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방경찰청이 의경 가혹행위 문제로 시끄러운 것 같다. 선임병들이 잔반(먹다 남아 버려야할 밥과 반찬)을 후임병들에게 먹으라고 했단다. 그런데,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기경찰청 경찰 관계자의 말은 가관이다.
"잔반 먹이기는 없었고, 있을 수 있는 정도의 가혹행위는 있었던 것 같다"
있을 수 있는 정도의 가혹행위는 무엇을 말할까 ? 구타 ? 얼차려 ? 욕설 ?
두들겨 패고 맞는 게 당연시되었던 그 때와 많이 줄었다는 지금을 비교했을 때, 가혹행위만이 군기 확립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는 말을 난 들어보지 못했다. 결국 가혹행위는 설 자리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 기사를 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몇자 적어보련다.
군대나 무력을 수반하는 경찰은 궁극적으로 없어져야 할 집단이다. 그 군대 등이 속한 경계 밖의 그 무엇을 죽이고 파괴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 경계 안에서도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 군대 등이라면, 당연히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존재해야 한다면, 외부의 침략을 막아내는 등 최소한의 방어기제로서 작동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도 같은 사회에서 동떨어져서는 안되며 같은 흐름 속에서 고민하고 살아가게끔 만들어 주어야 한다.
91년에 시위진압에 동원되었던 전경이나 의경들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시위 진압을 거부한 일이 있었다(물론 그 이전에도 있었다. 그 흐름은 양심적 병역 거부와도 관련이 있을 게다). 법원은 그들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난 그들을 지지했다. 만인을 위한 공권력이 아니라 권력의 주구(走拘)가 되어 버린 공권력의 일개 구성원이 되길 국가가 강요한다면, 그런 강요는 거부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은 용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집회에 가서 의경들과 대화해 보면, 그들은 왜 자기들이 그 자리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거나, 이런 일 하는 줄 몰랐다고 하면서, 서로 충돌이 크지 않았으면 한다고 하소연한다. 그렇지만,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곧 시위대를 진압 대상(적)으로 간주하는 선임병들이나 경찰 간부의 명령에 따라 무자비한 폭력을 일삼는다. 그 다음에는, 시위대의 폭력을 방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항변한다....그러니 심하게 말하면 그들은 말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받아들이고 거부할 수 있는 어떠한 권리도 주어져 있지 않고, 복종할 의무만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책임은 정부에 있다. 그들의 힘을 빌어 뭔가를 숨기고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있다. 그런데, 싼값에 그만큼 써먹을 만한 집단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면 의경 제도는 아주 그들에게는 가치있는 제도일 지 모르나, 의경들이나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존재 가치가 매우 크다고 생각하지 않을 게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꿍딱꿍딱 밀어 붙이고 저항하면 이미 결정된 것이고 돈 들어갔으니 어쩔 수 없다고만 하지 않으면, 뒤로 구린 짓 하면서 떳떳한 척 하지 않으면, 의경들이 나와서 그렇게 미친 짓을 하지 않아도 될 게다.
여하둥둥.....모두 다 그렇다 치고, 그래도 의경 제도를 두어야 한다면, 의경들도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으며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해야 한다. 그것도 못하겠다고 하면, 적어도 그들도 최소한 누려야 할 권리는 누리게 해 줘야 한다. 그들을 맞닥뜨려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좁은 차 안에서 처치 곤란한 잔반 다 먹어 치워야 하는 고생을 하게 만든 대상을 그들이 잘못 짚었을 때(내가 보기에 대부분은 잘못 짚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을 통제하기 어렵게 되며 또 그 결과는 얼마나 참혹할까 하는 점도 함께 지적하고 싶다. 2001년 대우자동차 노조원을 상대로 한 집단 난동이 그것을 말해 준다(그보다 규모는 작지만, 늘상 벌어지는 폭력도 마찬가지다).
몇자만 적어 보려 했는데, 길었다.
며칠 전 청와대 앞길 길목에 앉아 있는 의경들을 보았다. 방패 하나를 둘이 깔고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나무 그늘이라고 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나 보다. 그러나, 해가 자리를 옮겨서 따가운 햇볕이 그들 머리를 뜨겁게 만들었다. 제일 앞쪽에 앉은 둘은 자세가 곧고 뒤로 물러앉질 못하는 걸 보니, 후임병들이었나 보다.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딸 대신 며느리를 내보낸다는 가을 햇볕 아래 그대로 앉아 있는 그들.....
난, 특히 자원 입대하여 시위진압에 동원된 의경들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잔반을 먹어 치우고 선임병들에게 맞아 터지고, 햇볕 아래에서 발갛게 얼굴이 달아올라도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가지는 모순...뭐...그런 걸 다 떠나서 그들도 사람이다. 사회에서 그렇게 대우받아서는 안된다고 한 정도만큼 그들도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정신도 몸도 오도가도 못할 곳에 그들을 세워놓고 힘들게 하는 그들의 상관과 그들을 이용하는 자들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가 싫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