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생각할 때 난... | 혼자 중얼중얼
2006.01.06

 

1. 어 ! 저 사람....

2004년 가을께였나 ? 브제이특공대에서 별난 선생님을 소개하는 꼭지가 있었다.

어 ! 저 사람....그는 고등학교 때 교련 담당이었다. 예비역 부사관(하사관) 아니면 장교였겠지. 사는 곳이 광주여서인지 전두환 정권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학생들을 대할 때는 독재자와 다를 게 무얼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도록 행동했다. 억압자를 적대하면서도 억압자를 닮아가는 것..그러고 보니 그런 예를 흔히 보게 되는 것 같다. 최근 [창작과 비평]을 보니 재벌권력과 정규직노동운동세력이 너무나 닮아있다고 평가한 글이 생각난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암튼 그때 그는 다른 과목으로 전과하여(교련 과목이 없어졌나 보다) 윤리과목인가를 가르친다고 했다. 학생들과 매우 친근하게 그리고 잘 어울리는 너무나 괴짜이지만 멋진 선생님으로 소개되었다. 솔직히 난 그가 지금은 함부로 귀싸대기 때리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수업 내용 중 일부를 듣고는 그때와 별로 달리진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대신 나이 들어가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그런 노년의 선생님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역시 저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신년이라고 해서 각 방송사들의 특집 방송을 내보낸다. 에스비에스 ? 에서는 58년 개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나 보다. 개띠니까 얼른 떠오르는 것이 58년 개띠니까..그들에겐 그렇게 불릴만큼 뭔가 특별한게 있을 테니까...

58년 개띠 중 아는 사람이 나온다....그는 자기가 하려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그랬을 것이다...그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그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가족을 끔찍히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난 불행하게도 그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했는지 조금은 알고 있다...그는 최선을 다했는지 모르지만 그가 최선을 다함으로써 - 최선이 모든 일을 자기 주관에 따르거나 또는 순전히 선의로 했다는 말이 아님을 상기하자 - 그 결과 몇몇 사람들은 그의 입을 통해 비난 받으며 직장을 잃었고 그 중 어떤 사람은 직장을 잃은 상태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며 살았었다. 아직 그들은 직장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다...(그 몇몇 사람들은 사적 목적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공익을 위한 주장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 이 사회라는 것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의 당사자들이라고 난 생각한다)...

난 그런 사람들을 자주 본다...하는 일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변명을 하기도 한다..진짜 자기 생각은 그렇지 않다는 것 아닌가 ? 그런데도 전혀 그 생각에 맞아들어가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난, 솔직히 그런 사람이 더 밉다...다른 자리에 가면 또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할까 ?  여기서 어떤 최선일까를 다시 한번 상기해 보면 몸서리쳐진다...

 

3.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 선생님을 안 것이 20년이 다 되어가고, 58년 개띠를 안 것은 3년이 다 되간다...지난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

그건 그렇고 난 어떨까 ? 날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 날 어떻게 생각할까 ? 내가 지난날 했던 생각, 행동, 말에 대해.....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숨은아이 2006-01-19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월 6일에 쓴 글을 이제 옮겨옵니다.

비로그인 2006-01-19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련과목 샘들이 대거 윤리과로 옮겨 가신 것은 참으로... 낭패 중의 낭패..인 거 같아요... 모든 교련과목 샘이 나쁘다 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로드무비 2006-01-19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생각나요.
즐겨보는 프로였고 인상깊게 본지라.
졸업한 제자들이 잊지 않고 줄줄이 찾는다는 그 선생님 아녀유?
자기자신에게 도취된 사람이로구나, 생각했는데......
58개띠도 그렇고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사람들 무서워요.
물론 최선을 다했겠지요.

아영엄마 2006-01-1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V를 못 봐서 잘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때 교련 선생님-여자 분이셨는데-이 무척 엄하고 무서웠던 것이 아직도 기억나요..

