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지난 금요일 경이었다.

감기 같은 건 몇만년이 지나도 나에겐 안 온다고, 왔다가도 어머 무셔 여기 아니네 하면서 도망간다고, 큰소리 뻥뻥 치며 한 다섯해를 보냈건만, 그날부터 지금까지 꼼짝 못하고 겔겔이다.

어째 이번 봄이야말로, 왠지 받아주기가 그토록 싫고, 안개 낄 때마다, 황사 올 때마다, 지레 겁이 나더라니. 감기 뿐 아니라 뭐든지 누울 자리를 보고 뻗는게지. 암것도 하기 싫고 그저 방에 눠 있고만 싶더니, 에라 여기있다 하고 드디어 아플 자리 찾았는데, 정작 회사일은 빼먹어도 될 일이 하나 없고 오히려 빡빡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

사실, 아주 웃기고 창피한 꿈이 하나 있어 왔는데, 그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픽 하고 쓰러지기'다. 뭐 대단한 병이 아니어도, 그냥 너무 피로하고 과로해서, 그런데 꾹꾹 참아서, 쓰러지는데, 그것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래서 너 진짜 힘들었구나 이런 위로 듣고 막 그런거. 이 꿈이 정말 십년도 더 되게 남몰래 커왔는데, 쓰러지진 않고 목 아파 담배 피기 힘들고, 코 찔찔 우아함이랑 거리가 먼 그런 잡 감기에나 걸렸다.

아으, 이 와중에 어제 티비 본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케이블에서 해 준 <청춘의 덫>. 요즘 다시 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어제 마침! 우리의 심은하 양이 내 꿈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으흐흐흑.

모두가 보는 앞에서는 아니었지만, 욕실에 혼연히 쓰러진 심양을 남친인 전광렬씨가 광속으로 냅다 찾아와 냅다 들쳐 업고 그대로 입원까지. 내가 그리던 꿈은 티비에서 고대로 실현되고 있는데, 이불 속에서 겔겔 하며 보던 나는 왠지 모를 서러움을 씹으며... 이제 그만 꿈을 접어야겠다 싶었다.

쓰러진 심은하의 땀에 젖은 얼굴은 아픈데도 어찌 그리 섹시하며, 입원하여 힘 없이 긴 머리채를 쓸어올리는 창백한 모습은 그야말로 왕 보호해주고 싶은 본능을 마구 유발하고, 살짝 웃음을 지을 때는 또 어쩌믄 그리 귀엽냐 말이다.

똑같이 쓰러져도 저런 포스가 안 나오는게 뻔한 내 주제가 너무 쓰라리게 각성되었던 것이다. 연약하게 픽 쓰러지는 건 역시 내 몫이 아닌 것이다.

그저 민폐일 뿐인 것이다. 으흐흑.

그래서 주사 맞고 약 먹고 으쌰 으쌰 , 아프면 내 손해지 , 하고 푹푹 잤더니 오늘 아침은 살만하다. 주제에 맞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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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er 2008-03-13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큭.. 미안하게도 왜 이렇게 재밌답니까아~

치니 2008-03-13 10:37   좋아요 0 | URL
미안하시긴요, ㅋㅋ 그래도 재미있다니 다행입니다아.

웽스북스 2008-03-13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쓰러져본 적도 입원해본 적도 없어서 한번 사람 많은데서 픽 쓰러져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요, 그럼 누군가 절 업어야 하잖아요- 흠, 제가 좀 무거워서 아무도 안업으려고 할까봐 ;;; ㅋㅋㅋㅋㅋ

치니 2008-03-13 10:47   좋아요 0 | URL
그르니까요, 쓰러지면 또 축 늘어지니까 더 무겁고. 흑, 접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토니 2008-03-1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교생 실습나갔을 때 쓰러진 것도 아니고 넘어진 건데 학생들이 가능하면 다른 반에서 넘어지라고 하던데요. 일으켜 세우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ㅋㅋ 여자 키 171 몸무게 65면 장정들도 부담스럽죠. 퓨쉬업을 몇번 하고 들어야 하는. 요즘 입양인들 친부모 찾아주느라 바빠서 자주 못들어와요. 좋아하는 책도 많이 못 읽고요. 아쉬워요..

치니 2008-03-15 21:27   좋아요 0 | URL
넘어진 토니, ㅋㅋㅋ 상상 되니 웃음이...
키가 크니 무게가 좀 나가는건 당연하죠 뭐.
바빠도 건강 잘 챙기시구요, 아프니까 정말 모든게 손해에요.

