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런 소설에 대고 독자로써 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다. 만약 이 책을 읽은 뒤 내 마음 속 얼굴을 누가 찍는다면, 입을 -0- 이렇게 벌리고 있을 뿐,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하는 그런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소설을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거, 내가 소설가였다면 상상했을까.  상상했다면 이런 글을 읽고 그 질투를 어떻게 스스로 감당해내고 온전히 즐길 수 있을까.' 

읽으면서 잠깐 잠깐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주제도 넘게. 

결국 그리하여 이 책에는 '고맙다'라는 진심어린 감사의 추천이 신문사에도, 평론가의 해설글에도, 여기 알라디너에도 줄을 이을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인정.  

처음에는 소위 '밑줄긋기'를 이용하여 주옥같은 대화를 여기에 옮기고 싶었으나 다 포기. 옮겨서 몇 줄 읽으면 가슴이 설레긴 하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이 소설은 아주 조용한 곳에서 단박에 그 호흡을 느끼며 죽 읽어야 제 맛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저것 미리 접한 문장을 짧은 장편에서 굳이 발견하는 숨은그림찾기의 묘미 같은 건 사족에 불과하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줄도 괜히 쓰였구나 싶은 문장이 없는 170페이지를 죽 즐기면 되니까. 한 번 손에 들면 왠지 크게 기침 한 번 못할 거처럼 조용히 호흡을 고르게 만들지만, 읽다보면 사실 숨 고를 틈도 없다.

단 하나, 스포일러임을 무릅쓰고 그래도 적고 싶은 소감이 있다면, 

'사랑하고 싶은 사람, 이 책을 읽어요. 연애 말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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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 2010-07-21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정말, 숨을 못 쉬게 하지요.
황정은 작가 팬클럽 만들고 싶어졌어요.

리뷰 제목 멋져요-






치니 2010-07-21 10:47   좋아요 0 | URL
저 사실 어제 트위터를 막 뒤졌어요. 혹시 황정은 작가가 하실까 싶어서. ㅠ 없더라고요.
방금 kimji님의 (미뤄두었던)리뷰도 읽고왔어요. 아유 그 리뷰 읽고도 막 가슴이 벌렁벌렁.

웽스북스 2010-07-2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른 읽을래요!!!!

치니 2010-07-21 10:48   좋아요 0 | URL
우리 웬디양님 바빠, 너무 바빠. ㅋㅋ

다락방 2010-07-21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건 뭐죠? 저는 모르는 책인데요? 저도 읽겠습니다! (바쁜중에 잠깐 와서 댓글달고 가는 충성파 다락방)

치니 2010-07-21 10:51   좋아요 0 | URL
충성파 다락방, 이라는 말에서 스티븐 시걸 떠올렸;;; ㅋㅋㅋ 죄송.
다락방님이 좋아하실까요, 네. 그럴 거에요.

rainer 2010-07-21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은 구매의 계절인 듯! 주문을 클릭 할 따름이죠. ^^
(위에 님들 서재에는 신들이 산다는 걸 아시는지 몰라.. 투덜투덜~)

치니 2010-07-21 11:54   좋아요 0 | URL
^-^ rainer님이 가끔 페이퍼에 적어주시는 대화의 느낌이랑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라로 2010-07-2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은 이런 책을 어떻게 다 아는지 정말 궁금~~~.
책 엄청 읽으시네요!!!ㅎㅎㅎ
8월 7일에 서울간다~~~.
그때 밤에 볼까용???시간 되시는지???레이니와 함 얘기해봐줘~~~.