바람돌이 2006-01-19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tv같은데 나가면 안되겠구나 생각을..... ^^(아무도 나오라 하지도 않는데 지레 겁먹는...^^)
주변에서 가끔 봐요. 정말로 성실이라는 말이 아까울정도로 성실한 사람을.... 하지만 그 성실의 열심히의 방향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방향이 엇나간 성실 낭패예요. ^^

숨은아이 2006-01-20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저는 못 봤는데, 기억하시는군요. 인사는 꼭 전할게요. ^^
이유님/나쁘다기보다, 그분들도 군사적으로만 훈련받은 사람이라서 인식을 넓힐 기회가 없었겠지요. 아무튼... 군사정권 나빠요.
로드무비님/오, 바쁘실 텐데 와주셨네요. 좋아라~ 근데 왜 58개띠가 유독 입에 오르내리는 걸까요? 70개띠로서 궁금... ㅎㅎ
아영엄마님/제가 만난 교련 선생님들은 개인적으로는 좋은 분들이셨는데, 답답한 반공주의자이긴 했지요.
바람돌이님/맞아요, 방향. 정말로.

숨은아이 2006-01-20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아, 그래서 뭔가 새로운 세대가 시작된 해로 기억되는 거군요. *.*

숨은아이 2006-01-20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덕분에 알았어요! 새벽별님께 감사!!
 
내셔널리즘과 젠더 - 비판총서 3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12월
구판절판


이야기에 대한 물음은 언제나 이중성을 갖고 있다. 누가 이야기하는가라는 이야기하는 사람의 문제와 누구를 향해 이야기하는가라는 듣는 사람의 문제이다. ‘피해자’의 ‘증언’을 누가 듣는 것인가. 듣는 귀가 없으면 아무도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구를 향해 이야기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했을 때 이야기narrative는 이야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공동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녹음기처럼 반복하는 토킹 북talking book[맹인을 위해 책의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이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지금까지의 오럴 히스토리 연구를 보면 약자 입장에 놓인 사람은 강자인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 현장 또한 권력이 행사되는 임상 실험장이다. 약자의 이야기는 단 한 줄기로 구성되지 않는다. 종종 지배적인 이야기를 뒷받침하거나 보완하는 식의 이야기가 생겨나면 듣는 사람은 ‘현실’이 오로지 하나라고 착각한다. ‘또 하나의 현실’은 약자의 이야기 안에 있는 주저와 모순, 비일관성의 한복판에서 갈기갈기 찢긴 단편으로 나타난다. 여성사에서 이러한 오럴 히스토리의 비일관성이야말로 ‘지배적인 현실’에 균열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뒤섞여 얽힌 이야기 현장에서 민감해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일관성 있는 이야기로 짜여졌다면 듣는 사람 또한 임상적인 현장에서 ‘상호 작용’하고 있는 것이 된다.-181쪽쪽

‘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젠더나 국적, 직업, 지위, 인종, 문화, 에스니시티 등 각양각색으로 존재하는 관계성의 집합이다. ‘나’는 그 어느 것도 피할 수 없지만 그 어느 하나만으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내’가 거절하는 것은 단일 카테고리의 특권화나 본질화이다. -205쪽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은아이 2006-01-22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그렇군요... 저도 독자층을 넓히고 싶은데, 그래도 기반이 되는 독자층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달라서 말이지요. 메일 주소는 부탁드려요. ㅠ.ㅠ 그리고, 고마워요.

숨은아이 2006-01-25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감사 감사!!
 
내셔널리즘과 젠더 - 비판총서 3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12월
구판절판


‘공’문서란 ‘관(官)’에서 사태를 어떻게 ‘관리’했는가를 나타내는 자료이다. 그 유무를 물어 공문서가 없는 한 ‘사실’ 증명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치자(治者)’ 입장으로 동일화된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159쪽쪽

