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비
윤정란 지음 / 차림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호랑녀님 리뷰 보고 읽고 싶다 생각했는데 절판되어 속절없이 보관함에 두고 있다가, 호랑녀님이 빌려주셔서 읽었다. 절판되기는 아까운 책이라 생각했는데, 검색해보니 이가출판사에서 2003년에 다시 나온 모양이다. 조선 왕조사를 왕비 중심으로 요약 정리한 품새라, 읽다 보니 “용의 눈물” “장희빈” “여인천하” 등등이 한줄기로 엮이는 기분이 든다.

정치경제사 중심으로 역사를 배우다 보면 어느 한구석에서도 여성을 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공적인 영역은 모두 남성 지배계층이 장악한 결과, 마치 그 시대에는 여성이 살지 않기라도 한 듯이 책 속의 역사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간은 주로 남성인 왕과 정치가다. 어린이 역사책을 만들 때의 경험인데, 책 전체에 걸쳐 그림에 여성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군중 장면에서는 여성과 남성을 고루 그리지만,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장면이 없는 것이다. 화가가 여성인데도, 특별히 성별을 지정하지 않는 한 남성만을 주인공으로 그림을 그려오는 경우가 많다. 화가와 함께 새삼 그 사실을 깨닫고 서로 충격을 받아 그림 설정을 다시 하기도 했고, 정치와 전쟁 중심으로 진행된 책인 경우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왕 그림 옆에 왕비 하나 억지로 끼워 넣기도 했다. 화가와 편집자의 상상력 자체가 이미 남성 중심적으로 세뇌된 결과라 할까. 그래서, 이렇게 과거에 살아 움직였던 여성들을 알려주는 책이 나왔다는 사실이 고맙다.

다만 500년 조선 왕조의 왕비들을 한 권에 모두 담은 책이라 왕비 한 사람 한 사람을 집중 소개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공식적인 역사 기록 이곳저곳에서 왕비에 관한 부분을 모아 정리한 내용이기에,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당시 사관에 따른 왜곡인지 밝히기에는 지면이 부족했다. 좀더 입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만한, 다른 책들이 출간되기를 바란다.

문장은 대체로 읽기 쉬운 편이지만, 협군 육궁 봉사(封事) 궤장(几杖) 등등 단박에 알아듣기 어려운 역사 용어들을 한자도 병기하지 않고 그냥 쓴 것이 불만스럽다. 무슨 말인지 몰라 읽는 중간중간 사전을 찾아봐야 했다. 그리고 몇 가지 잘못된 부분이 있던데, 이가출판사에서는 바로잡아 냈는지 모르겠다. 잘못된 부분을 적어보자면,

첫째, 143쪽에 장렬왕후 “조씨는 숙종 14년에 세상을 떠났다. ... 나이는 전비 인렬왕후 한씨가 임신했던 때와 같은 마흔두 살에 불과했다.”고 했는데, 138쪽에 나온 대로 장렬왕후는 1624년생이니 마흔두 살에 세상을 떠났다면 1666년에 죽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장렬왕후는 1688년에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136쪽에 보면 인렬왕후는 마흔둘이 아니라 마흔넷에 임신했다고 나온다.

둘째, 173쪽에 인현왕후 “민씨가 왕비로 간택된 것은 시어머니 명성왕후 김씨의 아버지인 김우명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그런데 민씨는 1681년에 왕비가 되었지만, 이 책 163쪽에 김우명은 1675년에 죽었다고 했다.

셋째, 213쪽에 정성왕후 서씨는 “1757년 2월 15일 예순여섯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는데, 200쪽에서는 1755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나온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정보를 제공하는 ‘엠파스 한국학지식’에서 검색해본 결과 정성왕후가 세상을 떠난 것은 1757년이 맞다.