170페이지면,,,

치니 2010-07-21 16:43   좋아요 0 | URL
어이쿠, 무슨 말씀. 책 많이 안 읽어요.(특히 나비언니에 비하믄!) 이 책은 트위터에서 알았구. ^-^
네네, 일단 오셔요. ㅎㅎ

굿바이 2010-07-21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 였는데, 우왕~
그렇지만, 또 책이 많이 알려져서 독자도 많이 생기고... 횡설수설이예요. 여튼 저도 이 책 읽고 있는 중이예요^^

치니 2010-07-22 09:03   좋아요 0 | URL
나만 아는 아주 좋은 장소, 아주 좋은 책, 아주 좋은 사람, 아주 좋은...누군가에게 발설하는 순간 그 아주 좋음이 탈색되거나 변질될까봐 망설여지는 그런 거, 있죠. 근데 또 말씀대로 내가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안 유명할 때 진작 알아봤는데 유명해지면, 거봐라 싶어서 뿌듯/우쭐하기도 하고. ^-^
굿바이님 리뷰 기대할게요!

2010-07-22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2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2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토니 2010-11-27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친구 결혼식 다녀오는 길에 읽었어요. 차가 어찌 막히던지 갈때 한번 올때 한번, 그렇게 두번을 읽었네요. 쇄골 이야기, 오무사 이야기, 숲과 섬 이야기, 등등 모두 다 맘에 들었어요! 작년 겨울 "D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을 때처럼, 이번에도 그들의 순수하고, 투명하고, 잔잔한 사랑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근데 도대체 저의 무재씨는 어디에 있는걸까요? ㅋㅋ

치니 2010-11-28 10:50   좋아요 0 | URL
이번에 이 작가가 무슨 상을 받았대요. (무슨 상인지 까먹음) 이런 책이 인정 받고 상 타는 게 보기 좋아요. :)
무재씨야 빨리 토니님에게 가세요 ~ ㅋㅋ
 

조금만 진지해도 어디 가서 혼구녕 날 것 같은 세상이다.  

용건만 간단히, 하지 않으면 답답하다 소리를 쉬이 듣는 세상이고, 남들이 다 하는 이야기를 모르면 바보 되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할라 치면 무시 당하는 그런 세상. 눈깔이 핑핑 돌아가지만 꾸역꾸역 정보를 주워담아야 하고 그것들을 쿨쉬크하게 휘리릭 다듬어서 마치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양, 그러나 그 소유에 별 무관심하다는 양 여기저기 내밀어야 그나마 인정 받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시와 소설은, 문학은 가끔 어두운 동굴 속 축축하고 깜깜해서 더듬더듬 뭔가를 찾아 겨우 불을 밝혀야 하는 힘든 것, 주홍글씨처럼 그 낙인을 찍고 산다. 

그런 와중에 이런 소설이라니! 

 

 

 

 

 

 

 

솔직히 첫 번째 단편 <열세살>을 읽고나서 꽤 얼얼하다보니 다음 글은 이 정도 세기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단편들을 읽고 마지막 <하루>까지 읽고나서는 이 작가의 뚝심에 경배를, 이라는 마음이 되었다. 

소설가란 모름지기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을 어딘가에서 말해주어야 하는 책무가 있다고 믿는 것 같은 이 작가의 뚝심, 고단하고 어렵지만 제 갈 길을 가는 사람이 가진 섣부르지 않은 자신감, 희희낙낙하지 않고도 지루하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 주는 고르고 고른게 분명할 문장들, 그러나 수사가 거의 없는 단정함, 이런 것들이 그 내용이 극도로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잊고 있었던 소설읽기의 참맛을 주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누군가와 한없이 지난하고 세세한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지 않을 것 같고 모두 우스운 이야기만 하는 자리에서 나혼자 진지해도 괜찮을 것 같고 재테크와 연예인 이야기가 아니면 재미없어 하는 사람들 앞에서 책 이야기를 실컷 해버리면서 지루해하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게 될 것 같다.  

고요하고, 씩씩하게 - 이 책의 느낌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하는 여름 오후의 주절주절 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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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7-13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특히 [손]이 무척 좋았어요. 대단히!

치니 2010-07-13 16:06   좋아요 0 | URL
저도 <손>이 이 책에서 가장 독보적이라고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가장 공감되었던 내용은 아무래도 <하루>. 마치 내가 그 안에 그대로 있는 거 같아서 진땀이 삐질 나던데요.

