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에너지, 피 터지는 싸움, 불굴의 의지, 같은 말들은 비등점이 낮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

나는 비등점이 지나치게 높거나, 아예 없는 상태로 게으름을 가장하고 무연함을 가장하여, 도식적인 생활을 자못 유연한 듯 포장하면서 들끓는 에너지로 피 터지는 싸움을 하며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들을 소 닭 보듯 하는 것에 대한 자책감을 사전 차단해 왔던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지나친 자기합리화, 자기중심선언으로 내 멋대로 산답시고, 모든 사람들을 등 돌리게 하는 것은 아닌가.

갑자기 두렵다.

비가 쏟아지는 밤, 한번 깬 잠이 도무지 다시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까만 천정을 감은 눈으로 응시하며 드는 생각들은 온통 두려움.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라기보다는 이렇게 살아야 돼 라는 생각을 더 하고 싶다만은, 역시 그놈의 불굴의 의지도 긍정성도 부정성도 없는 상태라 여의치가 않다.

해묵은 공상과 유효기간이 이미 끝나버린 추억들을 끄집어내어 두려움의 불씨들을 소화 하려 하지만, 소화는 커녕 그것들이 대체 무슨 위로가 되나 하고 한숨만이 거세어지더라.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뜨지 않았고, 오늘의 비가 내렸다.

더 고민하고 더 찾아내라는 뜻일게다. 아직 내게 비춰질 태양 빛은 가물가물하다.

쉽게 결단하고 쉽게 걸음을 내 딛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닌 줄은 예전부터 알았다고 생각했건만, 아직 모르고 깝치는 거다.

더 살자,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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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8 1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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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8 13: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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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8 16: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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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8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18 16: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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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8 16: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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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8-06-1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살자, 는 결론이 나왔네요.
현명한 결론입니다. 물론 현재, 비오는 불면의 밤에 한해서 판단하기에는 그런 거죠.
내일 빛이 나면 또 다른 현명한 결론이 나올 수도 있을 테구요.
저는 그저, 치니 님의 고민이 몸을 너무 아프게만 하지 말았으면 싶을 뿐입니다.

치니 2008-06-19 11:27   좋아요 0 | URL
아직 모르는 거 투성이라서요, 더 살아본다고 뭐 나아지려나 싶은 맘도 있지만...
^-^;;
몸은 튼튼! 걱정 마셔요. 카이레님도 건강하시죠?

비로그인 2008-06-20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양조차 파업하는 날이 있어요. 해맑게 `아,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어요!'라고 웃는 건 제 캐릭터가 아닙니다만,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태양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하늘에서 물이 좌르륵 떨어진다는 것이.

치니 2008-06-20 12:38   좋아요 0 | URL
네 , 장마라고 떠들던게 엊그제였는데, 오늘은 말끔이 지나간 듯 하네요.
날씨 때문에 오락가락 하는거, 졸업할 때도 되었건만. ^-^;;
요즘 Jude님에겐 육아 덕분에 신기한 게 더 많아지셨겠어요.

비로그인 2008-06-23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날씨 때문에 오락가락하는 거,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아요. 사람이 요일과 날씨와 이런 사소한 것에 지대한 영향을 받잖아요? 오늘 제가 있는 곳은 조금만 더 흐려주시면 글루미 선데이가 부럽지 않을 듯 해요. 전 비오는 날, 흐린 날이 좋아서 이런 날들이 아쉽습니다.

치니 2008-06-23 21:17   좋아요 0 | URL
아, 서울이 아니신가요? 전 몰랐네요.
서울은 오늘 적당한 바람과 햇살이 좋았는데...
글루미 선데이, 후, 오랜만에 그 영화 생각에 잠깐 마음이 또 덜컹.^-^;;
 

잘, 지내시는지요.

전 지금 타국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한 순간도 쉼 없이 달려야 했던 출장도 어느덧 막바지라 그런지 오늘은 겨우 이렇게 짬을 낼 수 있긴 하네요.

이 나라는 무척 크고, 이 나라의 밥집에 가면 무척 많이들 먹고, 무척 많이들 버리고, 무척 ... 저질입니다.