넷째, 241쪽에는 [춘추]를 “중국 노나라 사관이 만든 책에 공자가 첨삭한 유교경전으로, 기원전 722년부터 242년에 걸친 춘추시대의 역사책”이라고 했는데, [춘추]가 다루는 시대는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1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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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옮기거나 처음 취직을 했을 때, 일을 시작하기 앞서 전임자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받아야 한다.
업무의 성격과 범위, 미리 알아두어야 할 지침, 지금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으며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듣고, 필요한 자료를 넘겨 받고 하는 따위. 흔히 "인수인계"라고 하는 일이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사전]에 나오는 건잠머리란 말이 바로 그런 의미다.

건잠-머리
「명」일을 시킬 때에 대강의 방법을 일러 주고 필요한 여러 도구를 챙겨 주는 일. ¶농사일이 눈앞에 닥쳤으니 나가더라도 그 안에 농사일 건잠머리는 잡아 놓고 가야 할 것 아니오.≪송기숙, 암태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직장 옮기는 이야기가 났으니 말인데, 얼마 전 무소속 재택 노동자 생활을 청산해볼까 하고 면접을 보았다. 마포에 있는 회사인데, 가을에 파주로 옮길 예정이라 인문팀 사원들이 모두 사표를 냈단다. 그래서 파주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으려는 것이었다. 지금 이사온 집에서 파주로 출퇴근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지만, 사실 서울 시내에서도 출퇴근하는 데 한 시간 반씩 걸리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그 회사 인문팀에 올 팀장급 한 사람은 동료 직원 한 사람과 함께, 앞으로 1년 동안, 다달이 500쪽이 넘는 책을 한 권 이상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파주로 옮기는 데 따른 시간적 경제적 비용을 보전해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파주로 옮기면 야근도 덜할 테니까 연봉을 더 올려줄 순 없다"고 하면서, 한 달에 한 권씩 두툼한 인문서를 내라니, 이게 뭔 소린가. 그럼 야근하지 말고 집에 일 싸 들고 가든지, 아님 회사에서 날을 새라는 소리다. 나는 아무리 부지런히 일한다 해도, 책 한 권에 푹 빠져들었다가 헤어나오는 데는 적어도 두 달은 걸린다고 말했다. 그보다 서두르면 제대로 된 책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취직은 성사되지 않았다. 몸 부서져라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에 내가 너무 느루 잡고 한가한 소리를 한 것일까?

느루
「부」「1」한꺼번에 몰아치지 아니하고 오래도록. ¶하루라도 느루 쓰는 것이 옳고, 그래서 세 끼 먹던 것을 아침과 저녁 두 끼로 줄이었다.≪채만식, 소년은 자란다≫ §「2」'늘'의 잘못.

느루 가다「관용」 양식이 일정한 예정보다 더 오래가다. ¶죽을 쑤었으면 좀 느루 가겠지만 우리는 더럽게 그런 짓은 안 한다.≪김유정, 아내≫§
 
느루 먹다「관용」 양식을 절약하여 예정보다 더 오랫동안 먹다. ¶쌀을 느루 먹기 위하여 보리를 많이 섞어서 밥을 지었다. §
 
느루 잡다「관용」 「1」손에 잡은 것을 느슨하게 가지다. ¶우리는 가랫줄을 느루 잡고 당겼다. §「2」시일이나 날짜를 느직하게 예정하다. ¶나는 출발 날짜를 사흘 뒤로 느루 잡았다. §「3」『북』물건의 양 따위를 넉넉히 마련하다. ¶느루 잡아서, 사탕 2키로그람 정도면 되겠지요.≪선대≫§
 
느루 재다「관용」 「1」하기 싫어서 억지로 느리게 행동하다. 「2」빨리 결정을 하지 아니하고 우물쭈물 미루어 가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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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13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루재고 있음^^;;;

숨은아이 2005-08-13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리뷰 하나 쓰려는데 내내 느루 재며 딴짓 하고 있어요. ^^

릴케 현상 2005-08-13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한 달에 한 권은 기본인 걸로 사료되옵니다

로드무비 2005-08-13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달에 한 권, 얼렁뚱땅 만들면 그럴 수 있죠.
두 권도......^^;;
숨은아이님 이 카테고리 참 멋져요, 잘 어울리고요.^^

릴케 현상 2005-08-13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권도...?