라로 2008-03-13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같은 꿈을 꾸고 계셨군요~.갑자기 위안이 된다는~~~.^^;;;

치니 2008-03-15 21:28   좋아요 0 | URL
으흐, 은근히 비슷한 생각들 많이 하시는구나, 저야말로 위안 됩니다.
nabi님은 뵌 적 없지만, 쓰러지는 거 잘 어울리실 거 같은데...ㅎㅎ

이게다예요 2008-03-14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것보다 약간 소박한, 사람들 앞에서 코피 쏟아 보는 거, 그래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 코 막고 화장실로 뛰쳐가거나, 아님 주위에 누군가가 머리를 막 뒤로 젖혀주며 호들갑 떨어주면,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아 별일 아니야, 내가 막 이러는 거.
코 파다가도 안 나오더라고요, 피는. 야박하게시리.
우리는 주제에 맞게, 아프지도 맙시다, 그려. ㅋㅋ

치니 2008-03-15 21:30   좋아요 0 | URL
코피, 이것도 꽤 호소력이 있죠.
일단 피를 보면 놀라게 되게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아래 꽃양배추님 말씀대로 기절이 깔끔해요 치울것도 없구. (아 뭐래 아직도 정신 못차림 ㅋㅋ)
다예요님은 현재 상황에서 손가락 끝 하나라도 다치면 안되죠, 암암 꿈도 꾸지 마세요.

이게다예요 2008-03-18 16:20   좋아요 0 | URL
근데, 왠만해선 기절은 어렵잖아요.
가장 청순하고 깔끔하지만, 기절은 진짜 아무나 하는 거 아니더라고요.
친구 중에 몸집도 꽤 있는 아인데, 기절을 잘 해요. 그러면 사람들은 걱정보다 의아하게 여겨요. 이건 또 뭡니까. ㅋㅋ

nada 2008-03-14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예요. 다들 그런 꿈을 꾸고 있었던 거예요?ㅋㅋ
전 좀 더럽긴 하지만 구토 때문에 뭇 사람들의 호들갑 세례를 받아본 적이 있어요.
죽을 거 같이 아픈 와중에도 관심의 중심이 되는 게 어찌나 달달하던지.
기절이 제일 깔끔하긴 깔끔해요. -.-

치니 2008-03-15 21:31   좋아요 0 | URL
주목받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으니까요. ㅋㅋ
하지만 구토는 흑, 힘들었겠어요.
그나저나 꽃양배추님은 감기 다 나으셨어요?
저 거기 가서 빨리 나아 글 쓰라고 협박해놓고, 바로 따라 걸렸잖아요.
이번에 아주 쎈넘입디다. 기운 잘 차리셨길.
 

일기를 자주 쓰는 편은 아니다만,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어려서부터 일기 쓰기 숙제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었고, 지금도 다이어리에 끄적여놓고 지나간 일기를 되돌아보는 일에서 나름의 재미를 느끼니까.

홍상수의 이번 영화는 이전 영화와 다르지 않다. 굳이 다르다면, 색깔이 점점 연해진다는 거랄까. 어제 <밤과낮>의 엔딩 크레딧에서 홍상수감독의 여덟번째이야기라는 타이틀을 보자니, 문득 최초로 나에게 한국영화에 대한 눈을 새롭게 뜨게 만들었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떠오르면서, 아 이사람 정말 많이 연해졌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이야기가 잠시 샜었다.

일기 이야기로 돌아가서,

어차피 홍상수의 영화가 항상 일기처럼 지난한 일상을 무덤덤하게 그려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삼스럽게 모월모일 하면서 매일의 일상에 날짜를 집어넣었다고 뭐가 달라지진 않는다. 그럼에도 그러한 삽화적인 재미는, 남의 일기장을 몰래 들춰볼 때의 두근거림이나 기대감을 조금 더 가미해주는 거 같기도 하다.

프랑스에 잠시 살았던 기억도 많이 떠올랐다(극장 가기 전부터 예상했던 거지만).

담배 사러 가는 씬

: 나도 그랬다. 이놈의 나라는 담배는 온국민이 죽어라고 펴대면서, 왜 이리 담배 파는 것에 인색한가. 일요일에 담배가 떨어져 버리면 기차역 정도에나 가야 문 연 가게를 만날 수 있었던 기억. 30분은 걸리는 거리를 아침부터 꾸역꾸역 걸어가면서, 대체 뭐하는 짓이냐 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노숙자 씬

: 나도 그랬다. 멋 모르고 아무하고나 오픈 마인드였던 시기라, 그리고 거기가 우리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라, 노숙자들하고 잘 텄다. 그 중 한사람은 나중에 보니 휠체어를 탄 덕분에 마약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어서 주변의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나에겐 그저 보통사람처럼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궁상 떨며 구걸한 적도 없었다.
그 때 아 이 사람들은 일 안하는게 자랑이구나, 그런 생각도 했던 거 같다.

