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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기의 즐거움 - 한국고전산책
정약용.박지원.강희맹 지음, 신승운.박소동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지난 석 달 동안 풀로엮은집(www.puljib.org)에서 월요일마다 천자문 강의를 들었습니다. 종강 때 풀로엮은집에서 책을 걸어가게 하자며, 헌책방에서 사온 책을 한 권씩 가져가게 하더군요. 인연이 닿으면 옛글도 읽고 싶었던 저는 이 책을 골랐어요.강희맹, 이이, 정약용, 성현, 이규보, 이익, 안정복 등 교과서에서 많이 본 사람들, 또 그렇지 않은 분들이 남긴, 한문으로 된 우리 옛글 47편을 쉽게 번역해놓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천자문교실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맹자에 나온다는, 예禮란 "옛날 어느 사람이 아버지가 죽어 그 시신을 밭 한구석에 버렸다. 금수가 지나다니며 시신을 훼손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시신을 수습해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 곧 예는 단순히 "존재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되었고 그게 전부인데, 껍데기만 남을 때 사람을 억압하는 족쇄가 되지요.
맨 끝에 실린 글, 이현석의 [시세와 기수에 관한 이야기 時勢氣數說]에 이런 글월이 있습니다.
"천지 도수의 소장消長은 추위나 더위와 같고 시세의 험이險易는 산이나 물과 같다. 시세를 잘 이용하여 혼란을 바로잡아 다스리는 법도는 원래 소장과 험이 그 속에 있다. 이를테면 (추위를 이기는) 갖옷이나 (더위를 견디는) 갈포옷, 말이나 배를 천지의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상고 시대부터 수많은 세월을 지나면서 세상을 다스리는 법도가 많았을 터인데도 당우 삼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대로 구비되었다. ...(중략)... 이제 당우 삼대로부터 또 몇천 년이 흘렀으니 수많은 변화를 어찌 이루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는 바로 세상을 경영하는 법도가 당우 삼대보다도 더욱 구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치자도 어찌 꼭 당우 시대와 삼대의 전철만을 변통 없이 일일이 따를 필요가 있겠는가."
(* 당우唐虞란 중국 고대의 임금인 도당씨(陶唐氏) 요(堯)와 유우씨(有虞氏) 순(舜)을 말합니다. 곧 당우 시대란 요임금과 순임금 시대, 중국 역사에서 이상적인 태평 시대로 꼽히는 때를 말합니다. 또 삼대三代란 중국 고대의 하夏나라, 은殷나라, 주周나라 시대.)
그러나 역시 유학이 지배계급 남성의 통치도구가 되면서 문제가 생긴 것 아닐까요.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무엇보다 "절제"를 중요한 미덕으로 꼽는 듯합니다. 명예도 먹는 것도 술도 절제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 매사를 겪으며 스스로 절제하라 경계하기 위해 글을 썼네요. 그 중에서 아마 꽤 술을 좋아한 모양인 정철과 남용익 선생의 글을 읽으면 웃음이 납니다.
"남이 혹 취했을 때의 일을 얘기해주면 처음에는 그럴 리가 없다고 믿지 않다가 나중에 참으로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알고 나면 그 부끄러운 생각에 꼭 죽고만 싶어진다."(66쪽)
술을 의인화한 박윤묵의 [국청전 麴淸傳]도 있어요.
그리고 1597년 정유재란 때 포로가 되어 2년 8개월간 일본에서 포로 생활을 한 강항 선생은 일본 승려에게 들었다면서 우리가 잘 아는 혹부리 영감 이야기와 거의 같은 이야기를 썼네요!
우화 형식으로 쓴 이야기 중에는 도둑 이야기도 두 가지나 있고, 또 한 사기꾼 이야기는 그 사기꾼의 기지를 칭찬하는 투라 흥미롭습니다.
이 책에서 제가 특히 명심해야 할 것은, 맹자의 "사람의 걱정거리는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는 데 있다"는 말씀이지요!
(맨 뒤의 "지은이 소개"를 보니까, [분수를 지킨 도둑 이야기]를 쓴 권필 선생은 귀양길에 '폭음'을 하고 급서했다는군요. 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