어룸 2005-08-13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생을 느루재고있음....어흑흑흑흑...^^;;;;;

숨은아이 2005-08-13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기본이라구요? 난 못 해~~~~~~~~~~~~~~~~~~~~~~!!!
(200~300쪽짜리 소설이라면 저도 두 권쯤 만들 수 있는데...)
로드무비님마저... 흑흑. 어쨌거나 문장의 달인인 로드무비님께서 칭찬을... ^_____________________^
산책님/켁. 그것만은... 절대...
투풀님/느루 재지는 마시고 느루 잡기만 하시지... ^^ 느루 잡으며 살고파요~~~~~

killjoy 2005-08-13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루 재다의 동의어를 다 찾아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해찰부리다"도 유사한 뜻 아닌가요?

숨은아이 2005-08-13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킬조이님/하하, 그렇겠네요. 그런데 "느루"가 느릿느릿, 여유 부리는 태도라면 "해찰"은 한눈팔고 딴짓 하는 느낌. ^^

killjoy 2005-08-16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그렇군요! 작문 숙제 하기 싫어서 갑자기 책상 정리, 서랍 정리, 방 청소에 샤워까지 하는 건 해찰 부리는 것이고, 설겆이 하기 싫어서 꾸역꾸역 이십 분이고 삼십 분이고 그릇을 씻고 있는 건 느루 재는 것일 것 같아요.

숨은아이 2005-08-17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킬조이님/말씀하신 내용이 딱이네요. ^^
 
벼룩만화 총서 세트 1차분 - 전8권
조안 스파르.드니 부르도 외 지음, 유재명 외 옮김 / 현실문화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책을 매우 느리게 읽는 편인데(남들은 20분이면 한 권 보는 만화책도 한 시간씩 걸림), 24쪽짜리 벼룩만화 한 권 읽는 데는 10분 정도 걸린다. 서너 정거장 정도 되는 짧은 거리를 전철로 가는 동안, 또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다른 사람을 기다릴 때 한 권씩 읽으면 딱 맞는다. 한권 한권, 개성 넘치고 의미심장하면서도 픽픽 웃음이 난다. 마음은 무거운데 웃음은 가볍다.


이웃들 LES VOISINS/드니 부르도 DENIS BOURDAUD
“경제는 심리”란 말이 떠올랐다. 소비 심리 위축 → 소비 위축 → 불경기 → 기업의 매출 이익 감소에 따른 감원 → 실업률 증가 → 소비 더욱 위축, 불경기 지속. 참 모순이다. 하지만 모순투성이 인간사도 기나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의 한 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금붕어, 죽음을 택하다 noyé le poisson/조안 스파르 joann sfar
순환, 윤회, 공(空)인가. 하지만 그냥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봐 넘겨도 된다.

산란 주의 omelette/j.c. menu
어휴, 웃음이 새어나오면서도, 한편으론 알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새의 노력과 거듭되는 실패가 안타깝다. 결국 껑충 높은 자존심을 아프게 잘라낸 끝에(그러니까 자기 존재의 특성을 스스로 포기하고난 뒤에야) 간신히 알을 온전히 낳을 수 있었건만, 알을 깨고 나온 새끼는 어미새와 너무나 똑같은 특성을 가지고서, 자기 특성을 버린 어미를 비웃고 만다. 어미가 된다는 건 스스로를 버리는 행위인가? 혹시 자기 자신의 감춰진 면모를 새로이 발견하는 과정은 아닐까.