북한 청년 만나는 씬

: 나도 그랬다. 당시로서는 북한사람을 봤다는 말만 해도 어디 끌려갈 거 같은 불안감이 당연히 있었는데, 프랑스에선 북한이나 남한이나 똑같이 취급했다. 남한이 더 잘산다는 사실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당연히 너는 북이냐 남이냐 매번 물어봐서 나중엔 귀찮아서 처음부터 남쪽 이라고 말해야 했다. 그리고 북한사람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영화 속 정남이처럼 “김일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을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릴 적 삐라에 나오는 괴수 같지 않은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 외에도 이미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자질구레한 기억들이 영화를 보면서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리고 점점 나오는 배우들의 얼굴이 아니라 홍상수의 얼굴이 보였다. 이제 홍상수 영화를 매번 보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지점은 거기였다. 나오는 사람에게 몰입할 수 없는 영화는, 영화로서의 그러니까 거짓 리얼리티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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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8-03-0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전 영화와 다르지 않다니, 아마 안 볼 거 같아요.
언제부턴가 홍상수 영화가 시시풍덩해지기 시작했어요. 그의 영화에서 한 번도 제대로 일상의 리얼리티를 구경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꾸며진 리얼만 있을 뿐.
하긴 어떻게 보면 리얼이란 말도 각자의 입장이 있는거겠죠? ^^ 홍상수에겐 리얼이 강박이 되는 것 같고, 고로 보는 저는 늘 그게 부자연스러워 보일테고요.

치니 2008-03-04 13:16   좋아요 0 | URL
자연스럽냐 아니냐로 리얼리티에 대한 잣대를 재보자면, 분명 거짓 리얼리티 같은데, 그 부자연스러움이 또 어떤 때는 우리의 실체 같기도 하단 말이죠.
^-^
리얼에 대한 강박 까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만의 영화 색을 계속 갖춰나가는데 대한 강박은 그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 영화도 원래 자금난으로 찍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박은혜양의 노개런티를 비롯한 스탭들의 이해, 필름 제작이 아닌 디카(?)촬영 식 경비 절감으로 극복한 거라고 하더만요. 자의로 된 건 아닐지 몰라도 유명감독이 된 이상, 그런 부분들 모르쇠는 어렵겠다 싶고...ㅎㅎ 쓰다보니 이건 다예요님의 댓글에 대한 답이 아니네요.

chaire 2008-03-0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전 영화와 다르지 않다니, 저도 안 보고 싶기는 한데(다예요 님과 같은 입장에서),
그러면서도 저는 결국 보게 되드라구요. 외면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홍 감독은 제 습관이 되어버렸나 봐요. 아마.
영화관에서 볼지, 다른 방법으로 볼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는 다행히 좀 신선하게도 김영호가 나와주시는데,
아마 김영호마저도 이 영화에선 홍상수화해버렸겠지요?
김영호를 보는 건 좋은데 황수정까지 봐야 하니 재미없겠지만.

여전히, 미스터홍은, 제목은 참 잘 지어요.

치니 2008-03-04 13:19   좋아요 0 | URL
저도요, chaire님.
예고를 볼 때부터 다르지 않다 싶었는데도 자석처럼 가게 되더라니까요. ㅎㅎ
지루하다는 평도 많은거 같은데, 막상 그렇지도 않았고.

김영호, 홍상수화 ... 흠, 이전의 배우들에 비하면 그렇지는 않다 싶어요.
자꾸 '홍의 목소리가 들려'같은 느낌이 되는건, 그의 대사들 때문이죠.
점점 자기가 하고싶은 말들을 배우를 통해 하는걸 즐기는거 같아서요.
황수정은, 아 스포일러라 말씀 못드리지만, 봐야 한다는 강박을 주진 않아요.
박은혜는 꽤 잘 어울립니다. ^-^

nada 2008-03-0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신 영화도 보시고 일본 여행도 댕겨 오시고, 그 머시냐, 취향 테스트도 하시공.
요즘은 부지런한 분들 보면 그저 경배드리고 있어요.
심각한 슬럼프예요. -.-
홍상수 영화를 보고 나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더러워지는 징크스가 있어요.
그래서 극장에서는 잘 안 보는 편이랍죠.
아, 하긴 김기덕 영화만큼 더러워지지는 않는군요. >.<

치니 2008-03-04 16:12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꽃양배추님 서재에 가서 업데이트 촉구 데모라도 할까 하고 있었다가, 어디선가 댓글에 아프시다고 적어놓으셔서 가심이 아파 말았다죠.
몸이 아프시니 마음까지 아프셔서 슬럼프가 되신 건 아닐까 ... 미뤄 짐작만 하는 실정입니다. 흑, 뭐 어떻게 도와드리지도 못함서.
홍 & 김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기분 더러워진다는 분들 정말 많은데, 전 왜 안 그럴까요. 아무래도 제가 그들의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보다 더 가증스러워서인가하는 반성이...긁적.

