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반 먹는 의경...... 2004/10/20 19:14

 

 

경기지방경찰청이 의경 가혹행위 문제로 시끄러운 것 같다. 선임병들이 잔반(먹다 남아 버려야할 밥과 반찬)을 후임병들에게 먹으라고 했단다. 그런데,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기경찰청 경찰 관계자의 말은 가관이다.

 

"잔반 먹이기는 없었고, 있을 수 있는 정도의 가혹행위는 있었던 것 같다"

 

있을 수 있는 정도의 가혹행위는 무엇을 말할까 ? 구타 ? 얼차려 ? 욕설 ?

 

두들겨 패고 맞는 게 당연시되었던 그 때와 많이 줄었다는 지금을 비교했을 때, 가혹행위만이 군기 확립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는 말을 난 들어보지 못했다. 결국 가혹행위는 설 자리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 기사를 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몇자 적어보련다.

 

군대나 무력을 수반하는 경찰은 궁극적으로 없어져야 할 집단이다. 그 군대 등이 속한 경계 밖의 그 무엇을 죽이고 파괴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 경계 안에서도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 군대 등이라면, 당연히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존재해야 한다면, 외부의 침략을 막아내는 등 최소한의 방어기제로서 작동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도 같은 사회에서 동떨어져서는 안되며 같은 흐름 속에서 고민하고 살아가게끔 만들어 주어야 한다. 

 

91년에 시위진압에 동원되었던 전경이나 의경들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시위 진압을 거부한 일이 있었다(물론 그 이전에도 있었다. 그 흐름은 양심적 병역 거부와도 관련이 있을 게다). 법원은 그들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난 그들을 지지했다. 만인을 위한 공권력이 아니라 권력의 주구(走拘)가 되어 버린 공권력의 일개 구성원이 되길 국가가 강요한다면, 그런 강요는 거부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은 용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집회에 가서 의경들과 대화해 보면, 그들은 왜 자기들이 그 자리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거나, 이런 일 하는 줄 몰랐다고 하면서, 서로 충돌이 크지 않았으면 한다고 하소연한다. 그렇지만,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곧 시위대를 진압 대상(적)으로 간주하는 선임병들이나 경찰 간부의 명령에 따라 무자비한 폭력을 일삼는다. 그 다음에는, 시위대의 폭력을 방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항변한다....그러니 심하게 말하면 그들은 말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받아들이고 거부할 수 있는 어떠한 권리도 주어져 있지 않고, 복종할 의무만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책임은 정부에 있다. 그들의 힘을 빌어 뭔가를 숨기고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있다. 그런데, 싼값에 그만큼 써먹을 만한 집단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면 의경 제도는 아주 그들에게는 가치있는 제도일 지 모르나, 의경들이나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존재 가치가 매우 크다고 생각하지 않을 게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꿍딱꿍딱 밀어 붙이고 저항하면 이미 결정된 것이고 돈 들어갔으니 어쩔 수 없다고만 하지 않으면, 뒤로 구린 짓 하면서 떳떳한 척 하지 않으면, 의경들이 나와서 그렇게 미친 짓을 하지 않아도 될 게다. 

 

여하둥둥.....모두 다 그렇다 치고, 그래도 의경 제도를 두어야 한다면, 의경들도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으며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해야 한다. 그것도 못하겠다고 하면, 적어도 그들도 최소한 누려야 할 권리는 누리게 해 줘야 한다. 그들을 맞닥뜨려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좁은 차 안에서 처치 곤란한 잔반 다 먹어 치워야 하는 고생을 하게 만든 대상을 그들이 잘못 짚었을 때(내가 보기에 대부분은 잘못 짚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을 통제하기 어렵게 되며 또 그 결과는 얼마나 참혹할까 하는 점도 함께 지적하고 싶다. 2001년 대우자동차 노조원을 상대로 한 집단 난동이 그것을 말해 준다(그보다 규모는 작지만, 늘상 벌어지는 폭력도 마찬가지다).

 

몇자만 적어 보려 했는데, 길었다.