사실 대개는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인데, 이 세계에서 몇일 지냈다고 제가 이렇게까지 혐오감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들의 행동, 언어, 몸짓 모든 것이 돈,돈,돈, 하는 것만 같아서 경멸이 치밀어 오르는데, 그럴 때마다 저라고 뭐가 다른가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뭐, 엄밀하게 말하면 국가의 문제라기보단 현대인의 문제겠지만, 서양은 아무래도 동양보다 노골적이라서 그렇게 느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이 나라에서 하고 있는 일이란 것이, 돈,돈,돈 해야 하는 것들 뿐입니다. 제가 걸어다니면, 누군가에게는 삼백원짜리 , 누군가에는 삼천원짜리, 멍청한 누군가에게는 삼백만원 짜리 정도로 보일테지요.

그런 와중에 어제는 스테이크 집에 갔습니다. 역시 통이 큰 이 나라에서는 소 한마리를 통째 넣어도 좋을만한 거대한 기구를 가지고 와서 척 하니 열어 엄청난 양의 고기를 썰어줍디다.

피가 흐르는 미디엄 레어의 소고기를 먹으면서,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혼자 복잡한 생각에 빠지기도 전에, 상석한 사람들 중 몇몇은 그 상황을 이미 입에 올리며 비웃기 시작하더군요.

자, 이걸 봐라, 이렇게 잘 처먹히지 않느냐, 어차피 촛불이고 뭐고, 잠깐이다. 한국인들은 원래 냄비 근성이 다분하다, 언제는 노무현을 탄핵 하자더니 이제는 또 이명박 가지고 시비다, 맨날 시비만 하고 일은 언제 제대로 할 것이냐, 이러니 나라가 제대로 안 서지, 등등.

그런 말들을 하는 분들이 제발 저에게 아무 말도 시키지 말았으면 했는데, 결국 묻더군요.

미국 쇠고기, 맛있지? 라고. 너는 한국에서 쇠고기 수입 반대 하는 걸 이해한다면서 왜 먹니? 라고.

입을 다물고, 썰던 칼을 내려놓고, 조용히 일어서서 나와 그 길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버린다면 어땠을까요. 소심한 저는 당시에는 그런 상상 조차 하지 못한 채, 이렇게 말할 뿐이었습니다.

이곳에선 적어도 자신들을 위한 검역 시스템을 갖추고 있겠지요.

그쪽은 다시 집요하게 농담이라는 형식을 갖춘 채 비웃습니다.

지금 니가 먹고 있는 것은 40개월 넘은 소래, 흐흐흐. 그래도 잘들 먹지 않니. 도대체 30개월 어쩌구는 어디서 나온 소리래니.

광우병 괴담, 이라는 표현을 뉴스에서 보거나 들었을 때는, 정신이 좀 나간 사람들이나 극우파들이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제가 일하는 직장의 반 이상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자꾸 밀어내려 하고, 그래도 어쩔 수 없으면 부인하게 되는 것이 이치라면, 그들은 아마 광우병 이야기를 괴담으로 만들어 두어야 하는 이명박 정부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것이고, 그런 입장인 사람들이 살살 비웃기나 하지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아서 우리는 잘 모르는 것 뿐이었어요.

저는 매우 피곤했지만, 어제 잠을 이루기 힘들었습니다.

돈은 저에게도 매우 중요한 삶의 요소입니다. 돈이 없으면 알라딘에서 책도 못살테고 보고 싶은 공연도 영화도 못볼테고 아들에게 좋은 것도 사주지 못할테고 .... 우울한 일들이 참 많을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시간 동안 이역의 침대에서 뒤척이며 내린 결론은, 적어도 저는

앞에 언급한 사람들과 소위 그 돈 버는 일이라는 걸 계속 하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돈은 다른 수단으로 벌어야겠어요. 그것이 무엇이 될 진 아직 모르겠지만.

이 편지를 읽은 어떤 분들 중에서도 잠을 뒤척인 분들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저보다는 어른스러운 이유에서일거 같아요. 전 아직 크는 중인가 봅니다. 이제서야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서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있으니...

먼 곳에서나마 응원을 보냅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계신 분들에게.

