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답답함을 느끼게 한 일..
2005.02.25
 

 

1.


30대 중반의 버스 운전 기사가 찾아왔다.

 

채용을 담당하는 직원이 1년 짜리 계약서를 내밀기에 1년 계약직이라면 계약서를 쓸 수 없다고 하자 당장 내일부터 일할 사람이 많이 부족하며(그래서 10여명이 넘는 사람을 같은 날 그것도 일요일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당신은 이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으니 이 회사에 대해서 잘 알지 않느냐면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정규직이 되니까 걱정 말고 같이 일하자고 했단다.


(그는 그 회사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다가 퇴사하고 2년 정도 다른 일을 하기도 했으며, 계약 당시에는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1년이 지났다.


회사는 그 보고 그만 두라고 했다. 1년 지나면 정규직이 된다는 말을 했는지는 지금에 와서는 확인할 수가 없단다(그런 말을 한사람이 퇴사를 했다면서 말이다).


이럴 때 그는 어떻게 될까 ?


계약서는 1년 짜리를 쓴 것은 분명하고 정규직이 될 거라고 말한 사실이 있는지는 확인이 안 된다면 말이다. 법적으로는 구제 받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즉 그는 이제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



2.


임금을 받아서 먹고 살게 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때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적어도 중학교 때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쳐야만 한다는 생각은 몇 번 말한 바와 같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 중 거의 대다수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어떠한 기초적인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직장생활을 계속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고 본다).


그 사람도 학교 등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노동계약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갖게 될 기회를 가졌었다면 위와 같은 일 - 실직 - 을 지금 경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모두 그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학교나 사회, 법과 제도의 책임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조금만 더 생각을 했더라면 조금만 더 주위에 눈을 돌려 자세히 알아보려는 노력을 했더라면, 지금에 와서 그 문제를 풀려고 시간과 비용 정력을 들여 법적 다툼을 하게 되었을까 ?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채용 과정에서 1년 후의 자기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사실 - 즉 계약서의 계약기간은 회사에서 형식적으로 만들었을 뿐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계약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발언이 있고, 그 발언을 한 사람이 회사의 채용 업무를 담당하는 따라서 채용에 있어서는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라는 등의 중요한 사실 - 에 대해 왜 그렇게 간단히 듣고만 지나쳤는지를 이해하기 어려워서, 그래서 답답함을 느꼈고 그에 이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그를 욕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고...헐~

 
3.


그건 그렇다 치고 그는 그 때 당시에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까 ?


계약서에 서명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회사에서 위와 같은 발언을 하였다면 그 발언은 매우 중요하므로 계약서에 그 발언의 취지가 기재되도록 요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므로 이후 그 발언자와 다시 같은 문제로 대화를 하여 그 사실을 확인받아두었어야 했다. 문서로 확인받아 둔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회사의 방침이라는 발언을 녹음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한번 보다는 두번 세번 해두는 것이 좋다.


그렇게 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다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위와 같이라도 해두었다면, 막상 일을 당하고 나서 그런 발언을 한 사실 자체를 확인하지 못해 결국 불이익한 법적 판단을 받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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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5-02-2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 고등학교 사회에서 역대 대통령 업적 외우게 하는 대신 근로기준법을 가르쳐줘야 한다구요.

릴케 현상 2005-02-2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답한 일이네요-_- 근데 과연 그걸 녹음하는 건 가능한 일일까요? 두번 세번 묻는 것조차도...

숨은아이 2005-02-2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그러게요. 사회 과목에서 정말 사회 생활하는 데 필요한 건 가르쳐주지 않으니...
자명한 산책님/보통 사람이 대화를 녹음한다는 생각을 쉽게 하나요, 어디. 하지만 요즘은 휴대폰에 녹음이 됩니다. ㅎㅎ

릴케 현상 2005-03-0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대폰...007작전을 말하는 거였군요^^

숨은아이 2005-03-03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직하고 투명하게 살고 싶은데 왜 그런 기술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에 따르면, “이야기”라는 말이 생겨난 과정은 이렇다.

입아구(입아귀) -> 이바구 -> 이야기.

입아귀란 입의 양쪽 귀퉁이라고 한다. 입을 열면 벌어지기 시작하는 부분. 어, 그래? 그런 말이 있었어? 그래서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해 보았다.