 

며칠 전 청와대 앞길 길목에 앉아 있는 의경들을 보았다. 방패 하나를 둘이 깔고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나무 그늘이라고 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나 보다. 그러나, 해가 자리를 옮겨서 따가운 햇볕이 그들 머리를 뜨겁게 만들었다. 제일 앞쪽에 앉은 둘은 자세가 곧고 뒤로 물러앉질 못하는 걸 보니, 후임병들이었나 보다.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딸 대신 며느리를 내보낸다는 가을 햇볕 아래 그대로 앉아 있는 그들.....

 

난, 특히 자원 입대하여 시위진압에 동원된 의경들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잔반을 먹어 치우고 선임병들에게 맞아 터지고, 햇볕 아래에서 발갛게 얼굴이 달아올라도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가지는 모순...뭐...그런 걸 다 떠나서 그들도 사람이다. 사회에서 그렇게 대우받아서는 안된다고 한 정도만큼 그들도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정신도 몸도 오도가도 못할 곳에 그들을 세워놓고 힘들게 하는 그들의 상관과 그들을 이용하는 자들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가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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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0-22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추천

숨은아이 2004-10-22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명한 산책님, 고맙습니다. 제 옆지기는 거리 집회에 나가면 꼭 가장자리, 전경이나 의경들 있는 곳에 가서 당신들 여기에 왜 나왔느냐, 지금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모인 줄 아느냐, 당신이 사회 나오면 어떤 현실에 부딪혀야 하는지 아느냐 등등... 설교를 한답니다. ^^;;;

아영엄마 2004-10-22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하고 갈께요.. 의경들도 할 짓이 아니다 싶으면서도 결국 무력진압을 하게 되는 것은 위에서 아무 생각없이 방망이를 휘두르도록 짖누르는게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 젊은 사람들의 양심도 짖눌려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숨은아이 2004-10-22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양심도 짓눌리고, 또 권위에 의한 정신적 육체적 폭력에 무뎌지고... 무서운 일이죠...

깍두기 2004-10-22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 아이님 옆지기님은 참 재밌는 분이신것 같아요(전경에게 설교를....^^)

숨은아이 2004-10-22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일이긴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무서워서 뒤에서 팔을 잡아끌곤 했답니다. 제발 대열로 돌아가자고... 지금은 별로 무섭진 않지만, 의경들하고 눈 마주치는 것이 민망해서... ^^ 저보다는 제 옆지기가 이 땅의 젊은이들을 더 아끼고 사랑하나 봅니다. ㅎㅎ

숨은아이 2004-10-25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고맙습니다.

숨은아이 2004-10-25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글쵸? 우리 사이에~
 

『어떤 회사 상품 사지 않기』 2004/10/19 11:12

 

『어떤 회사 상품 사지 않기』

 

냉장고에 회사 이름을 적어 놓았다. 그 회사 상품 사지 않기 대상으로 정한 회사 이름이다. 지금 기억나는 이름은, 삼성, 두산, 까르푸 등이다(지금 집으로 이사오면서 떨어져 지금은 기억 속에만 있다).

 

삼성은 한국의 세법 발전에 엄청난 공헌(?)을 한 곳이다. 특히, 이씨 가족의 개인적 부를 축적하는 데 따를 자가 없었으니, 삼성을 조사하다 보면, 세법의 헛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잠시 삼천포로 빠지면, 재산 상속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과 제도로 제한할 수는 없을 게다. 사회체제가 뒤집어지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다면, 생각에 호소할 수밖에 없으니 답답하기는 하다만)

 

게다가 삼성은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문제가 많다.  잘먹고 잘살면 그만이지 노조가 무슨 소용이냐는 그럴 듯한 말이지만, 노조는 특히, 경제적으로 잘 먹고 잘 살자고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난, 노조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로, 회사 일을 함께 생각하고 또 함께 풀어나가는 데 노동자들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기구가 바로 노조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서로를 이해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불신이 생기고 불신은 곧 충돌을 낳는다(그렇다고 충돌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알지 못하고, 또는 불신에 기초한 충돌이 안타까워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의사소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감시와 통제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곳이 바로 삼성이다.

 

두산은 몇년에 걸쳐 노사가 대립한 두산중공업 사태 때문에 대상이 되었다.