또한 동병상련을 보냅니다. 저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바보 같은 고민이나 하고 있는 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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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6-0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령인 괌에 회사 사람들과 함께 가서 저도 똑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유난떨기도 그렇고 하여 몇점 먹고 있는데, 거보라며, 미국산 소가 맛있다며, 너도 먹지 않느냐며, 심지어 여기는 뼈 부위라고... 그리고 저 역시 동일하게, 미국은 자국에 24개월 미만의 소는 공급하지 않는다, 라고 응대하고 다시 소를 먹지 않으려 노력하는 정도로 행동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먹지 않았던 건 사실 걱정됐다기보다는,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며칠 안되는 기간이 지나 돌아왔는데, 상황이 참 많이 심각해져서 깜짝 놀랐었습니다. 치니님 마음도 거기서 많이 불편하시겠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고민만 하고 있는 이가 치니님이 보내신 동병상련에 유난히도 마음이 갑니다.

치니 2008-06-01 14:52   좋아요 0 | URL
역시, 동병상련하는 분이 있으리라 짐작했는데, 맞았군요.
지금은 일본 식을 먹고 왔는데, 마요네즈 범벅이라 일본식인지 뭔지 분간이 안가서 속이 뒤집힙니다. 에효, 된장찌개가 그리워요.

누에 2008-06-01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익웃으며,네살을썰어먹는다고생각하면서먹는중이다.라고말씀해주시지그랬어요.
휴...그맘이해합니다.
keyboard고장이라띄어쓰기가..^^;

치니 2008-06-02 00:50   좋아요 0 | URL
아아 그럴걸 그럴걸... 누에님이랑 그럴 때마다 텔레파시가 통했으면 좋겠어요.
네 살을 썰어먹는 중이다, 웃으면서! 멋진데, 멋진데. 흐흑.

rainy 2008-06-02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오면 얘기할게 많겠구나..
나도 며칠전 점심시간에 장로님을 무턱대고 감싸안으려는 최모씨와
몇마디 나눈 후 위가 또 꼬여버렸어..
제발 말섞지 말아주길 바랬으나 '촛불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해서
'거기 함께 있지 못해 미안할 뿐'이라고 했더니
입에 담기도 싫은 반응들..
'탁핵'에 대해 어찌 생각하냐는 두번째 질문에
'말귀를 이렇게 계속 못알아들으면 탄핵아니라 암살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내가 마치 누군가를 벌써 죽이고라도 온듯한 반응..
그중 한명이 '밥이나 먹읍시다'하지 않았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난 그러고도 꾸역구역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숨을 몰아쉬다가 그만 다 토해버리고 말았지만..
광우병이 무서운 게 아니라 , 사람들이 무섭고..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었고..
시야가 암담해..
암튼. 남은 몇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길 바랄게..

치니 2008-06-02 00:52   좋아요 0 | URL
그래, 언제나 문제는 사람, 사람이지.
언니의 위는 항상 가장 정직하구나. ^-^;;
내 위는 이러고도 어찌나 뻔뻔하게 소화를 잘 시키는지, 위도 사람 닮나.
건강하게 있어, 나도 그럴게.
이제 금방이다!

mooni 2008-06-02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장길이 고생길이었나보군요. 돈버는 일이 그렇더라고요..; 수고하셨어요. :)

치니 2008-06-02 14:35   좋아요 0 | URL
우는 소리 되도록 안하려고 했는데, 나 고생하고 있노라고 외친 셈이 되어 좀 창피스럽네요.
더한 고생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마하연님, 고마워요.

2008-06-02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3 0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2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3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3 0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3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3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3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8-06-03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우는 소릴 왜 안 하세요. 당근 눈물 나지. ㅠㅠ

치니 2008-06-04 00:32   좋아요 0 | URL
네꼬님, 이젠 씩씩해졌어요.(하지만 다음에 눈물 날 있음 네꼬님에게 가서 하소연해야지 히히)
네꼬님도 힘 내요!

2008-06-03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4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게다예요 2008-06-04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살 비웃는 그 비웃음이 언젠가 자기 자신에게 꽂히는 날이 있겠죠. 의견이 다른 것보다도 인격적으로 모자란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참 힘들어요.
뒤숭숭한 날들이죠... 아이를 내놓기엔 세상 참 무서워요.
타국에서도 마음고생하시네요..