누에 2008-03-04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홍&김 등의 착취형 감독을 혐오해요. ^^;
그들이 하는 꼬라지가 꼴사나워서요. ^^;;
'꼬라지'는 최근 본 드라마 환상커플에 자주 나오는 말이에요. ^^;;;
최근 홍자매에 관심이 가더랍니다. ^^

치니 2008-03-05 09:06   좋아요 0 | URL
환상의 커플, 저는 몇번 못 봤드랬지만 여기서도 꽤 인기가 있었어요.
홍자매는 누군지 잘...^-^;;
어차피 안 보시겠지만 이 영화 파리 장면이 대부분이니 누에님이 보시면 감흥이 많이 다를 수도.

nada 2008-03-10 12:13   좋아요 0 | URL
홍&김 하니까 무슨 피부과 간판 같은..^^
그나저나 치니님, 여기저기 많이 다니셨나 봐요.
파리엔 뭣 땜에 가셨을까.. 궁금해집니당.

치니 2008-03-10 12:39   좋아요 0 | URL
전에 재미로 본 인터넷 점에서 제 전생은 유목민이라고 나왔는데, 정말 역마살이 꽤 있는 편이라, 맞다 그랬어요.
여기저기 다니는데 실속이 없는 형이죠, 제가. ^-^;;
정확히는 파리가 아니라 뚜르라는데 살았었는데, 학과 중 연수였어요.
전공이 불문과였거든요. (아흐, 지금은 어디가서 불어 하라고 하면 입이 안열려 당황스럽지만요.-_-;)

rainy 2008-03-05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재밌어.. 마지막 단락, 특히 마지막 문장은 너무 멋지다 ^^
니가 프랑스에 있었던 그 때도 아스라히 생각나고 말야..
난 홍과 김중에서는 그래도 김이 나은데.
왜냐고 생각해보니 홍은 못된x 같은데, 김은 딱히 못된x놈은 아닌 것 같아서.. 아닐까?
홍에겐 슬픔이 없는데 , 김에겐 슬픔이 있어서 일까? ..
쩝.. 영화 보구 싶다.. 홍상수의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본다'에
당신이 감동한 '감싸롱 햄버거'를 걸게 ..
(쓰고보니 결국 내가 먹겠다는 겐가 -_-;;)

치니 2008-03-05 09:09   좋아요 0 | URL
ㅋㅋㅋ 감싸롱에서 아침부터 웃는당.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아마 보겠지. 안 봐도 햄버거는 사주겠네. ㅋㅋ

홍과 김, 많이 다르지만 거론 될 때는 같이 되곤 하는게, 아마 둘 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정 받으니 그런가봐.
슬픔의 강도에 대해선, 음... 유구무언.

프레이야 2008-03-13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홍상수 영화는 우째 집에서 비디오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뤄둘래요^^

치니 2008-03-15 21:33   좋아요 0 | URL
저도 홍씨 영화는 비디오로 봐도 무방하다 생각하는데, 우연찮게도 개봉할 때마다 잘 챙겨보게 되요.
어쩌면 집에서 맥주 하나 들고 낄낄 대며 편안히 딩굴며 보는게 더 제격인 편인데말예요. ㅎㅎ

chaire 2008-03-19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주 토요일에 봤어요, 결국, 이 영화.
진짜로 무덤덤하게 찍어놓으셔서, 웬만해서는 홍 영화가 지루하다, 그런 느낌 못 받는데,
이번 건 좀 지루하드라구요. 그래서 정직하다 싶기도 하고. 파리에 대한 판타지를
완전 허무는, 어디 가나 일상은 졸렬하고 지리멸렬한 풍경으로 우리 옆에 펼쳐져 있구나
하는 걸 제대로 보여주더만요. 전 홍 감독이 보이는 지점을, 이전의 해변의 여인, 인가에서
너무 지독하게 느껴버려서, 그때 참 싫었더랬는데요, 외려 이 영화에서는,
홍 감독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객관화했달까, 아니면 자기 스스로를 배제하고 보편성을 추구했달까, 그런 느낌을 조금 받았고, 여전히 고민하는구나, 이 사람,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강렬한 영화는 결코 아니잖아요, 이 영화. 근데, 영화 보구 나서 간혹 떠오르더라구요.
김영호가 걷는 모습, 박은혜의 발과 종아리, 에또 그 구름 그림이랑.

그리고, 언제나 같은 얘길 하면서도 조금씩은 다르고,
홍의 영화를 보다 보면, 언제나 같은 그 얘기 때문에 우린 무너지며 살잖아,
하는 확인을 하게 돼요.

치니 2008-03-19 17:46   좋아요 0 | URL
결국, 보셨군요. 으헤헤.
전 홍상수 감독이 느물거리는 앞면 뒤에 결벽증 적인 소심함이 있지 않나 하는생각을 가끔 하는데, 그게 아마 바꿔 말하면 chaire님이 느낀 그 정직하다 싶은 느낌 때문인가봐요.
그리고 이제 그 소심함이 차차 덜해지면서 객관화 하고 보편화 하고 그래가는 거 같아서, 그리고 그 과정도 꽤 치열한 거 같아서, 괜찮다 싶고요.
박은혜는, 생각보다 꽤 뚱뚱한데, 그게 또 생각보다 꽤 섹시하던걸요. 훗.
김영호는 이제 와선 별루 생각이 안나요. 역시 여배우의 포스가 더 센걸까요.
 

