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진지해도 어디 가서 혼구녕 날 것 같은 세상이다.  

용건만 간단히, 하지 않으면 답답하다 소리를 쉬이 듣는 세상이고, 남들이 다 하는 이야기를 모르면 바보 되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할라 치면 무시 당하는 그런 세상. 눈깔이 핑핑 돌아가지만 꾸역꾸역 정보를 주워담아야 하고 그것들을 쿨쉬크하게 휘리릭 다듬어서 마치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양, 그러나 그 소유에 별 무관심하다는 양 여기저기 내밀어야 그나마 인정 받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시와 소설은, 문학은 가끔 어두운 동굴 속 축축하고 깜깜해서 더듬더듬 뭔가를 찾아 겨우 불을 밝혀야 하는 힘든 것, 주홍글씨처럼 그 낙인을 찍고 산다. 

그런 와중에 이런 소설이라니! 

 

 

 

 

 

 

 

솔직히 첫 번째 단편 <열세살>을 읽고나서 꽤 얼얼하다보니 다음 글은 이 정도 세기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단편들을 읽고 마지막 <하루>까지 읽고나서는 이 작가의 뚝심에 경배를, 이라는 마음이 되었다. 

소설가란 모름지기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을 어딘가에서 말해주어야 하는 책무가 있다고 믿는 것 같은 이 작가의 뚝심, 고단하고 어렵지만 제 갈 길을 가는 사람이 가진 섣부르지 않은 자신감, 희희낙낙하지 않고도 지루하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 주는 고르고 고른게 분명할 문장들, 그러나 수사가 거의 없는 단정함, 이런 것들이 그 내용이 극도로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잊고 있었던 소설읽기의 참맛을 주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누군가와 한없이 지난하고 세세한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지 않을 것 같고 모두 우스운 이야기만 하는 자리에서 나혼자 진지해도 괜찮을 것 같고 재테크와 연예인 이야기가 아니면 재미없어 하는 사람들 앞에서 책 이야기를 실컷 해버리면서 지루해하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게 될 것 같다.  

고요하고, 씩씩하게 - 이 책의 느낌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하는 여름 오후의 주절주절 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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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7-13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특히 [손]이 무척 좋았어요. 대단히!

치니 2010-07-13 16:06   좋아요 0 | URL
저도 <손>이 이 책에서 가장 독보적이라고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가장 공감되었던 내용은 아무래도 <하루>. 마치 내가 그 안에 그대로 있는 거 같아서 진땀이 삐질 나던데요.

2010-07-13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3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3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나 2010-07-13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고 싶다
요새 소설 안읽고 딴 것 좀 읽어볼라구 노력하는데 영... 어렵네요 ㅎㅎ

치니 2010-07-13 18:00   좋아요 0 | URL
나랑은 반대구나, 니나님.
전 이 소설 읽기 전에는 모든 소설이 재미가 없어서 딴 것만 읽었어요. :)

2010-07-14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4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0-07-15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글을 읽으면 올리는 글마다 다 읽고 싶지만 이 책은 안읽을거야,,,
내가 감당을 못할것 같아서~~~~.^^;;;
하지만 작가가 이 페이퍼를 본다면 정말 행복할것 같다!!^^

치니 2010-07-15 09:38   좋아요 0 | URL
웅 제가 너무 힘든 책처럼 느껴지게 썼나봐요. ㅠ 그런 건 아니에요. 내용상 어두운 사람들이 부각되기는 해도 우리 모두 각자 그런 부분은 다들 있으니까, 오히려 읽고나서 '그러니 잘 살자' 이렇게 힘도 나는 지점이 있어요.
나중에 언니가 마음의 준비(?)가 되면 읽으셔도 좋고요. :)

산사춘 2010-07-2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말을 안(아니 덜) 하고 살다보니 더욱 깔끔한 게(?) 땡깁니다요.

치니 2010-07-20 09:03   좋아요 0 | URL
우앗, 산사춘님이다! 허리는 좀 어떠신지요.

산사춘 2010-07-22 06:15   좋아요 0 | URL
허리는 많이 나았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안심하고 있을 때마다 다시 흔들흔들해서요,
십키로 빼려고 결심했어요...... 어제부터...
주지육림 탱자탱자하려면 몸이 건강해야 해요, 불끈!

치니 2010-07-22 09:05   좋아요 0 | URL
시...십키로, 역시 통도 큰 산사춘님. ㅋㅋ
무한도전 길이 편 보니까, 그래도 다 빠지고 요즘 길이 보니까 그거 유지 잘 하는 거 같아 보기 좋더라고요. (뭐래? 지금 왜 길이랑 비교하고 있음? ㅋㅋ)
암튼 산사춘님 홧팅! 잘 노셔야 우리가 즐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