치니 2008-06-05 08:35   좋아요 0 | URL
의견이 다른 것을 수용하되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는 것이 아마 똘레랑스라고 알고 있습니다.
잘못한 건 엄연히 잘못한 거고, 그걸 풀어나가기 위한 방법들에는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게 가장 올바른 태도인거 같아요.
뒤숭숭하지만 아무튼 오늘 다시 한국의 제 책상에 돌아와 앉았습니다.
아이들, 그래요 아이 때문에라도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어른이 빨리 되어야 하는데 말예요. ^-^

토니 2008-06-06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 님의 글을 읽다 보니, 물론 알곤 있었지만, 제가 새삼 더 이기적으로 느껴지네요. 소고기 전면 개방, 광우병, 뭐 이런 이야기들이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남의 일처럼 느껴졌는데. 사실 광우병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무서운 병이라기 보단 정말 재수없는 사람만 걸리는 병쯤으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전 그저 불쌍한 우리 아이들 더 크기 전에 준비된 부모를 찾아주는 것 외에 아무 생각이 없는데. 촛불 시위도 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건데, 전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는 그런 사람네요. 부끄럽네요.

치니 2008-06-06 16:09   좋아요 0 | URL
불쌍한 아이들 준비된 부모 찾아주는 것, 정말 좋은 일인걸요.
저야말로 많이 부끄럽죠...
내 식탁 위 안전만을 생각해서라기보다 전체적인 평화를 위해 촛불을 켜는 사람들이 더 많으리라 믿고 있어요.
저도 그래야 하구요.
 

잘, 지내시는지요.

이렇게 한 줄 적고 나니, 잘 지내냐고 묻는 말 한 마디가, 그 어투가 다정하냐 건성이냐에 따라서 울고 웃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이 인사는 아무에게나 건넬 수 있어서 몹시 시시하다가도, 상대방이 정말 나를 궁금해하는구나 라고 느끼기만 하면 오랜 세월 묵어온 모든 질문을 하나로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인사라서,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 저는 잘, 지내시냐고, 못내 목이 메어 어렵사리 온 마음을 담아 물어보고 싶지만, 솔직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편지를 쓰고 있으니, 예의 궁금함을 가득 담은 다정함과는 좀 거리가 있지 싶습니다.

그저, 오늘 따라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져서 말이에요.

어제는 하루종일 천둥과 번개와 벼락이 오락가락하는 날씨였어요. 마음도 역시 좀 그랬던가봅니다. 한달에 한두번 겨우 집에 와 자고 가는 아들 녀석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더니 '속이 몹시 찌뿌등해'라며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면, 내 마음이 그래서 그녀석에게까지 전달이 되었던가봐요.

시름이 있어도 훌훌 털어내는 것이 쿨하게 보이는 세상이라 그런지, 조금만 회색 마음이 오래 가도 안절부절인 건, 예전보다 더해지는 것 같아요.

자꾸만 지금 내 나이, 지금 내 상황, 즐기기보다는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지? 라는 식의 생각만 하는 저를 보면서, 아마도 매우 태평스럽게 살아갈 당신을 부러워만 합니다.

돌아보지도 말고 내다보지도 말고 살아야할텐데, 라는 생각이 요즘 부쩍 자주 들어서 그런가봅니다.

오늘은 점심 시간에 우연히 들어간 넷 뉴스에서 클릭 클릭 파도를 타고 들어가다가, 노간지라는 이름의 동영상들을 보고 있자니, 다른 사람들처럼 '감동'스러운 것이 아니라 마음이 어째 씁쓸해집니다. 그야말로 왜 있을 때 잘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그립다 그립다 하는 건가 싶어서요. 쉽게 욕하고 쉽게 추앙하고, 몰이해 속에서 이해하는 척 하는, 이런 세태에 저 역시 일조를 하고 있구나 싶어서요.

그리고, 제가 마구 사랑하는 시간, 누군가에 대한 행복감을 누리기 무섭게 곧장 '이것이 만일 깨어지는 날엔 어쩔까'라는 무용한 근심거리로 몰아가는 악습도 버리지 못해서요.

지나간 것도 앞으로의 일들도 그 때가 아니면 생각지 않고, 그저 지금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힘을 쏟고 지금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잘하고 보듬으면 되겠는데, 왜 자꾸 그게 마음 먹은대로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제가 우둔한 탓이겠죠.

오늘도 이곳의 날씨는 흐립니다. 어제만큼은 아니어도 또 비가 올 모양이에요. 날씨 따라 변덕이 잦은 제 마음은, 이미 몽롱해요. 어제만큼 부잡스럽지는 않아도 축 가라앉은게, 아무도 없는 수면 밑에서 혼자 심심하게 노는 물고기 같아집니다. 이 유영이 조금은 재미나고 행복한 유영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예요. 그리고 그 방법도 간절히 찾고 있기는 하죠.

