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 의경 그리고 그 부모들이 나서더라도... | 할 말은 하고 살자
2006.01.05

내 글을 보고 28살이라는 현직 경찰관이 폭력시위에 대한 내 의견을 물었다. 경찰을 질타한 내 글이 내심 못마땅했나 보다. 댓글을 달던 중에 그는 자기 글을 지워버렸다. 난 이미 다른 글에서 내 의견을 개인적 경험을 곁들여 수차례 말한 것 같은데, 아마 그는 내 글을 다 읽지 못한 것 같다. 난 그가 폭력시위라는 눈에 드러나는 현상만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그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말에도 귀를 기울려 주길 바란다.

지난 달 농민시위와 관련해서 경찰이 보여준 모습은 신뢰를 주지 못했다. 경찰은 사실을 부정하거나 일부 왜곡하거나 하다가 끝에 가서 시인했다. 신뢰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쌓인다. 경찰이 그 동안 신뢰를 얻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런 모습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그리고 이미 지적하였다시피 시위는 헌법적 기본권이므로 그것을 제한하려는 법과 제도부터 우선 손질해야 하는데, 경찰도 그 손질에 적극 나서야 할 당사자다.  그 법률 개정에 적극 참여 한 당사자인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중 경찰의 자의적 개입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공권력은 기본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집단이다. 그러나 그 폭력은 함부로 사용될 폭력이 아니다. 그 폭력을 행사할 권한을 준 것이 사회 구성원임에도 그 폭력의 대상이 또한 사회 구성원일 수 있고, 그 폭력이 통제되지 못할 때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서 엄격하게 제한되어야만 한다. 공권력의 구성원들은 그것이 못마땅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개개 구성원에 의해 거부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이 공권력 행사의 엄격함을 지적하며 사과성명을 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최근 전경과 의경의 부모들이 폭력시위를 규탄하는 집회를 한다고 해서 화제다.

부모로서 자식들이 고된 훈련(그것이 어떤 훈련이든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과 열악한 근무조건(왜 그렇게 되었는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등에 대해 불만을 갖는 것은 심정적으로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그 모든 책임을 시위대에게만으로 돌려서 문제가 해결될 것은 많지 않다. 그래서 난  '전의경부모의 모임(cafe.daum.net/ParentsPolice)' 운영자가 "폭도들로부터 시달리고 고생하면서도 살인마 소리까지 들은 우리의 아들들, 전의경들의 사기를 돋우어주자"고 집회 참여를 독려했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또 다른 모임인 '전의경우리고운아들들(cafe.daum.net/arbang1003)' 운영자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농민들이 숨진 것은 안타깝지만 그 책임은 경찰이 아닌 국회를 비롯한 위정자들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난 그 말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경과 의경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가진 자들이 방패막이로 써먹으려고 하는 현실을 깨지 않는 한, 당장은 폭력시위가 줄어든다 한들 전경과 의경은 언젠가를 위해 전경과 의경은 시위진압 특수 기동대에 편입될 것이고, 또 시위 진압 훈련을 받게 될 것이다. 매우 많은 사람들은 정치인을 비롯한 위정자들 때문에 수 없이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고 앞으로도 그자들이 지금 그자리에 있게 된다면 또 다시 비슷한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위정자들이 큰소리치고 젊은이들을 방패막이로 삼도록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 바로 나요, 우리다.

그래서 난, 전경과 의경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이 "이제는 침묵하지 않겠다"고 나서기를 바란다. 정치인을 비롯한 위정자들의 방패막이가 아니라고 선언하기를 바란다. 시위대는 적이 아니며 그들의 권리 주장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호하는 것이 임무이고 그것은 직업 경찰이 할 일이지, 군복무를 핑계로 시위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것도 생존을 위한 행동일 뿐이라고 애써 자위하거나 때로는 그에 적극 가담하는 것이 마땅한 임무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전경과 의경 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기 바란다. 또한 위정자들이 판치도록 만든 나, 그리고 우리도 반성해야 함을 강조하길 바란다.