2010-07-13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3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3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나 2010-07-13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고 싶다
요새 소설 안읽고 딴 것 좀 읽어볼라구 노력하는데 영... 어렵네요 ㅎㅎ

치니 2010-07-13 18:00   좋아요 0 | URL
나랑은 반대구나, 니나님.
전 이 소설 읽기 전에는 모든 소설이 재미가 없어서 딴 것만 읽었어요. :)

2010-07-14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4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0-07-15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글을 읽으면 올리는 글마다 다 읽고 싶지만 이 책은 안읽을거야,,,
내가 감당을 못할것 같아서~~~~.^^;;;
하지만 작가가 이 페이퍼를 본다면 정말 행복할것 같다!!^^

치니 2010-07-15 09:38   좋아요 0 | URL
웅 제가 너무 힘든 책처럼 느껴지게 썼나봐요. ㅠ 그런 건 아니에요. 내용상 어두운 사람들이 부각되기는 해도 우리 모두 각자 그런 부분은 다들 있으니까, 오히려 읽고나서 '그러니 잘 살자' 이렇게 힘도 나는 지점이 있어요.
나중에 언니가 마음의 준비(?)가 되면 읽으셔도 좋고요. :)

산사춘 2010-07-2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말을 안(아니 덜) 하고 살다보니 더욱 깔끔한 게(?) 땡깁니다요.

치니 2010-07-20 09:03   좋아요 0 | URL
우앗, 산사춘님이다! 허리는 좀 어떠신지요.

산사춘 2010-07-22 06:15   좋아요 0 | URL
허리는 많이 나았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안심하고 있을 때마다 다시 흔들흔들해서요,
십키로 빼려고 결심했어요...... 어제부터...
주지육림 탱자탱자하려면 몸이 건강해야 해요, 불끈!

치니 2010-07-22 09:05   좋아요 0 | URL
시...십키로, 역시 통도 큰 산사춘님. ㅋㅋ
무한도전 길이 편 보니까, 그래도 다 빠지고 요즘 길이 보니까 그거 유지 잘 하는 거 같아 보기 좋더라고요. (뭐래? 지금 왜 길이랑 비교하고 있음? ㅋㅋ)
암튼 산사춘님 홧팅! 잘 노셔야 우리가 즐거워요.
 
예찬 예찬 시리즈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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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번역이어도 편집교정이 잘 안되면 이런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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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0-07-0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워낙 유명하고 유능한 번역자인데, 이상하게 이 책 [예찬]도 그렇고 [외면일기]도 조금 안타까웠어요. 그게 편집교정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구요. 차라리 이은주씨가 번역한 [흡혈귀의 비상]이 훨~씬 좋았답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이지만요.

치니 2010-07-08 13:39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저는 미셸 투르니에를 벼르고 별러서 읽은 게 이 책이 처음인데 솔직히 이 책을 읽고나서 그 유명한 <방드르디...>도 읽을까 말까 망설이게 되어 버렸어요. 아직도 번역 문제인지 투르니에 본인의 스타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난독을 유발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2010-07-09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9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9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1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사춘 2010-07-20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드르디는 웃겨서(?) 괜찮으실 거예요. (혹시 나만?)

치니 2010-07-20 09:04   좋아요 0 | URL
아니, 산사춘님만 글치는 않을 거 같아요. 이 책 <예찬>에서도 몇 번 웃었거든요. 투르니에가 귀엽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해서. 흠, 그럼 방드르디 한번 읽어볼까요?
 

생각의 여름 

아침에 시인의 이런 글을 읽으니, 마음이 시원한 물에 발 담구고 숲속에서 딩가딩가, 그래진다. 이 세상에 시인이 없었더라면! 우리 모두는 죽었을 지도 몰라, 그런 극단적인 생각도 하고, 창비 이용악 시전집을 사야 하나, 그런 생각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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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 2010-06-24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폰도 없고, 스피커도 없는 나는
오히려 그게 다행일지도 몰라..라고 잠깐 생각..
불망까페 가서 시를 읽고 잠깐 눈물 찔끔 거렸지만
그러나.. 배고프다..

