대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치사나 관계사는 묵음처리가 되거나 연음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알아들을 재간이 없다. 또한 문법에 치중하여 우리 식으로 번역하여 다시 영어로 되돌리려다가는 배가 산으로 간다. 차라리 용법을 철저하게 익혀 필요한 내용을 첨부하는 식으로 배워야 한다.

 

그렇다면 기초적인 이런 영어공부법이 왜 공교육에게 철저하게 외면되었는가? 일제교육의 잔재때문이다. 영어가 입시과목이 됨으로써 변별력을 키우기 위해 말하기가 듣기는 배제하고 오로리 이리조리 쪼개며 숨은그림찾기를 해 온 탓이다. 만약 음악시간에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고 화성을 배우고 받자를 세고 마디를 정리하는 법을 배운다고 상상해보라. 물론 이런 수업이 아예 필요없다는게 아니다. 최소한 음대에 가서 전문교욱을 받을 때나 필요하다는 말이다. 대학원 영어수업시간에나 배울 복잡한 문법구조를 중 1에 들이대니 영어가 늘 턱이 있나? 가뜩이나 외국말이라 두려운데 도리어 더욱 공포를 조장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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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보급판)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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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전이나 전기는 어렸을 때나 읽는 책이라는 편견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른이 되면 더이상 속지 않기 때문이다. 우러러보기만 했던 영웅도 사실은 찌질이였다는 사실을 알면 더이상 쳐다보기도 싫듯이. 따라서 나이가 들어서도 인물을 다룬 책을 좋아한다면 그건 유아적 퇴행을 겪고 있다는 증거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따금 회고록 따위가 아니라 진짜 리얼한 책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사람의 미덕과 악행이 고스란히 철저하게 파헤쳐지는. <스티브 잡스>가 그렇다. 잡스 스스로도 미화된 인간으로 꾸며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다만 어리석은 짓도 많이 했지만 자신이 제대로 한 일만큼은 제대로 평가받기를 원했다. 아마도 췌장암 수술을 받고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리라.

 

사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이미 스탠포드 대학 졸업 연설문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세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마지막 주제가 바로 죽음이었다. 만약 오늘이 내게 남은 마지막 날이라면 당신은 늘 하던 일을 그냥 할 것인가, 라는 철학적 물음을 던진 그는 더이상 다른 사람의 시선따위 신경쓰지 말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라고 강조한다. 동시에 늘 허기지고, 항상 어리석은 사람이 되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단지 멋진 말이기만 한 게 아니라 잡스의 평소 신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미 죽음 이후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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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대니 보일 감독, 케이트 윈슬렛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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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소 잠잠해졌지만 한동안 스티브 잡스 열풍은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까지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의 말과 행동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으며 사망후에는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한 인물을 시간을 두고 보면 달리 판단하게 마련이다. 잡스는 시대를 잘 타고난 탁월한 에디터였다는 평도 그 중 하나다. 그럼에도 그가 대단한 이유는 스스로도 자신을 미화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내용이 많은 그의 전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영화 <스티브 잡스>도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에 세운 회사에서 쫓겨나 절치부심 다시 회장으로 돌아와 신제품을 발표하는 현장. 잡스는 얼마나 흥분되고 초조하고 두려웠을까? 그 순간 배다른 딸이 찾아와 친자소동을 벌이고, 프리젠테이션에 쓸 음성은 나오지 않고, 직원들은 대놓고 서로를 욕하기 바쁘다. 과연 이대로 무너져버릴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신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것인가?

 

구질구질한 인생 스토리를 담거나 뭔가 극적인 이야기를 꾸며대는 대신 역사적인 장면을 교차편집함으로써 더욱 실감나는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극중 인물이 실제 잡스와 너무 닮지 않았다거나 기승전결없는 다큐같다는 비평 따위는 한방에 날려버릴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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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톰 행크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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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리>를 보며 세월호를 떠올린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한 쪽은 무조건 대량으로 사상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전원 안전하게 구조된 반면 다른 곳에서는 모두가 살아 마땅한 사고에서 어처구니없게도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차이는 단지 비행사나 선장 개인의 능력때문만은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달랐다. 영웅적인 구조를 마치고도 청문회에 끌려가 곤역을 치른 나라가 미국이라면 한국은 청와대가 앞장서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언젠가 세월호도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다. 과연 진상이 다 알려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침몰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는 밝혀야 한다. 정권이 바뀐 지도 한참인데 왜 아직도 그날의 진실은 미궁에 빠져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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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작가론 - 디테일이 생명이다

 

 

작가 황석영이 출연한 제이티비씨의 <차이나는 클래스>를 보았다. 총 2편에 걸친 강연에서 1부는 광주항쟁, 2부는 방북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는 내내 눈물이 나는 장면이 많았다. 특히 광주의 한을 영상과 곁들여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한동안 먹먹한 기분에 젖었다. 역시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2부 말미에는 작가론을 다루었다. 그는 감옥에 있을 때 이러다가는 출소후에도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토로했다. 하루종일 거의 혼자서 지내야하는 외로움은 말과 글을 잃어버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이야말로 작가에게는 천혜의 조건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유일한 대화상대가 되어 몇년을 보내는 것은 관념의 세계에 빠져드는 지름길이다. 곧 추상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 섣부른 깨달음을 얻은 척하게 된다. 감옥에서 나와 마치 모든 세상 이치를 다 알게 된 듯 생활한복을 입고 산속에 들어가는 사람이 그런 예이다. 그리곤 뜬금없이 자연을 예찬하는 글들을 써댄다. 황성역은 그 위험성을 바로 깨달았다. 해결방법은 일상의 복원이었다. 잡범들과 어울리고 모래바닥에 떨어진 철조각을 주워 열흘이 넘게 갈고 닦아 과일깎는 칼을 만들며 구체성을 잃지 않으려 기를 쓰고 노력했다.

 

실제로 비록 감옥안은 아니지만 작가들은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글 또한 자폐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소설가들은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서양처럼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후 자신의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나이 40이 넘어 글을 쓰는 전업 작가가 드물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아주 젊었을 때부터 일상에서 벗어나 글만 써대니 죄다 독백만 하게 된다. 그 결과 어떤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렇다고 모든 걸 죄다 경험할 수는 없는 일. 방법은 글쓰기외의 일상을 발굴하고 개척해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루 평균 10킬로미터를 뛰고 김영하가 요리에 집중하고 색칠하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단지 소설쓰기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자기만의 방에 갇혀 각혈을 하며 호롱불아래에서 글을 쓰는 낭만주의 작가 시대는 이미 지난지 오래다. 도리어 건강한 신체를 바탕으로 수도승같은 규칙적인 생활만이 질좋은 글을 오래 쓸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밤새 술마신 다음날 미친듯이 영감을 받아 손이 가는대로 글이 써지는 환상에서 벗어나야민 소설가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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