 
지적이고 문학적인 장인의 취향
 

당신은 가장 지적이고 수준 높은 취향을 가졌습니다.

당신의 취향은 이중적입니다. 당신은 논리적이고 정교한, 치밀하고 계획적인 것들 좋아하면서도,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다양성을 지지합니다. 이성적인 격식(decorum)을 중시하면서도 자유와 열정을 선호하는, 이중적인 완벽주의자라고 하겠습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20세기 인류가 배출한 가장 독창적인 작가 중 한명.
가난, 냉대, 정치적 핍박, 치명적 뇌손상 등에 불구하고
인간 창의력의 극점에 달했던 인물.
당신의 취향에겐 '영웅'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당신의 취향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그리스의 소피스트 시대를 연상케 합니다. 오늘날 '궤변론자'로 폄하되지만, 소피스트들은 국내외 다양한 생각과 사상을 받아들여 민주주의 제도를 구축했고, 표현의 자유와 가치의 다양성을 존중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수없이 많은 위대한 희곡과 미술 작품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좋아하는 것
당신의 취향의 폭은 상당히 넓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도 많죠.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것을 묘사하자면, "과감한 독창성과 분출하는 창의력을 철저한 절제력과 단련된 수양으로 다듬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글을 예로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후회는 한 평생 너무나 많은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세월이 더러운 여관방을 전전하는 동안
시장 입구에서는 우체통이 선 채로 낡아갔고
사랑한다는 말들은 시장을 기웃거렸다

새벽이 되어도 비릿한 냄새는 커튼에서 묻어났는데
바람 속에 손을 넣어 보면 단단한 것들은 모두 안으로 잠겨 있었다

편지들은 용케 여관으로 되돌아와 오랫동안 벽을 보며 울고는 하였다

편지를 부치러 가는 오전에는 삐걱거리는 계단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는데 누군가는 짙은 향기를 남기기도 하였다
슬픈 일이었지만

오후에는 돌아온 편지들을 태우는 일이 많아졌다
내 몸에서 흘러나간 맹세들도 불 속에서는 휘어진다
연기는 바람에 흩어진다
불꽃이 '너에 대한 내 한때의 사랑'을 태우고
'너를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보는 나'에 언제나 머물러 있다

내가 건너온 시장의 저녁이나
편지들의 재가 뒹구는 여관의 뒷마당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향해 있는 것들 중에 만질 수 있는 것은 불꽃밖에 없다
는 것을 안다 한 평생은 그런 것이다

"편지, 여관, 그리고 한 평생" 심재휘


저주하는 것
당신이 저주하는 사람들은 3부류로 나뉩니다. 첫번째, 가짜를 가짜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두번째, 가짜를 진짜라고 우기는 사람들. 세번째, 가짜인줄 알면서도 좋아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판치는 사회일수록 당신은 불만과 혐오로 가득할 겁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당신을 세상을 온통 증오하는 까다롭고 시건방진 염세주의자로 착각하기도 하겠죠.

그러나 문제는 가짜가 판치는 세상입니다. 연기가 안되는 사람이 배우랍시고 돈을 버는 세상, 노래가 안되는 사람들이 가수랍시고 대접을 받는 세상, 이런 세상에 불만과 혐오를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겠죠. 
 
당신 중 일부는 극단적인 엘리트 취향이라 단순히 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차원을 넘어 다른 취향을 가진 인간을 멸시-차등화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심한 경우 우생학에 기반한 파시즘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위험한 관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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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밌지만 맞는진 모르겠어
    from 나비의 오래된 감각 2008-03-03 02:28 
    창의적, 예술적인 아방가르드 취향   --> 당신은 여기 분류된 8개 취향 가운데 가장 예술적 감각이 뛰어납니다. '전위적'이라는 단어가
 
 
치니 2008-03-02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idsolution.co.kr에서 나온 결과다. 보르헤스도 안 읽어본 내게 과분한 취향이지만 맨 마지막 줄을 보니, 버트란드 러셀을 좋아했던 내가 이해된다. ㅋㅋ
주드님 페이퍼 보고 따라함.

mooni 2008-03-02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보니까, 요거더라구요. ㅎㅎ 전 심리테스트같은건 해보면 항상 안 맞는거 나오는데요, 이것도. 쫌. 보르헤스는 읽기는 했지만서도 영웅이라기엔 취향이 안드로메다만큼 먼데....-_-a 그치만 까다롭고 시건방진 염세주의자 이건 맞는 말 같기도 해요. 하하.
근데, 치니님하고 똑같은거 나왔다니까 은근 좋은걸요? ^^ 그러고 보니, 치니님하고는 전에도 크리스테바형 인간이라고 같이 나왔었고. @.@

치니 2008-03-03 09:03   좋아요 0 | URL
저는 저거 읽으면 읽을수록 안 맞는거 같아요. ㅋㅋ 조금만 어려워도 읽다가 내팽개치는데 무슨...완벽주의자라니.
마하연님에겐 그러고보니 맞는데가 있어요! ^-^

비로그인 2008-03-03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훗 제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드릴게요. 단, 저도 제가 그런다는 걸 어제 알았으니 너무 믿지는 말아 주세요.