아귀01
「명」「1」사물의 갈라진 부분. ¶장식장의 문짝이 아귀가 잘 맞질 않는지 여닫을 때마다 덜컹거린다. §「2」두루마기나 속곳의 옆을 터 놓은 구멍. ¶아귀를 트다/그는 두루마기의 아귀에 손을 넣고 종종걸음을 쳤다. §「3」씨앗이나 줄기에 싹이 트는 곳. ¶아귀가 트다. §「4」활의 줌통과 오금이 닿는 오긋한 부분. 「5」『북』'손아귀'의 북한어. 「6」『북』'입아귀'의 북한어. 「7」『북』익거나 힘을 주면, 금이 가거나 가닥으로 갈라지면서 버그러질 수 있게 감싸여 있거나 마주 접혀 있는 사이나 부분. ≒아금〔2〕. ¶아귀를 짝 벌린 밤송이들/아귀를 쩍 벌린 기중기의 바가지.≪선대≫§[<<아귀<신선>]


아항... 아귀란 대체로 무언가 “갈라지기 시작하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로구나. 그런데 북한에서는 손아귀도 아귀라고 한다고?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좌지우지...” 하는 식으로 “손아귀”란 말도 곧잘 쓰는데, 막연히 손바닥을 오그렸을 때 그 안쪽을 가리키는 말로만 생각해 왔다. “아귀”가 무언가 갈라지는 부분을 뜻하는 말이라면, “손아귀”의 진짜 뜻은 무엇일까? 다시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했다.


손-아귀
「명」「1」엄지손가락과 다른 네 손가락과의 사이. ≒수악02(手握). ¶그때 나의 손을 잡았던 형의 손아귀 힘이 얼마나 세었던지 나는 지금까지도 그 아픔을 잊을 수가 없다.≪김용성, 도둑 일기≫/마치 정체 모를 어느 손아귀에 목이라도 졸리듯이 갈수록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윤흥길, 완장≫ §「2」손으로 쥐는 힘. ¶남자의 억센 손아귀/손아귀가 매우 세다. §「3」세력이 미치는 범위. ¶우리 모녀는 이제야 그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그 며칠 사이에 주먹 패의 반 이상은 염상구의 손아귀 안에 들어와 있었다.≪조정래, 태백산맥≫§


그랬구나. 그러니까 손아귀는 원래 엄지손가락과 다른 네 손가락 사이, 손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하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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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2-25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갈래요...

숨은아이 2005-02-2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넹.

숨은아이 2005-02-25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상도 지방에서 이바구라고 하지요. 그러니깐 사투리가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셈이네요.

조석진 2011-06-17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헉... 지금까지 손아귀 제대로 몰랐던 ㅜㅜ 감사합니다.
 

곧 비가 올 듯 흐린 날씨에 왠지 기분이 썰렁하거나 찌뿌듯할 때, “을씨년스럽다”는 말을 쓴다. 그런데 그 말이 1905년 을사늑약이 맺어진 데서 나왔다고 한다.

을씨년스럽다
본뜻 : 을씨년은 1905년 을사년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긴 을사조약으로 이미 일본의 속국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당시, 온 나라가 침통하고 비장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날 이후로 몹시 쓸쓸하고 어수선한 날을 맞으면 그 분위기가 마치 을사년과 같다고 해서 ‘을사년스럽다’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다.
바뀐 뜻 : 남 보기에 매우 쓸쓸한 상황, 혹은 날씨나 마음이 쓸쓸하고 흐린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그런데 같이 흐린 날을 가리키더라도 좀더 느낌이 좋은 말이 있다.


잠포록하다 : 날이 흐리고 바람기가 없다.
바람이 불지 않으니 숲이며 물결이며 모두 잠잠하고, 날이 흐릿하여 조금은 무겁지만 포근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날씨다. 이럴 때 사람들의 기분은 대체로 가라앉아서 차분해진다. 이런 날씨는 오직 ‘잠포록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쓸쓸하거나 우울하다기보다 차분한 기분. 가라앉는 듯하지만 포근한 날씨. 그런데 난 지금까지 “을씨년스럽다”는 말은 자주 들었어도 “잠포록하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다. 세상살이나 인심이 잠포록하기보다는 을씨년스러웠기 때문일까. 삭풍이 불면 을씨년스럽다. 바람기가 없어야 잠포록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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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02-25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포록하다'는 말 참 예쁘네요.
어떤 날이면 잠포록하다는 말이 어울릴까, 이제부터 흐린 날을 잘 살펴보렵니다. ^^

물만두 2005-02-25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포록한 날은 아니지만 말이 이쁘네요. 바람불지 말고 잠포록한 날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조선인 2005-02-25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을씨년스럽스지않고 잠포록한 나날만 계속 되면 좋겠네요.

