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물대포 맞아버렸다
2005.12.08


오늘 오후 여의도 국회 앞 국민은행 근처...

비정규직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입법(즉 비정규직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그 사유를 명시하여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여 올해 국가인권위원회, 노동 사회단체,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주장해 온 것을 내용으로 한 법률의 제정 또는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조합법 개정 및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폐지 또는 개정 등)을 촉구하는 민주노총 집회가 있었다.

노무현이나 열린우리당이 뻘짓하고 있다고 말하는 내가 오늘은 말만 해서는 안되겠기에 그곳에 가기로 했다.

요새 물대포가 자주 등장하다 보니 대열 뒤쪽에서 비옷으로 갈아 입고 대나무를 들고 앞으로 나서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등장은 모든 행사가 모두 끝난 후였으므로 어쩌면 하나의 상징적 행사 정도의 성격일 것 같다.

그들이 나서자 선무방송(여자 목소리다)이 들린다.

우리는 시위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시위를 막기 위해 온 것이 아니므로 해산하라 어쩌고 저쩌고..

경력 수송버스로 사람들이 다가서자 곧 노란색 물대포 차량에서 물이 쏟아진다.

겨울에 찬 물을 끼얹다고 생각해 보자. 물 한번 참 차다. 아니 춥다.

선무방송이 계속된다. 물러서라. 해산하라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좀 있다가 방패를 든 무리가 나타나고 서로 공방전이 벌어진다.

위에서 어쩌면 상직적 행사라고 정도의 성격이라고 했는데, 서로 밀고 당기지만 서로를 다치게 할 정도로 나서지도 물러서지도 않는 것이 그렇게 말해도 될 듯 싶다. 방패를 든 무리들도 방패날을 세우고(방패를 약간 비스듬하게 세우면 아래쪽 날이 다 보인다. 그렇게 하면 팔 길이와 방패 길이를 합친 곳까지가 공격 범위이고 그 방패날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얼굴 등 피부에 닿으면 피부가 찢겨진다. 방패를 땅에 갈기도 하고 진압 연습하면서 땅에 부딪히기도 하니 아주 날까롭게 날이 선 것이 많다. 어떤 자세인지 궁금하면 바로 아랫글 첫번째 사진을 보면 된다) 곧 달려들 것처럼 하면서 온갖 무서운 표정을 짓고 욕지거리를 해대지만 선뜻 나서지 못한다.  

선무방송이 계속된다. 방패를 든 무리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물러서라. 해산하라.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앞선 이들이 뒤로 빠지고 처음에 뒤로 빠졌던 이들이 다시 나선다. 물론 그들은 맨손이다.

그들은 방패를 든 무리들과 몸을 맞댄다. 그리고 서로를 밀친다.

서로 밀치다가 이런 저런 말이 오가기도 하지만, 재밌는 ?? 대화도 오간다.

오늘 내가 그 무리들 중 하나와 나눈 대화다.

그가 먼저 말을 건다. 어께에 파란 테잎을 붙인 걸 보면 계급은 상경이나 수경(군인으로 따지면 상병이나 병장)인 것 같다.

아저씨..여기 집회 끝나면 돈 받는다는 게 사실인가요 ? (존댓말이니 아저씨라는 말은 봐준다..)

누가 그렇다고 가르치던 ?(난 반말이다. 얼추 보아도 내 넷째 조카뻘이니 그냥 그러기로 했다)

아니, 그렇게 들었어요.

누가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지만 거짓말이야.

그에게 누가 그런 말을 해 주었을까 ? 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돈을 받고 그런 곳에 간 적이 없다. 내가 아는 한 그런 집회에 나가는 사람 중에 돈받고 가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물이 떨어졌는지 조용하던 물대포가 다시 움직인다.

방패를 든 무리들과 맞닿은 곳에도 쏠까 ? 같은 편이 물을 뒤집어 쓸텐데.

아 ! 미운 정도 정인가 몇 분 사이에 그들과 정다운 ??? 대화도 오간다.

방패를 든 무리들이 모자 눌러써야 한다고 충고를 해 준다.

니네들 있는 곳에도 물대포 쏘냐고 묻는다.

입술을 힐쭉하면서 헛웃음을 지으며 자기들이 있는 곳에도 막 쏜단다.

뭐야 ? 이런 우라질 ~~~

저 뒤에 숨어 있는 놈들이 움직이라는 대로 움직이거나 아무 개념없이 사는 애들이더라도 그래도 자기들이 부려먹고 있는 애들인데, 역시 그 놈들은 역시 병역의무라는 굴레를 씌워서 얘들을 인간 취급도 안하는 거야 !!!! 정말 나쁜 놈들이다. 그 무리들이 헛웃음을 짓는 이유를 알겠다.

그 순간 내 왼쪽으로 불과 5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는 물대포가 내 왼쪽 뺨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온다. 물대포의 위력은 대단하다. 몸을 웅크리고 버티지 않으면 몸을 뒤로 밀쳐버린다.

여름이면 시원하기나 하지. 이런 이런 다 젖었군. 어라, 내 등산화는 방수라고 했는데 젖었네..우띠~

후드점퍼에 달린 모자를 눌러쓴 여자 한명이 물대포를 가까이서 맞고는 어쩔 줄 몰라한다. 어깨를 잡고 내 앞으로 당기고 물대포를 등지고 내가 섰다. 내가 맞는 게 낫다 싶어서. 다행히 곧 물대포는 멎었다.