 

까르푸는 프랑스에 본사가 있다. 프랑스는 생각과 행동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는 나라라고 알려져 있고, 대개 그런 나라들이 그렇듯 판사도, 경찰도 노조를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아마 그 나라에서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하고 노조를 만들었다고 불이익을 즐 생각을 회사가 한다면, 아마 그 회사는 문 닫아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까르푸는 본사가 있는 나라와는 달랐다. 내 기억만으로도 노조활동을 못하게 한 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것만 해도 3건이 넘으며, 그 외에도 노조를 싫어하는 기색을 많이 드러냈다. 

 

이렇게 하나하나 이유를 들어 회사 이름을 적다 보면, 냉장고에 치킨집 전화번호마저 붙일 자리도 없을 것 같다. 더불어 나와 각시는 먹고자고입고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즐기며 살지도 못할 거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 같은 사람한테는 물건을 팔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또는 공개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을 염두에 두고, 똑바로 하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에,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저지를 때만이라도 내 마음이 내킬 때까지 그렇게 하면서 살고 싶다.

 

이번에 찍은 대상은 풀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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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10-19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그런데 내 전화기 애니콜이잖아. -_-;

chika 2004-10-19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산중공업땜에 두산제품 먹지 않겠다고 한 적 있었습니다. 근데말이지요..내가 무척 좋아하던거-지금은 뭐였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두산제품이었거든요. 울 직원이 '그것도 안먹을꺼예요?' 놀리듯 물었던 기억이 있어요. 평소 안쓰던 것이 아니어서 나름대로 의미있게 상품을 끊은 기억이 있네요. ^^

반딧불,, 2004-10-1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요. 어리 석은 질문인데요.
숨은 아이님 여성 아니었던가요ㅡ.ㅡ::

하얀마녀 2004-10-19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기억해놔야겠군요. 삼성, 두산, 까르푸, 풀무원... 에버랜드도 가지 말아야겠군요. 그리고 전 시공사 책은 안 삽니다.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어느분 서재를 타고 들어왔는지는 잊었습니다. 자주 놀러와서 코멘트 남겨도 되죠?

깍두기 2004-10-19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풀무원인가요? 전 풀무원 잘 사먹는데, 이유를 알고 싶어요...

sooninara 2004-10-19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무원은 왜???

숨은아이 2004-10-19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 언제나 느끼지만, 치카님은 멋쟁이~
반딧불님 : 헤헤, 저 여성인데요. 이 글은 제 옆지기가 쓴 글이고요("내 옆지기 /마주보며말하기/가 쓴 글"이란 꼭지잖아용). 제 옆지기는 제가 찍은 사진에 모델로 곧잘 등장합니다. ^^
하얀마녀님 : 앗, 제 서재에 왕림해주시고, 반갑슴당. 자주 와주심 감사하죠~~~~~~
깍두기님 : 저도 두부랑 콩나물 사먹었는데요, 풀무원 노조가 지금 파업 100일째랍니다. 파업이 100일이나 간다니, 회사가 노조를 왕무시하고 있는 거죠.

sooninara 2004-10-19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무원 노조 이야기는 몰랐네요..풀무원이 그래도 믿을만해서 반찬거리는 다 사는데..
풀무원 안사면 어디서 사야될지...생협은 택배로 오기에 불편해서 요즘은 그냥 풀무원걸로 사먹거든요..

숨은아이 2004-10-19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수니나라님 댓글을 이제야 봤네요. 제가 댓글 쓰는 동안 올라왔나 봐요. 저도 좀 불편하게 생겼어요. 노조 파업이 잘 풀렸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만 조금 불편을 감수하려구요.

아영엄마 2004-10-19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무원 노조 이야기는 저도 몰랐어요. 하긴 다른 이야기도 마찬가지지만...세상이랑 담 쌓고 사는 건 아닌지..ㅜㅜ;;

숨은아이 2004-10-19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옆지기가 일깨워주지 않으면 잘 모르고 살아요. ^^
 

좋은 학생.... 2004/10/12 19:38

 

 

 

고교등급제 못하면 좋은 학생 못뽑아 (서울대 입시 관계자)

 

 

강남에 있는 학교에 다닌 학생.

