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진지해도 어디 가서 혼구녕 날 것 같은 세상이다.
용건만 간단히, 하지 않으면 답답하다 소리를 쉬이 듣는 세상이고, 남들이 다 하는 이야기를 모르면 바보 되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할라 치면 무시 당하는 그런 세상. 눈깔이 핑핑 돌아가지만 꾸역꾸역 정보를 주워담아야 하고 그것들을 쿨쉬크하게 휘리릭 다듬어서 마치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양, 그러나 그 소유에 별 무관심하다는 양 여기저기 내밀어야 그나마 인정 받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시와 소설은, 문학은 가끔 어두운 동굴 속 축축하고 깜깜해서 더듬더듬 뭔가를 찾아 겨우 불을 밝혀야 하는 힘든 것, 주홍글씨처럼 그 낙인을 찍고 산다.
그런 와중에 이런 소설이라니!
솔직히 첫 번째 단편 <열세살>을 읽고나서 꽤 얼얼하다보니 다음 글은 이 정도 세기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단편들을 읽고 마지막 <하루>까지 읽고나서는 이 작가의 뚝심에 경배를, 이라는 마음이 되었다.
소설가란 모름지기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을 어딘가에서 말해주어야 하는 책무가 있다고 믿는 것 같은 이 작가의 뚝심, 고단하고 어렵지만 제 갈 길을 가는 사람이 가진 섣부르지 않은 자신감, 희희낙낙하지 않고도 지루하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 주는 고르고 고른게 분명할 문장들, 그러나 수사가 거의 없는 단정함, 이런 것들이 그 내용이 극도로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잊고 있었던 소설읽기의 참맛을 주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누군가와 한없이 지난하고 세세한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지 않을 것 같고 모두 우스운 이야기만 하는 자리에서 나혼자 진지해도 괜찮을 것 같고 재테크와 연예인 이야기가 아니면 재미없어 하는 사람들 앞에서 책 이야기를 실컷 해버리면서 지루해하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게 될 것 같다.
고요하고, 씩씩하게 - 이 책의 느낌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하는 여름 오후의 주절주절 페이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