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철도원>의 배경이 되는 곳이랬다, 내가 가는 리조트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역이. 눈을 많이 보겠구나 생각은 했다만 그렇게나 많고 또 많을 줄이야.

정물화의 사과나 꽃병 마냥 얌전하게 땅 위에 섰는 집들은 언제까지고 잠만 잘 것 같고 심지어 그 안에 사람들이 있나 싶다. 길 가의 가게들이나 벤딩 머신조차도 언제 저 가게에 누가 들어가기나 할런지, 누가 코인을 넣고 음료수 하나 뽑기나 할런지 의심스러울만큼 조용하다. 길 거리에는 드문드문 너무 빠르지는 않지만 제법 유연하게 오가는 차들이 있어 사람이 살고 있음은 알겠다만, 도통 걸어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이 고요함은 마음을 한없이 정화 시킨다.

그러다 산 위로 올라간 밴은 눈보라를 만난다. 정신없이 후려치는 바람과 눈발들로 와이퍼를 가동해도 시야는 너무 뿌옇다. 운전수는 긴장하는 것 같고 우리도 마치 영화에서처럼 갑자기 저 아래 산구릉으로 눈길에 미끄러진 차가 나동그라질 것 같은 불안감에 짓눌린다. 나무들은 큰 키와 마른 몸으로 휘영청 휘영청 바람에 휩싸여 어쩌면 부러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잠시 차 문을 열고 짐을 싣는 사람들이나 그 때 마침 눈을 쓸려고 삽을 들고 나와 있는 사람들은 조금만 더 심하게 바람이 불면 휙 하고 저기 먼 데로 날아가 버릴 것 같다. 그런 시간이 한 십오분. 갑자기 회색 구름들 사이로 태양이 온유한 빛을 내뿜는다 싶더니, 바람은 소리없이 잦아들고 세상은 환해지며 모든 것은 예의 정물화가 된다.

이 격정 뒤의 고요함은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살 수 있다면 살아도 좋다고 생각하다가, 매일 아침 집 앞 눈을 쓸지 않으면 다음날 아침에는 내 집 앞 문도 못열고 바깥 출입 못하겠다 생각하니 게으름 때문에 자신이 안 선다.

하지만 매일 별로 할 일도 없는 이런 세상에서야, 아침 비질 정도가 좋은 운동 거리일 뿐 짜증 거리가 아닐 지도 모른다.

일년의 한 계절, 겨울에만 눈을 매일 본다면, 그것은 거의 축복이지 귀찮음이나 지겨움이 아닐 거다 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간다.

마음이 컴컴하고 질척거리고 미워질 때, 홋카이도를 방문하시라. 온통 희고 희고 또 희고, 녹을 새도 없어 지저분해지지도 않는 그 눈을 마음껏 보고 오시라. 우리는 많이 착해지고, 그래서 한국도 착해지고, 그래서 세계도 착해질 것이다. 

까불거리면서 눈발 위에서 맛있는 쿠우만 사먹으면 행복한 - 그런 착한 사람들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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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2 0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2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aire 2008-02-22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컴컴하고 질척거리고 미워질 때, 인가 봐요, 저.
홋카이도가 너무너무 가보고 싶어지네요. 아, 안락할 것 같은 따뜻할 것 같은 눈이에요.
싱그럽기도 하고.
그러구 보니 올겨울 전 눈을 별로 못 본 것 같아요. 한번쯤은 쏟아져주면 좋을 텐데.
아들내미 사진, 재밌어요 :)

치니 2008-02-22 14:17   좋아요 0 | URL
chaire님의 홍콩 여행기를 읽다가, 전 홍콩의 습한 공기를 싫어했었음에도 다시 가보고 싶어졌던 기억이 나요.
언제 어떤 맘으로 여행 가냐에 따라 느낌이 참 달라지나봐요.
홋카이도는 이제 딱 한번 가봤지만, 왠지 다른 계절에도 좋을 거 같은 포스가 느껴져요.
chaire님도 꼭 가보세요 ~

Fox in the snow 2008-02-2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저도 눈쌓인 홋카이도 정말 가보고 싶은데.. 아드님 표정이 쿠우랑 똑 같네요

치니 2008-02-23 13:04   좋아요 0 | URL
Fox in the snow님, 닉네임에도 스노우가 들어가 있어서인지 눈이랑 되게 잘 어울리시는 거 같아요. :)
여전히 동명의 노래 가끔 듣고 지낸답니다.
쿠우 표정 따라한다고 한건데, 제법 비슷하죠? ㅎㅎ 그나저나 쿠우, 정말 맛나요!

이게다예요 2008-02-2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엄마랑 가는 일본 여행에서 온천만 실컷하다온 기분이었는데, 얼마 전에 읽은 <설국>의 뒷끝일까요, 저 눈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네요. 올 겨울 눈 한번 구경 못했지만.
좋으셨겠어요, 아드님의 표정처럼 저렇게.

치니 2008-02-23 13:05   좋아요 0 | URL
아, 서울에 살지 않으시나보구나...눈구경을 못하셨다니, 안타깝습니다.
눈이 오면 모든게 참 조용해지는 그 기분, 좋은데.
온천만 실컷, 이것도 좋죠. :)

누에 2008-02-24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너무 멀어져서 가기 힘든 곳이네요. 흑. 올 겨울엔 눈구경도 못했답니다. 눈이랑 온천이랑 부럽다~

치니 2008-02-24 10:36   좋아요 0 | URL
아, 계시는 그곳엔 눈이 흔하진 않죠?
비가 흔했던 기억. 지금도 그렇겠죠? 배고프고 추울 때 비가 추적추적 오면, 참 을씨년스러웠던 기억이 나는데...
하지만 그런 날 카페에 가서 따스한 핫쵸코 마시면 그것도 좋았던 거 같아요.
누에님, 잘 지내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