또 다시 시위 현장에서 누가 먼저 폭력을 행사했느냐 누가 더 큰 피해를 입었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저 뒤에 숨은 위정자들의 잘못과 그들을 대신할 대안에 대한 논의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에 반복한 논쟁, 그러나 또 다시 반복될 논쟁만을 이번에 다시 한번 해보고 말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위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책임마저 따지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사족이니 더 말하지 않겠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 전경은 국방부로 보내고, 의경은 당장은 경찰 업무 보조자로 활용하다가 폐지해야 한다. 당장은 그 비용에 해당하는 만큼 직업경찰로 대체하면 될 것이다(실제로 대부분의 시위는 불필요하게 많은 경력이 동원된다). 나아가 집회나 시위에 대한 경찰의 자의적 개입을 막도록 집시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사전통제 위주의 대처는 충돌을 낳기 마련이다. 그 간의 경험이 그렇다. 1001,1002,1003을 보면 나도 모르게 내 몸과 생각에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그런데 상대방이 사전통제 위주의 훈련과 문책을 동반한 대처방법밖에 없이 그 자리에 나타난다면 충돌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시위는 미리부터 진압을 예정하지 말고 보호를 원칙으로 하되, 사후 통제 방법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이미 경찰은 형사처벌 등 사후 통제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폭력경찰이라는 말을 경찰도 그토록 듣기 싫은 만큼  마찬가지로 폭력시위라는 말도 시위대는 정말 듣기 싫을 것이다. 감정적 대응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있는 시점에 또 다시 감정적 대응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 보자.

 



  • 마주보며말하기 2006.01.05 11:23:05

    내 각시는 내게서 전경, 의경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그리고는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마도 그들에게 애정 ? 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 애정 ? 글쎄다. 난, 그들 나이에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워야 하는데, 사회 갈등에 대해 자칫 편협한 사고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되고, 더군다나 그것이 자유의사가 아닐 가능성이 많고 강제노동과 그에 기반한 사고에 익숙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도 행복을 추구하고 양심에 따라야 할 똑 같은 사람이다. 그것에 반하는 것을 강제하는 억압기제가 있다면 그들을 거기에서 풀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

  • 마주보며말하기 2006.01.05 11:23:45

    난 농민시위가 있기 전 민주노동당에서 일하는 사람더러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농민시위는 통제되지 못할 가능성이 많으므로 민주노동당에서도 미리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또한 똑같은 제복 속에서 꿈틀거리는 폭력성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헬맷과 방패에 인식번호를 매기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이다. 충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충돌을 막을 수는 없앴을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 지휘관이 '화풀이식 체포 작전'이 충돌을 크게한 원인이기도 했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방법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위대를 이끄는 지도부는 통제불가능하다는 판단 들더라고 필요최소한으로 그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고, 경찰은 가급적 그것을 설득했어야 했다(서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런 과정을 거쳐 큰 일이 생기지 않게 한 경우를 종종 경험한 나로서는 그것이 가장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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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6-01-20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1월 5일에 쓴 것. -ㅂ-;

urblue 2006-01-2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의경 부모들이 시위대에게 호소한다는 뉴스를 보고서,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더랍니다. 잘 읽고, 추천합니다.

숨은아이 2006-01-20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그렇죠? 추천 고맙습니다.

깍두기 2006-01-20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추천.
그날 잘 들어갔어요?^^

숨은아이 2006-01-20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야 잘 들어갔죠. 아, 깍두기님 댁에 따라가지 못한 게 아쉬워요. ^^ 추천 감사!
 

그들을 생각할 때 난... | 혼자 중얼중얼
2006.01.06

 

1. 어 ! 저 사람....

2004년 가을께였나 ? 브제이특공대에서 별난 선생님을 소개하는 꼭지가 있었다.

어 ! 저 사람....그는 고등학교 때 교련 담당이었다. 예비역 부사관(하사관) 아니면 장교였겠지. 사는 곳이 광주여서인지 전두환 정권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학생들을 대할 때는 독재자와 다를 게 무얼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도록 행동했다. 억압자를 적대하면서도 억압자를 닮아가는 것..그러고 보니 그런 예를 흔히 보게 되는 것 같다. 최근 [창작과 비평]을 보니 재벌권력과 정규직노동운동세력이 너무나 닮아있다고 평가한 글이 생각난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암튼 그때 그는 다른 과목으로 전과하여(교련 과목이 없어졌나 보다) 윤리과목인가를 가르친다고 했다. 학생들과 매우 친근하게 그리고 잘 어울리는 너무나 괴짜이지만 멋진 선생님으로 소개되었다. 솔직히 난 그가 지금은 함부로 귀싸대기 때리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수업 내용 중 일부를 듣고는 그때와 별로 달리진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대신 나이 들어가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그런 노년의 선생님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역시 저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신년이라고 해서 각 방송사들의 특집 방송을 내보낸다. 에스비에스 ? 에서는 58년 개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나 보다. 개띠니까 얼른 떠오르는 것이 58년 개띠니까..그들에겐 그렇게 불릴만큼 뭔가 특별한게 있을 테니까...