치니 2008-03-03 09:04   좋아요 0 | URL
Jude님 덕분에 심심한 일요일에 잠깐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실제로 뵌 적은 없지만 왠지 외모도 매우 엘레강스하고 섬세한 코스모스 형이실거 같은...ㅋㅋ

이게다예요 2008-03-03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테스트를 다 믿을 건 못 되지만, 상당히 일리는 있는 거 같아요.
우습게도, 저도 이거예요. ㅋ

치니 2008-03-03 14:21   좋아요 0 | URL
앗, 다예요님이 이거 나왔다고 하니까 막 저까지 우쭐해지는 느낌, 다시 믿어볼까. ㅋㅋㅋ

rainer 2008-03-0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SI 길반장이 제 취향이래요. 어찌나 재밌던지.. 잘있어요.
아이 사진 잘 봤는걸요. 가끔씩 노래도 들으러와요. 담백해지는 것 같거든요.^_^

치니 2008-03-03 14:22   좋아요 0 | URL
ㅎㅎ 이런 종류의 테스트 중에서 꽤 재미있죠? 여기 올리려고 시들이랑 그림들을 열심히 찾아 헤매었을 그 누군가가 기특하네요.
잘 계시다면서, 포스팅 한 것들은 모두 가둬놓고...흑. 다시 열어주셔요.

chaire 2008-03-0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해봤는데요. 저도 치니 님처럼 지적이고 문학적인 장인 취향이 나왔으면 했는데,
글쎄 무지무지 평범한 취향이라고 나오드라구요. 일반적인 평균 고객 취향이래요. ㅋㅋ
그래서 전 이거 안 믿을라구요. 키키.

치니 2008-03-03 14:24   좋아요 0 | URL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죠, 뭐. 그야말로 평범한 취향의 소유자가 누구냐 하면, 바로 저일텐데요. ㅋㅋ
테스트에 대한 답을 조금 더 다정하게 해주면 - 예를 들어 시가 실은 별론데 그래도 괜찮다 라고 답을 주면 - 평범한 취향으로 나오겠구요, 저처럼 조금만 싫어도 싫어! 하고 답을 주면 저렇게 나오는거겠죠.

이게다예요 2008-03-03 16:11   좋아요 0 | URL
전 제가 별로 원하지 않는 답으로 된 사지선다가 너무 싫어요. 게다가 yes,no로 대답하는 것도 싫고요.
그래서 제일 삐딱하게 나가면 지성적이라니, 분석적이라니 이런 말들이 꼭 튀어나오거든요. 다음번엔 그렇게 하시길, 권해드려요. 카이레님. ^^

2008-03-03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04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누에 2008-03-04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까다롭고 시건방진 염세주의자라 치니님이랑 같을 줄 알았는데 고흐씨가 나오더군요. ^^;
'도대체 여기서 뭘 고르라는거냐?'
라든 답변을 추가해서 9번째 취향을 만들어야할 것 같아요.
9개의 취향중 가장 건방지고 못되먹고 베베꼬여서 따로 취급해야할 취향.
당신은 '그림과 시 찾느라 애썼는데 골라논 꼬라지 하고는...'이란 생각을 하며 이 테스트를 만든 사람을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궁금해서 그냥 못넘어가는 당신도 우습다. ㅎㅎ

치니 2008-03-05 09:10   좋아요 0 | URL
그나마 고르기가 영 뭐하면 '패스'가 있어서 전 몇 개는 패스였어요.
그렇게 패스가 많으면 이런 취향으로 나오는 모양이에요. ㅋㅋ
누에님, 고흐, 그래도 맞는 듯 한데요?
 



영화 <철도원>의 배경이 되는 곳이랬다, 내가 가는 리조트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역이. 눈을 많이 보겠구나 생각은 했다만 그렇게나 많고 또 많을 줄이야.

정물화의 사과나 꽃병 마냥 얌전하게 땅 위에 섰는 집들은 언제까지고 잠만 잘 것 같고 심지어 그 안에 사람들이 있나 싶다. 길 가의 가게들이나 벤딩 머신조차도 언제 저 가게에 누가 들어가기나 할런지, 누가 코인을 넣고 음료수 하나 뽑기나 할런지 의심스러울만큼 조용하다. 길 거리에는 드문드문 너무 빠르지는 않지만 제법 유연하게 오가는 차들이 있어 사람이 살고 있음은 알겠다만, 도통 걸어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이 고요함은 마음을 한없이 정화 시킨다.