당사자의 현실에서 벗어나 어떤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제3자의 입장에서 ‘판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실증 사학자들의 교만이다.
(중략)
‘문서 사료’란 권위에 의해 정통화된 사료, 지배 권력측 사료의 다른 이름이다. 지배 권력측이 자기의 범죄를 인멸하거나 정당화해야 할 만한 동기가 있다는 점에서 이 사료의 ‘신빙성’ 또한 물어야 할 것이다. -161쪽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셔널리즘과 젠더 - 비판총서 3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12월
구판절판


히코사카 마코토는 ‘남자는 그것을 참지 못한다’고 하는 식의 ‘남성 신화’를 비판해, 남성의 권력 지배를 과시하기 위해 강간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특히 전시 강간은 그러한 복수성(윤간)에 특징이 있으며 약자에 대한 공격을 통해 연대 의식을 확립하기 위한 ‘의식(儀式)’이라고 논한다. 사실 전시 강간이 종종 ‘관객’이 있는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병사의 공격이 특히 여성의 성으로 향하는 것은 그것이 ‘적’ 남성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모욕이며 자기 힘의 과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간’은 상대국 남성에게 격렬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114쪽쪽

강제나 임의에 관계없이 ‘매춘’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성과 금전의 교환’이 아니다. 성 산업으로서 ‘매매춘(賣買春)’은 파는 사람(업자나 경영자, 대개 남성)과 사는 사람(인 남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환 행위이며, 거기서 여성은 교환 주체=당사자agent가 아니라 단지 객체=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상품에게는 손님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중략) ‘매춘’ 패러다임은 패러다임 자체 속에 여성의 ‘주체성’을 함의함으로써 남성을 면책하는 견해이다. (중략) ‘매춘’ 패러다임은 본인의 ‘의사’를 문제시한다는 점에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춘부’와 그 밖의 여성 사이를 나누는 ‘성의 이중 기준’을 떠받친다는 점에서 가부장제 코드의 변이라 할 수 있다.-119-120쪽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셔널리즘과 젠더 - 비판총서 3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12월
구판절판


이 ‘과거의 잔재’, 즉 좀처럼 불식되지 않는 ‘유산’은 종종 ‘전통’이나 ‘민족성’이라는 말로 불리며, 그리하여 비역사적인 것으로 바뀌어 버린다. ‘전통’이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매직 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블랙박스로서 ‘발명’된 것이다.-7쪽쪽

앤더슨의 용어를 빌리면 ‘국민 국가’는 균질적인 ‘국민’ 창출을 통해 ‘환상의 공동성’을 만들어 내며 그렇게 만들어진 ‘집단 정체성’은 ‘문화’나 ‘민족’ 개념의 핵심이다. 이 미완의 ‘국민화’ 프로젝트로부터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13쪽쪽

우연히 ‘인권 선언’으로 번역되고 있는 프랑스 혁명의 ‘인권 선언 l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은 글자 그대로 ‘남자 homme’ 및 ‘시민 citoyen’의 권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 ‘남자’와 ‘시민’에는 여성과 노동자가 배제되었다. 그러한 권리를 누리려면 ‘문명화 civiliser’된 ‘공민(公民)’의 자격이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인권’은 항상 어디까지가 ‘인간’의 범위인가라는 ‘경계의 정의’를 수반한다. (중략) 그리고 ‘경계의 재정의’를 둘러싸고 언제나 ‘2류 시민’들 사이에서는 누가 먼저 ‘문명화’되어야 하는가를 둘러싼 경쟁이 있다. -18-19쪽쪽

카테고리가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배타성을 지난 곳에서는 이러한 억압이 반드시 생겨난다. 그리고 ‘국민’이란 그러한 ‘배타적’인 카테고리의 전형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배타성을 더욱 가시화시킨 것이 전쟁이다. ‘국민’은 반드시 한 ‘국가’에 배타적으로 귀속할 것을 강요당한다. 이중 국적자나 적도 아군도 아닌,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는 인정받지 못한다.-91쪽쪽

성별 불문 전략은 언뜻 평등을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생산과 전투를 짊어진 여성들은 ‘공적 영역’이 남성성을 기준으로 정의되어 있는 한 ‘이류 노동력’, ‘이류 전사’가 되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93쪽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