아, 오늘은 오래간만에 집에서 밥을 해먹어야겠어요. 몽유병자처럼 세상에 발을 못딛고 돌아다니는 저의 초라한 단발성 허허로움은 어쩌면 근 십일 넘게 패스트푸드와 식당 밥, 술 안주 등만을 섭취하고 다녀서 빚어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도무지 내용이라고는 없는 횡설수설인데다 푸념이 길었습니다. 그러나 이해해주시길. 어차피 보내지지 않는 편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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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8-05-19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잘 있어요. ㅋㅋ
무용한지, 유용한지도 모를 그럴 근심거리들이 하루 건너, 혹은 한 다리 건너, 심심찮게 찾아오네요. 시간이 지나면 그래도 아, 그럭저럭 견뎌왔구나, 할텐데 이럴땐 시간조차 천근만근으로 무겁군요. 그렇다고 누가 죽기야 했겠냐 마는, 푸념도 근심도 늘어만 가는 푸른 5월 중순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편지를 읽는 걸 보니, 여유 따위를 아주 잃진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저는 잘 있나 봅니다. ㅋㅋ 정말로. ^^

치니 2008-05-20 08:50   좋아요 0 | URL
아 다예요님, 안그래도 궁금했는데, 잘 있으시다니 정말로 ^-^ 기쁩니다.
근심이면 근심이지, 무용이냐 유용이냐 따지고 있는 것도 참 그래요.
여유 그대로 가지시고, 앞으로도 죽 잘 지내시길 바래요.

mooni 2008-05-19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잘 못지내고 있어요...ㅜ.ㅜ
욕실 수도관 파이프가 고장나 때아닌 물난리에 공사아닌 공사에.. 흑흑
어제 그제 오늘로 이어지는데다 아직 안 끝났어요...
(그래도 그 와중에도 치니님보다 밥은 잘 챙겨먹고 있군요.
오늘은 상추겉저리와 해물탕먹었어요...해물탕 먹다가 생선뼈가 목에 걸리긴 했지만요.)
푸념성 포스팅에 한술더 뜨는 댓글. ㅋ 그러나 이해해주시길.
어차피 딱히 받지 않은 편지 답장이니까요.

치니 2008-05-20 08:52   좋아요 0 | URL
어엇, 이런 이런. 대공사였군요.
그것도 욕실 -_- 가장 난감하죠.
지금쯤엔 얼추 해결이 되었기를.
그 참에 욕실 대청소 하셨겠네요? ㅋ (제 경우에는 늘 이런 식으로 위안을)
생선뼈 조심하셔야 합니당, 제 어머닌 예전에 그 때문에 복강 수술까지 하셨어요.
제대로 되지 않은 편지에 주신 답장 고이 받겠습니다. ^-^

누에 2008-05-19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추웠다 더웠다 비와 햇살이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지하실 같은 방안에 쳐박혀 둥둥거리며 부유하고 있어요. 행복과 불행이 함께 녹아든 우물을 바람따라 이리저리 둥가둥~ 떠다녀요. 짧은 발가락같은 뿌리 한켠에 행복이 닿으면 실실거리고 불행이 닿으면 움찔거리며 작은 우물을 망망대해라 여기는 쪼매난 개구리밥이죠. 어쩌다가 물에 떠내려온 병속에 담긴 편지를 건져낸 것 같네요. 풋. 생선뼈를 목에걸고 수도관과 씨름하는 어떤 분을 생각하니 발가락이 간질거리는군요.

치니 2008-05-20 08:54   좋아요 0 | URL
둥가둥 ~ 요 말이 재미나네요. ^-^ 저절로 그림이 그려져요.
그쪽 날씨는 정말 제정신 놓게 만드는데 선수죠? ㅎㅎ
그런데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이제 한국도 만만치 않아요.
그래도 어렴풋이 누에님이 잘 지내고 계시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틀린걸까?

rainer 2008-05-1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지 잘 받았습니다.
아주 슬픈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자주 웃습니다. ^^
뭐든 지나가니까요.

치니 2008-05-20 09:00   좋아요 0 | URL
음음, 님의 휑 해진 서재를 둘러보고 휴 한번 하고 나오곤 합니다.
슬픈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한 줄에 핑 ,
그래서 또 자주 웃습니다 에 마음이 덜컹,
예 뭐든 지나가기는 해요.
그래도 무사하게 지나갔으면 합니다, 모쪼록.