그러다 산 위로 올라간 밴은 눈보라를 만난다. 정신없이 후려치는 바람과 눈발들로 와이퍼를 가동해도 시야는 너무 뿌옇다. 운전수는 긴장하는 것 같고 우리도 마치 영화에서처럼 갑자기 저 아래 산구릉으로 눈길에 미끄러진 차가 나동그라질 것 같은 불안감에 짓눌린다. 나무들은 큰 키와 마른 몸으로 휘영청 휘영청 바람에 휩싸여 어쩌면 부러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잠시 차 문을 열고 짐을 싣는 사람들이나 그 때 마침 눈을 쓸려고 삽을 들고 나와 있는 사람들은 조금만 더 심하게 바람이 불면 휙 하고 저기 먼 데로 날아가 버릴 것 같다. 그런 시간이 한 십오분. 갑자기 회색 구름들 사이로 태양이 온유한 빛을 내뿜는다 싶더니, 바람은 소리없이 잦아들고 세상은 환해지며 모든 것은 예의 정물화가 된다.

이 격정 뒤의 고요함은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살 수 있다면 살아도 좋다고 생각하다가, 매일 아침 집 앞 눈을 쓸지 않으면 다음날 아침에는 내 집 앞 문도 못열고 바깥 출입 못하겠다 생각하니 게으름 때문에 자신이 안 선다.

하지만 매일 별로 할 일도 없는 이런 세상에서야, 아침 비질 정도가 좋은 운동 거리일 뿐 짜증 거리가 아닐 지도 모른다.

일년의 한 계절, 겨울에만 눈을 매일 본다면, 그것은 거의 축복이지 귀찮음이나 지겨움이 아닐 거다 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간다.

마음이 컴컴하고 질척거리고 미워질 때, 홋카이도를 방문하시라. 온통 희고 희고 또 희고, 녹을 새도 없어 지저분해지지도 않는 그 눈을 마음껏 보고 오시라. 우리는 많이 착해지고, 그래서 한국도 착해지고, 그래서 세계도 착해질 것이다. 

까불거리면서 눈발 위에서 맛있는 쿠우만 사먹으면 행복한 - 그런 착한 사람들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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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2 0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2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aire 2008-02-22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컴컴하고 질척거리고 미워질 때, 인가 봐요, 저.
홋카이도가 너무너무 가보고 싶어지네요. 아, 안락할 것 같은 따뜻할 것 같은 눈이에요.
싱그럽기도 하고.
그러구 보니 올겨울 전 눈을 별로 못 본 것 같아요. 한번쯤은 쏟아져주면 좋을 텐데.
아들내미 사진, 재밌어요 :)

치니 2008-02-22 14:17   좋아요 0 | URL
chaire님의 홍콩 여행기를 읽다가, 전 홍콩의 습한 공기를 싫어했었음에도 다시 가보고 싶어졌던 기억이 나요.
언제 어떤 맘으로 여행 가냐에 따라 느낌이 참 달라지나봐요.
홋카이도는 이제 딱 한번 가봤지만, 왠지 다른 계절에도 좋을 거 같은 포스가 느껴져요.
chaire님도 꼭 가보세요 ~

Fox in the snow 2008-02-2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저도 눈쌓인 홋카이도 정말 가보고 싶은데.. 아드님 표정이 쿠우랑 똑 같네요

치니 2008-02-23 13:04   좋아요 0 | URL
Fox in the snow님, 닉네임에도 스노우가 들어가 있어서인지 눈이랑 되게 잘 어울리시는 거 같아요. :)
여전히 동명의 노래 가끔 듣고 지낸답니다.
쿠우 표정 따라한다고 한건데, 제법 비슷하죠? ㅎㅎ 그나저나 쿠우, 정말 맛나요!

이게다예요 2008-02-2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엄마랑 가는 일본 여행에서 온천만 실컷하다온 기분이었는데, 얼마 전에 읽은 <설국>의 뒷끝일까요, 저 눈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네요. 올 겨울 눈 한번 구경 못했지만.
좋으셨겠어요, 아드님의 표정처럼 저렇게.