황당한 氏 이야기 L'HOMME-AUTRUCHE / 스타니슬라스 STANiSLAS
현대 남자는 갖추도록 요구받는 것이 많은가 보다. 첫째, 그럼 현대 이전에는 그런 게 없었나? 둘째, 대체 누가 그런 요구의 기준을 만들어냈을까? 셋째, 그런 요구는 남자만 받는가? 나는 안 웃기다.

목매 죽은 꼬마의 발라드 la ballade du petit pendu / 땅끄렐 tanquerelle
이 꼬마는 왜 목을 매달았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죽어서 스스로 숨쉬지 않게 되고, 의지에 따라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없게 된 순간, 꼬마의 육신은 자연물이 된다. 살아 있는 존재들이 건드리거나 무시하거나 잡아먹거나 내던지는 자연물. 그런데 인간만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구나.

죽음 CREVAISON / 사르동 SARDON
집안에서 죽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보여준다. 집안, 가족은 안전한 보루가 아닌 게야. 뻔한 기대를 뒤집는, 마지막의 산뜻한 반전이 빛난다.

엄마는 문제가 있다 MAMAN A DES PROBLEMES / 바루 & 다비드 B. Baraou & David B.
문제는 엄마에게만 있을까?

야만-다섯 손가락에게 LA BÊTE-À CINQ DOIGTS/토마스 오뜨 THOMAS OTT
전기의자 사형의 전 과정을 손의 움직임만으로 표현했다. 엄숙하다.


책제목과 작가 이름을 대문자 소문자 번갈아 쓴...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스타니슬라스는 다 대문자인데 i만 소문자로 쓰기도 했다. 작가들이 일부러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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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08-1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말고도 리뷰 쓰신 분 몇 되던데요. ^^

바람구두 2005-08-10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그, 그런가요?

클리오 2005-08-10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흑... 저는 글자가 없으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더라구요... ^^;;

숨은아이 2005-08-1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글타고 댓글을 지우실 것까지야... ^^
클리오님/머 내 맘대로 생각하는 거죠. ^^
 

경계(境界) | 혼자 중얼중얼
2005.08.03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그 집을 경계로 해서 첫번째 언덕길이 끝난다. 잠시 내리막길이 되었다가 가파른 언덕길이 된다. 그 가파른 언덕길에는 그곳에라도 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집이 무지 많다. 하지만 그 집들은 낙산에 있는 성벽을 결국 넘지 못한다. 그 성벽은 옛 서울의 경계가 되는 성벽이다. 낙산공원은 성벽 안에 있다. 성벽 안에 사는 사람들(꼭 지리적으로 성벽 안에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게다)에게는 여유로운 삶을 누릴 공간일지는 모르겠지만, 성벽 밖에 사는 사람들은 생존 공간이 그곳이기 때문에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만 한다.

그 집을 경계로 해서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 집 바로 다음 집부터는 LPG 가스를 쓴다. 연탄쓰는 것보다는 낫지만 도시가스에 비하면 LPG가스를 쓰는 것은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그 비용도 만만치가 않고, 그 때 그 때 현금으로 내야 하는 불편이 있으며 누군가 늘 신경을 써야만 한다. 

그 집을 경계(정확히는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로 해서 더 이상 구멍가게도 없다. 가파른 언덕에 오르기 전에 이발소 하나와 뭔가를 고치는 일을 하는 곳(?) 하나 정도가 있었던 것 같다.

산이 가까이 있어 벌레 소리, 새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또 도시 한 가운데가 아니니 밖에서 키우는 개도 있고, 집 근처에 닭도 있고 해서 사람 사는 곳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집이다. 서울에 올라와서 친척집, 친구들 자취방, 연탄보일러도 되지 않는 자취방, 월세 5만원짜리 단칸방, 낮에도 불을 켜도 살아야 했던 전셋방, 10평도 되지 않던 전셋방을 거쳐 16년만에 그런 생각이 드는 집에 들어온 것이다. 각시랑 함께 직장 생활하면서 은행에 저축하는 것 외에 달리 돈을 모을 방법을 생각하지도 실행해 보지도 않았고, 그렇게 조금씩 모아서 이제사 그런 생각이 드는 집에 들어온 것이다.