2008-05-20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0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iny 2008-05-20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 해 먹었어?

치니 2008-05-20 09:07   좋아요 0 | URL
응! ^---^

2008-05-20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0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0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1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2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2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3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3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3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5 09: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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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got everything, a beautiful, a good, a working woman ... it is my wife. She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my life."

토요일 오전, 티비를 켜는 일은 거의 없는데 오늘은 저 노인의 저 세 마디를 듣기 위해 하나님이 나를 깨웠나보다.

채널을 무심코 돌리다가 김장훈씨가 단독 엠씨로 나섰기에 흥미를 느껴 바라본 <무한리플60억의지혜>라는 프로그램.

우리 남편이 변했어요,라는 시청자 사연을 재연으로 꾸미고, 소위 지구촌 re: 를 받아본다는 것이 방송 컨셉인가보다.

술을 즐겨 마시고 노는 거 좋아하는 남편이 미워죽겠는 새댁에게 지구촌 갖가지 커플들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리플을 달았다는데...

딱 보기에도 포스 작렬이신 미국 호호 할머니 100세 생일 기념파티가 눈에 쏙 들어온다.

이 할머니 시의원까지 출마하신 경력 답게 당당하고 멋지고 그야말로 짱짱하다.

생일파티에서 마음껏 자신의 건강을 즐기던 할머니가 파티가 끝나기무섭게 달려가는 실버타운엔 할아버지가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1925년 결혼하여 결혼 80주년에는 교황의 축하 카드까지 받은 그야말로 백년해로 잉꼬 커플.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달리 말조차 할 수 없을만큼 노쇠하여 겨우 할머니가 떠주는 음식을 받아 잡숫고 겨우 할머니의 손을 맞잡고 앉아 계시더니...

다시 태어나도 할머니와 살 거냐는 피디의 질문에 기적처럼 입을 떼어 위와 같이 말하고 할머니랑 다정한 키스를 하셨다.

아이 갓 에브리씽... 그가 애써 뗀 입으로 처음 하는 말, 아이 러브 유보다 훨씬 강하고 믿음이 가는 말. 쭈글쭈글 숨은 제대로 쉬어질까 싶은 얼굴로 하는 말. 그가 방송 중 갑자기 하늘나라로 간다 해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으로 기억되리라는 마음이 들만큼 부럽던 얼굴.

핵심은 사랑, 김장훈씨의 마지막 멘트였다. 첫 방이라 조금은 어색해보이던 그의 진행이 갑자기 돋보이던 순간이었다.

봐라, 이러쿵 저러쿵 할 것 없다.  러브 이즈 올 유 니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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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8-06-02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 님 그동안 페이퍼 몇 올리셨군요.
제가 방송 프로그램이라면 빠삭한데 저런 프로그램이 있는 걸 몰랐네요.
그 전, 인간극장에서 닷새간 방영하는 김장훈을 보고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그의 역동적인 모습이 좋으면서도 한편 의아하게 느껴지고,
뭔가 파고들고 싶은 어떤 부분도 슬쩍 보이고.
아무튼, 이러쿵저러쿵 할 것 없다는 마지막 말이 참 상쾌합니다.
전 최근 허튼 말이라고 생각되는 말을 안해 버릇하니
도대체 할 말이 없는 겁니다.

허튼 말이냐 허튼 짓이냐 속으로 따지는 버릇을 내팽개칠까 봐요.
그래야 언젠가 저도 저 할아버지처럼 근사한 말을 기다렸다는 듯 할 수 있겠지요.^^




치니 2008-06-02 14:40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님, 반갑습니다.:)
토요일 오전 프로그램이라 - 11시였던가 10시였던가 그래요 - 저도 그날 이후 못 봤습니다. 에헤 항상 자는 시간이죠.
김장훈씨는 아주 오래전부터 팬을 자처해왔어요.
사람은 어차피 변하지 않아, 라는 저의 고집을 꺾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랄까...
저야말로 허튼 말을 안해 버릇 해야겠어요.
로드무비님은 겸손하셔 그렇지 글에서 허튼 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없어보입니다. 그동안 너무 뜸하셨어서 궁금했답니다. :)
 

소심함에 대해서...

뭐랄까 늘상 할 말이 있기는 한데,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는 그렇고.