58년 개띠 중 아는 사람이 나온다....그는 자기가 하려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그랬을 것이다...그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그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가족을 끔찍히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난 불행하게도 그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했는지 조금은 알고 있다...그는 최선을 다했는지 모르지만 그가 최선을 다함으로써 - 최선이 모든 일을 자기 주관에 따르거나 또는 순전히 선의로 했다는 말이 아님을 상기하자 - 그 결과 몇몇 사람들은 그의 입을 통해 비난 받으며 직장을 잃었고 그 중 어떤 사람은 직장을 잃은 상태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며 살았었다. 아직 그들은 직장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다...(그 몇몇 사람들은 사적 목적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공익을 위한 주장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 이 사회라는 것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의 당사자들이라고 난 생각한다)...

난 그런 사람들을 자주 본다...하는 일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변명을 하기도 한다..진짜 자기 생각은 그렇지 않다는 것 아닌가 ? 그런데도 전혀 그 생각에 맞아들어가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난, 솔직히 그런 사람이 더 밉다...다른 자리에 가면 또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할까 ?  여기서 어떤 최선일까를 다시 한번 상기해 보면 몸서리쳐진다...

 

3.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 선생님을 안 것이 20년이 다 되어가고, 58년 개띠를 안 것은 3년이 다 되간다...지난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

그건 그렇고 난 어떨까 ? 날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 날 어떻게 생각할까 ? 내가 지난날 했던 생각, 행동, 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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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6-01-19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월 6일에 쓴 글을 이제 옮겨옵니다.

비로그인 2006-01-19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련과목 샘들이 대거 윤리과로 옮겨 가신 것은 참으로... 낭패 중의 낭패..인 거 같아요... 모든 교련과목 샘이 나쁘다 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로드무비 2006-01-19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생각나요.
즐겨보는 프로였고 인상깊게 본지라.
졸업한 제자들이 잊지 않고 줄줄이 찾는다는 그 선생님 아녀유?
자기자신에게 도취된 사람이로구나, 생각했는데......
58개띠도 그렇고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사람들 무서워요.
물론 최선을 다했겠지요.

아영엄마 2006-01-1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V를 못 봐서 잘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때 교련 선생님-여자 분이셨는데-이 무척 엄하고 무서웠던 것이 아직도 기억나요..

바람돌이 2006-01-19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tv같은데 나가면 안되겠구나 생각을..... ^^(아무도 나오라 하지도 않는데 지레 겁먹는...^^)
주변에서 가끔 봐요. 정말로 성실이라는 말이 아까울정도로 성실한 사람을.... 하지만 그 성실의 열심히의 방향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방향이 엇나간 성실 낭패예요. ^^

숨은아이 2006-01-20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저는 못 봤는데, 기억하시는군요. 인사는 꼭 전할게요. ^^
이유님/나쁘다기보다, 그분들도 군사적으로만 훈련받은 사람이라서 인식을 넓힐 기회가 없었겠지요. 아무튼... 군사정권 나빠요.
로드무비님/오, 바쁘실 텐데 와주셨네요. 좋아라~ 근데 왜 58개띠가 유독 입에 오르내리는 걸까요? 70개띠로서 궁금... ㅎㅎ
아영엄마님/제가 만난 교련 선생님들은 개인적으로는 좋은 분들이셨는데, 답답한 반공주의자이긴 했지요.
바람돌이님/맞아요, 방향. 정말로.

숨은아이 2006-01-20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아, 그래서 뭔가 새로운 세대가 시작된 해로 기억되는 거군요. *.*

숨은아이 2006-01-20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덕분에 알았어요! 새벽별님께 감사!!
 