이사를 끝내고 낙산에 공원이 있대서 한번 가보자 하고 각시랑 함께 올라갔지만, 그 후로 공원에 산책하러 가자는 각시 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난,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내가 일한 만큼 벌고, 제세공과금도 꼬박꼬박 다 내고, 여유가 되는대로 저금하고 그렇게 해서 돈을 모으고 그렇게 해서 들어간 집인데(비록 내 소유는 아니지만), 그러면 나도 그 집에서만큼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하는데....삶에 지친 몸을 이끌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하는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곳일 수도 있는 그 언덕을 나는 마음 편하게 건강을 생각하며 올라야 하는 것이 그리 즐겁지만 않게 느껴졌나 보다.

그래서 한 동안은 오르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처음 그런 느낌을 갖게 된 것도 아니고 늘 일상에서 보아온 것들인데, 이제 그만 익숙해질만도 한데, 내가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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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5-08-06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을 정리하다 7년 전의 다이어리를 보았습니다.
가난은 나의 무기이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내가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용기있게 살 수 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지금 제 모습을 보니... 그때보다 많이 가졌건만, 더 갖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군요.
숨은아이 옆지기님을 보면서 다시 몸가짐을 바로하고 있습니다. 꾸벅~

숨은아이 2005-08-06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고맙습니다. 꾸벅~ (음음, 호랑녀님은 저보다 이 사람을 더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흥! 이 사람, 때로는 얼마나 쪼잔하고 치사하다구요.)
 

“누비다”란 말을 들으면, 누군가 거리낌 없이 활개 치며 다니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는 제 세상을 만난 듯 거리를 누볐다... 하는 식으로. 원래는 “두 겹의 천 사이에 솜을 넣고 줄이 죽죽 지게 박다.”(표준국어대사전)는 뜻이다.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에서는, 누빈다는 말이 본래 “납의”에서 왔다고 한다.

본래는 스님들이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넝마의 헝겊 조각을 기워서[納] 만든 옷[衣]이다. 즉 납의장삼(衲衣長衫)에서 나온 말이다. 납의가 ‘나비’로 소리 나다가 이것이 다시 ‘누비’로 정착된 것이다. 누비의 원형은 ‘납의’로서 누덕누덕 기워 만든 옷을 말한다. 여기에서 ‘누비다’라는 새로운 바느질 양식이 나오게 되었으며, 나아가서는 종횡무진 거침없이 나아간다는 뜻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런데 오늘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을 보니,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낸 뒤에, 싹이 나지 않았거나 뿌리가 내리지 않았을 때, 빈 자리를 따라가며 씨앗을 다시 뿌리거나 모를 내다.

란 뜻으로 “누비다” “깁다”란 말을 쓴다고 한다.

누비다, 깁다는 말은 아시다시피 바느질에서 쓰는 말.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스님들이 넝마를 기워 입은 옷을 납의라 했다. 납의의 발음이 변해 누비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죽죽 줄지게 박아 바느질하는 것을 누빈다고 했다. 농사지을 때 논밭에 싹이 나지 않아 군데군데 빈 구석이 생기는데, 이런 빈 구석을 찾아다니며 다시 씨를 뿌리거나 모를 내는 건 마치 옷의 해진 부분을 기우고 누비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런 행동도 “누비다”라고 했다. 그렇게 논밭을 여기저기 다니는 걸 누빈다고 하다가, 여기저기 거침없이 다니는 행동 자체를 가리켜 “(어디어디를) 누비다”라고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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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2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05-08-02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진진^^

숨은아이 2005-08-02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고맙습니다아~!
산책님/대충 끼워 맞춘 거여요. ^^

2005-08-03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