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그 집을 경계로 해서 첫번째 언덕길이 끝난다. 잠시 내리막길이 되었다가 가파른 언덕길이 된다. 그 가파른 언덕길에는 그곳에라도 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집이 무지 많다. 하지만 그 집들은 낙산에 있는 성벽을 결국 넘지 못한다. 그 성벽은 옛 서울의 경계가 되는 성벽이다. 낙산공원은 성벽 안에 있다. 성벽 안에 사는 사람들(꼭 지리적으로 성벽 안에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게다)에게는 여유로운 삶을 누릴 공간일지는 모르겠지만, 성벽 밖에 사는 사람들은 생존 공간이 그곳이기 때문에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만 한다.
그 집을 경계로 해서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 집 바로 다음 집부터는 LPG 가스를 쓴다. 연탄쓰는 것보다는 낫지만 도시가스에 비하면 LPG가스를 쓰는 것은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그 비용도 만만치가 않고, 그 때 그 때 현금으로 내야 하는 불편이 있으며 누군가 늘 신경을 써야만 한다.
그 집을 경계(정확히는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로 해서 더 이상 구멍가게도 없다. 가파른 언덕에 오르기 전에 이발소 하나와 뭔가를 고치는 일을 하는 곳(?) 하나 정도가 있었던 것 같다.
산이 가까이 있어 벌레 소리, 새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또 도시 한 가운데가 아니니 밖에서 키우는 개도 있고, 집 근처에 닭도 있고 해서 사람 사는 곳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집이다. 서울에 올라와서 친척집, 친구들 자취방, 연탄보일러도 되지 않는 자취방, 월세 5만원짜리 단칸방, 낮에도 불을 켜도 살아야 했던 전셋방, 10평도 되지 않던 전셋방을 거쳐 16년만에 그런 생각이 드는 집에 들어온 것이다. 각시랑 함께 직장 생활하면서 은행에 저축하는 것 외에 달리 돈을 모을 방법을 생각하지도 실행해 보지도 않았고, 그렇게 조금씩 모아서 이제사 그런 생각이 드는 집에 들어온 것이다.
이사를 끝내고 낙산에 공원이 있대서 한번 가보자 하고 각시랑 함께 올라갔지만, 그 후로 공원에 산책하러 가자는 각시 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난,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내가 일한 만큼 벌고, 제세공과금도 꼬박꼬박 다 내고, 여유가 되는대로 저금하고 그렇게 해서 돈을 모으고 그렇게 해서 들어간 집인데(비록 내 소유는 아니지만), 그러면 나도 그 집에서만큼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하는데....삶에 지친 몸을 이끌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하는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곳일 수도 있는 그 언덕을 나는 마음 편하게 건강을 생각하며 올라야 하는 것이 그리 즐겁지만 않게 느껴졌나 보다.
그래서 한 동안은 오르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처음 그런 느낌을 갖게 된 것도 아니고 늘 일상에서 보아온 것들인데, 이제 그만 익숙해질만도 한데, 내가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