치니 2010-06-24 11:29   좋아요 0 | URL
^-^ 눈물 찔끔하고 배고프고 밥을 먹고 또 시를 읽고, 우리가 늘 그렇다는 게 좋아. 둘 다 무고하다는 증거 같아서.

니나 2010-06-24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 시는 모 이래요. 왜 이래요. 손으로 옮겨적고 싶어요.
아휴 그리하여 저도 생각의 여름 찾아서 들었습니다.
우리 사무실 디제이는 나니까, (다행) 만세!!
이 CD는 꼭 사야겠다. 결심~ 붕가붕가 레코드 좀 짱인듯 ㅋㅋ

치니 2010-06-24 14:32   좋아요 0 | URL
아아, 그러게 말여요, 니나님, 뭐 이래요...타지 않는 저녁 하늘을 가벼운 병처럼 스쳐 흐르는 시장기, 이런 말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런 사람들은.

디제잉 할 수 있는 그 사무실, 부럽. ㅠ

라로 2010-06-26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잘받았어~~~.^^
아시다시피 요 며칠 바빳어서 아직 못보냈네,,,ㅎㅎㅎ
오늘 미자씨 읽었는데,,,,,암튼 정말 감사~~~~.^^

시는 첫줄부터 움켜잡네, 날...쳇

치니 2010-06-26 11:23   좋아요 0 | URL
^-^ 잘 갔구나, 재미나게 읽으셔요. :)

시가...흑, 그렇죠?

2010-06-26 0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6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넛공주 2010-07-02 0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생각의 여름이라,처음 듣는...흑흑.그저 떠나온 제가 죄인이라지요.

치니 2010-07-02 09:33   좋아요 0 | URL
아녜, 아녜요. 도넛공주님. 저도 요새 첨 알았어요. :)
그리 유명한 밴드가 아니라서, 은근하게 아는 사람들만 알더라고요.
밴드이름 참 잘 지었어요, 그죠?
떠나간 그곳의 음악도 언제 한번 소개해주세요 ~

토니 2010-07-10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왜 이렇게 좋은 시를 읽으면 질투가 나죠? 저의 한계를 인정하고 독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 되는데... 참, 언니 저 미국 가기로 했어요. 미친짓 같은데 안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요. 이유는 그거 하나예요. (물론 환률이 급등하지 않으면요!)

치니 2010-07-11 10:29   좋아요 0 | URL
미친 짓이긴요. 전 무조건 잘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야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야 하고. 그걸 시도하는 자체가 멋집니다. 짝짝짝.
(돈이야, 살다보면 어케 되겄죠. ㅠㅠ)
 

월드컵 때문에 일희일비 한다. 아, 응원 열심이신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나는 우리나라가 이기건 지건, 별로 상관 없다. 그 때문에 일희일비 하는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이 이 열기에 빠진 상황 때문에 일희일비한다는 것이다. 

우선 '희' 쪽을 보면,  

어제는 어서들 응원하라면서 회사에서 퇴근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가라고 했고, 6시부터 교통통제라길래 혹시 길이 막히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웬걸, 다들 어딘가 들어가서 자리를 잡은 터라 길은 명절 때처럼 뻥뻥 뚫렸다. 내가 사는 곳은 요사이 관광 특구라나 퇴근 무렵이면 평일에도 북적이는데 웬걸, 어제 저녁엔 걷기에 걸거치는 것 하나 없이 고요했다. 와, 이거 월드컵 괜찮은데, 라고 잠시 생각했는데... 

'비'쪽이 역시 찾아왔다. 

