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공주>>의 아레트는 ‘공주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고집 때문에 나쁜 마법사의 감옥에 갇혔다가 지혜와 재치로 자유를 찾고 자신만의 왕국을 만든다. 허구라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가 딸을 억지로 결혼시키려고 하는 것에 아이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왕은 “절대” 딸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들 한다.
“아레트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가 아레트가 멋대로 자라서 왕국을 엉망으로 만들면 어떡해?”
내가 짐짓 왕의 편을 들듯 말하자 주은이가 딱 부러지게 답한다.
“마음대로 하겠다는 게 아니고요, 결혼은 안 하지만 말 타기도 좋아하고 책도 읽잖아요. 자기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거죠. 그러니까 자기가 해야 되는 건 하고, 자유롭게 해도 되는 건 하고 싶은 대로 해야죠.”
아이들에게 3학년은 ‘공부가 늘어나는’ 학년이다. 주은이는 “할 일이 늘어났으니까 그거 다 하고 나면 자유 시간도 꼭 있어야 돼요.”라고 엄마를 설득해 평소 관심이 있었던 인라인 스케이트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영어 공부로 받는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푼다니, 주은이야말로 ‘영리한 공주’다.
그런가 하면 평소 공부에 별 관심이 없고 밖에서 놀기만 좋아하던 동진이는 3학년이 되면서 엄마한테 수학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단다.
“엄마가 학습지를 해도 된다고 하셨는데 솔직히 밀릴 것 같고 또 집에서만 하면 답답할 것 같아서 학원을 가겠다고 했어요. 가기 전엔 좀 떨렸는데 지금은 공부가 더 잘 되는 거 같아요.”
어른들 눈에는 태평해 보였지만 나름대로 자기 평가도 하고 계획도 세워본 모양이다.
“근데 학원은 가기 싫은 날도 많은데. 후회되면 어떡해?”
“제가 선택한 거니까 그래도 1학기 끝날 때까지는 다니기로 했어요. 그리고 안 가보면 학원을 다니고 싶은지 안 다니고 싶은지 ‘영원히’ 모르는 거잖아요.”
의젓한 동진이를 응원하면서 <<뛰어라 메뚜기>>를 읽어 주었다. 천적들이 무서워 숨어 살던 메뚜기가 위험을 무릅쓰고 햇볕을 쬐면서 겪는 일을 그린 책이다. 메뚜기는 다른 동물들에게 잡아먹힐 뻔하고 추락해 죽을 뻔 하기도 하지만, 써본 적 없는 날개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동진이의 한 줄 평이 재미있다.
“이 메뚜기가 만약 계속 숨어 살았다면 잡아먹혔을 것이다. 나와서 살았다.”
요즘 엄마와 사사건건 대립하는 예진이는 경제 지식책 <<레몬으로 돈 버는 법>>을 읽다 말고 갑자기 분통을 터뜨렸다. 주인공이 사업에 필요한 돈을 아빠에게 대출받는 장면이었다. 자기네 엄마는 절대로 자기한테 돈을 안 빌려줄 거라는 거다.
“우리 엄마는 제가 할머니한테 돈을 받아도 꼭 엄마한테 맡기라고 하고, 아니면 어디다 쓸 건지 허락받으라고 해요. 그런데요, 돈은 쓰면 없어지잖아요. 저도 제 돈이니까 진짜로, 진짜로 많이 생각해서 쓰는 건데, 우리 엄마는 자꾸 제가 아무데나 쓴다고 해요. 저는 얘처럼 돈을 버는 건 꿈도 못 꿀 거예요.”
“엄마한테 네가 마음에 드는 대로 쓰고, 책임도 진다고 말씀드리는 건 어때?”
“어휴, 우리 엄마도 툭하면 네가 선택하고 책임지라고 하는데요, 그게 어떨 땐 꼭 협박 같아요. 그래서 그냥 엄마한테 돈을 맡기고 말 때도 있어요.”
물론 예진이가 유난히 불량식품이나 자잘한 스티커 등 어른들 보기엔 불필요한 물건을 많이 사긴 한다. 그렇지만 예진이 말을 듣고 보니 꽤 억울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조만간 예진이 어머니를 만나 중재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과연 예진이와 엄마 사이의 신용 거래는 성사될 수 있을까?
+ 아이를 믿고, 아이를 도와주세요.
헨리와 말라깽이 (비버리 클리어리, 현암사)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은 헨리의 부모님을 무척 좋아한다. 헨리가 떠돌이 개를 키우고 싶어 할 때, 비싼 공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엉뚱한 아르바이트를 할 때, 헨리의 부모님은 합리적인 방법으로 헨리를 지원한다. 단순히 헨리의 선택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에 따른 책임을 완수하도록 돕는 것이 인상적이다. 어린이들이 읽으면 자립심을, 부모가 읽으면 책임감을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3학년 / 2016년 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