 

그런 학생이 좋은 학생이란다. 

 

 

강남 학생들 대학가면 학업성취도가 낮단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스스로 공부할 줄 모르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그런 학생이 좋은 학생이란다.

 

 

학력 차이가 나는데, 그걸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인터뷰에 등장하는 강남 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대답이다)

 

자기가 왜 좋은 학생인지 알 리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학생.

 

그런 학생이 좋은 학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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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학생이 좋은 학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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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기의 즐거움 - 한국고전산책
정약용.박지원.강희맹 지음, 신승운.박소동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지난 석 달 동안 풀로엮은집(www.puljib.org)에서 월요일마다 천자문 강의를 들었습니다. 종강 때 풀로엮은집에서 책을 걸어가게 하자며, 헌책방에서 사온 책을 한 권씩 가져가게 하더군요. 인연이 닿으면 옛글도 읽고 싶었던 저는 이 책을 골랐어요.강희맹, 이이, 정약용, 성현, 이규보, 이익, 안정복 등 교과서에서 많이 본 사람들, 또 그렇지 않은 분들이 남긴, 한문으로 된 우리 옛글 47편을 쉽게 번역해놓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천자문교실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맹자에 나온다는, 예禮란 "옛날 어느 사람이 아버지가 죽어 그 시신을 밭 한구석에 버렸다. 금수가 지나다니며 시신을 훼손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시신을 수습해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 곧 예는 단순히 "존재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되었고 그게 전부인데, 껍데기만 남을 때 사람을 억압하는 족쇄가 되지요.

맨 끝에 실린 글, 이현석의 [시세와 기수에 관한 이야기 時勢氣數說]에 이런 글월이 있습니다.

"천지 도수의 소장消長은 추위나 더위와 같고 시세의 험이險易는 산이나 물과 같다. 시세를 잘 이용하여 혼란을 바로잡아 다스리는 법도는 원래 소장과 험이 그 속에 있다. 이를테면 (추위를 이기는) 갖옷이나 (더위를 견디는) 갈포옷, 말이나 배를 천지의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상고 시대부터 수많은 세월을 지나면서 세상을 다스리는 법도가 많았을 터인데도 당우 삼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대로 구비되었다. ...(중략)...  이제 당우 삼대로부터 또 몇천 년이 흘렀으니 수많은 변화를 어찌 이루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는 바로 세상을 경영하는 법도가 당우 삼대보다도 더욱 구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치자도 어찌 꼭 당우 시대와 삼대의 전철만을 변통 없이 일일이 따를 필요가 있겠는가."

(* 당우唐虞란 중국 고대의 임금인 도당씨(陶唐氏) 요(堯)와 유우씨(有虞氏) 순(舜)을 말합니다. 곧 당우 시대란 요임금과 순임금 시대, 중국 역사에서 이상적인 태평 시대로 꼽히는 때를 말합니다. 또 삼대三代란 중국 고대의 하夏나라, 은殷나라, 주周나라 시대.)

그러나 역시 유학이 지배계급 남성의 통치도구가 되면서 문제가 생긴 것 아닐까요.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무엇보다 "절제"를 중요한 미덕으로 꼽는 듯합니다. 명예도 먹는 것도 술도 절제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 매사를 겪으며 스스로 절제하라 경계하기 위해 글을 썼네요. 그 중에서 아마 꽤 술을 좋아한 모양인 정철과 남용익 선생의 글을 읽으면 웃음이 납니다.

"남이 혹 취했을 때의 일을 얘기해주면 처음에는 그럴 리가 없다고 믿지 않다가 나중에 참으로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알고 나면 그 부끄러운 생각에 꼭 죽고만 싶어진다."(66쪽)

술을 의인화한 박윤묵의 [국청전 麴淸傳]도 있어요.

그리고 1597년 정유재란 때 포로가 되어 2년 8개월간 일본에서 포로 생활을 한 강항 선생은 일본 승려에게 들었다면서 우리가 잘 아는 혹부리 영감 이야기와 거의 같은 이야기를 썼네요!