집에 가 채널을 돌리니 눈쌀 찌푸릴 수 밖에 없는 월드컵 장사치들의 CF가 연이어 나와서 볼 티비가 거의 없고, 마트에 들렀다 온 친구는 마침 경기 직전에 뭔가 먹을 걸 사려고 몰려든 사람 때문에 아비규환이 되어서 물건을 집었다가 그냥 두고 서둘러 빠져나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경기 보기도 전에 지쳐버렸다고 했으며, 그 덕에 저녁은 간단히 마트식 롤이야 라며 준비도 안했던 우리는 파리바게트의 눅눅한 샐러드와 빵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말아야 했다.  하지만 최악은 역시 경기 보던 중에 나왔던 '(뜬굼없이 자막 난에 담배 한 개피 추르르 무너지는 그림 보여준 뒤) 담배없는 대한민국 파이팅!' -_ㅠ 흡연자는 다 죽여버리고 축구서포터즈만 살아남으라는 뜻이냐 뭐냐. 에잇.

아무튼 천성이 뭐든 열의를 내기 힘든 성격이라 그런지, 이 열기에 도저히 함께 호응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아침에 갤럭시 익스프레스 2집 앨범 듣는데, 와우 대공감!  

(요새 가사 올리면 저작권법 위배 된다고 했던 거 같은데...<갤럭시 익스프레스>가 설마 저를 고발하지 않겠죠? ^-^;) 

나의 지구가 죽어간대 / 나도 월세 땜에 죽겠는데  

나의 지구를 살려야한대 / 살릴 땅 한 평도 난 못 샀는데 

븍극곰 집이 녹아 사라진대 / 내 집도 재개발로 사라진데 

하와이 섬들이 사라져 간대 / 하와이 한번 가보고 싶은데 

자동차 배기가스가 문제래 / 나는 면허 없는 게 문젠데 

해수면 높아져 큰일이 났대 / 난 휴가철에 해수욕도 못 갔는데 

차라리 잘됐어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이 세상은 내 것이 아냐 

차라리 잘됐어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내 껀 아무것도 없는걸~

 - 제목 '나의 지구를 지켜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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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10-06-18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인생은 정말 불공평한 거 맞아요.
저 자는 땅 한 뙈기 없어도 면허조차 없어도
저렇게 뭘 만들어낼 기술(?)이 있쟎아요.

치니 2010-06-18 12:17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들으면서 같은 생각했어요. 그래도 넌 이런 노래를 만들 수나 있구나, 에효, 라고 말이죠.

또치 2010-06-18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미자 씨 가라사대
내 보통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죠?! ^^

전 지난번 그리스전 때는 축구하는 시간에 맞춰 장보러 갔더니 너무나 한적해서 참 좋았고
어제는 못봤던 다큐멘터리 보고 EBS 세계테마기행이랑 한국기행 보면서 수박이랑 참외랑 우적우적 먹었답니다.
동네 사람들 비명소리(!) 들릴 때마다 그 높낮이로 경기 상황을 알 수 있던데, 그거 재밌더라구요. 16강으로 갈 확률이 어째 70%는 될 거 같은데, 나름의 생존전략을 잘 짜봅시다 우리!

치니 2010-06-18 13:43   좋아요 0 | URL
네네, 안그래도 지금 나날이 발전 중이에요. 2번 치루고 나니 어떤 시간에 무엇을 하는 게 좋은 지 슬슬 감이 잡혀갑니다.
전 어제 밖에서 누군가 부부젤라 짝퉁을 사 왔는지, 가끔씩 불어대는 바람에 살짝 시끄럽기는 했지만 단체 비명까지는 못 들었어요. 그나마 저희 동네가 조용한 모양. ^-^

웽스북스 2010-06-19 02:16   좋아요 0 | URL
치니님. 부부젤라 어플있어요. 아이폰 유저들 천재. ㅋㅋㅋㅋㅋ
그냥 흔들면 소리나더라고요.

굿바이 2010-06-1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거 봤어요. <담배없는 대한민국 파이팅!> 같이 보시던 분이 이래저래 쓰러지려고 하더라구요. 좀 많이 뜬금없었어요^^
그나저나, 내 껀 아무것도 없는 것,도 쉽지않은 일인데, 살짝 부러운데요~(뭐래ㅎㅎㅎ)


치니 2010-06-18 13:45   좋아요 0 | URL
보셨구나, 굿바이님!
아우 저는 그 자막(인지 광고인지)을 보고 왜 아무도 아무 말을 안하는가, 하다못해 트위터에도 왜 성토가 없나, 그런 격한;; 마음이 잠시 들었다가 그냥 찌그러졌습니다. 그냥 뭐 너무나 SBS 답달까. 씁쓸했죠.