치니 2008-02-23 13:05   좋아요 0 | URL
아, 서울에 살지 않으시나보구나...눈구경을 못하셨다니, 안타깝습니다.
눈이 오면 모든게 참 조용해지는 그 기분, 좋은데.
온천만 실컷, 이것도 좋죠. :)

누에 2008-02-24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너무 멀어져서 가기 힘든 곳이네요. 흑. 올 겨울엔 눈구경도 못했답니다. 눈이랑 온천이랑 부럽다~

치니 2008-02-24 10:36   좋아요 0 | URL
아, 계시는 그곳엔 눈이 흔하진 않죠?
비가 흔했던 기억. 지금도 그렇겠죠? 배고프고 추울 때 비가 추적추적 오면, 참 을씨년스러웠던 기억이 나는데...
하지만 그런 날 카페에 가서 따스한 핫쵸코 마시면 그것도 좋았던 거 같아요.
누에님, 잘 지내시죠? ^-^
 

(사진 출처: 네이버)

김창완씨의 편지

창익아, 내동생 창익아 창익아

이제 저희 막내 김창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무력감은 저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하지만 이 크나큰 상실은 그가 얼마나 사랑스런 사람이었나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러 가는 비행기안의 낯선 이들조차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평소에 늘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사랑 받기 원했던 고인의 향기가 크나큰 슬픔 속에서도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웃는 드러머 김창익을 사랑한 모든 분들을 위로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사랑하겠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행복하도록 사랑하겠습니다.

천국에서 웃으며 드럼을 치고 있을 동생을 생각하며, 이렇게 동생이 떠날 줄 몰랐던 형이…

2008년 1월 30일

유난히 개구져 보이고 귀여웠던 김창익, 형들에 비해 대단한 조명을 받은 건 아니지만 막내 특유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머금게 했던 기억.

가까운 누군가가 죽는다는 건 어떤 걸까 , 가끔 생각해보지만 슬픔의 수위는 결코 가늠 되지 않는다. 더구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면, 세상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건만, 김창완 형은 그런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떴다고 하고 김창익을 사랑한 모든 분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편지를 쓰고 있다.

사랑하기에만도 벅찬, 이 짧은 생에 미워하고 짓밟고 증오하고 분노하는 일을 많이 줄여야겠다.

사랑하겠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행복하도록 사랑하겠습니다. 저도요, 김창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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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8-02-0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김창익씨를 잘 모르지만... 그저 김창완씨 특유의 말투가 베어있는 편지는 찡하네요.. 사랑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미워하거나 분노하는 일들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줄여가고 있어요, 저는.

치니 2008-02-01 23:1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김창완씨의 이 편지가 곁에서 말을 하는 것처럼, 그래요.
삼형제가 유독 사이가 좋아보였었죠.
셋이다가 둘이 되었음을 느낄 때마다 앞으로 죽 많이 많이 그리워질테죠.
미움이나 분노가 없는 사람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사람일거에요.

2008-02-01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01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8-02-03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내는 영원한 막내죠. 영원히 장난꾸러기고 철부지고 귀여운. 형의 사랑이 담뿍 느껴지는 편지네요..

치니 2008-02-04 10:04   좋아요 0 | URL
저도 막내인데...철부지, 음, 공감합니다.
사실 김창익 개인을 잘 모르지만 산울림의 한 멤버가 이렇게 되었다는게, 무척 안타까워요.
이젠 셋을 결코 함께 볼 수 없다는 것, 산울림은 전설이 되어 버렸다는 것.

토니 2008-02-0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늘이 내린 이 컴맹이 치니님의 서재를 드디어 스스로의 힘으로 찾았습니다.
북마크 없이 전 늘 무기력한 사람인데... 갑자기 사는 게 만만하게 느껴지네요. 서울로 근무지를 옮긴지 오늘로 사흘. 출퇴근 시간이 반으로 줄어 아침 밥도 먹고 머리도 말리고, 눈썹도 정교하게 그리고 나와요. (나오면서 현관 거울을 보며 스스로 흡족한 미소를 지은답니다. "짜식, 멋져!" 뭐 그런 표정... ㅋㅋ )

가까운 사람이 아니더라고 누군가의 사망 소식은 짧게나마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 같아요.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중요하죠. 근데 왠지 미움과 분노가 없는 사람은 삶에 대한 열정도 미지근할 것은 생각이 드네요.(정신세계 참 독특하죠?) 물론 늘 분노로 가득차 심장이 아프다면 그 또한 문제겠지만.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원문으로 읽는 것이 백배 나을 듯합니다.
번역하시는 분이 심히 열심히 번역을 해서 원문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치니 2008-02-04 11:40   좋아요 0 | URL
하늘이 내린 컴맹, ㅋㅋ 저도 뭐 IT랑 그닥 친하진 않아요.
어쩔 수 없는 것들만 하고 사는 중이죠.
도시 생활에서 출퇴근 시간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 물리적인 소요시간 뿐 아니라 마음의 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죠.
최소한의 여유를 찾는다는 건 , 분명 아주 아주 중요하니까요.
축하해요!

저는 워낙에도 미지근한 사람인데, 미움과 분노 없애고 더 미지근해지려나, ㅎㅎ 근데 그렇게 자꾸 그렇게 살고 싶어지니 원.

네, 원본으로 읽어보겠습니다. 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