우화 형식으로 쓴 이야기 중에는 도둑 이야기도 두 가지나 있고, 또 한 사기꾼 이야기는 그 사기꾼의 기지를 칭찬하는 투라 흥미롭습니다.

이 책에서 제가 특히 명심해야 할 것은, 맹자의 "사람의 걱정거리는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는 데 있다"는 말씀이지요!

(맨 뒤의 "지은이 소개"를 보니까, [분수를 지킨 도둑 이야기]를 쓴 권필 선생은 귀양길에 '폭음'을 하고 급서했다는군요. 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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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3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아이 2004-10-1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캬~ 고맙슴당!
 

고교 등급제.. 2004/10/08 18:09

 

대학 이름을 없애지 않는 한, 입시제도 백날 바꿔봐야 소용없다.

 

고대, 연대, 이대 등 몇 대학이 고교 차별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어느 대학 나왔는지가 힘이 되는 세상에서 대학도, 학부모, 학생도 그런 것이 문제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게다. 특히 돈많고 힘을 가진 사람들이야 그런 것을 당연시 여길 게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처럼 좋은 대학, 어려운 시험 통과로 돈과 권력에 접근하도록 하는 그런 제도 때문에 더 나은 사회가 되었거나 될 수 있다고 볼 사회적 근거는 없다.  만약 그런 근거가 있다면 한번 보고 싶다.

 

모든 사람은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부와 권력을 더 가졌다고 해서 기회의 양과 질이 달라져서는 안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을 100%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은 안다. 그렇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최선의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 이름을 없애자. 고교학력평가를 통과한 학생은 가까운 지역의 대학으로 가게 하자. 그리고, 대학 교육을 내실화하자. 대학을 언제까지 다닐 것인지 졸업을 할 것인지는 그의 자유다. 사회는 어느 지역에서 대학을 나왔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내실있는 교육을 받았는지만을 가지고 그를 평가하면 그만이다.

 

고교학력평가 결과는 오로지 두가지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하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기초 실력을 갖추었는지를 평가하는 기준. 다른 하나는, 낮은 학력으로 평가된 지역에 어느 정도 국가에서 지원할 것인지를 정하는 기준이다.

(한국은 돈이 많아 더 기회가 많은 지역에 더 투자를 하는 어처구니 없는 나라다. 프랑스는 바칼로레아(대학입학자격시험) 합격률을 발표하여, 학력이 떨어지는 지역을 우선교육지구로 정하고, 재정지원, 학급당 인원수 감축, 우수 교사 배치 등의 자료로 쓴다고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학이름을 없애지 않고는 입시제도는 늘 일희일비, 조삼모사, 그 나물에 그밥이고, 입시지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모두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  그리고, 난 그런 제도를 갖춘 나라가 한국보다 못하다는 소릴 듣지 못했다.

 

자기 돈 들여 배운 기술이라면 주로 어디에 쓰일까 ?
법의학을 전공하려는 의학도가 이제는 없단다. 외과도 그렇단다. 그러나 성형외과, 치과는 넘쳐난단다. 노동판에 뛰어들어 함께 살아가는 변호사도 거의 없단다.

 

왜 그럴까 ? 자기 돈 들여 배운 기술, 되찾고 더 크게 만드려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들을 강제할 수가 없다. 공익적이고 고도의 도덕성을 그들에게 요구할 수도 없다. 요구할 근거도 희박하다. 공익성, 도덕성은 선언적인 단어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와 반대라면 ?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생각하면 답은 쉽게 보인다.  
사회가 돌봐주고 그렇게 배우고 익힌 기술과 능력, 지식과 지혜는 어디로 돌아갈까 ? 그들에게 공익성과 도덕성을 요구할 근거도 마련 되었으며,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어쩌면 당연히 더불어 함께 사는 그 사회로 돌아가지 않을까 ? 

 

우리는 지금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할 때다.

이대로 둘 것인가 ? 완전히 바꾸어 버릴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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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4-10-0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제가 하고 싶었던 말......

LAYLA 2004-10-11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프네요..한국의 현실이..

숨은아이 2004-10-11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라일라님, 이렇게 간단한 해법이 있는데 왜 시행을 못 하는지 안타깝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