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에 대한 물음은 언제나 이중성을 갖고 있다. 누가 이야기하는가라는 이야기하는 사람의 문제와 누구를 향해 이야기하는가라는 듣는 사람의 문제이다. ‘피해자’의 ‘증언’을 누가 듣는 것인가. 듣는 귀가 없으면 아무도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구를 향해 이야기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했을 때 이야기narrative는 이야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공동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녹음기처럼 반복하는 토킹 북talking book[맹인을 위해 책의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이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지금까지의 오럴 히스토리 연구를 보면 약자 입장에 놓인 사람은 강자인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 현장 또한 권력이 행사되는 임상 실험장이다. 약자의 이야기는 단 한 줄기로 구성되지 않는다. 종종 지배적인 이야기를 뒷받침하거나 보완하는 식의 이야기가 생겨나면 듣는 사람은 ‘현실’이 오로지 하나라고 착각한다. ‘또 하나의 현실’은 약자의 이야기 안에 있는 주저와 모순, 비일관성의 한복판에서 갈기갈기 찢긴 단편으로 나타난다. 여성사에서 이러한 오럴 히스토리의 비일관성이야말로 ‘지배적인 현실’에 균열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뒤섞여 얽힌 이야기 현장에서 민감해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일관성 있는 이야기로 짜여졌다면 듣는 사람 또한 임상적인 현장에서 ‘상호 작용’하고 있는 것이 된다.-181쪽쪽
‘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젠더나 국적, 직업, 지위, 인종, 문화, 에스니시티 등 각양각색으로 존재하는 관계성의 집합이다. ‘나’는 그 어느 것도 피할 수 없지만 그 어느 하나만으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내’가 거절하는 것은 단일 카테고리의 특권화나 본질화이다. -205쪽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