내셔널리즘과 젠더 - 비판총서 3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12월
구판절판


이야기에 대한 물음은 언제나 이중성을 갖고 있다. 누가 이야기하는가라는 이야기하는 사람의 문제와 누구를 향해 이야기하는가라는 듣는 사람의 문제이다. ‘피해자’의 ‘증언’을 누가 듣는 것인가. 듣는 귀가 없으면 아무도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구를 향해 이야기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했을 때 이야기narrative는 이야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공동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녹음기처럼 반복하는 토킹 북talking book[맹인을 위해 책의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이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지금까지의 오럴 히스토리 연구를 보면 약자 입장에 놓인 사람은 강자인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 현장 또한 권력이 행사되는 임상 실험장이다. 약자의 이야기는 단 한 줄기로 구성되지 않는다. 종종 지배적인 이야기를 뒷받침하거나 보완하는 식의 이야기가 생겨나면 듣는 사람은 ‘현실’이 오로지 하나라고 착각한다. ‘또 하나의 현실’은 약자의 이야기 안에 있는 주저와 모순, 비일관성의 한복판에서 갈기갈기 찢긴 단편으로 나타난다. 여성사에서 이러한 오럴 히스토리의 비일관성이야말로 ‘지배적인 현실’에 균열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뒤섞여 얽힌 이야기 현장에서 민감해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일관성 있는 이야기로 짜여졌다면 듣는 사람 또한 임상적인 현장에서 ‘상호 작용’하고 있는 것이 된다.-181쪽쪽

‘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젠더나 국적, 직업, 지위, 인종, 문화, 에스니시티 등 각양각색으로 존재하는 관계성의 집합이다. ‘나’는 그 어느 것도 피할 수 없지만 그 어느 하나만으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내’가 거절하는 것은 단일 카테고리의 특권화나 본질화이다. -205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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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6-01-22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그렇군요... 저도 독자층을 넓히고 싶은데, 그래도 기반이 되는 독자층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달라서 말이지요. 메일 주소는 부탁드려요. ㅠ.ㅠ 그리고, 고마워요.

숨은아이 2006-01-25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감사 감사!!
 
내셔널리즘과 젠더 - 비판총서 3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12월
구판절판


‘공’문서란 ‘관(官)’에서 사태를 어떻게 ‘관리’했는가를 나타내는 자료이다. 그 유무를 물어 공문서가 없는 한 ‘사실’ 증명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치자(治者)’ 입장으로 동일화된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159쪽쪽

당사자의 현실에서 벗어나 어떤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제3자의 입장에서 ‘판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실증 사학자들의 교만이다.
(중략)
‘문서 사료’란 권위에 의해 정통화된 사료, 지배 권력측 사료의 다른 이름이다. 지배 권력측이 자기의 범죄를 인멸하거나 정당화해야 할 만한 동기가 있다는 점에서 이 사료의 ‘신빙성’ 또한 물어야 할 것이다. -161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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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과 젠더 - 비판총서 3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12월
구판절판


히코사카 마코토는 ‘남자는 그것을 참지 못한다’고 하는 식의 ‘남성 신화’를 비판해, 남성의 권력 지배를 과시하기 위해 강간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특히 전시 강간은 그러한 복수성(윤간)에 특징이 있으며 약자에 대한 공격을 통해 연대 의식을 확립하기 위한 ‘의식(儀式)’이라고 논한다. 사실 전시 강간이 종종 ‘관객’이 있는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병사의 공격이 특히 여성의 성으로 향하는 것은 그것이 ‘적’ 남성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모욕이며 자기 힘의 과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간’은 상대국 남성에게 격렬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114쪽쪽

강제나 임의에 관계없이 ‘매춘’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성과 금전의 교환’이 아니다. 성 산업으로서 ‘매매춘(賣買春)’은 파는 사람(업자나 경영자, 대개 남성)과 사는 사람(인 남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환 행위이며, 거기서 여성은 교환 주체=당사자agent가 아니라 단지 객체=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상품에게는 손님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중략) ‘매춘’ 패러다임은 패러다임 자체 속에 여성의 ‘주체성’을 함의함으로써 남성을 면책하는 견해이다. (중략) ‘매춘’ 패러다임은 본인의 ‘의사’를 문제시한다는 점에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춘부’와 그 밖의 여성 사이를 나누는 ‘성의 이중 기준’을 떠받친다는 점에서 가부장제 코드의 변이라 할 수 있다.-119-120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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