누가 본인에게 소심한 성격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것 같고, 소심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겠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할 것 같고, 또 누가 본인에게 그럼 소심해지고 싶으냐 하면 그렇지는 않으나 본인의 경험상 소심한 사람이 대찬 사람보다 호감이 가더라는 말은 하게 될 것 같으며, 기어이 괜한 확대해석을 해서는 소심한 사람이 좀 더 많아야 이 세상은 평화로울 거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만은...

아무튼 지금 본인이 소심하다고 느끼고 있는 중이라서 이런 허접 글을 시작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본인 역시 정치/사회면의 불한당들이 뻔뻔하게 흘리는 구린내에 분노할 줄 알고, 본인 역시 돈을 벌기 위해 기계처럼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 때 마다 씁쓸함과 패배감, 억울함 등에서 뿜어나오는 페이소스가 있으나,

그런 순간에 하는 본인의 저항이라는게, 대체로 이렇게 페이퍼에 끄적이거나 울적함이나 분노를 달래줄 음악이나 책을 찾아 나서고, 그래서 에라 카드 한장을 꺼내어 알라딘에서 적립해온 알뜰한 마일리지를 사용한 뒤 결제를 마치고 뭔가를 질렀다는 호기로움과 뭔가를 내 손에 얻게 된다는 기대감으로 다시 심기일전하는 소심함으로 일관된 삶이라는 거다.

쁑 하고 튀어나가더라도, 또르륵 제 자리로 어김없이 돌아오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복 되새김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면서, 다시 오지 않을 현재를 그 미래에 저당 잡히는 행위 말고는 다른 무엇도 하지 않는 이 따위 소심함이, 2008년 5월15일에 유난히 못마땅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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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8-05-15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제가 오늘 오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찝찝했던 느낌이
바로 소심함이었어요!!!!저도 오늘 제가 한참이나 못마땅하거든요.
하지만 왜 님의 글이 위로가 될까요?ㅠㅠ

치니 2008-05-16 08:44   좋아요 0 | URL
nabi님, 이벤트도 막막 당첨 되시고, 온라인 오프라인 막막 질르시고, ㅋㅋ 님 서재에서는 활기가 느껴진다 생각했었는데, 어제 오후부턴 아니었군요...
용재 오닐, 아무래도 공연 가봐야겠어요. 모두가 한결같이 좋다고 하니, 점점 궁금해지네요.
아무튼 투덜거리는 글에 위로 받으셨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

2008-05-16 2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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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7 16: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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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2008-05-2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노 마인드라고 들어보셨나요? 소심소심극소심. 제 친구 민이 별명이에요. 근데 소심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남에 대한 배려가 깔려있는 것 같아요.

제 문제는 소심과 대범을 수시로 엉뚱한 상황에서 오고간다는 거죠.
소심해야할 때 대범하고 대범해야할 때 소심하고.

지리산은 혼자는 짐과 장비 때문에 어렵고 정 안되면 인테넷 카페 사람들과라도 가려고요. 호젓하고 여유로움은 기대할 수 없겠지만. 함께 가자는 분이 있어서 좋았는데 의도가 불순해서 그냥 없던 걸로 했어요. (한마디로 나쁜 새끼(!)더라고요.)


치니 2008-05-17 16:08   좋아요 0 | URL
나노 마인드, ㅋㅋ 들어본 거 같아요.
맞아요 소심한 사람이 가끔은 답답해보이기도 하지만 남에 대한 배려도 더 잘하죠. 자기가 작은 걱정들을 수시로 해보았으니 상대방 마음도 더 잘 보인다고 할까, 그런게 있을 거 같아요.
저 역시 토니님처럼 소심과 대범을 좀 왔다갔다 하는데, 상황 판단이 잘 안되는 경우가 허다해요.
지리산, 나쁜새끼, 음, 결론적으로 좋은 여행이 되기만 한다믄야, 해프닝으로 남길 수 있게 되겠죠. 홧팅! ^-^

누에 2008-05-19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자벨 위뻬르 같은 배우는 소심함의 소중함을 보여주잖아요.^^ 조금씩 무언가 내부에서 익어가는 사람들, 그런 소심한 사람들..

치니 2008-05-20 09:11   좋아요 0 | URL
아 , 누에님 표현을 보니, 제가 알게 모르게 느낀 소심한 사람들에 대한 호감의 이유를 알겠어요.
무언가 내부에서 익어가는...그거였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