숨은아이 2005-02-2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만두님 조선인님, 모두 잠포록한 날이 기다려지시죠? 히히, 이 표현을 꼭 써먹어야 할 텐데.

숨은아이 2005-02-25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 사람들은 날씨와 자연 만물을 참 세세하고 다양하게도 구별하여 표현했어요. 그죠?

숨은아이 2005-02-26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에서 네모난 상자에 갇혀 살다 보니, 들과 산에서 하늘 땅 물을 다 보고 살던 때만큼 자연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게 되었겠죠...

balmas 2005-03-08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힛,
조선인님이 얼마전에 사용한 "잠포록한"의 출처가 바로 여기군요.
늦었지만 추천 하나 하고 갑니다. ^^

숨은아이 2005-03-08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조선인님이 그러셨던가요? 찾아봐야겠군요. ^^ 추천 감솨...
 



폐문장승득천금(閉門長勝得千金), “문 닫아거는 것이 천금을 얻는 것보다 백 번 낫다”니, 지난번에 본 “으뜸 가는 선비는 마음을 닫고 중간 가는 선비는 입을 닫으며 못난 선비는 문을 닫는다”(http://www.aladin.co.kr/blog/mypaper/610637)는 구절도 그렇고, 살다 보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닫아걸어야 하는 때가 있나 보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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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02-22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을 닫다, 마음을 닫다... 다른 구절하고 연결시키면 의미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왜 저렇게 닫아걸어야 하는지.. "자신을 지키라"는 의미인가요?

숨은아이 2005-02-22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찾아오는 이가 많으면 당파를 짓고 권력게임에 휘말리고 욕심도 생기고, 그래서가 아닐까 합니다. 책으로만 공부하던 옛날 이야기이겠지요. 저는 문 열어놓고 살고 싶어요. :-)

클리오 2005-02-23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말씀들을 듣고 보니 문닫아걸어야 할 곳이 많군요... ^^

숨은아이 2005-02-2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멋지세요. *.*
 

10년쯤 전인가, 지리산 뱀사골에 처음 갔을 때다. 뱀사골 산길이 어떤 데인 줄도 모르고, 그냥 기슭에서 산책만 하고 올 테니 등산화씩이나 필요할까 싶어 운동화 차림으로 갔더랬다. 그런데 뱀사골 산장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은 평평한 흙바닥이 손바닥만큼도 없이 온통 돌투성이였으니, 온 발바닥에 가득 물집이 잡혔다. 어흑.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에서 “너덜겅”이란 낱말을 보니 이때 일이 생각난다. “너덜겅”, 줄여서 “너덜”은 “돌이 많이 깔린 비탈”을 뜻한다. 이렇게 너덜이 깔린 길은 “너덜길”이다. 그러니 지리산 뱀사골에서 산장으로 오르는 길은 틀림없이 너덜길이겠다. 옛날에 이런 길을 가다 보면 짚신이 너덜너덜해져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너덜길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험한 바위나 돌 따위가 삐죽이 내민 부분을 “너설”이라 한단다. 인왕산이나 관악산, 도봉산 같은 산에 가다 보면 너설을 딛고 지나가야 하는 곳이 꽤 많다.

너덜겅을 생각하니 떠오르는 게 있는데, 내가 찍은 사진 중에는 너덜겅다운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게 없어 연합뉴스 이옥현 기자의 사진을 허락 없이(죄송. <(__)>) 퍼왔다.





위 사진은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에 있는 고구려 무덤, 태왕릉이다. 거대한 돌을 쌓아 만든 돌무지무덤인데, 아랫부분의 묘석이 오랜 세월 깨지고 흩어져, 마치 너덜겅처럼 보인다. 
(사진은 http://www.yonhapnews.co.kr/services/0718020700.html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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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02-2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눔을 받아주셔서 고마워요, 새벽별님.

조선인 2005-02-22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숨 넘어가는 깔딱고개죠? 언제나 또 가볼까요.
에, 또, 경상도에서는 그런 가파른 고개를 하늘궁디길이라고 합니다.
궁뎅이를 하늘로 처들고 두 손 두 발로 기어가야 한다고 해서요. ㅎㅎㅎ

숨은아이 2005-02-22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뱀사골 말이죠, 조선인님? 하늘궁디길이라, 기막힌 표현이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