그래도 선무방송은 계속된다.

마스크를 하기 전부터 선명하게 사진을 찍었고 그것을 근거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파란옷에 안경쓴 사람 물러나라. 누구누구 정말 선명하게 찍혔다 어쩌고 저쩌고...

그 방송을 들으니 웃음이 나온다. 나도 잘 찍었을라나. 너무 잘 찍혀서 내 얼굴이 잘 보일라나. 이왕 잘 찍지. 그래서 머리 속에 확 박혀버리지. 아니 너무 확 박혀 버려서 꿈속에서도 내 얼굴을 확 봐 버리지. 그래, 그리 말하고 하는 게 재밌나 ? 어잉~

허허..자랑스런 대한민국 경찰이 되어 업무에 충실할 뿐인데 놀리면 쓰나 ? 내가 놀린건가 ? 흠...난 그냥 그도 집에 가서 나처럼 내가 오늘 무슨 일을 했나 하면서 천장을 쳐다볼 때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해서 웃자고 한 말이다.

춥다. 그래서 뒤로 물러선다.

점퍼 위에 묻은 물은 곧 얼어 살어음처럼 된다. 모자에서는 얼지 않은 물이 뚝..뚝..바지는 살에 닿아서인지 얼지 않고 젖었다. 차라리 얼어버리지. 더 춥잖아.

행사가 다 끝나고 가까운 식당에 갔다. 얼굴이 확 달아 오른다. 정면으로 맞은 왼쪽 뺨과 귀가 더 그렇다. 소주 한잔을 마신다. 더 달아 오른다.

그리고 집에 간다(지금은 집에 가기 전에 잠시 사무실에 들렀다).

오늘의 교훈...

1. 지편 내편 상관없이 물대포 쏘고 저 뒤에 숨어 있는 놈들 정말 나쁜 놈이다.

2. 방패를 든 무리들과 가깝다고 해서 절대 물대포 피할 수 없으니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3. 방수되는 옷과 신발을 챙기되 과장광고에 속아 산 것일 수도 있으니 미리 확인해야 한다.

4. 옷이나 양말을 하나 더 챙기되 꼭 비닐로 꼭 싸야 한다.  

5. 저 물이 무슨 물인지 알 수 없으니 입은 꼭 다물고 집에 가거든 깨끗이 씻어야 한다.

저 물대포가 더 이상 쓸모 없어 가뭄난 곳에 물을 나르는 것이 제 일인 줄 아는 날이 빨리 와야 할 텐데.......




  • 마주보며말하기 2005.12.09 10:33:40

    어제 인도쪽에서 충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 뉴스를 보니 상당했던 모양이다. 잡혀서 구타당하는 시위대 사진과 그것을 못찍게 하는 카메라를 막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무미건조하게 적어본 글인데 그곳에 계셨던 분들이 못마땅해 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좀 무겁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숨은아이 2005-12-09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쓴 사람(제 옆지기)은 나이 어린 사람에게 함부로 반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경들한테는 반말을 합니다. -.- 그것도 전경 한 사람이 떨어져 있을 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전경들이 패거리로 몰려 있을 때만 반말을 합니다.

깍두기 2005-12-0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 옆지기님 힘내세요. 숨은아이님도.
이 추위에 집회하는 분들도.
우리 사회가 점점 우리 사회 구성원 중의 일부(아주 중요한 일부)를 포기하는 것 같아 괴롭습니다.

라주미힌 2005-12-09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도 추운데...
감사합니다.

물만두 2005-12-09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바뀌어도 나아지는 건 없다는 ㅠ.ㅠ 몸 조심하시길...

숨은아이 2005-12-09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저야 뭐 하는 일이 없지만...

아영엄마 2005-12-09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운 날에 물대포 맞으시다니.. 감기 안 걸리셔야 할텐데... ㅡㅜ

엔리꼬 2005-12-09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비정규직인데, 나는 왜 집회 참석을 안할까,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결론은? 무섭다.

숨은아이 2005-12-09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라주미힌님 만두언니 아영엄마님 걱정하고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왜 한겨울에 물을 쏘는지 몰라요. 서림님, 무섭죠. ^^

릴케 현상 2005-12-09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업자는 이불 뒤집어쓰고 여기가 천당인갑다 합니다~

울보 2005-12-09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감기에 걸리지 않으셨는지요,,
숨은아이님도 걱정이 많으시겠네요 ..
두분모두 힘내세요,,

숨은아이 2005-12-09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엥? 추운 겨울에 실업자가 되셨군요. 이런.
울보님/고맙습니다. 저는 뭐 힘낼 것도 없어요.

하늘바람 2005-12-09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세상에 ^^

로드무비 2005-12-10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감기 안 걸리셨는지......
두 분은 정말 어쩜 그리 한결같으신지요.
참 귀한 커플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날씨에 물대포를, 참 악독하구만요.ㅉㅉ

숨은아이 2005-12-10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세상에 네상에.^^
로드무비님/저는 칭찬 들을 자격이 없습니다. 다행히 감기는 안 걸렸네요.

2005-12-10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클 2005-12-10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건강하시길.

숨은아이 2005-12-11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지금 주문 마쳤습니다. ^^
야클님/야클님도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