맞아요, 슬쩍 부러워요, 저런 해탈 같지 않은 해탈.

라로 2010-06-19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거보구 왠???이랬는데,,,치니양은 나보다 더 예리하게 받아들였군~.ㅎㅎㅎ

난 천성이 뭐든 열의는 내는 성격이라 가끔 생각하면,,,(요즘은 자주) 내가 피곤해,,,ㅠㅠ
저 노래 가사 쨩이다!!!!!
참 두리는 잘 지내??? 뜬금없이 위에 사진보니 궁금하다는,,,

치니 2010-06-21 10:29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흡연자이다 보니 더 신랄하게 (예리하다기 보다는 ㅋㅋ) 받아들이게 되더라구요. 흥! ㅋㅋ

천성이 뭐든 열의는 내는 성격 -> ㅋㅋㅋㅋ 스스로 잘 알고 계시니 앞으로 덜 피곤하게 조절 잘 하시믄 저보다 훨씬 생산적인 삶을 살지 않으까요?

두리는 잘 지내.....는 거 같아요. 흑흑, 못 본 지 넘 오래.

웽스북스 2010-06-19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구는 별 흥미없어요. ㅎㅎㅎ 그래도 귀는 얇아서, 그리스전은 안봤는데, 어제는 친구들이 조용한 카페에서 같이 본다고 해서 가서 보다가 집착해버리고. ㅋㅋㅋㅋㅋㅋ 이놈의 성격. 그래도 막 흥분하고, 이건 잘 안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대박은, 어제 실수로 빨간 옷을 입고 출근할 뻔했다는 거에요. 그냥 옷을 입으려다보니 빨간 옷이어서 아차, 하고 파란옷 입고 갔어요. 빨간옷 입고 갔으면, 한 다섯번쯤 질문 들었을 것 같아요. 같이 본 친구들도 아무도 빨간옷 안입고와서, 전 제친구들이 정말 좋아졌어요. ㅋㅋㅋㅋㅋㅋ

치니 2010-06-21 10:31   좋아요 0 | URL
귀 얇고 눈 얇은(?)ㅋㅋ 아가씨. 밤에 맨날 쇼핑하는 거 내가 다 알아요 ~ ㅋㅋ

저희 회사에는 빨간 옷 없다고 점심시간에 사러 나선 사람도 있어요. 근데 막상 사려고보니 생각보다 비싸서 포기했지만, 와 월드컵 덕에 장사하시는 분들 신났구나 싶더라고요. 뭐 좋은 게 좋은 거다 생각하면 이런 정도는 그분들을 위해 잘 됐다 싶기도 하고.

2010-06-22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2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eong 2010-07-09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감 백배 되는 노래입니다. 눈물이.. ㅠㅠ

치니 2010-07-09 08:59   좋아요 0 | URL
그죠 저도 공감이 화르르 몰려오더라구요.

근데 Tomek님, 이상해요 이상해, 분명 즐찾해두었던 Tomek님의 서재가 왜 브리핑에 안 뜨나 했더니 지금 가보니 즐찾이 안 되어 있었어요! 힝, 알라딘 이상해. 아무튼 간만에 가보니 글 많아서 푸짐하고 좋습니다. :)

일제견마박정희 2010-08-02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사 정말 좋군요.
저같이 남들보기에 부르조아들은 좀 당황스럽긴 한데...ㅎㅎ
님 방에 자주 자주 와야겠어요

치니 2010-08-03 09:16   좋아요 0 | URL
가사도 좋고 멜로디도 좋아요.
갤럭시익스프레스가 딱 한 달만에 앨범을 내겠노라고 호언장담하고 만든 앨범에 있는 노래인데, 엉망으로 거친 거 같다가도 문득, 공감을 주는 노래들이 꽤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